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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잊힌 신의 기록자와 조각난 빛

ผู้เขียน: 내사랑나무
last update วันที่เผยแพร่: 2026-05-18 18:03:16

[같은 시각, 수도 외곽 지하 신전]

​

“……루체른의 결계에 막혀 모두 얼어붙었다라.” ​

​

붉은 휘장 너머,

어둠의 옥좌에 비스듬히 앉은 자하크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실패를 보고하는 부하의 몸은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지만,

자하크의 뱀 같은 은빛 눈동자에는 분노 대신 기묘한 흥미가 번져 있었다. ​

​

“제국의 사냥개, 칼라일 루체른의 솜씨겠지. 여전히 성가신 놈이야.” ​

​

자하크가 길고 창백한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제단 위로 서늘한 푸른 불꽃이 일렁이며 타올랐다.

불꽃 속에는 그가 심어둔 까마귀의 시야가 투영되고 있었다.

화면 속에는 루체른 공작저를 떠나 황궁으로 서서히 멀어져 가는 황실 마차의 잔상이 맺혔다. ​

​

“루세티아의 파편이 담긴 성유물이 분명 저 영애의 품에 있을 거다.” ​

​

자하크의 핏기 없는 입꼬리가 섬뜩하게 비틀렸다.

그가 갈구하는 것은 단순한 힘이 아니었다.

​

“성유물을 타락시켜 주술을 완성하기만 하면, 심연에 잠든 고대의 마신을 현세에 불러낼 수 있지.

그리고 그 마신의 거대한 마력을 제물 삼아…

마침내 내가 그토록 갈구하던 루세티아의 영혼을 다시 이 땅으로 불러올 수 있을 것이다.”

​

자하크의 눈에 광기 어린 열망이 스쳤다.

​

수백 년 전 사라진 여신을 다시 현세로 끌어내리기 위해, 그는 가장 고결한 성물을 가장 추악한 어둠으로 물들일 계획이었다.

​

“가만히 있던 카엘루스 황제가 직접 판을 흔들기 시작했다라…….”

​

자하크는 턱을 괴며 흥미롭다는 듯 낮게 웃었다.

​

황제가 루체른의 영애를 어떻게 찾아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제국에서 가장 뒤틀린 기운을 지닌 황제가 성물 곁에 머물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

“과거에도 그랬지. 한없이 고결했던 너는 고작 초라한 저 적안의 인간 따위 때문에 비참하게 소멸해 버렸어. ”

​

자하크의 눈에 서늘한 조소가 맺혔다.

수백 년 전,

여신이 한낱 인간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겨 스스로를 파멸로 몰아넣었던 그 멍청한 역사를 그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

한동안 웃음인지 흐느낌인지 모를 기괴한 소리가 제단 위로 흩어졌다.

자하크는 미친 듯이 떨리는 눈동자를 갈무리하더니,

창백한 손가락으로 푸른 불꽃을 휘저었다.

자하크의 손끝에서 푸른 불꽃이 폭발하듯 솟구쳤다.

​

“널 반드시 되돌릴 거야.”

​

이내 표정을 서늘하게 굳힌 그가 마차의 환영을 응시했다.

​

“루세티아의 기운을 이어받은 저 루체른의 꼬맹이조차 또다시 카엘루스에게 끌린다니. 재미있군. 가증스러울 만큼 질긴 인연이야.”

​

자하크가 푸른 불꽃을 향해 손을 뻗자,

불꽃이 그의 손길에 반응하며 기괴하게 뒤틀렸다.

​

“이 지긋지긋한 인연의 고리도 이번엔 내가 모두 갈기갈기 잘라 없애버리겠어. 루세티아, 너는 결국 내 것이 될 운명이니.”

​

기분 나쁜 울음소리를 내뱉은 까마귀 한 마리가,

황궁을 향해 달리는 마차의 짙은 그림자 속으로 소리 없이 스며들었다.

운명의 수레바퀴는 이제 누구도 멈출 수 없는 파멸,

혹은 재회를 향해 구르기 시작했다.

​

​

​

**

​

​

​

황실 마차의 육중한 문이 열리고,

눈이 시리도록 화려한 대리석 바닥 위에 발을 내디뎠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숨 가쁘게 담을 넘고 달렸는데.

오늘은 정문으로, 그것도 황제가 보낸 마차를 타고 당당히 걸어 들어오다니.

인생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

“공녀를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

마차 앞에서 나를 맞이한 건 제국 기사단장, 엘릭 경이었다.

​

그는 우리 큰오빠 칼라일과 어린 시절부터 크고 작은 전쟁에서 생사를 함께한 절친한 친구이자,

제국에서 손꼽히는 강자 중 하나였다.

​

“엘릭 경, 오랜만에 뵙네요. 큰 오라버니가 안부를 전해달라더군요. (얼음 칼로 황궁을 초토화시키기 전에 얼른 동생을 돌려보내라는 무언의 압박과 함께요.)”

​

내 말에 엘릭의 눈썹이 움찔 떨렸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하하, 칼라일답군요. 그 무시무시한 인사는 여전한가 봅니다.”

​

엘릭은 예우를 갖추며 나를 안내했다.

하지만 기사들 사이를 가로질러 가던 내 눈에 기묘한 광경이 포착되었다.

엘릭의 어깨 부근,

그리고 뒤를 따르는 기사들의 그림자 끝에 아주 미세하고 끈적거리는 검은 실 같은 기운이 일렁이고 있었다.

​

‘하, 저건 또 뭐야?’

​

첫발부터 역시나 예상을 뛰어넘는 블랙 황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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