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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화

Author: 정대천
어진 태후라면, 병든 명부를 억지로 불러 문안을 올리게 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날 이후, 가장 화가 난 사람은 주서화였다. 본래 신수빈이 죽은 후 자신이 곧 정실로 봉해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신수빈의 명은 끈질겼다. 그런 상황에서 살아남은 것도 모자라 겨우 태기만 흔들리고 놀란 정도라니!

신수빈이 임신했다는 사실은 이미 모두가 아는 바였고 윤서원도 당연히 알게 되었다.

그는 화가 나고 분해서 토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신수빈이 감히 다른 남자의 애를 가졌다니!

주서화가 돌아와 울며 물었을 때 윤서원의 신경은 이미 한껏 곤두서 있었다. 게다가 그날 이도현이 자신을 도발하던 눈빛이 자꾸 떠올라 견딜 수 없을 만큼 화가 치밀었다. 그는 누구에게도 자신이 이도현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걸 들키기 싫었다. 그래서 사건의 진상을 그녀에게 말하지 않고 대충 둘러댔다.

그 아이는 주서화와 혼인하기 전에 가진 것이고 그녀를 집으로 들인 후에는 한 번도 신수빈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고 변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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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489화

    이도현은 이야기를 듣자마자 눈썹을 살짝 치켜 올렸다.“그 여자의 신분은?”신수빈은 순간 멈칫했다. 형수에게 자세한 내막을 묻지 않았던 것이다. 형수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부터 분노가 치밀어 올라, 다른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상대가 자신의 친오라버니라 해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묻지 않았어요.”이도현은 손을 들어 그녀의 이마를 가볍게 툭 쳤다. 그리고 웃음기 섞인 낮은 목소리로 타이르듯 말했다.“평소의 영리함은 다 어디 갔느냐? 청운서원에 여자가 있었다 해도 혼자였을 리는 없지. 그런데도 어떤 신분인지 물어볼 생각조차 안 했단 말이냐? 게다가 한낮의 청운서원이 무슨 텅 빈 폐가도 아니고, 정말 억지로 당했다면 그 자리에서 왜 소리치지 않았겠느냐. 어째서 네 오라버니가 정신을 차린 뒤에야 울고불고 난리를 쳤겠어?”신수빈은 이마를 문질렀다. 이도현이 이렇게 말하자, 그녀도 순식간에 정신이 번쩍 들었기 때문이다.오늘 형수가 목놓아 우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어지러워, 그녀 역시 아무것도 제대로 생각하지 못했던 것었다.신수빈은 살며시 그의 곁으로 다가가 아양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소녀가 어찌 왕야의 영민함과 견줄 수 있겠어요. 왕야께서는 단번에 일의 본질을 꿰뚫어 보시잖아요. 이 세상에 왕야처럼 눈빛 하나로 모든 걸 꿰뚫는 분이 몇이나 되겠어요.”이도현은 능청스럽게 아첨하는 그녀를 보며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그는 그녀를 품 안으로 끌어안고, 이를 갈며 낮게 속삭였다.“본왕을 받아 줄 것도 아니면서 괜히 사람 마음만 흔들지 말거라.”신수빈은 그의 옷 아래에서 전해지는 위협적인 열기를 느꼈다. 단단한 것이 그녀의 아랫배를 꾹 누르고 있었다.그녀는 입술을 꾹 다문 채 몰래 웃었다.“칭찬도 못 하게 하시다니, 왕야는 정말 모시기 어려운 분이시네요.”이도현은 결국 그녀를 놓아주며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정 씨를 불러오너라. 본왕이 몇 가지 물어보겠다.”신수빈은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갔다.이도현은 자리에 앉은 뒤 옷자락을 끌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488화

    커다란 산허리 아래에는 산을 받치는 쇠기둥 같은 것이 단단히 버티고 있었다.신수빈이 얼굴이 화끈해져 고개를 들려던 순간, 어깨에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뒤에 있는 그 못된 남자가 옷 너머로 그녀를 물어버린 것이었다.“왕야…”신수빈은 아픈 기색으로 살짝 애원했다. 일부러 힘을 뺀 듯 흐물흐물한 목소리였다.이도현은 그제야 입을 떼었지만, 마음속 울분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은 듯했다.“또 그런 표정 짓지 말거라. 본왕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네가 모를 리 없지 않으냐. 그런데도 네 형수를 붙잡아 같이 자겠다니, 본왕이 보기엔 네가 일부러 이러는 것 같다.”신수빈은 온몸에 불만이 밴 그의 투덜거림을 들으며 속으로 웃음이 나올 뻔했다. 하지만 지금은 산처럼 무거운 몸에 눌려 꼼짝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결국 좋은 말로 달랠 수밖에 없었다.“왕야께서 절 억울하게 만드시네요. 서란소축에서 헤어진 뒤로 저도 왕야를 무척 그리워했습니다. 그런데 형수님께 정말 일이 생긴 걸 어떡합니까. 저희 큰오라버니께서 어리석은 일을 벌이셨어요. 밖에서 정체 모를 여인과 얽히셨고, 그 일로 형수님 마음이 크게 상하셨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형수님을 혼자 두겠어요.”이도현은 신 가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저 그녀 역시 자신을 그리워했다는 말만으로 충분했다.그래서 곧장 조건을 내걸었다.“그럼 네 형수가 잠들면 본왕 방으로 오거라.”“왕야…”신수빈은 다시 부드럽게 애원했다.방 두 개가 바로 붙어 있는데, 만약 이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저 사람이 내는 소리를 형수님이 어찌 듣지 못하겠는가.“형수님은 저를 친동생처럼, 친딸처럼 아껴 주세요. 지금 형수님께서 이렇게 상심해 계신데, 제가 왕야와 옆방에서 그런 일을 하고 있으면 제 마음이 너무 괴로울 것 같아요. 왕야, 이번만은 저를 좀 봐주세요. 다음에는 꼭 왕야 뜻대로 할게요. 왕야께서 원하시는 게 무엇이든…”이도현은 그녀가 “원하시는 게 무엇이든”이라고 말하는 순간, 문득 서란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487화

    만약 신수빈 곁에 서 있는 또 다른 부인을 보지 못했다면, 그는 아마 그 자리에서 곧장 그녀를 끌어안아 버렸을 것이다.상대가 신수빈의 큰 형수인 정 씨라는 걸 확인하고서야, 이도현은 가까스로 치밀어 오르던 마음을 눌렀다.“신첩, 왕야를 뵙습니다.”정 씨는 눈가가 붉어진 채 이도현에게 예를 올렸다.“예는 됐다.”이도현은 눈썹을 슬쩍 치켜올리며 신수빈에게 시선을 보냈다. 어째서 정 씨가 이곳에 있는지 묻는 눈빛이었다.하지만 그 눈짓은 눈먼 사람에게 던진 추파나 다름없었다. 신수빈은 이도현 품에 안긴 아이를 보자마자 곧장 아이부터 받아 안았다.“아이고, 우리 아가. 또 이 어미가 보고 싶었느냐?”물기 어린 목소리가 어찌나 부드러운지, 금방이라도 녹아내릴 듯했다.이도현은 속으로 조용히 눈을 굴렸다.신수빈은 아이가 두툼하게 싸여 있는 걸 보고 서둘러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다 문득 문 앞에 아직 한 사람이 더 서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황급히 돌아보며 말했다.“왕야도 어서 들어오세요.”그래도 아직 본왕을 완전히 잊지는 않은 모양이군.정 씨도 그 뒤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왔다. 섭정왕이 날이 어두워진 뒤 일부러 아이까지 데리고 찾아온 것을 보니, 마음속으로는 이미 모든 사정을 짐작한 듯했다. 그녀는 눈치 있게 먼저 입을 열었다.“이야기는 내일 다시 나누자꾸나. 나는 다른 객방으로 가 보마. 오늘은 너와 연우가 오랜만에 만났으니 방해하지 않으마.”그 말을 남기고 정 씨가 몸을 돌리려 하자, 신수빈이 급히 그녀를 붙잡았다.“형수님, 괜찮아요. 오늘 밤은 저랑 형수님이 같이 연우를 데리고 자면 되잖아요.”정 씨는 곁에 서 있는 섭정왕의 안색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보고 감히 대답하지 못했다.그제야 신수빈도 뒤늦게 상황을 깨달은 듯했다. 그녀는 아이를 안은 채 이도현 곁으로 다가가, 부드럽고 나직한 목소리로 달래듯 말했다.“왕야, 형수님께서 큰오라버니 일로 마음고생이 심하세요. 친정도 멀리 항주에 있어 장안에는 의지할 사람 하나 없고요. 그래서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486화

    “제 일까지 그쪽이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비단옷 차림의 공자는 이미 윤수혁의 이런 태도에 익숙한 듯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지금은 이도현도 저 꼬마가 자기 자식인 줄 모르니까 저렇게 보물처럼 끼고 도는 거지. 그런데 만약 그 꼬마가 죽은 뒤에야 자기 친자였다는 걸 알게 된다면? 쯧쯧, 그때 표정이 얼마나 볼만하겠어.”윤수혁은 순간 고개를 번쩍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짓을 하려는 겁니까?”비단옷 공자의 눈매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마치 서리가 내려앉은 듯 싸늘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그놈은 내 부족 사람들과 부모, 형제들을 모조리 죽였다. 지금 당장은 내가 그를 죽일 수 없으니, 우선 그 새끼라도 죽여 분풀이 좀 해야겠어. 나중에 그 아이가 자기 친자였다는 걸 알게 됐을 때, 놈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생각만 해도 속이 다 시원하군.”그 말에 윤수혁의 표정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또 제멋대로 굴면, 당장 당신을 장안 밖으로 내쫓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할 겁니다.”하지만 비단옷 공자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비웃듯 말했다.“그 꼬마만 없어지면, 그것도 이도현 손안에서 죽은 거라면, 네 그 사랑스러운 제수씨께서도 아마 그를 뼛속까지 증오하게 되겠지. 하지만 그 아이가 멀쩡히 살아 있는 이상, 넌 신수빈이 왕부로 시집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어. 이번 생에는 너와 아무 인연도 없게 되는 거지.”윤수혁은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놓으며 그를 노려보았다.“평소엔 당신이 무슨 짓을 하든 내버려 두고 넘어갔지만, 이번 일만큼은 감히 멋대로 굴 생각하지 마십시오. 또 선을 넘으면 저도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비단옷 공자는 코웃음을 치며 잔 속 술을 단숨에 비워 냈다.“어디 끝까지 그렇게 태연한 척해 보시지.”*이도현이 호국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이 완전히 저문 뒤였다.호국사는 황실 사찰인 데다, 모두 속세와 거리를 둔 승려들이 머무는 곳이었다.그때 눈치 빠른 어린 사미승 하나가 직접 나서,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485화

    이번이 그 꼬마 녀석의 첫 마차 나들이는 아니었다.전에도 이도현이 자신의 큰 외투 안에 꽁꽁 싸 안고 다녔지만, 이제는 날이 제법 풀린 터라 두툼한 작은 이불에 감싸인 채, 신수빈이 손수 만들어 준 호랑이 머리 모양 모자를 썼다. 게다가 유모가 찬바람이 들지 않도록 솜수건으로 아이의 입과 코까지 단단히 가려 두었다.이도현은 아이를 안은 채 마차 휘장을 걷어 올렸다. 아직 해가 좋을 때 장안 거리 풍경을 보여 주려는 생각이었다.이 꼬마 녀석은 하루 종일 후원 안에서만 지냈다. 눈을 뜨면 보이는 사람이라곤 유모와 청하, 그리고 어멈들뿐이었다. 그래서인지 밤마다 유독 이도현 곁에서 자는 걸 좋아했다.아이는 지금 장안 거리의 북적이는 인파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시선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상인들의 고함 소리를 들어도 까르르 웃었고, 사람들이 서로 밀치며 지나가는 모습을 봐도 웃었다.그러다 길가의 아이 몇 명이 엿과자를 나눠 먹는 모습을 보자, 조그만 혀를 살짝 내밀며 저도 모르게 입술을 오물거리기 시작했다.그 모습을 본 이도현은 몹시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마치 어린 시절의 신수빈을 바라보는 기분이었다.“마차를 세워라. 엿과자 하나 사 오너라.”장풍은 금세 엿과자를 사 왔다. 왕야가 창문 너머로 그것을 받아 드는 모습을 보며,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이쯤 되면 친자식이랑 다를 게 대체 뭐란 말인가.마차 안에 앉아 있던 유모는 왕야가 엿과자를 아이 입가로 가져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말했다.“왕야, 도련님께서는 아직 이런 걸 드시면 안 됩니다.”하지만 이도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굳이 설명할 생각도 없었다.전부 먹이려는 것도 아니고, 그저 한 번 맛만 보게 하려는 것뿐인데 못 할 게 뭐 있단 말인가.이도현은 작은 녀석이 입을 벌리고 엿과자 겉에 입혀진 엿을 열심히 빨아 먹는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것을 먹는 것처럼 눈을 크게 뜬 채 계속 쪽쪽 빨아댔다.한참 그렇게 빨다 보니 단맛이 옅어졌는지, 아이는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484화

    이도현이 예왕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만족스러운 듯 말했다.“일단 맡아 보거라. 본왕이 몇 사람을 붙여 너를 보좌하게 하면 된다. 지금 조정에서는 이 주고관 자리를 두고 서로 차지하려고 머리가 깨질 지경이니 말이다.”그러나 예왕은 여전히 침묵한 채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다. 아직 하지 못한 말이 남아 있는 듯했다.“무슨 할 말이라도 있느냐?”이도현이 묻자, 예왕은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왕숙, 제가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감히 할 수가 없어 그렇습니다. 저는 형님들이나 아우들처럼 처가나 외가의 뒷받침이 없습니다. 어려서부터 의지할 곳이 없다는 걸 알고 살아왔기에, 늘 말과 행동을 조심해 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주고관이 된다면, 앞으로 저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남의 입에 오르내리게 될 겁니다. 자칫 말 한마디라도 왜곡된다면, 저는 입이 열 개라도 변명할 수 없게 되겠지요.”그는 다시 깊이 예를 올렸다.“제가 어리석긴 하나, 나무가 숲에서 홀로 높이 자라면 반드시 먼저 바람을 맞는다는 도리는 알고 있습니다. 지금 청운서원이 세가들에게 온갖 말에 오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들의 이익을 건드리게 되면, 반드시 표적이 될 것입니다.”이도현은 눈앞의 신중한 예왕을 바라보며, 그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이미 알아차렸다.결국 그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훗날 조정 신료들의 의심과 공격을 받게 되더라도, 이도현만큼은 자신을 믿어 달라는 것.이도현은 손을 뻗어 예왕을 일으켜 세우며 담담히 말했다.“진심으로 사직을 위한다면, 네가 기댈 곳은 바로 이 사직이다. 남들이 무슨 상관이냐.”예왕은 그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이도현은 쉽게 약속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 번 입 밖에 낸 말은 반드시 지켰다. 그가 이렇게 말해 준 이상, 자신이 한결같이 백성과 조정을 위해 일하는 한, 그는 절대 남의 참언에 휘둘리지 않을 터였다.“그렇다면 왕숙께서 맡겨 주신 중책에 감사드리겠습니다.”이도현은 문득 생각했다.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39화

    주서화가 나서서 말하자, 자리에 있던 부인들이 신수빈을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녀의 당당한 말에 거의 속을 뻔했으나, 이제 와서는 사실이 아닌가 싶어 의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서씨 부인는 요즘 주서화의 행실을 못마땅하게 여겼으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주서화가 자기 편을 들어주었고 큰 도움이 되었다. 서씨 부인는 기세가 등등해져 목소리를 높였다."신씨 집안의 가풍이니, 절개이니, 내가 보기엔 제 분수를 모르는 천한 집안일 뿐이다. 내 아들은 본래 서화처럼 황실의 귀한 규수를 맞이해야 했거늘, 너희 신씨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33화

    금자는 주먹을 쥐고 남자에게 다가갔다. 불과 몇 번의 동작만에 남자는 땅에 나가떨어졌고 청하는 재빨리 여자를 부축했다. 신수빈은 다가가 두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고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며 얼굴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여인은 신수빈이 분명 어느 대가의 귀한 부인임을 알아차리고 두 아이를 데리고 얼른 무릎을 꿇어 절을 했다. 신수빈은 그녀들을 일으켜 세웠다."어찌하여 그자와 이혼하지 않으시고 이리도 그에게 휘둘리며 고생만 하십니까?"여자는 목이 메어 답하였다. "이혼이 말이 쉽지, 친정에서도 저를 받아주지 않을 터이고 무엇보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58화

    그것은 분명 기뻐하고 축하할 만한 일이었다. 그녀가 애써 공들여 짜낸 계책이 헛되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바로 이날을 기회 삼아 타오르고 있는 윤 가의 불길 위에 장작을 한 짐 더 얹어줄 수 있었으니.금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바깥에서 소란스러운 기척이 들려왔다. 신수빈은 청하를 시켜 확인하게 했다. 잠시 후 돌아온 청하의 얼굴빛은 어둑했다.“집사께서 사람을 시켜 세자를 우리 창란원으로 모셔다 놓았습니다.”신수빈은 미묘하게 눈썹을 치켜 올리더니 겉옷을 걸치고 나왔다. 피투성이로 들려온 윤서원은 이미 방 안에 엎어져 있었다. 그녀는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49화

    신수빈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을 보고는 곧장 한발 물러섰다. 반면, 윤서원은 두 눈썹을 바짝 찌푸린 채 크게 소리쳤다.“감히! 여기는 평양 후부다. 어찌 감히 이곳에서 함부로 소란을 피우는 것이냐!”그러나 상인들은 윤서원의 준엄한 꾸짖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당당하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우리가 찾는 곳이 바로 평양 후부입니다. 우리들은 성서에서 원림 장사를 하는 자들인데, 반 달 전 귀부 측에서 명귀한 나무와 꽃을 다수 주문해 가 놓고 며칠 뒤에 값을 치르겠다고 하더니 이제 보름이 지나도록 아무런 말이 없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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