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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검의 안에는 드래곤의 심장이 있습니다

Author: 유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1 11:15:17

아르셀리아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정하지 못했다.

눈앞에는 아스테리온이 서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도, 금빛 눈도, 조금 전까지 자신에게 능글맞게 웃던 얼굴도 전부 그대로였다. 그런데 카르디안의 말이 떨어진 뒤부터는 그가 이전과 똑같이 보이지 않았다.

저 안에.

드래곤의 심장이 있다.

그것도 왕급.

쿵.

아스테리온의 가슴 중앙에서 다시 한번 금빛이 뛰었다.

이번에는 모두가 봤다.

피부 아래에서 아주 옅은 빛이 번졌다가 사라졌다. 사람의 심장이 뛰는 것처럼 규칙적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아주 잠깐 깨어났다가 다시 숨는 것에 가까웠다.

아르셀리아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의 가슴에 머물렀다.

아스테리온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렇게 보시면 조금 민망한데요.”

아르셀리아가 고개를 들었다.

“지금 농담이 나와?”

“제가 긴장하면 농담을 조금 하는 편이라.”

“너 긴장했어?”

“상당히.”

의외였다.

표정만 보면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아르셀리아가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봤다. 붉은빛과 금빛이 얽힌 문양도 방금 전 아스테리온의 가슴이 빛난 순간 같이 반응했다.

아주 미세하지만.

확실하게.

카르디안은 둘의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손 줘.”

아르셀리아가 바로 손을 뒤로 뺐다.

“싫어.”

“아르셀리아.”

“아까 보여줬잖아.”

“이번엔 문양을 보는 게 아니다.”

“그럼.”

카르디안이 아스테리온을 한 번 보고 말했다.

“마력 흐름을 확인해야 한다.”

아르셀리아의 눈썹이 조금 움직였다.

“내 거?”

“둘 다.”

아스테리온이 낮게 웃었다.

“저는 싫다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카르디안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검한테 묻지 않았다.”

“아까부터 계속 검이라고 부르시는데.”

“검 맞잖아.”

“조금 전에는 제 안에 드래곤의 심장이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래서?”

“그럼 최소한 반쯤은 드래곤 아닐까요.”

카르디안의 눈썹이 꿈틀했다.

아르셀리아는 그 모습을 보고 아주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또 시작이다.

이 둘은 마주치기만 하면 왜 이렇게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지 모르겠다.

“둘 다 조용히 해.”

아르셀리아가 말했다.

“카르디안.”

“왜.”

“확인하면 뭐 알 수 있어?”

“저 안에 든 게 정말 용핵인지. 그리고 네 문양이 어디까지 연결됐는지.”

“위험해?”

“내가 하는 건 아니다.”

카르디안의 시선이 아스테리온에게 향했다.

“네가 저걸 잡으면 된다.”

아르셀리아가 잠깐 멈췄다.

“뭘 잡아.”

“손.”

아스테리온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건 꽤 좋은 방법이군요.”

“좋아하지 마.”

아르셀리아가 바로 잘랐다.

카르디안은 인상을 썼다.

“왜 저게 좋아하지?”

“원래 그래.”

“뭐가.”

“손 잡는 거.”

아스테리온이 정정했다.

“아르셀리아와 접촉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카르디안의 얼굴이 한층 더 험악해졌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돼.”

“오해하실까 봐.”

“이미 충분히 이상해.”

아르셀리아는 대화를 더 듣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

아스테리온이 즉시 그녀의 손을 잡았다.

망설임도 없었다.

긴 손가락이 그녀의 손을 감쌌다.

손바닥이 맞닿는 순간.

웅―

붉은 마력과 금빛 신성력이 동시에 피어올랐다.

처음보다 훨씬 자연스러웠다.

아르셀리아가 일부러 힘을 밀어 넣지 않아도 마력이 스스로 아스테리온 쪽으로 흘렀고, 그의 신성력 역시 거부감 없이 아르셀리아에게 돌아왔다.

두 힘은 부딪치지 않았다.

섞였다.

카르디안의 얼굴이 점점 굳었다.

“이상하네.”

아르셀리아가 물었다.

“뭐가.”

“상극이어야 해.”

“신성력이랑 드래곤 마력?”

“그래.”

카르디안은 두 사람의 손목을 가까이 들여다봤다.

“특히 저게 진짜 용살성검이라면 더 심해야 하지. 네 마력을 받아들이는 정도가 아니라 닿는 순간부터 공격해야 정상이다.”

아르셀리아가 아스테리온을 봤다.

“안 아파?”

“예.”

“불편한 것도?”

“전혀.”

“난 조금 간질간질해.”

아스테리온의 금빛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

“어디가요?”

“손목.”

“아쉽군요.”

“뭐가.”

“다른 곳인 줄 알았습니다.”

아르셀리아가 그의 손등을 꼬집었다.

“아.”

“아프네?”

“아르셀리아께서 직접 해 주셔서 기분은 좋습니다.”

“…….”

카르디안이 아주 깊게 한숨을 쉬었다.

“이걸 계속 봐야 하나.”

“네가 하랬잖아.”

“그렇긴 한데.”

카르디안은 다시 진지한 얼굴로 마력 흐름을 살폈다.

그의 손끝에서 검은 마력이 아주 가늘게 뻗어 나왔다. 두 사람의 문양에 직접 닿지는 않고 주변을 천천히 훑었다.

순간.

아스테리온의 손이 아주 작게 떨렸다.

아르셀리아가 바로 알아챘다.

“왜.”

“괜찮습니다.”

“뭔데.”

“잠깐.”

아스테리온이 미간을 찌푸렸다.

평소처럼 웃는 얼굴도 아니었다.

가슴 중앙의 금빛이 다시 강해졌다.

쿵.

아르셀리아의 손목에서도 통증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분명했다.

그녀가 숨을 짧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시야가 바뀌었다.

어둡다.

차갑다.

아르셀리아는 한동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발밑에는 검은 돌바닥이 있었고, 사방에는 끝도 없이 높은 기둥이 늘어서 있었다.

자신의 몸은 보이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의 기억 속에 떠 있는 것처럼.

멀리.

누군가 있었다.

작은 아이.

정확히는.

아이의 모습을 한 무언가.

검은 머리.

금빛 눈.

아르셀리아는 바로 알아봤다.

아스테리온.

하지만 지금보다 훨씬 어렸다.

열 살도 되지 않아 보이는 소년이 검은 제단 위에 앉아 있었다.

손목과 발목에는 금빛 사슬이 감겨 있었다.

소년은 울지 않았다.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 앞에는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사람처럼 보이지만.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빛에 가려져 있었다.

『심장이 안정되지 않습니다.』

누군가 말했다.

『용핵이 거부하는 겁니까?』

『아닙니다.』

다른 목소리.

『검이 아직 자신을 용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아르셀리아의 눈빛이 흔들렸다.

용.

검이 자신을 용이라고 착각한다?

제단 위의 어린 아스테리온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나는.』

작은 목소리.

『검이 아니야.』

그 순간.

금빛 사슬이 조여 들었다.

소년의 몸이 휘청했다.

하지만 비명은 나오지 않았다.

아르셀리아의 손끝이 본능적으로 움찔했다.

잡고 싶었다.

저걸.

사슬을.

끊어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움직일 수 없었다.

기억이니까.

『틀렸습니다.』

흰 옷의 남자가 말했다.

『너는 검입니다.』

『아니야.』

『너는 신의 검입니다.』

『……아니야.』

『용을 죽이기 위해 태어난 검.』

소년이 고개를 저었다.

금빛 눈에 처음으로 두려움이 번졌다.

『나는……』

말이 끊겼다.

순간.

누군가 검은 상자를 가져왔다.

상자 안에서 금빛이 흘러나왔다.

아르셀리아의 숨이 멎었다.

심장.

아주 작은.

하지만 분명한 드래곤의 심장 조각.

그것은 죽은 심장처럼 보이지 않았다.

아직 뛰고 있었다.

쿵.

쿵.

쿵.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아르셀리아의 본능이 반응했다.

등줄기를 타고 비늘이 올라왔다.

이건.

평범한 드래곤의 것이 아니다.

압도적이었다.

존재만으로 주변 마력을 끌어당기는 힘.

왕급.

아니.

그 이상.

흰 옷의 누군가가 말했다.

『황금의 심장을 삽입합니다.』

아르셀리아의 눈이 크게 뜨였다.

황금.

골드 드래곤.

다음 순간.

소년의 가슴이 빛났다.

아르셀리아가 이를 악물었다.

『멈춰.』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 마.』

아무도 듣지 못했다.

심장 조각이 소년의 가슴 안으로 들어갔다.

아스테리온의 몸이 크게 떨렸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비명이 터졌다.

『아아악―!』

아르셀리아의 안쪽에서 무언가가 확 치밀어 올랐다.

붉은 화염.

분노.

자신의 기억도 아닌데.

자신에게 일어난 일도 아닌데.

미친 듯이 화가 났다.

제단 주변에서 사람들이 말했다.

『안정화가 시작됐습니다.』

『신성력과 융합 중입니다.』

『좋습니다. 이제 명령을 새깁니다.』

소년이 고개를 들었다.

울지 않았던 얼굴에 처음으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싫어.』

아르셀리아의 심장이 순간 멎는 듯했다.

『싫어.』

어린 아스테리온이 반복했다.

『나는 죽이기 싫어.』

하지만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제단 위로 거대한 문양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문장이 나타났다.

『모든 드래곤을 멸하라.』

금빛 문장이 소년의 가슴 안으로 파고들었다.

아스테리온이 몸부림쳤다.

사슬이 울렸다.

『싫어!』

처음이었다.

아르셀리아가 그가 소리를 지르는 걸 본 것은.

『싫어!』

하지만 문장은 멈추지 않았다.

하나씩.

하나씩.

피부 안으로.

영혼 안으로.

박혀 들어갔다.

그리고 마지막.

소년이 울면서 중얼거렸다.

『돌아가고 싶어.』

아르셀리아가 멈췄다.

돌아가고 싶다.

어디로.

그 질문이 떠오른 순간.

소년이 아주 작게 말했다.

『……형에게.』

그리고 기억이 끊겼다.

“아르셀리아!”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아르셀리아가 눈을 떴다.

숨이 거칠었다.

시야가 흔들렸다.

누군가가 자신의 어깨를 잡고 있었다.

카르디안이었다.

그리고.

손.

아스테리온과 맞잡고 있던 손은 여전히 놓이지 않았다.

아르셀리아가 바로 고개를 돌렸다.

아스테리온은 창백했다.

금빛 눈이 완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봤어?”

그가 낮게 물었다.

아르셀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손을 놓았다.

아스테리온의 손가락이 순간 허공에 남았다.

아주 잠깐.

버려진 것처럼.

아르셀리아는 그걸 보지 못했다.

그녀는 곧장 몸을 돌렸다.

“세레니스.”

방 구석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세레니스가 움찔했다.

“어?”

“나 외출할 거야.”

“갑자기?”

“응.”

“어디.”

아르셀리아가 대답했다.

“황금령.”

카르디안이 바로 막았다.

“왜.”

“확인할 게 있어.”

“뭘 봤는데.”

아르셀리아는 입을 다물었다.

아스테리온이 대신 낮게 말했다.

“황금의 심장.”

카르디안의 표정이 굳었다.

세레니스도 마찬가지였다.

아르셀리아가 그를 봤다.

“너도 봤어?”

“조금.”

“어디까지.”

“제단.”

“그 뒤는?”

아스테리온이 고개를 저었다.

“끊겼습니다.”

그럼.

형에게 돌아가고 싶다고 했던 부분은.

아르셀리아만 본 것이다.

이상했다.

같은 기억이라면 왜 보이는 범위가 다르지.

아르셀리아는 잠시 생각하다가 카르디안을 봤다.

“골드 드래곤 심장이었어.”

카르디안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반응이 마음에 걸렸다.

아르셀리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너 뭐 알아?”

“확실하지 않아.”

“말해.”

“확실하지 않다고 했다.”

“카르디안.”

그녀가 낮게 이름을 부르자 카르디안이 입을 다물었다.

둘은 오래 알았다.

아르셀리아가 정말 화났을 때 어떻게 변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결국 카르디안이 입을 열었다.

“골드 드래곤의 왕급 용핵이 사라진 기록은 하나뿐이다.”

“누구.”

카르디안이 대답하지 않았다.

세레니스가 먼저 얼굴이 굳었다.

“설마.”

아르셀리아가 그녀를 봤다.

“왜 둘만 알아.”

세레니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야. 진짜 역사라기보다 전승에 가까워.”

“그래서 누구.”

카르디안이 결국 말했다.

“초대 황금룡.”

정적.

아르셀리아의 표정이 굳었다.

초대 황금룡.

모든 색의 드래곤이 갈라지기 이전, 최초로 ‘황금’이라는 이름을 얻은 드래곤.

현재 칠색 의회가 생기기 훨씬 전.

신과 드래곤이 같은 땅을 두고 싸우던 시대.

이름조차 대부분 지워져 전승으로만 남은 존재.

“죽었다고 알고 있는데.”

아르셀리아가 말했다.

“맞아.”

카르디안이 대답했다.

“신들과의 전쟁에서.”

“심장은?”

“시신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아르셀리아의 붉은 눈이 천천히 아스테리온에게 향했다.

가슴.

조금 전 심장이 뛰었던 곳.

아스테리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얼굴에서도 장난기는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아르셀리아가 물었다.

“초대 황금룡이 죽은 게 언제야.”

“약 삼천 년 전.”

“너는.”

그녀가 아스테리온을 봤다.

“몇 살이라고 했지.”

“정확한 기억은 없습니다.”

“최소 천이백 년.”

“예.”

“그럼 계산이 안 맞잖아.”

카르디안이 낮게 말했다.

“저 검의 기억이 틀렸다면.”

모두가 그를 봤다.

“혹은 누군가 기억을 잘라 냈다면.”

아르셀리아는 얼마 전 아스테리온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삭제됐거나.

봉인됐거나.

그녀의 시선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신전.”

아스테리온이 조용히 말했다.

“아마도.”

아르셀리아가 갑자기 짜증이 났다.

이유는 명확했다.

“아마도.”

또 그 말.

“모릅니다.”

“기억이 없습니다.”

아스테리온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용살성검이라는 이름조차 누군가 붙여 준 것이다.

나이는 기억하지 못한다.

태어난 목적도 자신이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새겨진 기록을 통해 안다.

심지어 자신이 정말 검인지도 모른다.

아르셀리아는 그를 오래 바라봤다.

그러자 아스테리온이 미묘하게 웃었다.

“너무 심각하게 보지 마십시오.”

“왜.”

“제가 조금 수상하긴 하지만.”

“조금?”

“상당히.”

“많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 상처받습니다.”

다시 평소의 태도로 돌아가려는 게 보였다.

아르셀리아는 이상하게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웃지 마.”

아스테리온이 멈췄다.

“예?”

“지금은 웃지 마.”

“…….”

“싫으면 싫다고 해.”

아스테리온의 금빛 눈이 흔들렸다.

아르셀리아가 말했다.

“무서우면 무섭다고 하고.”

“…….”

“기분 나쁘면 기분 나쁘다고 해.”

아스테리온은 아무 말도 못 했다.

“맨날 웃으면서 넘기지 말고.”

그 순간.

방 안이 이상할 정도로 조용해졌다.

카르디안도.

세레니스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스테리온은 천천히 눈을 내렸다.

“그게.”

목소리가 아주 낮았다.

“잘 안 됩니다.”

아르셀리아가 눈썹을 조금 찌푸렸다.

“왜.”

“오래돼서.”

무엇이 오래됐다는 건지는 말하지 않았다.

웃는 게.

감추는 게.

무기로 사는 게.

어느 것인지.

아마 전부일 것이다.

아르셀리아는 한동안 그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럼 연습해.”

“무엇을요.”

“싫은 거 말하는 거.”

아스테리온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럼 지금 해도 됩니까?”

“응.”

“카르디안 님이 싫습니다.”

카르디안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세레니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르셀리아는 몇 초 동안 어이없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

“그건 잘하네.”

“연습이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저쪽도 똑같을걸.”

카르디안이 즉시 말했다.

“나도 저 검이 싫다.”

“보십시오.”

아스테리온이 만족스럽게 말했다.

“마음이 통했습니다.”

“죽고 싶나.”

“저는 이미 검이라 죽는 방식이 조금 다릅니다.”

“확인해 줄까.”

“둘 다.”

아르셀리아가 말하자 동시에 조용해졌다.

세레니스가 입을 가린 채 웃었다.

조금 전까지 무거웠던 공기가 아주 조금 풀렸다.

하지만 아르셀리아의 머릿속에서는 계속 하나의 말이 맴돌았다.

형.

아스테리온은 누구에게 돌아가고 싶었던 걸까.

그리고.

왜 그는 지금 그 존재를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황금령으로 떠나는 것은 다음 날 아침으로 정했다.

밤의 산맥을 넘어갈 이유가 없었다.

드래곤에게 밤길이 위험한 건 아니지만, 아르셀리아는 쓸데없이 피곤한 것을 싫어했다.

문제는 숙소였다.

“오늘은 어디서 자죠?”

늦은 밤.

또다시 침실 문 앞에서 아스테리온이 물었다.

아르셀리아는 문을 열다가 그를 봤다.

“보물고.”

“역시.”

“왜 실망해.”

“매일 혹시나 하고 기대하는 편입니다.”

“뭘.”

“침실.”

“왜.”

“부부가 되려면 가까워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르셀리아가 문을 닫으려 했다.

아스테리온의 손이 문틈에 들어왔다.

“잠깐.”

“손 자른다.”

“성검이라 잘 안 잘립니다.”

“시험해 볼까.”

“그건 별로.”

아르셀리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싫은 거 잘 말하네.”

“연습 중입니다.”

“좋네. 그럼 보물고에서 자.”

“그건 싫습니다.”

“…….”

“이것도 잘했습니까?”

아르셀리아는 잠시 고민했다.

말을 잘못 가르친 것 같다.

그녀는 결국 문을 더 열었다.

“그럼 소파.”

아스테리온이 굳었다.

“……예?”

“오늘만.”

“침실 안 소파요?”

“싫으면 보물고.”

“좋습니다.”

대답이 지나치게 빨랐다.

아르셀리아가 의심스럽게 그를 봤다.

“왜 이렇게 좋아해.”

“발전이니까요.”

“뭐가 발전인데.”

“어제는 의자.”

아스테리온이 방 안을 바라봤다.

“오늘은 소파.”

그리고 그녀의 침대를 보며 말했다.

“그다음은.”

“없어.”

“아직 말하지 않았습니다.”

“얼굴에 써 있어.”

아스테리온이 웃었다.

“제 얼굴을 많이 보셨군요.”

“내 보물이니까.”

말이 나온 순간.

아스테리온이 조용해졌다.

아르셀리아도 이제 그 반응이 익숙해졌다.

“또 좋아?”

“예.”

“진짜 별거 아닌데.”

“저한테는 아닙니다.”

짧은 대답이었다.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

그래서 아르셀리아도 더 장난치지 않았다.

한밤중.

아르셀리아는 갑자기 눈을 떴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디선가.

아주 미세한 통증이 느껴졌다.

가슴.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바로 소파를 봤다.

아스테리온이 누워 있었다.

잠이 필요 없다고 했는데.

눈을 감고 있었다.

아르셀리아는 잠시 바라봤다.

그리고.

알아차렸다.

그의 손이 가슴을 움켜쥐고 있었다.

손가락이 옷자락을 강하게 쥐고 있었다.

미간도 찌푸려져 있었다.

아르셀리아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소파 가까이 다가갔다.

“아스테리온.”

반응이 없다.

“야.”

손을 뻗어 어깨를 건드린 순간.

아스테리온의 눈이 번쩍 뜨였다.

동시에.

철컥―!

금빛이 폭발했다.

아르셀리아는 순간적으로 움직임을 멈췄다.

검날.

자신의 목 바로 앞.

아스테리온의 오른팔이 절반쯤 검으로 변해 있었다.

날카로운 금빛 검신이 아르셀리아의 목에서 손가락 두 마디도 되지 않는 곳에 멈춰 있었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아스테리온의 금빛 눈에는 아직 초점이 없었다.

그리고 그의 입술 사이에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죽여.”

아르셀리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누구를.”

“드래곤을.”

그의 손이 떨렸다.

검끝도 같이 흔들렸다.

아르셀리아는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대로 서 있었다.

잠시 뒤.

아스테리온의 초점이 돌아왔다.

그 순간.

얼굴에서 모든 핏기가 사라졌다.

“아르……셀리아.”

검이 즉시 사라졌다.

아스테리온이 뒤로 물러났다.

소파 끝까지.

마치 그녀에게서 가능한 한 멀어지려는 것처럼.

“죄송합니다.”

아르셀리아는 목을 한 번 쓸었다.

베이지 않았다.

피도 없다.

“안 다쳤어.”

“그 문제가 아닙니다.”

아스테리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부터 보물고로 돌아가겠습니다.”

아르셀리아가 그를 봤다.

“왜.”

“방금 보셨잖습니까.”

“봤어.”

“그럼.”

“근데 안 베었잖아.”

아스테리온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다음에도 멈출 거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럼 다음에도 깨우면 되지.”

“아르셀리아.”

“왜.”

“제가 당신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아르셀리아는 조용히 그를 바라봤다.

아스테리온은 웃지 않았다.

그 얼굴에는 정말 두려움이 있었다.

어제 느꼈던 것과 같은 감정.

아니.

더 강했다.

그는 자신의 과거보다.

아르셀리아를 해칠 가능성을 더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르셀리아가 말했다.

“도망가려고?”

아스테리온이 멈췄다.

“제가 떨어져 있는 편이 안전합니다.”

“나한테?”

“예.”

아르셀리아는 천천히 팔짱을 꼈다.

“싫어.”

이번에는 아스테리온이 당황했다.

“예?”

“네가 가는 거 싫다고.”

“…….”

“너 내 거잖아.”

아르셀리아가 너무 당연하게 말했다.

“위험하다고 밖에 던져 버리면 그게 무슨 보물이야.”

아스테리온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르셀리아가 한 걸음 가까이 갔다.

그가 본능적으로 물러났다.

아르셀리아가 다시 한 걸음 갔다.

아스테리온의 등이 벽에 닿았다.

“왜 피해.”

“아르셀리아.”

“네가 어제 뭐랬어.”

“…….”

“명령이 강해지면 말하랬잖아.”

“그건.”

“말 안 했지.”

아스테리온이 입을 다물었다.

“그러니까 벌.”

“벌?”

“오늘부터.”

아르셀리아는 그의 손을 잡았다.

아스테리온이 크게 움찔했다.

“잠들 때까지 내가 잡고 있을 거야.”

“…….”

“이상해지면 바로 알게.”

붉은 마력과 금빛 신성력이 두 사람의 손 사이에서 아주 희미하게 퍼졌다.

아스테리온은 한동안 맞잡힌 손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어렵게 입을 열었다.

“아르셀리아.”

“왜.”

“이건.”

그가 잠시 말을 멈췄다.

“제가 좋아할 만한 벌인데요.”

아르셀리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취소할까?”

아스테리온이 바로 손가락을 맞물렸다.

“이미 집행됐습니다.”

“야.”

“판결 번복은 안 됩니다.”

“누구 마음대로.”

“피고 마음대로.”

아르셀리아는 어이없다는 듯 바라봤다.

그러다가 결국 아주 작게 웃었다.

그 웃음을 본 아스테리온도 따라 웃었다.

하지만 손은 놓지 않았다.

그날 밤.

둘은 침대와 소파 사이 바닥에 기대어 한동안 앉아 있었다.

손을 잡은 채.

아르셀리아는 언제 잠들었는지도 몰랐다.

다만 아주 깊은 새벽.

희미하게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었다.

『형.』

어린 아스테리온의 목소리.

『나 무서워.』

그리고.

그 말에 대답하는.

처음 듣는 다른 목소리.

아주 따뜻하고.

이상할 정도로 오래된 목소리.

『괜찮아, 아스테르.』

아르셀리아의 눈꺼풀이 떨렸다.

아스테르.

아스테리온이 아니다.

『내가 널 찾으러 갈게.』

순간.

아르셀리아의 손목 문양이 번쩍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희미한 금빛 비늘이.

아스테리온의 목덜미 위에.

단 한 장.

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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