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반죽하는 사람: 할머니는 반죽을 치대면서 혼잣말을 했어요. 누구한테 하는 말이냐고 물으면 라디오한테 한다고 했어요. 라디오가 대답은 안 해도 다 듣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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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5일 토요일 새벽 두 시 이십팔 분. 반달FM 4층 스튜디오.
다온은 작가석에서 유리창 너머를 보고 있었다. 금정란이 마이크 앞에 앉아 원고를 넘겼다. 「새벽에 일하는 사람들」 코너 차례. 오늘 사연은 반죽하는 사람. 다온이 맨 앞에 놓았다.
코너를 시작한 지 4주. 게시판 글이 하루 서른 개를 넘었다. 청취율은 아직 몰랐다. 다음 달 첫 주에 나온다고 했다. 한도윤 PD는 매일 새벽 게시판 숫자를 세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금정란이 원고를 들었다. 큐 사인. 다온이 부조정실 쪽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도윤이 노래 볼륨을 내렸다.
“두 시 반이에요. 「새벽에 일하는 사람들」, 오늘은 다시 반죽하는 사람님이에요. 이분 사연 기다리시는 분들 많죠. 게시판에 「반죽하는 사람 언제 나와요」가 제일 많대요.”
금정란이 웃었다. 그리고 읽었다.
“할머니는 반죽을 치대면서 혼잣말을 했어요. 누구한테 하는 말이냐고 물으면 라디오한테 한다고 했어요. 라디오가 대답은 안 해도 다 듣는다고.”
금정란이 거기서 멈췄다.
다온은 원고를 따라 읽다가 고개를 들었다. 다음 문장이 있었다. 「그래서 저도 반죽하면서 라디오한테 말해요. 할머니처럼.」 금정란은 그 문장을 읽지 않았다.
유리창 너머 금정란이 원고를 쥔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마이크가 켜져 있었다. 숨소리가 들렸다. 한 번. 두 번.
부조정실에서 한도윤이 몸을 일으켰다. 손이 콘솔 위 페이더로 갔다. 노래를 올릴까 말까.
삼 초. 사 초. 라디오에서 삼 초 침묵은 사고였다. 오 초는 큰 사고.
금정란이 고개를 들었다.
“…죄송해요, 여러분.”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
“이 사연 읽다가 옛날 생각이 나서요. 30년 전부터 우리 방송에 사연 보내 주시던 분이 계셨어요. 이분도 반죽하는 분이셨어요. 반죽하는 할머니. 그분도 라디오한테 혼잣말한다고 쓰셨어요. 똑같은 말을.”
금정란이 안경을 벗었다. 손등으로 눈가를 눌렀다.
“3년 전부터 사연이 안 와요. 저는 그분 얼굴도 이름도 몰라요. 그냥 반죽하는 할머니. 지금도 반죽하고 계시면 좋겠어요. 라디오한테 혼잣말하시면서.”
한도윤이 노래를 올렸다.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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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반달빵집.
태오는 반죽을 쥐고 있었다.
작업대 위. 손바닥 아래 반죽. 밀다가 멈춘. 밀가루가 손등까지 묻어 있었다.
라디오에서 금정란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
‘반죽하는 할머니.’
‘30년 전부터.’
‘3년 전부터 사연이 안 와요.’
‘지금도 반죽하고 계시면 좋겠어요.’
노래가 흘러나왔다. 할머니가 좋아하던 노래였다. 우연인지, 다온이 고른 건지.
태오는 반죽에서 손을 뗐다. 손을 씻지 않고 계산대 쪽으로 걸어갔다. 벽에 걸린 사진 앞에 섰다.
할머니 사진. 흰 머리, 앞치마. 계산대 옆에 서서 라디오에 손을 얹고 웃는. 태오가 열여덟 살 때 찍은 사진. 할머니가 「이게 제일 잘 나왔다」며 걸어 둔.
할머니는 금정란 선생님한테 한 번도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30년 동안. 방송국에 찾아간 적도 없었다. 「얼굴 알면 못 써.」
그런데 금정란 선생님은 30년 동안 할머니를 기다렸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을. 3년 동안 사연이 안 오는 걸 알고 있었다.
태오는 사진을 봤다. 밀가루 묻은 손으로 사진 액자 귀퉁이를 만졌다. 하얀 손가락 자국이 남았다.
“…할머니.”
태오가 작게 불렀다. 3년 만에 소리 내서 부르는 이름이었다. 장례식 날 이후로 처음. 빵집 안에 태오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오븐 타이머가 째깍거렸다.
라디오가 대답하지 않았다. 다 듣고 있을 것이다. 할머니 말대로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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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네 시 칠 분. 생방송이 끝났다.
다온은 스튜디오 문을 열었다. 금정란이 헤드폰을 벗고 의자에 기대어 있었다. 눈이 빨갰다. 다온이 들어오자 웃었다. 늘 하던 웃음으로.
“사고 쳤다, 내가.”
“아니에요. 사고 아니에요.”
“삼 초 넘었지?”
“…팔 초요. 제가 셌어요.”
금정란이 웃음을 터뜨렸다. 다온도 웃었다. 부조정실 문이 열리고 한도윤이 들어왔다. 손에 휴지 상자.
“선생님, 방송 사고예요.”
한도윤이 휴지 상자를 금정란 앞에 놓았다. 무뚝뚝하게.
“30년 하신 분이 팔 초 묵음. 국장님 들으시면 폐지 앞당기실걸요.”
“그래서 녹음본 지울 거야?”
한도윤이 대답하지 않았다. 부조정실 쪽을 돌아봤다. 콘솔 위 모니터에 녹음 파일 목록. 오늘 날짜 파일. 한도윤이 그걸 지우지 않았다. 다온은 알았다. 한도윤은 폐지가 결정되고 나서 매일 녹음본을 따로 외장 하드에 옮기고 있었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고.
“…안 지워요. 이건 남겨야죠.”
한도윤이 휴지 상자를 금정란 쪽으로 조금 더 밀었다. 그리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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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온은 금정란 옆 의자에 앉았다. 게스트 의자.
“선생님.”
“응.”
“반죽하는 할머니 얘기 처음 들어요.”
금정란이 휴지 한 장을 뽑았다. 안경을 닦았다.
“다온 작가 오기 전 얘기니까. 30년 전부터 거의 매주 왔어. 엽서로. 메일 생기고 나서도 엽서로 왔어. 손글씨. 연필로 꾹꾹 눌러 쓴.”
“무슨 얘기였어요? 그분 사연.”
“반죽 얘기, 동네 얘기. 새벽에 문 앞에서 떠는 사람 들어오라고 한 얘기. 손자 얘기도 했어. 손자가 빵 배우겠다고 한다고. 근데 손재주가 없어서 꽈배기를 용수철로 만든다고.”
다온은 숨을 멈췄다.
꽈배기. 용수철.
지난주 토요일 아래층 빵집. 다온 손에서 나온 용수철 꽈배기. 태오가 펴지 않고 그대로 튀겨 준.
‘아니.’
다온은 고개를 저었다. 용수철 꽈배기는 누구나 만든다. 처음 꼬면 다 그렇게 된다. 미소도 그랬다.
“엽서에 이름은 없었어요?”
“없었어. 늘 「반죽하는 할머니」. 주소도 안 썼어. 우체국 소인만 있었는데, 소인이 반달동이었어.”
“반달동이요? 진짜요?”
다온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저 반달동 살아요.”
“알지. 그래서 다온 작가 처음 왔을 때 물어보려다 말았어. 반달동에 빵집이 몇 개나 되냐고.”
금정란이 웃었다.
“근데 안 물어봤어. 그분이 얼굴 없이 쓰고 싶어 하셨으니까. 30년 동안 한 번도 방송국에 안 오셨어. 선물 보내 드린다고 주소 달라고 해도 안 주셨어. 그분은 그게 좋으셨던 거야. 얼굴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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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시 이십 분. 다온은 작가석 서랍을 열었다. 맨 아래 칸. 한 번도 열어 본 적 없는 칸이었다. 전임 메인 작가가 쓰던 서랍. 9월에 그만두면서 짐을 다 빼 갔다고 했다. 그런데 맨 아래 칸에 상자 하나가 남아 있었다. 신발 상자만 한 종이 상자.
상자 뚜껑에 매직으로 「청취자 엽서 — 보관」.
다온은 상자를 열었다. 엽서가 빽빽했다. 수백 장. 오래된 순서대로 꽂혀 있는. 맨 앞은 누렇게 바랬다.
다온은 엽서를 몇 장 넘겼다. 다른 청취자들 엽서. 택시 기사, 간호사, 수험생. 「반죽하는 할머니」라는 이름은 없었다.
금정란이 스튜디오에서 나오다 그 상자를 봤다.
“그거 전 작가가 모은 거야. 근데 반죽하는 할머니 엽서는 거기 없어.”
“왜요?”
“그분 엽서는 내가 가져갔어. 다 읽고 나면. 집에 있어. 상자 하나.”
금정란이 웃었다. 「30년치야. 버릴 수가 있어야지.」 그리고 외투를 입고 나갔다.
다온은 상자 뚜껑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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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시. 다온은 걸어서 집으로 왔다. 25분 동안 머릿속이 바빴다.
반달동. 빵집. 반죽하는 할머니. 3년 전에 끊긴 사연.
3년 전. 다온이 반달동으로 이사 온 해. 아래층 빵집 할머니가 돌아가신 해.
다온은 반달빵집 유리문 앞에서 멈췄다. 안을 봤다. 진열대, 오븐, 계산대. 계산대 옆 낡은 라디오. 그 위 벽에 걸린 사진.
3년 동안 다온은 그 사진을 자세히 본 적이 없었다. 빵을 사고 나가기 바빠서. 할머니 사진이 걸려 있다는 것만 알았다.
딸랑.
“어서 오세요.”
태오가 말했다. 계산대 뒤에서. 영수증을 정리하며.
다온은 진열대 대신 계산대 옆 벽으로 갔다. 사진 앞에 섰다.
흰 머리. 앞치마. 라디오에 손을 얹고 웃는 할머니. 액자 귀퉁이에 하얀 손가락 자국이 있었다. 밀가루.
다온은 그 사진을 오래 봤다.
“…할머니세요?”
태오가 영수증을 내려놓았다.
“네.”
“라디오에 손 얹고 계시네요.”
“…이 라디오요. 저거.”
태오가 계산대 옆 라디오를 가리켰다. 다온이 봤다. 사진 속 그 은색 라디오. 손잡이에 테이프가 감긴.
“할머니가 우리 방송 들으셨다고 했죠. 지난번에.”
“네.”
“혹시.”
다온이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혹시 할머니가 사연 보내셨어요?」 묻고 싶었다. 그런데 금정란 선생님 말이 생각났다. 「그분이 얼굴 없이 쓰고 싶어 하셨으니까.」
할머니가 반죽하는 할머니라면. 손자가 그걸 알까. 알면 왜 말을 안 했을까. 모르면 다온이 말해도 될까.
“…아니에요.”
다온이 고개를 저었다. 진열대로 가서 소금빵을 집었다.
태오는 그 뒷모습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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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오는 다온이 계산하고 나가는 걸 봤다. 딸랑.
‘혹시.’
다온이 하려다 만 말. 태오는 그 다음 말을 알았다. 「혹시 할머니가 사연 보내셨어요?」
오늘 새벽 방송. 금정란 선생님이 반죽하는 할머니 얘기를 했다. 다온은 그걸 들었다. 작가석에서. 그리고 다섯 시에 와서 할머니 사진 앞에 섰다.
태오는 사진을 봤다. 액자 귀퉁이에 자기가 남긴 밀가루 자국.
말할 수 있었다. 「네, 할머니가 반죽하는 할머니예요. 30년 동안.」 그리고 그 다음 말도. 「그리고 저는 그 손자예요. 반죽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다온이 먼저 「아니에요」 했다. 묻지 않았다.
태오는 다온이 왜 묻지 않았는지 짐작이 갔다. 금정란 선생님 말 때문에. 「얼굴 없이 쓰고 싶어 하셨으니까.」 다온은 할머니를 지켜 주려고 묻지 않았다.
태오는 행주를 들어 사진 액자를 닦았다. 밀가루 자국이 지워졌다.
≈
302호. 다온은 노트를 펼쳤다.
새 장. 맨 위에 적었다.
「반죽하는 할머니」
그 아래.
「— 30년. 엽서. 연필. 반달동 소인.」
「— 3년 전부터 끊김.」
「— 손자가 빵 배움. 꽈배기 용수철.」
「— 실명? 동네? 빵집?」
마지막 줄에 동그라미를 쳤다.
그리고 그 아래에 작게. 쓸까 말까 하다가.
「— 아래층 할머니?」
다온은 그 줄을 오래 봤다. 지우지 않았다. 대신 노트를 덮었다.
금정란 선생님한테 말해 드리고 싶었다. 선생님이 30년 기다린 분이 어쩌면 우리 동네, 우리 건물 1층에 계셨다고. 지금은 안 계시지만. 손자가 그 빵집을 하고 있다고.
그런데 아직 몰랐다. 확실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온은 그 손자가 1년째 사연을 보내는 반죽하는 사람이라는 건 생각도 하지 못했다.
(7화 끝)
『반죽하는 사람: 내일도 반죽할게요. 내일도 라디오 켤게요. 내일 그 자리에 다른 게 나와도 다이얼은 안 돌릴게요. 테이프 붙어 있으니까.』≈12월 31일 수요일 새벽 한 시 오십 분. 반달FM 4층.다온은 스튜디오 문 앞에 서 있었다. 원고 뭉치를 안고. 마지막 원고였다. 「두 시의 편지」 30년 마지막 방송. 사흘 밤을 새워 쓴. 30년 동안 사연을 보낸 사람들 이름을 다 넣고 싶었는데 다 넣을 수가 없었다. 게시판에 남은 이름만 이천 개가 넘었다.복도가 이상하게 붐볐다. 평소 새벽 두 시면 다온과 한도윤과 금정란, 셋이 전부였다. 오늘은 보도국 야간 기자, 교통 캐스터 나보람, 엔지니어 둘, 그리고 낮 프로 PD 몇이 복도에 서 있었다. 다들 종이컵을 들고. 30년 마지막 방송을 보러.보람이 다온에게 다가와 우유 종이컵을 내밀었다.“작가님, 괜찮아?”“몰라. 진짜 모르겠어.”“울지 마. 방송 중에 울면 사고야.”“선생님이 지난번에 팔 초 울었어.”“그러니까 둘이 울면 십육 초야.”다온이 웃었다. 보람도 웃었다. 그리고 보람이 다온 팔을 꽉 잡았다.스튜디오 안에서 금정란이 헤드폰을 쓰고 있었다. 빨간 머플러. 크리스마스이브 때 했던. 「마지막 날엔 이거 해야지.」부조정실에서 한도윤이 콘솔 앞에 앉아 있었다. 손에 서류철. 그런데 열지 않았다. 무릎 위에 올려 둔 채로.≈같은 시각. 반달빵집.태오는 반죽기를 돌리지 않았다. 작업대 앞에 서서 라디오를 보고 있었다. 할머니 라디오. 다이얼 위 테이프.오늘이 마지막이었다. 내일부터 새벽 두 시 이 주파수에선 재방송이 나온다고 했다. 낮 프로
『반죽하는 사람: 크리스마스이브엔 밤을 새워요. 슈톨렌에 슈가파우더를 뿌리면 눈 온 것 같아요. 올해는 누가 옆에서 리본을 묶어 주면 좋겠어요. 혼자 묶으면 자꾸 풀려요.』≈12월 23일 화요일 밤 열한 시. 반달FM 4층 작가석.다온은 달력을 봤다. 책상 옆 벽에 붙은 탁상 달력. 12월 장. 31일에 빨간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한도윤 PD가 그어 놓은. 그 옆에 작게 「마지막 방송」.여드레.일요일 빼고 일곱 번의 방송.다온은 동그라미에서 눈을 떼고 원고를 봤다. 크리스마스이브 특집. 「새벽에 일하는 사람들 — 크리스마스에도 일하는 당신에게」. 사연 열둘. 응급실, 소방서, 편의점, 택시, 경비실, 물류 센터. 그리고 반죽하는 사람.반죽하는 사람 사연은 맨 마지막에 놓았다.『올해는 누가 옆에서 리본을 묶어 주면 좋겠어요. 혼자 묶으면 자꾸 풀려요.』다온은 그 문장에 형광펜을 그었다. 두 줄. 그리고 생각했다. 리본. 슈톨렌. 반달빵집도 크리스마스 케이크 대신 슈톨렌을 팔았다. 할머니 때부터. 진열대 앞에 「슈톨렌 예약 받습니다」 종이가 일주일째 붙어 있었다. 미소 글씨로.다온은 고개를 저었다. 크리스마스에 슈톨렌 파는 빵집은 많다.≈12월 24일 수요일 새벽 한 시. 반달빵집.태오는 셔터를 반만 올리고 들어왔다. 평소보다 반 시간 일찍. 오늘은 밤을 새워야 했다.작업대 위에 슈톨렌 반죽이 줄지어 있었다. 어젯밤 열 시까지 빚어 둔 것. 서른 개. 예약이 스물여섯, 매장용 넷. 할머니 때는 마흔 개였다. 태오는 서른 개가 한계였다.오븐 두 대를 예열했다. 첫 판 열 개를 넣었다. 타이머를 맞췄다. 사십 분.라디오를 켰다. 할머니 라디오. 테이프 붙은 다이얼. 「두 시의 편지」까지 한 시간.
『택시 오 기사: 비 오는 새벽에 작가 아가씨를 태워다 줬어요. 빵집 앞에 내려 줬는데 빵집 총각이 유리문 안에서 나를 째려보더라고요. 30년 택시 몰면서 그런 눈은 처음 봤어요. 총각, 나 기사야.』≈12월 5일 금요일 오후 네 시. 반달FM 4층 회의실.한도윤 PD가 공문 한 장을 탁자에 놓았다. 이번엔 마케팅팀 중간 집계가 아니었다. 방송국 공식 청취율 조사 결과. 11월분.「두 시의 편지 — 0.6%」.다온은 그 숫자를 오래 봤다. 0.3에서 0.6. 두 배였다. 두 배인데 1%의 절반을 겨우 넘었다.“국장님이 이거 보시고 뭐라고 하셨는지 알아?”한도윤이 의자에 몸을 던지듯 앉았다.“「두 배네. 근데 0.6이네.」 끝.”금정란이 보온병 뚜껑을 열며 웃었다.“국장님 말 잘하시네.”“선생님, 웃을 일이 아니에요.”“웃어야지. 0.3이 0.6 됐는데. 30년 동안 이렇게 오른 적 없어.”금정란이 다온을 봤다. 안경 너머로.“다온 작가가 한 거야.”다온은 고개를 저었다.“청취자분들이 한 거예요. 사연 보내 주신 분들이. 게시판에 쓰신 분들이. 오 기사님이 택시 손님들한테 다 틀어 준대요.”“그 오 기사님 사연은 언제 읽어?”“…다음 주요. 월요일에.”다온은 대답하면서 서류철 안 오 기사님 사연을 생각했다. 「택시 오 기사」라는 이름으로 일주일에 두 통씩 오는. 손님 얘기, 새벽 도로 얘기, 반달빵집 단팥빵 얘기. 오 기사님은 사연마다 단팥빵이 나왔다.≈12월 6일 토요일 새벽 네 시 십 분. 반달FM 건물 1층 현관.비가 왔다. 겨울비. 차가운. 다온은 현관 유리문 안쪽에 서서 밖을 봤다. 빗줄기가 가로등 불빛에 하얗게 보였다. 큰길이 젖어 번들거렸다.우산이 없었다. 가방 안에 접이식 우산이 있었는데 지난주에 살이 부러져 버렸다. 새로 사야지 하면서 일주일이 지났다.25분. 걸으면 다 젖을 것이다. 첫차는 다섯 시 십 분. 한 시간을 현관에서 기다릴 수도 없었다.다온이 목도리를 머리에 뒤집어쓰려는데 큰길에서 경적이
『반죽하는 사람: 누가 저한테 사연을 써 보라고 했어요. 그래서 써요. 원래 쓰고 있었다는 말은 못 했어요. 반죽이 다 부풀면 말할게요.』≈11월 29일 토요일 오전 열한 시. 반달FM 4층 회의실.한도윤 PD가 종이 한 장을 탁자 위에 놓았다. 손가락으로 숫자를 짚었다.“마케팅팀 중간 집계야. 공식 아니고. 0.5%.”다온은 그 숫자를 봤다. 0.5. 두 달 전 0.3이었다.“올랐어요.”“올랐지. 0.2. 두 달 만에.”“국장님은요? 뭐라세요?”“국장님은 1%가 아니면 다 똑같대.”한도윤이 종이를 접었다. 그런데 버리지 않고 서류철에 넣었다. 다온은 그걸 봤다.“그래도 게시판은 하루 오십 개 넘어. 새벽에 일하는 사람들 코너 사연이 매일 열 통씩 와. 물류 센터, 응급실, 경비실, 편의점. 지난주엔 소방서에서도 왔어.”한도윤이 서류철을 덮었다.“다온 작가. 0.5로는 안 돼. 근데 0.5까지 온 건 네가 한 거야. 그건 알아 둬.”다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만 끄덕였다. 목이 조금 메었다.≈열두 시. 반달빵집.다온은 밤샘 회의를 마치고 바로 빵집으로 왔다. 잠을 못 자 눈이 따가웠다. 창가 탁자에 앉아 메뉴판을 봤다. 낮 메뉴. 샌드위치 세 가지. 햄치즈, 에그마요, 감자.“감자 샌드위치랑 우유요.”계산대에서 미소가 「네!」 했다. 주방에서 태오가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식빵 두 장, 으깬 감자, 오이, 햄 한 장. 반으로 잘라 접시에 담았다. 칼질이 반듯했다. 한 달 동안 반 근 식빵을 자른 손.태오가 접시를 들고 직접 왔다. 미소 대신.“드세요.”“감사합니다, 사장님.”다온은 샌드위치를 집었다. 감자가 부드러웠다. 오이가 아삭했다. 후추가 조금.태오가 접시를 내려놓고 돌아서려다 멈췄다. 다온 얼굴을 봤다.“…안 주무셨어요?”“밤샘 회의요. 청취율 중간 집계 나왔어요.”“…어떻게 나왔어요?”태오 목소리가 조금 빨랐다. 평소보다.“0.5%요. 0.3에서 올랐어요. 근데 1% 돼야 안 없어진대요.”태오가
『택시 오 기사: 30년 전에 빵집 누님이 그러더라고요. 비밀은 반죽 같은 거라고. 너무 치대면 질겨진대요. 그래서 저는 안 치대요. 근데 입이 근질근질해요.』≈11월 22일 토요일 새벽 다섯 시 십이 분. 반달빵집.다온은 소금빵 봉투를 받아 들고도 나가지 않았다. 계산대 옆 벽. 할머니 사진 앞에 섰다. 일주일째였다. 7일 동안 매일 아침 다온은 그 사진 앞에서 1분씩 서 있었다.태오는 계산대 뒤에서 그걸 보고 있었다. 일주일째.“사장님.”“…네.”“할머니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태오가 영수증을 쥔 채로 멈췄다.“…왜요?”“그냥요. 3년 전에 이사 왔을 때 소금빵 공짜로 주셨거든요. 인사도 제대로 못 했어요. 그해 겨울에 돌아가셨잖아요. 이름도 모르고.”다온이 사진을 보며 말했다. 태오를 보지 않고. 목소리가 담담했다. 너무 담담했다.태오는 영수증을 내려놓았다. 할머니 이름을 말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동네 사람 절반이 알았다. 그런데 다온이 그걸 묻는 이유를 태오는 알았다. 일주일 전 금정란 선생님 방송. 반죽하는 할머니.이름을 말하면 다온은 어떻게 할까. 금정란 선생님한테 전할까. 할머니가 30년 동안 숨긴 이름을.태오가 입을 열었다. 그 전에 문이 열렸다. 딸랑.“총각! 단팥빵 둘!”≈오 기사님은 모자를 벗어 털며 들어왔다. 찬바람이 같이 들어왔다. 그리고 계산대 옆 벽 앞에 선 다온을 봤다.“어, 작가 아가씨. 순례 누님 사진 보고 있어?”다온이 돌아봤다.“순례 누님이요?”“그래, 순례 누님. 여기 할머니. 반달빵집 순례 누님이지. 이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 없어.”오 기사님이 단팥빵 칸으로 가며 말을 이었다.“30년 전에 내가 택시 처음 몰 때부터 여기서 단팥빵 사 먹었어. 새벽 네 시 반에 오면 누님이 문 열기 전인데도 뒷문으로 줬어. 「기사 양반 배고프지」 하고.”태오가 계산대 뒤에서 오 기사님을 봤다. 오 기사님은 그 눈빛을 못 봤다. 아니, 봤는데 무시했다.“누님이 라디오를 그렇게 좋아했어.
『반죽하는 사람: 할머니는 반죽을 치대면서 혼잣말을 했어요. 누구한테 하는 말이냐고 물으면 라디오한테 한다고 했어요. 라디오가 대답은 안 해도 다 듣는다고.』≈11월 15일 토요일 새벽 두 시 이십팔 분. 반달FM 4층 스튜디오.다온은 작가석에서 유리창 너머를 보고 있었다. 금정란이 마이크 앞에 앉아 원고를 넘겼다. 「새벽에 일하는 사람들」 코너 차례. 오늘 사연은 반죽하는 사람. 다온이 맨 앞에 놓았다.코너를 시작한 지 4주. 게시판 글이 하루 서른 개를 넘었다. 청취율은 아직 몰랐다. 다음 달 첫 주에 나온다고 했다. 한도윤 PD는 매일 새벽 게시판 숫자를 세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금정란이 원고를 들었다. 큐 사인. 다온이 부조정실 쪽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도윤이 노래 볼륨을 내렸다.“두 시 반이에요. 「새벽에 일하는 사람들」, 오늘은 다시 반죽하는 사람님이에요. 이분 사연 기다리시는 분들 많죠. 게시판에 「반죽하는 사람 언제 나와요」가 제일 많대요.”금정란이 웃었다. 그리고 읽었다.“할머니는 반죽을 치대면서 혼잣말을 했어요. 누구한테 하는 말이냐고 물으면 라디오한테 한다고 했어요. 라디오가 대답은 안 해도 다 듣는다고.”금정란이 거기서 멈췄다.다온은 원고를 따라 읽다가 고개를 들었다. 다음 문장이 있었다. 「그래서 저도 반죽하면서 라디오한테 말해요. 할머니처럼.」 금정란은 그 문장을 읽지 않았다.유리창 너머 금정란이 원고를 쥔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마이크가 켜져 있었다. 숨소리가 들렸다. 한 번. 두 번.부조정실에서 한도윤이 몸을 일으켰다. 손이 콘솔 위 페이더로 갔다. 노래를 올릴까 말까.삼 초. 사 초. 라디오에서 삼 초 침묵은 사고였다. 오 초는 큰 사고.금정란이 고개를 들었다.“…죄송해요, 여러분.”목소리가 젖어 있었다.“이 사연 읽다가 옛날 생각이 나서요. 30년 전부터 우리 방송에 사연 보내 주시던 분이 계셨어요. 이분도 반죽하는 분이셨어요. 반죽하는 할머니. 그분도 라디오한테 혼잣말한다고 쓰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