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택시 오 기사: 30년 전에 빵집 누님이 그러더라고요. 비밀은 반죽 같은 거라고. 너무 치대면 질겨진대요. 그래서 저는 안 치대요. 근데 입이 근질근질해요.』
≈
11월 22일 토요일 새벽 다섯 시 십이 분. 반달빵집.
다온은 소금빵 봉투를 받아 들고도 나가지 않았다. 계산대 옆 벽. 할머니 사진 앞에 섰다. 일주일째였다. 7일 동안 매일 아침 다온은 그 사진 앞에서 1분씩 서 있었다.
태오는 계산대 뒤에서 그걸 보고 있었다. 일주일째.
“사장님.”
“…네.”
“할머니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태오가 영수증을 쥔 채로 멈췄다.
“…왜요?”
“그냥요. 3년 전에 이사 왔을 때 소금빵 공짜로 주셨거든요. 인사도 제대로 못 했어요. 그해 겨울에 돌아가셨잖아요. 이름도 모르고.”
다온이 사진을 보며 말했다. 태오를 보지 않고. 목소리가 담담했다. 너무 담담했다.
태오는 영수증을 내려놓았다. 할머니 이름을 말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동네 사람 절반이 알았다. 그런데 다온이 그걸 묻는 이유를 태오는 알았다. 일주일 전 금정란 선생님 방송. 반죽하는 할머니.
이름을 말하면 다온은 어떻게 할까. 금정란 선생님한테 전할까. 할머니가 30년 동안 숨긴 이름을.
태오가 입을 열었다. 그 전에 문이 열렸다. 딸랑.
“총각! 단팥빵 둘!”
≈
오 기사님은 모자를 벗어 털며 들어왔다. 찬바람이 같이 들어왔다. 그리고 계산대 옆 벽 앞에 선 다온을 봤다.
“어, 작가 아가씨. 순례 누님 사진 보고 있어?”
다온이 돌아봤다.
“순례 누님이요?”
“그래, 순례 누님. 여기 할머니. 반달빵집 순례 누님이지. 이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 없어.”
오 기사님이 단팥빵 칸으로 가며 말을 이었다.
“30년 전에 내가 택시 처음 몰 때부터 여기서 단팥빵 사 먹었어. 새벽 네 시 반에 오면 누님이 문 열기 전인데도 뒷문으로 줬어. 「기사 양반 배고프지」 하고.”
태오가 계산대 뒤에서 오 기사님을 봤다. 오 기사님은 그 눈빛을 못 봤다. 아니, 봤는데 무시했다.
“누님이 라디오를 그렇게 좋아했어. 저 라디오. 새벽에 반죽하면서 맨날 틀어 놓고. 무슨 방송인지 알아? 바로 작가 아가씨네 그거.”
“…알아요. 사장님이 말씀해 주셨어요.”
“그래? 그럼 이것도 알아?”
오 기사님이 단팥빵을 집게로 집다 말고 다온을 돌아봤다. 목소리를 낮췄다. 낮춰도 컸다.
“누님이 그 방송에—”
“기사님.”
태오가 말했다. 계산대 뒤에서. 크지 않은 목소리였다. 그런데 오 기사님이 입을 다물었다.
태오가 단팥빵 봉투를 내밀었다.
“사천 원이요. 콜 들어오셨어요. 휴대폰 울려요.”
오 기사님 조끼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울리고 있었다. 오 기사님이 「어이쿠」 하고 휴대폰을 꺼냈다. 콜이었다. 단팥빵 봉투를 받아 들고 카드를 내밀었다. 계산하는 동안 오 기사님이 태오를 봤다. 그리고 다온을 봤다. 그리고 다시 태오를 봤다.
“총각, 비밀은 반죽 같은 거야. 너무 치대면 질겨져.”
“…알아요.”
“누님이 한 말이야.”
“알아요.”
오 기사님이 나갔다. 딸랑.
≈
빵집이 조용해졌다. 오븐 타이머만 째깍거렸다.
다온은 사진 앞에 서 있었다. 순례. 박순례일까, 김순례일까. 성은 몰라도 이름은 알았다.
「누님이 그 방송에—」
오 기사님이 하려던 말. 그 방송에 뭘. 「그 방송에 사연 보냈어」. 다른 말이 있을 수 없었다.
다온은 태오를 봤다. 태오는 계산대 뒤에서 영수증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미 정리된 영수증을. 일곱 번째쯤.
‘알고 있구나.’
이 사람은 알고 있었다. 할머니가 「두 시의 편지」에 사연을 보냈다는 걸. 그래서 오 기사님을 막았다.
다온은 그 이유를 생각했다. 할머니가 얼굴 없이 쓰고 싶어 하셨으니까. 손자가 그걸 지키고 있었다. 3년 동안.
“…박순례요.”
태오가 말했다. 영수증을 보면서.
다온이 고개를 들었다.
“할머니 성함이요. 박순례.”
태오가 영수증을 내려놓았다. 다온을 봤다.
“물어보셨잖아요.”
“…네.”
“그것만 말할게요.”
다온은 태오를 봤다. 태오 눈이 다온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무엇을 「그것만」인지 둘 다 알았다. 이름은 말하고, 그 다음은 말하지 않겠다는 것.
다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것만 들을게요.”
≈
태오는 진열대로 갔다. 모카빵 칸. 오늘 아침 처음 구운 빵이었다. 커피 반죽에 쿠키 반죽을 덮어 구운. 겉이 갈라져 있었다. 할머니 모카빵은 갈라진 금이 별 모양이었다. 태오 것은 그냥 금이었다.
태오는 모카빵을 하나 집었다. 봉투에 넣었다. 다온에게 내밀었다.
“드세요.”
“저 커피 못 마셔요.”
“커피 조금밖에 안 들어가요. 우유 넣었어요.”
다온이 봉투를 받았다. 무거웠다. 모카빵은 컸다.
“할머니가 제일 잘 만드셨던 빵이에요. 저는 아직 금이 이상하게 가요.”
다온이 봉투 안을 봤다. 갈라진 금.
“할머니 거는 어땠어요?”
“…별 모양이요.”
다온이 웃었다.
“그럼 이건 별 되기 전이네요.”
태오는 대답하지 못했다. 다온이 「감사합니다」 하고 나갔다. 딸랑.
태오는 닫힌 문을 보다가 사진을 돌아봤다. 할머니가 웃고 있었다. 라디오에 손을 얹고.
‘별 되기 전.’
할머니도 그런 말을 했다. 태오 모카빵 금을 보고. 「아직 별 되기 전이네. 언젠가 별 되겠지.」
≈
다섯 시 반. 미소가 뒷문으로 들어왔다. 토요일이라 늦게. 앞치마를 매며 사장님을 봤다. 계산대 뒤에 서 있는 사장님. 할머니 사진을 보고 있는.
“사장님, 무슨 일 있었어요?”
“…없어.”
“오 기사님이 골목에서 저 보더니 그러던데요. 「총각한테 혼났다」고. 오 기사님 혼내는 사람 처음 봤어요.”
태오가 대답하지 않았다. 미소가 진열대를 정리하며 계속 말했다.
“작가님 왔다 갔죠? 모카빵 칸에 하나 비었어요. 작가님 모카빵 안 먹잖아요. 커피라서.”
“…우유 넣었어.”
미소가 손을 멈췄다. 사장님을 봤다. 오래.
“사장님, 그거 작가님 먹으라고 우유 넣은 거예요? 모카빵에?”
“…원래 넣어.”
“할머니 레시피엔 안 넣는다면서요. 저번에 저한테 그랬잖아요. 우유 넣으면 커피 맛 죽는다고.”
태오가 영수증을 정리했다. 미소는 한숨을 쉬었다. 길게.
“사장님 진짜 바보예요?”
≈
302호. 다온은 모카빵을 반으로 갈랐다. 커피 냄새가 났다. 아주 조금. 우유 냄새가 더 컸다.
먹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했다. 커피 맛이 났는데 쓰지 않았다. 다온이 먹을 수 있게 만든 모카빵.
먹으면서 노트를 펼쳤다. 일주일 전에 쓴 장.
「반죽하는 할머니 — 실명? 동네? 빵집?」
「— 아래층 할머니?」
다온은 그 아래에 적었다.
「박순례. 반달빵집. 오 기사님 30년 단골. 라디오 저거.」
「손자 — 알고 있음. 말 안 하려 함.」
볼펜이 멈췄다.
금정란 선생님한테 말해야 할까. 「선생님, 반죽하는 할머니 찾았어요. 박순례 할머니. 우리 건물 1층 빵집. 3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선생님은 울 것이다. 30년 기다린 사람이 3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걸 들으면. 그리고 고마워할 것이다. 이제라도 알게 돼서.
그런데 손자가 막았다. 오 기사님 입을. 「그것만 말할게요.」
다온은 볼펜을 내려놓았다.
할머니는 얼굴 없이 쓰고 싶어 했다. 30년 동안. 손자는 그걸 지키고 있었다. 다온이 그걸 깨면 안 됐다. 아직은.
다온은 그 장 맨 아래에 적었다.
「→ 손자가 말할 때까지 기다리기.」
≈
새벽 한 시 사십 분. 11월 24일 월요일.
태오는 반죽기를 돌리며 휴대폰을 봤다. 메일 창. 오늘 무엇을 쓸지 몰랐다.
토요일 아침의 일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박순례요. 그것만 말할게요.」 「네. 그것만 들을게요.」
다온은 그날 이후로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월요일 아침에도 평소대로 소금빵을 샀다. 사진 앞에 서지 않았다. 할머니 얘기를 하지 않았다.
다온은 기다리고 있었다. 태오가 말할 때까지.
태오는 엄지로 화면을 눌렀다.
「작가님, 이번 주에 누가 우리 할머니 이름을 물어봤어요. 대답했어요. 이름만요. 그 사람이 더 묻지 않았어요. 그것만 들을게요, 하더라고요. 고마웠어요. 할머니도 고마워하셨을 거예요. 할머니는 비밀은 반죽이라고 했어요. 너무 치대면 질겨진다고. 그 사람은 안 치댔어요.」
태오는 다 쓰고 읽었다.
위험했다. 다온이 읽으면 알 것이다. 「누가 우리 할머니 이름을 물어봤어요」. 그 누가 다온이라는 걸. 그리고 반죽하는 사람이 반달빵집 손자라는 걸.
태오는 「보내기」 위에 엄지를 올렸다. 오래.
그리고 전부 지웠다.
다시 썼다.
「작가님, 오늘은 모카빵을 구웠어요. 금이 별 모양으로 안 갈라져요. 할머니는 별 되기 전이라고 했어요. 언젠가 별 되겠지 하고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보냈다.
≈
밤 열한 시. 반달FM 4층. 다온이 원고를 쓰는데 금정란이 일찍 출근했다. 손에 종이 상자 하나. 신발 상자만 한.
“다온 작가, 이거.”
금정란이 상자를 작가석 책상에 내려놓았다. 뚜껑에 볼펜 글씨. 「반죽하는 할머니」.
“지난주에 얘기했잖아. 30년치. 집에서 꺼내 왔어. 폐지되면 이것도 어디 둬야 할지 몰라서. 다온 작가가 한번 봐.”
다온은 뚜껑을 열었다. 엽서가 빽빽했다. 오래된 순서대로. 맨 앞 엽서는 누렇게 바래 귀퉁이가 부서져 있었다.
다온은 맨 뒤 엽서를 꺼냈다. 제일 최근 것. 3년 전 가을 날짜.
연필 글씨. 꾹꾹 눌러 쓴. 획마다 힘이 들어가 엽서 뒷면까지 자국이 났다.
「선생님, 오늘은 손자가 반죽을 혼자 했어요. 아직 손이 서툴러요. 그래도 라디오를 같이 들어요. 이 방송 없어지면 안 돼요. 손자도 들어야 하니까.」
다온은 엽서를 쥔 채 멈췄다.
‘손자도 들어야 하니까.’
금정란이 옆에서 그 엽서를 봤다. 웃었다.
“마지막 엽서야. 그 뒤로 안 왔어. 손자 얘기를 그렇게 많이 하셨어. 30년 동안 손자 얘기가 절반이야.”
다온은 엽서를 상자에 다시 꽂았다. 손이 조금 떨렸다. 그리고 그 손자가 지금 아래층에서 반죽하고 있다는 걸 금정란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것만 말할게요.」 그 약속 때문에.
≈
새벽 두 시 사십 분. 반달FM 작가석.
다온은 반죽하는 사람 메일을 열었다. 읽었다.
『금이 별 모양으로 안 갈라져요. 할머니는 별 되기 전이라고 했어요.』
다온은 메일을 읽다가 고개를 들었다.
토요일 아침. 반달빵집. 「그럼 이건 별 되기 전이네요.」 다온이 한 말이었다. 모카빵을 보고.
다온은 메일을 다시 읽었다.
‘별 되기 전.’
모카빵. 할머니. 별 모양 금.
다온은 형광펜을 들었다. 그 문장에 줄을 그으려다 멈췄다. 형광펜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웃었다.
‘모카빵 굽는 빵집은 많지.’
‘별 되기 전이라는 말은 누구나 하지.’
그런데 손이 떨렸다. 웃으면서.
다온은 노트를 열었다. 박순례 할머니 장 맨 아래. 「→ 손자가 말할 때까지 기다리기.」 그 옆에 아주 작게, 물음표 하나를 붙였다.
(8화 끝)
『반죽하는 사람: 내일도 반죽할게요. 내일도 라디오 켤게요. 내일 그 자리에 다른 게 나와도 다이얼은 안 돌릴게요. 테이프 붙어 있으니까.』≈12월 31일 수요일 새벽 한 시 오십 분. 반달FM 4층.다온은 스튜디오 문 앞에 서 있었다. 원고 뭉치를 안고. 마지막 원고였다. 「두 시의 편지」 30년 마지막 방송. 사흘 밤을 새워 쓴. 30년 동안 사연을 보낸 사람들 이름을 다 넣고 싶었는데 다 넣을 수가 없었다. 게시판에 남은 이름만 이천 개가 넘었다.복도가 이상하게 붐볐다. 평소 새벽 두 시면 다온과 한도윤과 금정란, 셋이 전부였다. 오늘은 보도국 야간 기자, 교통 캐스터 나보람, 엔지니어 둘, 그리고 낮 프로 PD 몇이 복도에 서 있었다. 다들 종이컵을 들고. 30년 마지막 방송을 보러.보람이 다온에게 다가와 우유 종이컵을 내밀었다.“작가님, 괜찮아?”“몰라. 진짜 모르겠어.”“울지 마. 방송 중에 울면 사고야.”“선생님이 지난번에 팔 초 울었어.”“그러니까 둘이 울면 십육 초야.”다온이 웃었다. 보람도 웃었다. 그리고 보람이 다온 팔을 꽉 잡았다.스튜디오 안에서 금정란이 헤드폰을 쓰고 있었다. 빨간 머플러. 크리스마스이브 때 했던. 「마지막 날엔 이거 해야지.」부조정실에서 한도윤이 콘솔 앞에 앉아 있었다. 손에 서류철. 그런데 열지 않았다. 무릎 위에 올려 둔 채로.≈같은 시각. 반달빵집.태오는 반죽기를 돌리지 않았다. 작업대 앞에 서서 라디오를 보고 있었다. 할머니 라디오. 다이얼 위 테이프.오늘이 마지막이었다. 내일부터 새벽 두 시 이 주파수에선 재방송이 나온다고 했다. 낮 프로
『반죽하는 사람: 크리스마스이브엔 밤을 새워요. 슈톨렌에 슈가파우더를 뿌리면 눈 온 것 같아요. 올해는 누가 옆에서 리본을 묶어 주면 좋겠어요. 혼자 묶으면 자꾸 풀려요.』≈12월 23일 화요일 밤 열한 시. 반달FM 4층 작가석.다온은 달력을 봤다. 책상 옆 벽에 붙은 탁상 달력. 12월 장. 31일에 빨간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한도윤 PD가 그어 놓은. 그 옆에 작게 「마지막 방송」.여드레.일요일 빼고 일곱 번의 방송.다온은 동그라미에서 눈을 떼고 원고를 봤다. 크리스마스이브 특집. 「새벽에 일하는 사람들 — 크리스마스에도 일하는 당신에게」. 사연 열둘. 응급실, 소방서, 편의점, 택시, 경비실, 물류 센터. 그리고 반죽하는 사람.반죽하는 사람 사연은 맨 마지막에 놓았다.『올해는 누가 옆에서 리본을 묶어 주면 좋겠어요. 혼자 묶으면 자꾸 풀려요.』다온은 그 문장에 형광펜을 그었다. 두 줄. 그리고 생각했다. 리본. 슈톨렌. 반달빵집도 크리스마스 케이크 대신 슈톨렌을 팔았다. 할머니 때부터. 진열대 앞에 「슈톨렌 예약 받습니다」 종이가 일주일째 붙어 있었다. 미소 글씨로.다온은 고개를 저었다. 크리스마스에 슈톨렌 파는 빵집은 많다.≈12월 24일 수요일 새벽 한 시. 반달빵집.태오는 셔터를 반만 올리고 들어왔다. 평소보다 반 시간 일찍. 오늘은 밤을 새워야 했다.작업대 위에 슈톨렌 반죽이 줄지어 있었다. 어젯밤 열 시까지 빚어 둔 것. 서른 개. 예약이 스물여섯, 매장용 넷. 할머니 때는 마흔 개였다. 태오는 서른 개가 한계였다.오븐 두 대를 예열했다. 첫 판 열 개를 넣었다. 타이머를 맞췄다. 사십 분.라디오를 켰다. 할머니 라디오. 테이프 붙은 다이얼. 「두 시의 편지」까지 한 시간.
『택시 오 기사: 비 오는 새벽에 작가 아가씨를 태워다 줬어요. 빵집 앞에 내려 줬는데 빵집 총각이 유리문 안에서 나를 째려보더라고요. 30년 택시 몰면서 그런 눈은 처음 봤어요. 총각, 나 기사야.』≈12월 5일 금요일 오후 네 시. 반달FM 4층 회의실.한도윤 PD가 공문 한 장을 탁자에 놓았다. 이번엔 마케팅팀 중간 집계가 아니었다. 방송국 공식 청취율 조사 결과. 11월분.「두 시의 편지 — 0.6%」.다온은 그 숫자를 오래 봤다. 0.3에서 0.6. 두 배였다. 두 배인데 1%의 절반을 겨우 넘었다.“국장님이 이거 보시고 뭐라고 하셨는지 알아?”한도윤이 의자에 몸을 던지듯 앉았다.“「두 배네. 근데 0.6이네.」 끝.”금정란이 보온병 뚜껑을 열며 웃었다.“국장님 말 잘하시네.”“선생님, 웃을 일이 아니에요.”“웃어야지. 0.3이 0.6 됐는데. 30년 동안 이렇게 오른 적 없어.”금정란이 다온을 봤다. 안경 너머로.“다온 작가가 한 거야.”다온은 고개를 저었다.“청취자분들이 한 거예요. 사연 보내 주신 분들이. 게시판에 쓰신 분들이. 오 기사님이 택시 손님들한테 다 틀어 준대요.”“그 오 기사님 사연은 언제 읽어?”“…다음 주요. 월요일에.”다온은 대답하면서 서류철 안 오 기사님 사연을 생각했다. 「택시 오 기사」라는 이름으로 일주일에 두 통씩 오는. 손님 얘기, 새벽 도로 얘기, 반달빵집 단팥빵 얘기. 오 기사님은 사연마다 단팥빵이 나왔다.≈12월 6일 토요일 새벽 네 시 십 분. 반달FM 건물 1층 현관.비가 왔다. 겨울비. 차가운. 다온은 현관 유리문 안쪽에 서서 밖을 봤다. 빗줄기가 가로등 불빛에 하얗게 보였다. 큰길이 젖어 번들거렸다.우산이 없었다. 가방 안에 접이식 우산이 있었는데 지난주에 살이 부러져 버렸다. 새로 사야지 하면서 일주일이 지났다.25분. 걸으면 다 젖을 것이다. 첫차는 다섯 시 십 분. 한 시간을 현관에서 기다릴 수도 없었다.다온이 목도리를 머리에 뒤집어쓰려는데 큰길에서 경적이
『반죽하는 사람: 누가 저한테 사연을 써 보라고 했어요. 그래서 써요. 원래 쓰고 있었다는 말은 못 했어요. 반죽이 다 부풀면 말할게요.』≈11월 29일 토요일 오전 열한 시. 반달FM 4층 회의실.한도윤 PD가 종이 한 장을 탁자 위에 놓았다. 손가락으로 숫자를 짚었다.“마케팅팀 중간 집계야. 공식 아니고. 0.5%.”다온은 그 숫자를 봤다. 0.5. 두 달 전 0.3이었다.“올랐어요.”“올랐지. 0.2. 두 달 만에.”“국장님은요? 뭐라세요?”“국장님은 1%가 아니면 다 똑같대.”한도윤이 종이를 접었다. 그런데 버리지 않고 서류철에 넣었다. 다온은 그걸 봤다.“그래도 게시판은 하루 오십 개 넘어. 새벽에 일하는 사람들 코너 사연이 매일 열 통씩 와. 물류 센터, 응급실, 경비실, 편의점. 지난주엔 소방서에서도 왔어.”한도윤이 서류철을 덮었다.“다온 작가. 0.5로는 안 돼. 근데 0.5까지 온 건 네가 한 거야. 그건 알아 둬.”다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만 끄덕였다. 목이 조금 메었다.≈열두 시. 반달빵집.다온은 밤샘 회의를 마치고 바로 빵집으로 왔다. 잠을 못 자 눈이 따가웠다. 창가 탁자에 앉아 메뉴판을 봤다. 낮 메뉴. 샌드위치 세 가지. 햄치즈, 에그마요, 감자.“감자 샌드위치랑 우유요.”계산대에서 미소가 「네!」 했다. 주방에서 태오가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식빵 두 장, 으깬 감자, 오이, 햄 한 장. 반으로 잘라 접시에 담았다. 칼질이 반듯했다. 한 달 동안 반 근 식빵을 자른 손.태오가 접시를 들고 직접 왔다. 미소 대신.“드세요.”“감사합니다, 사장님.”다온은 샌드위치를 집었다. 감자가 부드러웠다. 오이가 아삭했다. 후추가 조금.태오가 접시를 내려놓고 돌아서려다 멈췄다. 다온 얼굴을 봤다.“…안 주무셨어요?”“밤샘 회의요. 청취율 중간 집계 나왔어요.”“…어떻게 나왔어요?”태오 목소리가 조금 빨랐다. 평소보다.“0.5%요. 0.3에서 올랐어요. 근데 1% 돼야 안 없어진대요.”태오가
『택시 오 기사: 30년 전에 빵집 누님이 그러더라고요. 비밀은 반죽 같은 거라고. 너무 치대면 질겨진대요. 그래서 저는 안 치대요. 근데 입이 근질근질해요.』≈11월 22일 토요일 새벽 다섯 시 십이 분. 반달빵집.다온은 소금빵 봉투를 받아 들고도 나가지 않았다. 계산대 옆 벽. 할머니 사진 앞에 섰다. 일주일째였다. 7일 동안 매일 아침 다온은 그 사진 앞에서 1분씩 서 있었다.태오는 계산대 뒤에서 그걸 보고 있었다. 일주일째.“사장님.”“…네.”“할머니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태오가 영수증을 쥔 채로 멈췄다.“…왜요?”“그냥요. 3년 전에 이사 왔을 때 소금빵 공짜로 주셨거든요. 인사도 제대로 못 했어요. 그해 겨울에 돌아가셨잖아요. 이름도 모르고.”다온이 사진을 보며 말했다. 태오를 보지 않고. 목소리가 담담했다. 너무 담담했다.태오는 영수증을 내려놓았다. 할머니 이름을 말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동네 사람 절반이 알았다. 그런데 다온이 그걸 묻는 이유를 태오는 알았다. 일주일 전 금정란 선생님 방송. 반죽하는 할머니.이름을 말하면 다온은 어떻게 할까. 금정란 선생님한테 전할까. 할머니가 30년 동안 숨긴 이름을.태오가 입을 열었다. 그 전에 문이 열렸다. 딸랑.“총각! 단팥빵 둘!”≈오 기사님은 모자를 벗어 털며 들어왔다. 찬바람이 같이 들어왔다. 그리고 계산대 옆 벽 앞에 선 다온을 봤다.“어, 작가 아가씨. 순례 누님 사진 보고 있어?”다온이 돌아봤다.“순례 누님이요?”“그래, 순례 누님. 여기 할머니. 반달빵집 순례 누님이지. 이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 없어.”오 기사님이 단팥빵 칸으로 가며 말을 이었다.“30년 전에 내가 택시 처음 몰 때부터 여기서 단팥빵 사 먹었어. 새벽 네 시 반에 오면 누님이 문 열기 전인데도 뒷문으로 줬어. 「기사 양반 배고프지」 하고.”태오가 계산대 뒤에서 오 기사님을 봤다. 오 기사님은 그 눈빛을 못 봤다. 아니, 봤는데 무시했다.“누님이 라디오를 그렇게 좋아했어.
『반죽하는 사람: 할머니는 반죽을 치대면서 혼잣말을 했어요. 누구한테 하는 말이냐고 물으면 라디오한테 한다고 했어요. 라디오가 대답은 안 해도 다 듣는다고.』≈11월 15일 토요일 새벽 두 시 이십팔 분. 반달FM 4층 스튜디오.다온은 작가석에서 유리창 너머를 보고 있었다. 금정란이 마이크 앞에 앉아 원고를 넘겼다. 「새벽에 일하는 사람들」 코너 차례. 오늘 사연은 반죽하는 사람. 다온이 맨 앞에 놓았다.코너를 시작한 지 4주. 게시판 글이 하루 서른 개를 넘었다. 청취율은 아직 몰랐다. 다음 달 첫 주에 나온다고 했다. 한도윤 PD는 매일 새벽 게시판 숫자를 세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금정란이 원고를 들었다. 큐 사인. 다온이 부조정실 쪽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도윤이 노래 볼륨을 내렸다.“두 시 반이에요. 「새벽에 일하는 사람들」, 오늘은 다시 반죽하는 사람님이에요. 이분 사연 기다리시는 분들 많죠. 게시판에 「반죽하는 사람 언제 나와요」가 제일 많대요.”금정란이 웃었다. 그리고 읽었다.“할머니는 반죽을 치대면서 혼잣말을 했어요. 누구한테 하는 말이냐고 물으면 라디오한테 한다고 했어요. 라디오가 대답은 안 해도 다 듣는다고.”금정란이 거기서 멈췄다.다온은 원고를 따라 읽다가 고개를 들었다. 다음 문장이 있었다. 「그래서 저도 반죽하면서 라디오한테 말해요. 할머니처럼.」 금정란은 그 문장을 읽지 않았다.유리창 너머 금정란이 원고를 쥔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마이크가 켜져 있었다. 숨소리가 들렸다. 한 번. 두 번.부조정실에서 한도윤이 몸을 일으켰다. 손이 콘솔 위 페이더로 갔다. 노래를 올릴까 말까.삼 초. 사 초. 라디오에서 삼 초 침묵은 사고였다. 오 초는 큰 사고.금정란이 고개를 들었다.“…죄송해요, 여러분.”목소리가 젖어 있었다.“이 사연 읽다가 옛날 생각이 나서요. 30년 전부터 우리 방송에 사연 보내 주시던 분이 계셨어요. 이분도 반죽하는 분이셨어요. 반죽하는 할머니. 그분도 라디오한테 혼잣말한다고 쓰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