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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밤부터 계약 위반입니다

Auteur: 유월
last update Date de publication: 2026-08-21 08:57:18

“싫은데.”

나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뭐라고요?”

“영역 표시 금지.”

레오나르드가 태연하게 말했다.

“그건 싫다고.”

나는 입을 벌렸다.

결혼식이 끝난 지 고작 세 시간.

우리는 분명 일주일 전에 계약서를 작성했다.

서로의 사생활에 관여하지 않는다.

각자의 침실을 사용한다.

필요 이상의 부부 행세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방금.

내가 새롭게 추가하려던 조항.

영역 표시 금지.

그걸 이 남자가 거절했다.

“공작님.”

“왜.”

“계약결혼의 뜻을 모르세요?”

“안다.”

“그런데 왜 영역 표시를 해요?”

“필요하니까.”

“어디에요?”

레오나르드가 나를 바라봤다.

정확히는.

내 목덜미를.

나는 반사적으로 손으로 목을 가렸다.

“……왜 거길 봐요?”

“아무것도.”

“방금 봤잖아요.”

“봤지.”

“그게 아무것도예요?”

“보기만 했으니까.”

정말.

말이 안 통한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저한테 공작님 냄새 묻히지 마세요.”

“이미 묻었다.”

“뭐가요?”

“내 냄새.”

“어디에!”

레오나르드가 손을 들었다.

그리고 내 머리카락을 가리켰다.

“거기.”

“…….”

“결혼식 때 안았으니까.”

나는 황급히 붉은 머리카락을 앞으로 끌어당겼다.

킁킁.

……젠장.

정말이다.

희미하지만 느껴졌다.

짙은 나무 향.

비가 내린 뒤의 숲처럼 묵직한 향에 아주 희미하게 섞인 따뜻한 체향.

오늘 하루 종일 가까이에 있었던 레오나르드의 냄새였다.

“씻을 거예요.”

그의 눈썹이 움직였다.

“지금?”

“네.”

“왜.”

“냄새 지우려고요.”

“…….”

왜 저런 얼굴을 하지?

나는 의아하게 그를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 태연하던 남자의 표정이 묘하게 굳어 있었다.

“왜요?”

“아무것도 아니다.”

“또 아무것도.”

“씻어.”

“당연히 씻을 거예요.”

나는 문을 닫으려 했다.

그런데.

탁.

레오나르드의 손이 문을 막았다.

“잠깐.”

“이번에는 또 뭐예요?”

“오늘 밤.”

“네.”

“문 잠그지 마.”

나는 눈을 깜빡였다.

“……왜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경비가 있잖아요.”

“그래도.”

“싫어요.”

“세리아.”

“싫다고요.”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첫날밤부터 제 방 문을 열어두라고 하는 계약 남편이 어디 있어요?”

“그런 뜻이 아니다.”

“그럼 무슨 뜻인데요?”

레오나르드가 입을 다물었다.

말하기 곤란한 것처럼.

……수상하다.

“됐어요.”

나는 문을 잡았다.

“잘 자요, 공작님.”

“세리아.”

쾅.

문을 닫았다.

찰칵.

그리고 일부러 들으라는 듯.

크게 문까지 잠갔다.

문밖이 조용했다.

잠시 후.

“……고집은.”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문을 향해 혀를 내밀었다.

“누가 할 소리를.”

목욕을 마치자 살 것 같았다.

“후우.”

나는 따뜻한 물기가 남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닦았다.

레오나르드의 냄새도 거의 사라졌다.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깨끗하게 씻었는데.

어딘가 허전했다.

“……뭐야.”

나는 코끝을 찡그렸다.

설마.

그 냄새에 벌써 익숙해진 건 아니겠지.

말도 안 된다.

오늘 처음 제대로 붙어 있었는데.

나는 고개를 저었다.

“피곤해서 그래.”

결혼식 때문에 하루 종일 긴장했다.

아침부터 드레스를 입고.

인사를 하고.

수백 명 앞에서 웃고.

그리고.

……입맞춤까지.

순간 입술에 닿았던 감촉이 떠올랐다.

“…….”

나는 손끝으로 입술을 만졌다.

따뜻했다.

생각보다.

그리고 단단했다.

아니.

잠깐.

내가 지금 뭘 생각하는 거야?

“미쳤어.”

나는 손을 내렸다.

그런데 머릿속에서는 자꾸 그 장면이 반복됐다.

허리를 감싸던 커다란 손.

순식간에 좁아졌던 거리.

코끝을 스쳤던 그의 숨결.

그리고.

‘혀는 안 썼는데.’

“……!”

나는 베개를 집어 들었다.

퍽.

침대에 던졌다.

“진짜 미친 사자.”

왜 그런 말을 해!

괜히 사람 신경 쓰이게!

꼬리가 침대 위에서 탁탁 움직였다.

나는 꼬리 끝을 붙잡았다.

“너도 가만히 있어.”

꼬리는 억울하다는 듯 손안에서 꿈틀거렸다.

수인의 귀와 꼬리는 감정에 솔직하다.

특히 붉은여우는 더했다.

기쁘면 꼬리가 흔들리고.

당황하면 귀가 서고.

경계하면 꼬리털이 부풀어 오른다.

그래서 사교계에서는 감정을 숨기고 싶을 때 귀와 꼬리를 감추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결혼식이라 그럴 수 없었다.

덕분에 레오나르드에게 내 반응을 실컷 들켰다.

내일부터는 무조건 숨겨야겠다.

나는 그렇게 결심하고 침대에 누웠다.

푹신한 이불.

따뜻한 방.

낯선 천장.

오늘부터 1년 동안 살게 될 곳.

발테리온 공작저.

그리고 바로 옆방에는.

내 남편이 있다.

“…….”

나는 눈을 감았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말자.

자자.

그런데.

이상했다.

잠이 오지 않았다.

뒤척.

한 번.

뒤척.

두 번.

세 번.

“……왜 이렇게 불편하지.”

침대가 불편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로제니아 저택보다 좋았다.

방도 따뜻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신경이 곤두섰다.

귀가 자꾸 주변 소리를 찾았다.

바람 소리.

커튼이 흔들리는 소리.

복도를 걷는 하인의 발소리.

그리고.

그 사이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익숙한.

아니.

고작 하루밖에 맡지 않은.

그 냄새를.

“……설마.”

나는 벌떡 일어났다.

말도 안 돼.

나는 붉은여우다.

여우는 환경 변화에 예민하기는 해도 배우자의 체향을 찾는 습성이 있는 종족은 아니었다.

그건 오히려.

사자 같은 대형 육식계 수인에게서 강하게 나타나는 특징이었다.

특히 짝을 맺은 직후에는—

“짝 아니거든.”

나는 혼잣말했다.

계약 남편이다.

그것도 1년짜리.

그러니까 지금 잠이 안 오는 건 단순히 낯선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누웠다.

그런데.

몇 분이나 지났을까.

귀가 쫑긋 섰다.

사각.

문밖에서 소리가 났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누구세요?”

대답이 없다.

사각.

이번에는 확실했다.

문 바로 앞.

나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살금살금 문으로 다가갔다.

“누구냐고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설마.

침입자?

발테리온 저택에?

나는 근처에 있던 촛대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찰칵.

“……!”

문을 연 순간.

커다란 무언가가 눈앞을 가득 채웠다.

나는 비명을 삼켰다.

황금색.

거대한 갈기.

두꺼운 앞발.

그리고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빛나는 황금빛 눈.

“…….”

“…….”

나는 한참 그것을 바라봤다.

그것도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공작님?”

거대한 황금사자가 눈을 피했다.

나는 기가 막혔다.

“지금 뭐 하세요?”

사자가 대답할 리 없었다.

“설마.”

나는 문 앞을 내려다봤다.

그곳에는.

아까 내가 돌려보낸 황금빛 담요가 놓여 있었다.

“…….”

설마.

나는 사자를 바라봤다.

“이거 가져다 놓으려고 오셨어요?”

사자가 또 시선을 피했다.

맞구나.

“하.”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진짜 고집 세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이상했다.

“근데 왜 수인화까지 했어요?”

황금사자의 귀가 움찔했다.

“…….”

“설마 인간 모습으로 오면 제가 문 안 열어줄까 봐?”

귀가 또 움직였다.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맞죠?”

사자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기가 막혔다.

제국 최강의 수인.

전쟁터에서는 수천의 적군이 그의 포효 한 번에 얼어붙는다는 황금사자.

그 남자가.

담요 하나를 가져다주겠다고 한밤중에 사자 모습으로 내 방문 앞에 앉아 있었다.

“……푸흡.”

결국 웃음이 터졌다.

사자의 시선이 돌아왔다.

“미안해요.”

나는 입을 가렸다.

“그런데 너무…….”

웃기다.

차마 마지막 말은 하지 못했다.

황금사자의 꼬리가 바닥을 탁 쳤다.

“알았어요. 안 웃을게요.”

나는 담요를 집어 들었다.

“이거 받으면 가실 거죠?”

사자가 나를 바라봤다.

“뭐예요.”

그가 움직였다.

한 걸음.

내 쪽으로.

“잠깐.”

또 한 걸음.

“공작님?”

거대한 몸이 가까워졌다.

인간 모습일 때도 컸지만.

완전한 사자의 모습은 차원이 달랐다.

내 어깨보다 높은 몸.

커다란 머리.

황금빛 갈기.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왜, 왜 들어와요?”

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내 앞까지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커다란 코가 내 머리카락에 닿았다.

킁.

“……!”

킁.

“공작님!”

내 귀가 솟았다.

사자가 다시 냄새를 맡았다.

목 가까이까지.

따뜻한 숨결이 피부에 닿았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너무 가까웠다.

그의 체온이 느껴질 만큼.

“잠깐만…….”

나는 본능적으로 목을 움츠렸다.

그러자 황금사자가 멈췄다.

황금빛 눈이 나를 바라봤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심장이 이상하게 빨리 뛰었다.

“……냄새 맡지 말랬잖아요.”

잠시 침묵.

그리고 사자가 한 걸음 물러났다.

그제야 숨을 내쉴 수 있었다.

“후우…….”

나는 목을 만졌다.

뜨거웠다.

“인간으로 돌아와요.”

잠시 후.

황금빛이 사자의 몸을 감쌌다.

거대한 몸이 줄어들었다.

갈기가 금발이 되고.

앞발이 손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레오나르드가 내 앞에 서 있었다.

“…….”

문제가 하나 있었다.

“옷.”

“뭐?”

“옷부터 입고 오셨어야죠!”

나는 황급히 뒤돌았다.

완전 수인화를 했다가 돌아오면 옷이 그대로 남아 있을 리 없었다.

다행히 허리 아래로는 변환 마력이 희미한 천처럼 몸을 가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너무.

맨몸이었다.

넓은 어깨.

단단한 가슴.

허리까지 이어지는 선.

결혼식 제복 아래 감춰져 있던 몸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아까 한순간 본 것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왜 돌아서지?”

“왜겠어요!”

“부부인데.”

“계약 부부!”

또 그 말이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이건 계약 위반이에요.”

“뭐가.”

“제 방에 들어온 거!”

“네가 문을 열었다.”

“공작님이 앞에 있었잖아요!”

“그래서?”

“……나가요.”

“담요는?”

나는 손에 들린 황금빛 담요를 내려다봤다.

“받았잖아요.”

“덮어.”

“네?”

“그거 덮고 자.”

“왜요?”

“그래야 잠들 테니까.”

나는 멈칫했다.

“……제가 잠 못 자는 걸 어떻게 알았어요?”

레오나르드가 대답하지 않았다.

“설마 계속 밖에 있었어요?”

침묵.

“공작님.”

“…….”

“언제부터요?”

그가 마지못해 말했다.

“네가 세 번째로 뒤척였을 때부터.”

“…….”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들리니까.”

“옆방에서?”

“사자니까.”

이게 무슨.

나는 얼굴을 감쌌다.

“미치겠네.”

“그리고.”

레오나르드가 말했다.

“나도 잠이 안 와.”

나는 손을 내렸다.

그의 표정은 생각보다 진지했다.

“왜요?”

“네 냄새가 사라져서.”

“…….”

“씻었잖아.”

“그래서요?”

“그래서 신경 쓰여.”

내 심장이 순간 이상하게 뛰었다.

“그건…… 공작님 종족 특성 아니에요?”

“아마.”

“그러면 참으세요.”

“참고 있다.”

“이게요?”

“지금 네 목을 안 물고 있잖아.”

“……!”

나는 반사적으로 목을 감쌌다.

레오나르드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의미 아니다.”

“그럼 그런 말을 하지 마세요!”

“사자는 배우자의 목덜미에 체향을 남기는 습성이 있다.”

“전 배우자가 아니라 계약…….”

“알아.”

그가 말을 잘랐다.

“그러니까 참고 있다고.”

“…….”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제야 알았다.

아까부터 레오나르드가 이상했던 이유를.

그는 장난치는 게 아니었다.

정말로.

본능을 참고 있었다.

“……많이 힘들어요?”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레오나르드가 나를 바라봤다.

“왜.”

“그냥 물어보는 거예요.”

“솔직하게?”

“네.”

“꽤.”

“…….”

“특히 지금은.”

“왜 지금인데요?”

그의 시선이 천천히 내려갔다.

내 젖은 머리카락.

얇은 잠옷 위로 드러난 목선.

그리고 다시 얼굴.

“씻고 나와서.”

“…….”

목소리가 낮았다.

이상하게 낮았다.

나는 괜히 잠옷의 목 부분을 끌어올렸다.

“보지 마세요.”

“안 보려고 노력 중이다.”

“눈 감으면 되잖아요.”

레오나르드가 정말 눈을 감았다.

“…….”

나는 당황했다.

“진짜 감으면 어떡해요.”

“감으라며.”

“아니, 그냥…….”

그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당했다.

“공작님.”

“왜.”

“지금 웃었죠?”

“아닌데.”

“웃었잖아요.”

“안 봤으면서 어떻게 알아.”

“…….”

얄미워.

나는 담요를 침대 위에 던졌다.

“됐어요. 이제 나가세요.”

“덮고 자.”

“알았어요.”

“정말?”

“네.”

그제야 레오나르드가 눈을 떴다.

그리고 문으로 향했다.

나는 그의 등을 바라봤다.

그런데.

문 앞에서 그가 멈췄다.

“세리아.”

“왜요?”

“내일 계약서 다시 쓰자.”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영역 표시 금지 넣으려고요?”

“아니.”

그가 돌아봤다.

“비상시에는 서로의 방에 들어갈 수 있다는 조항.”

“오늘 같은 건 비상 상황 아니거든요?”

“내 기준에는 맞아.”

“무슨 비상인데요?”

레오나르드가 잠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말했다.

“아내가 잠을 못 자는 상황.”

“…….”

문이 닫혔다.

찰칵.

나는 그대로 굳어 있었다.

잠시 후.

귀가.

천천히.

쫑긋 섰다.

“……뭐야.”

나는 귀를 눌렀다.

“그런 말을 왜 해.”

심장이 또 빨리 뛰었다.

나는 침대로 돌아갔다.

그리고 아까 받은 황금빛 담요를 바라봤다.

“…….”

덮지 말까.

그냥 치워버릴까.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슬쩍 끌어당겼다.

몸 위로 덮었다.

순간.

익숙한 향이 퍼졌다.

짙은 숲.

따뜻한 햇빛.

그리고 레오나르드.

“…….”

이상했다.

조금 전까지 그렇게 잠이 안 왔는데.

담요를 덮자.

긴장이 서서히 풀렸다.

나는 이불 안으로 몸을 웅크렸다.

꼬리가 자연스럽게 담요 안으로 들어왔다.

“진짜…….”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사자 냄새 때문에 자는 거 아니야.”

누구에게 하는 변명인지 모르겠다.

“그냥 담요가 따뜻해서…….”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아주 푹 잤다.

정말.

너무 푹.

그래서 눈을 뜬 순간 기분이 좋았다.

“음…….”

따뜻했다.

포근했고.

무엇보다.

좋은 냄새가 났다.

나는 눈을 감은 채 담요에 얼굴을 비볐다.

부드러운 털이 볼에 닿았다.

“……따뜻해.”

그리고.

문밖에서.

툭.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눈을 떴다.

열려 있는 문.

그 앞에 선 시녀.

바닥에 떨어진 찻잔.

그리고.

시녀가 내 침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내가 온몸으로 끌어안고 있는 황금빛 담요를.

“…….”

“…….”

잠시 후.

시녀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죄, 죄송합니다, 부인!”

“잠깐.”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뭘 못 봐!”

“공작님의 체향 담요를 끌어안고 주무셨다는 사실은 절대—”

“잠깐만!”

시녀가 도망쳤다.

나는 침대 위에서 굳었다.

그리고 천천히.

품 안을 내려다봤다.

담요를 끌어안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꼬리까지 담요에 돌돌 말려 있었다.

“…….”

망했다.

수인 사회에서.

배우자의 체향이 밴 물건을 저렇게 끌어안고 자는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나도 알고 있었다.

상대의 체향을 받아들였다는 뜻.

나는 황급히 담요를 밀어냈다.

“아니야!”

아무도 없는데 외쳤다.

“이건 오해야!”

그 순간.

열린 문 너머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뭐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레오나르드가 서 있었다.

완벽하게 차려입은 모습으로.

그리고.

웃고 있었다.

아주 조금.

하지만 확실하게.

“잘 잤나 보네.”

“…….”

“내 냄새가 싫다더니.”

“…….”

“꽤 마음에 들었나 봐.”

내 귀가.

확 솟았다.

“나가요.”

“내가 들어온 것도 아닌데.”

“그냥 나가요!”

“복도인데?”

“복도에서도 나가요!”

레오나르드의 웃음이 조금 더 짙어졌다.

그날 아침.

나는 확신했다.

1년 뒤 이혼하기 전에.

내가 저 사자를 한 번은 반드시 물어버릴 거라고.

그런데 그때는 몰랐다.

먼저 물게 되는 쪽이.

내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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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분이.”엘로디아가 웃으며 말했다.“1년 뒤 헤어지기로 했다는.”정적.방 안의 공기가.완전히 식었다.나는 레오나르드를 바라봤다.그도.나를 보고 있었다.1년.그건.우리 둘만의 계약이었다.정확히는 계약서를 작성한 변호사와 극소수의 측근들만 알고 있는 내용.외부에 알려질 이유가 없었다.특히.과거 레오나르드와 혼담이 오갔던 여자가 알 이유는.더더욱.없었다.내 꼬리가.그의 다리를 더 세게 감았다.이번에는.나도 일부러 풀지 않았다.레오나르드가 아주 천천히 시선을 엘로디아에게 돌렸다.“누구에게 들었지.”목소리가 차가웠다.엘로디아의 미소가 아주 조금 굳었다.“그게 중요한가요?”“중요하다.”“그냥 소문이에요.”“소문에는 시작점이 있어.”레오나르드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나는 그의 팔을 잡았다.“잠깐.”그가 나를 봤다.“제가 물을게요.”“세리아.”“괜찮아요.”나는 엘로디아를 바라봤다.그리고.웃었다.“영애.”“네.”“그 소문.”나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어디서 들으셨어요?”엘로디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사교계에서요.”“어느 사교계요?”“…….”“수도에 있는 귀족들이 그렇게 한가한가 봐요.”나는 부드럽게 말했다.“남의 결혼 계약 기간까지 알아낼 정도로.”엘로디아의 미소가 희미해졌다.“굳이 따지실 필요가 있을까요?”“있죠.”“왜요?”“사실이 아니니까.”말해놓고.심장이 순간 움찔했다.사실이다.정확히.1년 뒤 합의 이혼.계약서에 쓰여 있다.그런데.나는.거짓말을 했다.엘로디아가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사실이 아니라고요?”“네.”나는 웃었다.“누가 그런 소문을 퍼뜨렸는지는 모르겠지만.”그리고.일부러 레오나르드의 팔을 조금 더 끌어안았다.“저희 사이가 그렇게 보였나 봐요?”“…….”엘로디아의 시선이.내 손으로 향했다.그리고.내 꼬리.아직도 레오나르드의 다리에 감겨 있는 붉은 꼬리.“공작부인.”그녀가 천천히 말했다.“그럼.”웃었다.“1년

  • 사자와 결혼한 여우의 사정   질투는 계약 조항에 없었는데요

    아침에 눈을 떴을 때.나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그게.가장 큰 문제였다.“…….”바로 앞.레오나르드의 얼굴.느린 숨.흐트러진 금발.그리고.내 허리를 감싼 팔.나는 가만히 그를 바라봤다.이제.놀랍지도 않았다.오히려.익숙했다.“……큰일 났네.”아주 작게 중얼거렸다.이 상황이.익숙해졌다는 사실이.나는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그런데.허리에 감겨 있던 팔이 조금 더 단단해졌다.“…….”자는 줄 알았는데.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레오나르드.”대답이 없다.“일어났죠?”침묵.“다 알아요.”그 순간.입꼬리가.아주 조금.올라갔다.“…….”나는 바로 그의 가슴을 밀었다.“일어났잖아요!”황금빛 눈이 천천히 열렸다.“좋은 아침.”“언제부터 깨어 있었어요?”“조금 전.”“거짓말.”“왜.”“웃었잖아요.”“네가 귀여워서.”“또 그 말.”나는 몸을 일으키려 했다.그런데.팔이 아직 허리에 있었다.“손.”“싫어?”“…….”이전 같았으면.바로 놓으라고 했을 텐데.이번에는.대답이 늦었다.그것을.레오나르드도 알아챘다.“세리아.”“네.”“싫으면 놓을게.”나는 잠시 그의 팔을 바라봤다.그리고.아주 작게 말했다.“……조금만 더.”말해놓고.얼굴이 뜨거워졌다.레오나르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대신.팔에 조금 힘을 주었다.몸이.다시 그의 품 안으로 들어갔다.“…….”나도.밀어내지 않았다.그의 가슴에 이마를 기댔다.짙은 체향.따뜻한 체온.평온했다.이상할 정도로.“레오나르드.”“응.”“우리.”“그래.”“계약결혼 맞죠?”그의 몸이.아주 미세하게 굳었다.“왜 갑자기.”“그냥.”나는 그의 셔츠 단추를 만지작거렸다.“자꾸 잊을 것 같아서.”“…….”“이러다.”웃으려고 했는데.잘 안 됐다.“진짜 부부 같잖아요.”침묵.레오나르드가 말했다.“싫어?”“…….”또.그 질문.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그의 눈을 바라봤다.“아니요.”솔직하게.

  • 사자와 결혼한 여우의 사정   목덜미에 입 맞추는 건 반칙입니다

    “오늘 밤.”나는 닫힌 상자를 바라봤다.“아무 일도 없기는.”시선이 옆으로 향했다.레오나르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나를 바라봤다.황금빛 눈동자.조금 전까지 나와 있던 귀는 이미 감췄지만.그것만으로는 소용없었다.나는 봤다.아까.저 귀가 얼마나 바짝 서 있었는지.“…….”분명 나만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상하게 심장이 조금 더 빠르게 뛰었다.나는 괜히 상자를 밀었다.“저녁부터 먹어요.”“그래.”“그리고.”“응.”“아까 그건 잊어요.”“뭘.”“귀 나온 거.”“네 귀?”“공작님 귀요!”레오나르드가 피식 웃었다.“왜.”“왜긴요.”“네 것도 나왔는데.”“저는 놀라서 그런 거고.”“나는?”“…….”말이 막혔다.그가 한 걸음 가까이 왔다.“나는 왜 나왔을까.”“모르죠.”“정말?”“네.”“냄새가 다른데.”나는 바로 코를 막았다.“그 말 금지.”“이미 나는데.”“맡지 마요.”“숨 쉬지 말라고?”“적어도 분석하지는 마요!”레오나르드가 웃었다.나는 그를 노려봤다.그러다가.결국.나도 웃고 말았다.정말.이 남자랑 있으면 자꾸 흐름이 이상해진다.⸻저녁 식사는 평소보다 조용했다.정확히는.나는 계속 음식만 봤다.레오나르드는 그런 나를 보고 있었고.“…….”또.시선이 느껴진다.나는 수프를 한 숟갈 떠먹었다.“왜 봐요?”“그냥.”“그냥 왜요.”“귀여워서.”숟가락이 멈췄다.“…….”“왜.”“그 말.”나는 그를 봤다.“자꾸 아무렇지 않게 하지 마요.”“왜.”“제가 신경 쓰이잖아요.”말해놓고.멈췄다.아.내가 지금 뭘—레오나르드도 멈췄다.“신경 쓰여?”“…….”“내가?”“그런 뜻이 아니라.”“세리아.”“밥 먹어요.”“대답.”“싫어요.”“왜.”“민망하니까.”솔직하게 말해버렸다.잠시.정적.레오나르드가 아주 조금 웃었다.“알았다.”이번에는 정말 더 묻지 않았다.……저렇게 쉽게 넘어가니까 더 신경 쓰이잖

  • 사자와 결혼한 여우의 사정   한 번 더는 계약에 없었습니다

    “한 번 더 하면.”나는 그의 옷자락을 잡은 채 물었다.“계약 위반이에요?”정적.레오나르드의 황금빛 귀가 바짝 서 있었다.꼬리까지.탁.바닥을 한 번 쳤다.나는 그걸 보고 웃었다.“……기분 좋구나.”“세리아.”“귀가 다 말하는데요?”“지금 그게 중요해?”“조금?”그가 한숨을 내쉬었다.그런데.웃고 있었다.그리고.나도 웃고 있었다.묘한 기분이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누군가 쏜 화살 때문에 온몸이 떨렸는데.지금은.전혀 다른 이유로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내 손은 여전히 그의 옷자락을 잡고 있었다.놓아야 하는데.왠지.놓고 싶지 않았다.레오나르드가 그 손을 내려다봤다.그리고 다시 나를 봤다.“세리아.”“네.”“한 번 더.”낮은 목소리.“정말 하고 싶어?”“…….”이번에는.내가 선택해야 했다.그가 원하는지 아닌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저 귀만 봐도 충분했다.중요한 건.내가 원하는지.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조금 전의 입맞춤이 떠올랐다.짧고.조심스러웠다.오히려 너무 빨리 끝나서.아쉬웠다.그럼.답은 이미 정해진 것 아닐까.“……네.”아주 작게 대답했다.레오나르드의 눈빛이 짙어졌다.“확실해?”“자꾸 물어보면.”괜히 민망해져서.나는 입술을 삐죽였다.“마음 바뀔 수도 있어요.”“그건 곤란한데.”이번에는.그가 바로 다가왔다.하지만.여전히 서두르지는 않았다.한 손이 내 뺨을 감쌌다.손끝이 귀 아래를 천천히 스쳤다.그 작은 접촉만으로도.어깨가 움찔했다.“…….”레오나르드가 멈췄다.“싫어?”“아니요.”“그럼.”“그냥.”나는 시선을 피했다.“간지러워서.”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웃지 마요.”“안 웃었는데.”“웃고 있잖아요.”“조금.”“정말.”말이 끝나기도 전에.그가 몸을 숙였다.입술이 닿았다.이번에는.아까보다 조금 길었다.나는 눈을 감았다.첫 번째 입맞춤은 확인에 가까웠다면.이번에는.서로가 정말 원한다는 걸 확인하는 것 같았다.레오

  • 사자와 결혼한 여우의 사정   듣고 싶어졌다고 하면

    “다음에는.” 낮은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렸다. “듣고 싶어지면 물어.” 나는 이불 속에서 눈을 떴다. “…….” “그때는 대답할 테니까.” 대답하지 않았다. 할 수가 없었다.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서. 혹시 레오나르드에게 들릴까 봐. 나는 이불을 코끝까지 끌어올렸다. 그리고. 등을 돌린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검은 셔츠. 넓은 어깨. 조금 흐트러진 금발. 조금 전까지 내 손끝에 닿아 있던 황금빛 귀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 대체. 뭘 참는다는 걸까. 아니. 사실.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묻지 못했다. 나는 성인이다. 결혼까지 했다. 아무리 계약결혼이라 해도. 남녀 사이에서. 한 침대 위에서. 그런 눈으로 바라보며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를 만큼 순진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레오나르드라서. 문제였다. 결혼하기 전까지 그는 내게 그저 황금사자였다. 제국에서 가장 강한 수인. 무뚝뚝하고. 냉정하고. 결혼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는 남자. 나 역시 그를 남자로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서로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한 계약 상대. 그뿐이었으니까. 그런데. 결혼한 지 며칠 만에. 이 남자의 냄새가 익숙해졌다. 품에 안기면 편했고. 귀를 만지는 것도 좋았다. 그가 다른 남자를 보고 질투하는 모습은. ……조금 귀여웠다. 그리고 오늘. “…….” 나는 내 손을 바라봤다. 아직도 손끝에. 그의 귀를 만졌던 감촉이 남은 것 같았다. 부드럽고. 따뜻했던. “미쳤어.”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세리아.” “……!” 앞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얼른 눈을 감았다. “왜요.” “안 자?” “자고 있었어요.” “말했는데.” “잠꼬대.” “대답도 했는데.” “저 원래 잠꼬대 잘해요.” “처음 듣는데.” “오늘부터 아시면 돼요.” 잠시 침묵. 그리고. 레오나르드가 웃는 기척이 느껴졌다. “왜 웃어요.” “안 웃었다.” “또 거짓말.”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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