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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황궁으로 가는 길

last update Petsa ng paglalathala: 2026-05-18 18:03:12

​

​

"뭐가 와? 황실 마차가 우리 집 앞마당을 밟았다고?"

​

정적을 깬 칼라일 오빠의 목소리는 낮고 서늘했다.

파란 하늘을 보며 현실을 부정하던 내 손에서 편지를 낚아챈 그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혹한의 겨울처럼 얼어붙었다.

​

"이 미친 새끼가 누구한테 황명 따위를 지껄이는가.

간밤에 가짜 그림자 놈들 때문에 내 동생이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누누이 언급했거늘,

사과는커녕 대놓고 황궁으로 불러들여?

루체른을 무슨 제 발 밑 돌멩이 정도로 여기는 모양이지?"

​

칼라일은 옆구리에 차고 있던 제국 제일의 명검인 ‘리베르’의 검자루를 꽉 쥐었다.

검집에서 새어 나온 푸른 검기가 바닥의 잔디를 하얗게 얼려버릴 듯 번뜩였다.

​

"오라버니, 설마…… 지금 그 검을 뽑으시려는 건 아니죠?"

"마차 바퀴를 정확히 반 토막 내고,

헛소리를 입에 담은 본보기로 같이 온 기사의 목을 쳐서 황궁으로 돌려보내 주마.

엘리노아, 루체른은 오란다고 오고 가란다고 가는 가문이 아니다.

황제가 망령이 든 게 아니라면 오늘 똑똑히 알게 되겠지."

"안 돼요! 제발 참으세요, 오빠!"

​

나는 사색이 되어 칼라일의 소매 끝을 붙잡았다.

저 남자는 빈말을 하는 법이 없다.

정말로 황실 근위대를 썰어버리고 제국 전체를 얼음 벌판으로 만들 인간이다.

​

황제가 어젯밤 일을 빌미로 내가 그날 담을 넘던 시종인지 확인하려 든다는 사실까지 안다면,

큰오빠는 아마 정말로 전쟁이라도 일으킬지도 모른다.

두 오빠가 쌍으로 정말…!

​

"오빠, 제발 진정해! 이건 황명이야. 여기서 오빠가 칼을 휘두르면 우리 가문 전체가 반역으로 몰린다고!"

"막내야, 두려워하지 마라. 오라비가 널 지켜줄 테니!"

​

그때, 소식을 듣고 달려온 작은오빠 카시안이 평소의 능글맞은 미소를 싹 지운 채 내 옆에 섰다.

그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고,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엔 형언할 수 없는 죄책감이 서려 있었다.

​

"형님, 고정하십시오! 황실 마차에 손을 대는 순간 제 비밀…… 아니, 가문의 존립이 위태로워집니다.

흑, 막내야. 미안하다. 미친 황제가 기어코 내 약점을 눈치채고 너를 인질로 삼으려 하는구나."

​

카시안은 카시안대로 오해의 늪에 깊이 빠져 있었다.

그는 자신이 은밀히 진행하던 '금기된 아티팩트' 제작 건이 들통나 황제가 나를 압박 카드로 부르는 것이라 확신한 모양이었다.

칼라일은 검기를 뿜어내고,

카시안은 내 손을 꼭 쥔 채 자책하는 이 대 환장 파티(?) 속에서,

나는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

"둘 다 조용히 하고 내 말 좀 들어봐요."

​

낮게 깔린 내 목소리에 오빠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꽂혔다.

나는 떨리는 심장을 억누르며 가장 비장하고 우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

"제. 가. 가겠어요."

"막내야!" "안 된다, 엘리노아!"

"이건 제 몫이에요. 우리 가문을 위해 제가 직접 폐하를 뵙고 무엇이든 오해를 풀고 오겠어요.

그러니까 제발 그 칼 좀 내려놓으세요, 큰오빠. 그리고 작은오빠도 그만 좀 하고요."

​

'가서 어떻게든 내가 그 시종이 아니라고 박박 우겨볼 테니까, 제발 나대지 마 오빠들!'

​

속마음을 감춘 채 짓는 내 미소가 가련해 보였던 걸까.

두 오라버니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연약한 막내 여동생이 가문의 안위를 위해 제 발로 사지로 걸어 들어가는 그야말로 눈물겨운 이별 장면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

채비를 위해 방으로 돌아온 나는 떨리는 손으로 침대 매트리스 깊숙이 숨겨두었던 은 원통을 꺼냈다.

이걸 두고 가기엔 마음이 놓이지 않았고,

들고 가기엔 발각될까 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

‘어떻게 하지?’

​

결국 나는 그것을 속치마 안쪽 비밀 주머니에 단단히 고정했다.

​

"아가씨, 어서 채비를……! 황실 근위대가 정문에서 대기 중입니다."

​

집사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황명이라는 이름의 소환장 아니지 영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사시나무 떨듯 떠는 전담 시종 릴리의 손을 잡아 진정시킨 뒤 무거운 걸음으로 저택을 나섰다.

​

덜컹, 마차가 출발하자마자 나는 창밖으로 멀어지는 루체른 공작저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배웅하는 칼라일의 손은 여전히 검자루를 쥐고 있었고,

카시안은 내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

‘오빠들, 미안해. 막내 먼저 간다. 혹시라도 수용소에서 내가 못 돌아오면…

그땐 제사상에 내가 사랑했던 고기파이를 꼭 올려줘. 와규 쓰리뿔(1+++)로,

알지? 기왕이면 육즙이 팡 터지는 걸로!’

​

황궁으로 향하는 길은 더럽게도 매끄러웠다.

마차 벽면에 새겨진 금빛 태양 문양이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평생을 로판 여주처럼 꽃길만 걷고 싶었는데,

내 인생 장르는 이제 ‘생존물’따위로 완전히 확정된 모양이었다.

​

여신 루세티아시여, 제발 제 목숨을 보전케 하옵소서.

​

저 멀리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황궁의 금색 지붕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부디 내 목이 오늘도 무사히 하루가 지나기를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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