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11월 25일.
오늘은 이든의 생일이었다.
애리는 아침부터 일찍 눈을 떴다.
괜히 거울 앞에 서 있었다.
평소보다 조금 더 오래.머리를 정리하고 아주 얇게 화장을 했다.
그리고 침대 위에 놓여 있던 쇼핑봉투를 집어 들었다.
안에는 지난번에 산 기타 스트랩이 들어 있었다.
짙은 갈색 가죽에 은색 버클이 달린 것.
애리는 봉투 안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다시 닫았다. 생일 파티는 늘 그렇듯 작업실에서 열렸다.참가자는 단촐했다.
이든.
애리. 마커스와 레이첼. 그리고 노아.늘 그 멤버였다.
작업실 한쪽 테이블 위에는 작은 케이크가 놓여 있었다.
촛불이 켜져 있었고, 종이접시와 플라스틱 포크가 옆에 있었다.마커스가 박수를 치며 말했다.
“자, 빨리 불어.”
노아가 바로 덧붙였다.
“초 녹는다.”
이든이 피식 웃었다.
“소원 빌 시간은 줘야지.”
다들 대충 음정도 맞지 않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생일 축하합니다.”
애리는 그 모습을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보고 있었다.
손에는 작은 쇼핑봉투가 들려 있었다.
짙은 갈색 가죽 스트랩이 들어 있는 봉투였다.애리는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천천히 이든에게 다가갔다.“…오빠.”
이든이 고개를 들었다.
“응?”
애리는 봉투를 내밀었다.
“…생일 선물.”
이든이 봉투를 받아 들었다.
“뭐야.”
봉투 안에서 갈색 가죽 스트랩이 나왔다.
이든이 잠시 멈췄다.
“…”
스트랩을 한번 만져 봤다.
“이거 비싼 거 아니야?”
애리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오빠 생일이잖아.”
마커스가 웃었다.
“이거 좋다.”
노아가 스트랩을 보며 말했다.
“가죽 괜찮은데.”
그는 아무 말 없이 기타에 스트랩을 걸었다.
이든이 스트랩을 뒤집었다.
그리고 잠깐 멈췄다.가죽 안쪽에 작은 글자가 찍혀 있었다.
E.W. & A.R.
이든이 애리를 한번 봤다.
애리는 괜히 다른 쪽을 보고 있었다.
그가 피식 웃었다.
“애리.”
“고마워.”
그때, 작업실 문이 열렸다.
“생일 파티 여기야?”
노아가 고개를 들었다.
“리아?”
노아의 쌍둥이, 리아였다.
짧은 가죽 재킷에 긴 머리를 묶고, 손에는 작은 상자가 하나 들려 있었다.
리아가 웃었다.
“근처 지나가다 들렀어.”
그리고 이든을 봤다.
“생일이라면서.”
하고는 상자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열어 봐.”
이든이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기타 픽 모양 펜던트가 달린 실버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
이든이 물었다.
“…이건 뭐야.”
리아가 어깨를 으쓱했다.
“무대용.”
“니가 이거 하고 무대에 서면 잘 어울릴 것 같아서.”
마커스가 옆에서 말했다.
“오.”
노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리아 센스 있는데.”
이든은 잠시 그 목걸이를 보며 말했다.
“…고마워.”
그는 목걸이를 다시 케이스 안에 넣었다.
그리고 그냥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리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웃었다.
노아가 말했다.
“야 케이크 먹어.”
분위기는 다시 떠들썩해졌다.
***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연습실 정리가 끝났다.
마커스와 노아가 먼저 나갔다.
“갈 때 문 잠가.”
“알았다.”
연습실 안에는 이든과 애리만 남았다.
애리는 가방을 메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테이블 위에 있는 작은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리아가 준 목걸이였다.애리가 물었다.
“오빠.”
이든이 기타 케이스를 닫으며 말했다.
“응.”
애리가 상자를 가리켰다.
“이거 안 챙겨?”
이든이 그쪽을 돌아봤다.
“…아.”
“그거.”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걍 버릴래.”
애리가 눈을 깜빡였다.
“…왜?”
이든이 어깨를 으쓱했다.
“안 할 것 같아서.”
그리고 덧붙였다.
“너 가질래?”
애리는 잠시 상자를 봤다.
“…나?”
“응. 기념품.”
이든이 말했다.
애리가 피식 웃었다.
“…이상해.”
이든이 물었다.
“뭐가.”
애리가 상자를 집어 들었다.
“…그래도 버리진 마.”
이든은 이미 문을 열고 있었다.
“그냥 네가 가져.”
***
연습실 문을 나서자 밤공기가 조금 차가웠다.
가로등 불빛이 골목 바닥에 길게 내려와 있었다.
애리와 이든은 나란히 걸었다.
아무 말이 없었다.
기타 케이스가 이든 어깨에서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애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빠.”
“응.”
“스트랩… 마음에 들어?”
이든이 바로 웃었다.
“응.”
“완전 마음에 드는데?”
애리는 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다.”
이든이 걸음을 조금 늦췄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애리 손을 잡았다.
애리가 살짝 놀라서 그를 봤다.
“왜.”
이든이 웃었다.
“뭐가.”
그가 기타 케이스를 어깨로 툭 치며 말했다.
“근데 이거, 진짜 좋다.”
애리가 웃었다.
“아까도 말했잖아.”
이든이 고개를 저었다.
“아까는 형들 있어서 대충 말한 거야.”
그리고는 애리를 봤다.
“애리.”
“응?”
“고마워, 진짜.”
애리는 괜히 발끝을 보며 걸었다.
“…생일이잖아.”
이든이 웃었다.
“그래도.”
그가 덧붙였다.
“이거 계속 쓸 거야.”
애리가 고개를 들었다.
“진짜?”
이든이 말했다.
“응.”
“실버라인 스트랩이잖아.”
애리는 웃었다.
“…그거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이든이 말했다.
“알아.”
그가 애리 손을 살짝 잡아당겼다.
“그래도 좋다.”
애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손에는 아직 작은 상자가 들려 있었다.
리아가 준 목걸이.애리는 상자를 한번 내려다봤다.
그리고 다시 조용히 가방 안에 넣었다.
이든 어깨에 걸린 기타 케이스가 살짝 흔들렸다.
짙은 갈색 가죽 스트랩이 어깨를 따라 내려와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스치듯 지나갔다.
그 위에 새겨진 글자가 슬쩍 보였다.오늘은 이든의 생일이었다.
애리는 이상하게, 자기 일처럼 기분이 좋았다.
***
그날 밤이었다.
집에 돌아온 뒤 애리는 한동안 방 불을 켜지 않았다.
창문 밖에서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이 방 안을 희미하게 밝히고 있었다.
코트를 벗어 의자 등에 걸어 두고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집 안 어디선가 TV 소리가 작게 들리고 있었지만 방 안은 거의 고요했다.
애리는 침대 위에 앉았다.
가방 지퍼를 천천히 열었다.
손끝에 작은 상자가 닿았다. 검은색 케이스였다.리아가 준 목걸이.
애리는 그걸 꺼내 들었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작업실에서의 장면이 머릿속에 다시 떠올랐다.
문이 열리고 리아가 들어왔던 순간.
백금발 머리와 가죽 재킷.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생일이라면서.”라고 말하던 목소리.애리는 케이스를 천천히 열었다.
안에는 작은 펜던트가 들어 있었다.
기타 픽 모양의 실버 목걸이였다.
조명을 받으면 꽤 반짝일 것 같았다.
애리는 그걸 집어 들었다.
손바닥 위에서 작은 금속이 차갑게 느껴졌다.
괜히 목에 대 보기도 했다.
거울이 없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떤 느낌일지는 알 것 같았다.
예쁘긴 했다.
그 사실이 괜히 마음에 걸렸다.
애리는 다시 목걸이를 케이스 안에 넣었다.
딸깍.
뚜껑이 닫히며 작은 소리가 났다.
케이스를 침대 위에 내려놓고 누워서 천장을 바라봤다.
‘이상하다.’
애리는 혼자 중얼거렸다.
“…내 선물도 아닌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마음이 완전히 편하지는 않았다.
잠시 후 애리는 몸을 일으켰다.
책상 위에 놓인 쇼핑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아까 작업실에서 빈 봉투로 돌아온 것.
원래는 그 안에 기타 스트랩이 들어 있었다.
애리는 괜히 웃었다.
목걸이와 스트랩.
둘 다 무대에서 쓰는 물건이었다.하지만 하나는 아직 케이스 안에 있었고,
하나는 이미 이든 기타에 걸려 있었다.
애리는 그 생각을 하다가 괜히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별걸 다 신경 쓰네.”
하지만 그날 밤, 애리는 잠들기 전까지 한 번 더 그 상자를 열어 보았다.
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냥, 한 번 더 보고 싶어서였다.
***
다음 날 오후였다.
애리가 작업실 문 앞에 섰을 때 안에서 기타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문을 열자 익숙한 냄새가 흘러나왔다.나무와 금속,
오래된 케이블 냄새.마커스가 창가 쪽에서 기타를 들고 있었고,
노아는 소파에 반쯤 누운 채 베이스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그리고 벽 쪽.
이든이 앉아 있었다.애리는 문 앞에서 멈췄다.
이든의 기타가 눈에 들어왔다.
어깨에 걸려 있는 스트랩.짙은 갈색 가죽과 은색 버클.
애리는 괜히 그걸 한 번 더 봤다.
노아가 먼저 말했다.
“왔네.”
마커스도 고개를 들었다.
“애리.”
애리가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이든도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왔어?”
“응.”
애리는 가방을 내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눈은 괜히 기타 쪽으로 다시 갔다.
이든이 물었다.
“왜.”
애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벌써 바꿔 끼웠네.”
이든이 기타 줄을 한 번 툭 튕겼다.
“어제부터 했는데.“
“봤으면서.”
마커스가 웃었다.
“얘 완전 새 기타 받은 애 표정이야.”
노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부터 계속 만지고 있었잖아.”
이든이 눈을 찡그렸다.
“형들 조용히 해.”
작업실 안에 웃음이 퍼졌다.
애리는 괜히 다른 쪽을 봤다.
입가가 조금 올라가 있었다.***
잠시 후.
마커스와 노아가 자판기 쪽으로 나갔다.
작업실 안에는 조용한 공기가 남았다.
창문 밖에서 바람 소리가 약하게 들렸다.애리가 먼저 말했다.
“오빠.”
“응.”
애리는 테이블 모서리를 손끝으로 만지작거렸다.
“…어제 그 목걸이.”
이든은 기타를 잡고 있던 손을 멈췄다.
“왜.”
“안 가져갔잖아.”
이든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거.”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너 가지랬잖아.”
애리가 눈을 깜빡였다.
“왜요?”
이든이 기타를 살짝 들어 보였다.
갈색 가죽 스트랩이 어깨 위에 자연스럽게 걸려 있었다.
“이게 더 좋아.”
아주 간단한 말이었다.
애리는 괜히 웃었다.
“…내가 준 거니까 그러는 거 아니야?”
그러자 이든도 웃었다.
“맞아.”
애리는 잠시 그를 봤다.
이든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덧붙였다.
“네가 준 거라서 더 좋아.”
작업실 안이 조용해졌다.
애리는 괜히 시선을 피했다.“…그렇게 바로 말하면 좀.”
“뭐가.”
“…반칙 같아.”
이든이 피식 웃었다.
“저번에도 그 말 하더니.”
잠시 후. 애리가 아주 조용히 말했다.
“…어제 그 사람 예쁘더라.”
이든이 고개를 들었다.
“누구.”
“리아.”
이든은 몇 초간 생각하는 얼굴을 했다.
“아.”
애리는 계속 테이블을 보고 있었다.
“…목걸이도 예뻤고.”
이든이 기타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의자에 앉은 채 몸을 조금 앞으로 숙였다.
“애리.”
“응.”
“신경 쓰였어?”
애리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결국 말했다.
“…조금.”
이든은 고개를 아주 작게 끄덕였다.
그리고 너무 간단하게 말했다.
“신경 쓰지 마.”
애리가 물었다.
“왜?”
이든이 말했다.
“난 너 좋아하니까.”
애리는 순간 말을 잃었다.
이든은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마치 그게 특별한 말도 아니라는 것처럼.
그리고 그가 덧붙였다.
“다른 데 안 봐.”
애리는 괜히 웃었다.
“…오빠 진짜.”
“왜.”
“…이상해.”
이든이 피식 웃었다.
“알아.”
그때 작업실 문이 벌컥 열렸다.
노아가 캔을 들고 들어왔다.
“야 둘이 뭐 하냐.”
마커스가 뒤에서 웃었다.
“분위기 왜 이래.”
애리는 바로 다른 쪽을 봤다.
이든은 아무렇지 않게 다시 기타를 들었다.
짙은 갈색 가죽 스트랩이 어깨 위에서 단단히 자리를 잡았다.
안쪽에 새겨진 작은 글자는 보이지 않았지만,
애리는 그게 뭔지 알고 있었다.괜히 웃음이 났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9월,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애리는 예일 기숙사에 들어갔고, 본격적인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처음 며칠은 정신없이 지나갔다.새로운 강의실을 찾아 캠퍼스를 돌아다녔고, 수업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고등학교와는 모든 것이 달랐다.정해진 시간표대로 움직이던 때와 달리 수업 사이에 몇 시간씩 비는 날도 있었고, 하루 종일 강의가 이어지는 날도 있었다.그래도 혼자는 아니었다.오리엔테이션에서 만난 제이미와 니키가 같은 기숙사에 배정되면서 셋은 자연스럽게 자주 어울리게 됐다.점심을 먹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이었다.니키가 말했다.“나 오늘 낮잠 좀 자야겠다.”제이미가 어이없다는 듯 쳐다봤다.“너 아까 수업에서도 잤잖아.”“그건 잔 게 아니라 눈 감고 들은 거야.”애리가 웃었다.“그게 잔 거지.”세 사람은 함께 기숙사 안으로 들어갔다.제이미와 니키의 방은 같은 층에 있었다.둘은 운 좋게 룸메이트로 배정됐다.애리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너희는 좋겠다.”제이미가 물었다.“왜?”“둘이 같은 방이잖아.”“너도 룸메 있잖아.”“있지.”애리가 어깨를 으쓱했다.“근데 아직 잘 모르겠어.”니키가 웃었다.“며칠 같이 살았는데?”“마주칠 일이 별로 없어. 들어오는 시간도 다르고.”“어떤 애인데?”애리는 잠깐 생각했다.“잘 모르겠어. 되게 바쁜 것 같던데.”그때까지만 해도 애리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서로 생활 시간이 다르면 오히려 편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뉴헤이븐 시내.안경을 쓴 40대의 여자 부동산 중개인이 두 사람을 맞이했다."안녕하세요.""웨스트 씨 맞으시죠?""저는 메건입니다. 오늘 집 안내를 맡았습니다."줄리안이 먼저 악수를 건넸다."잘 부탁드립니다."중개인이 미소를 지었다."저도요.""미리 말씀드린 대로 세 곳 준비했습니다.""먼저 첫 번째 집부터 보시죠."줄리안과 애리는 메건의 안내에 따라 차에 올랐다.운전을 하며 메건이 말을 꺼냈다."첫 번째는 콘도입니다.""예일까지는 걸어서 7분 정도고요.""보안이 좋아 교수님들이나 대학원생분들도 많이 거주하세요."차는 어느 건물의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갔다.메건이 리모컨을 누르자 차단기가 올라갔다."입주민만 출입할 수 있습니다."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깔끔한 복도가 이어졌다.메건이 현관문을 열었다."여기입니다."둘은 안으로 들어가서 집을 둘러보았다.거실과 주방이 이어진 구조였고, 안쪽에는 침실 두 개가 있었다.전체적으로 깔끔했다.애리가 거실을 둘러보며 말했다.“괜찮은데?”“응. 나쁘지 않네.”줄리안도 천천히 안을 둘러봤다.그러다 메건에게 물었다.“여기 방음은 어때요?”“방음이요?”“제가 밤에도 기타를 치는 편이라서요.”메건이 생각하듯 말했다.“그렇다면 이곳은 조금 불편하실 수도 있어요. 건물 규정상 늦은 시간에는 소음에 꽤 민감하거든요.”줄리안의 표정이 바로 미묘해졌다.애리가 그걸 보고 웃었다.“여기는 안 되겠네.”줄리안도 웃었다.“그러게.”메건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다음 집을 보시죠.”세 사람은 다시 차에 올랐다.두 번째 집은 예일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학교 주변을 벗어나자 거리도 한결 조용해졌다.차는 나무가 늘어선 주택가 안쪽으로 들어갔다.잠시 후 메건이 비슷한 형태의 집들이 이어진 곳 앞에 차를 세웠다.“여기입니다.”애리가 차에서 내려 건물을 올려다봤다.2층짜리 타운하우스였다.첫 번째 콘도와 달리 각각의 집마다 현관이 따로 나 있었고, 앞쪽에
줄리안은 계속 바빴다.아침이면 작업실로 향했다가 밤늦게야 집으로 돌아왔다.녹음이 끝나면 편곡을 수정했고, 수정이 끝나면 다시 녹음이 이어졌다.노아는 베이스 라인을 다듬었고, 마커스는 키보드와 스트링 편곡을 여러 번 수정했다.라이언은 세 사람의 의견을 하나씩 정리해서 사운드를 맞춰 갔다.댄은 그 사이를 오가며 일정표를 계속 조정했다.3집은 생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그 사이 애리도 예일대학교 입학 준비를 차근차근 이어 갔다.어느 날 저녁.애리는 노트북으로 예일에서 온 메일을 읽고 있었다."줄리안."작업실에서 돌아와 소파에 앉아 있던 줄리안이 고개를 들었다."응?""예일에서 메일 왔어."줄리안이 애리 옆으로 다가왔다.애리는 노트북 화면을 가리켰다."오리엔테이션 안내인데..."천천히 아래로 내리던 손가락이 한곳에서 멈췄다.'교외 거주 신청.'기숙사 대신 교외 거주를 희망하는 학생은 별도의 신청서를 제출할 수 있다는 안내였다.애리가 화면을 바라보다가 말했다."...이거 신청해 볼까?"줄리안도 메일을 끝까지 읽었다."집은 어차피 구할 생각이었잖아.""그러니까.""미리 신청해 두는 게 좋을 것 같은데."애리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응."그날 두 사람은 신청서를 함께 작성했다.공개된 신분으로 인한 사생활 보호 문제와 학교 인근 거주 계획을 간단히 적어 제출했다.며칠 뒤 예일대학교에서 답장이 도착했다.결과는 불가였다.사유는 간단했다.학부생은 첫 네 학기 동안 교내 거주가 원칙이며, 예외는 기혼자나 만 21세 이상 학생에게만 허용된다는 내용이었다.애리는 메일을 읽고 줄리안을 바라봤다."안 된다네."줄리안이 실망한 목소리로 말했다."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결혼할 걸 그랬네.""그때?""나 졸업하기 전.""프롬 가기 전에 프로포즈했을 때.""그랬으면 같이 살 수 있잖아."애리가 줄리안을 쏘아봤다."줄리안~.""현실적으로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안 되나?"줄리안이 멋쩍
햄튼에서 돌아온 지 이틀째 되는 날 아침이었다.줄리안은 기타 케이스를 닫고 노트북을 가방에 넣었다.소파에서 책을 읽던 애리가 고개를 들었다."오늘 작업실 가?""응.""댄이 오라잖아."애리가 빙긋 웃었다."3집 작업 잘하고 와."줄리안도 웃었다."그러게."애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줄리안 앞에 섰다.구겨진 셔츠 깃을 손으로 가볍게 펴 주었다."잘 다녀와."줄리안이 웃으며 물었다."넌 뭐 할 건데?""글쎄.""책 좀 읽고.""장도 좀 보고."잠시 생각하던 애리가 말했다."저녁은 내가 해 볼까?"줄리안이 피식 웃었다."또 라면?"애리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아니야.""이번엔 다른 거 해 볼게."줄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주방은 살아남길 바래.“애리가 눈을 가늘게 떴다."줄리안!""끝나면 전화할게."줄리안이 웃으며 말했다."알았어."가볍게 입을 맞춘 뒤 줄리안은 현관문을 나섰다.***애틀랜틱 작업실.줄리안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노아와 마커스는 이미 와 있었다.잠시 후,문이 다시 열리며 댄과 라이언이 들어왔다.라이언이 멤버들을 둘러보며 웃었다."너희, 여름 잘 보낸 것 같다.""얼굴이 많이 탔네."마커스가 어깨를 으쓱했다."네. 뭐... 그럭저럭요."댄은 자리에 앉자마자 본론을 꺼냈다."노래.""12곡이라고 했지?"줄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네.""들어보자."줄리안은 노트북을 스피커에 연결했다.바탕화면에 있는 폴더 하나를 열었다.[Horizon]그 안에는 열두 개의 데모 파일이 정리되어 있었다.줄리안은 첫 번째 트랙을 클릭한 뒤 재생 버튼을 눌렀다.첫 번째 곡은 햄튼 별장에서 처음 공개했던 'Summer Starts with You'였다.경쾌한 기타 리프가 작업실 안을 가득 채웠다.곡이 끝나자 작업실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댄이 먼저 입을 열었다."좋네."곧바로 다음 곡이 재생됐다.어떤 곡은 30초 만에 넘어갔다.어떤 곡은 1분 정도 듣고 멈췄다.그
다음 날 아침.뉴욕의 한 연예 매체에는 짧은 기사가 하나 올라왔다.---[실버라인 줄리안 웨스트, 이스트햄튼 파티서 미공개 신곡 깜짝 공개]실버라인의 보컬 줄리안 웨스트가 어젯밤 이스트햄튼의 한 별장에서 열린 비공개 파티에서 미공개 신곡을 선보인 것으로 알려졌다.관계자들에 따르면 줄리안은 통기타를 들고 신곡 **〈Summer Starts with You〉**를 처음 공개했으며, 현장에 있던 참석자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이번 자리는 멤버들과 지인들이 함께한 사적인 모임으로, 공식 공연은 아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실버라인 측은 신곡의 정식 발매 일정과 3집 앨범에 대해서는 별도의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아침 신문을 펼쳐 보던 노아가 기사를 읽고 웃었다."너 또 기사 났네."줄리안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물었다."이번엔 뭐."노아가 신문을 내밀었다."어제 부른 신곡."줄리안은 기사를 훑어보고는 피식 웃었다."...빠르네."마커스가 신문을 들여다보며 말했다."아니, 어제 파티는 톰이 그렇게 사람들 관리했는데도 기사가 나네."줄리안이 어깨를 으쓱했다."그러게.""나도 어디서 새는 건지 모르겠다."마커스가 문득 물었다."참, 톰은?"노아가 대답했다."아침 일찍 돌아갔어."그리고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덧붙였다."이거 괜찮겠냐?""댄 또 전화 오는 거 아니야?"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줄리안의 휴대폰이 울렸다.화면에는 '댄'이라는 이름이 떠 있었다.줄리안은 작게 한숨을 내쉰 뒤 전화를 받았다."네."댄의 목소리가 바로 들려왔다."줄리안.""어제 신곡 공개했다며.""...""어디까지 불렀어?"줄리안은 담담하게 대답했다."한 곡이요."주방에서 아침을 준비하던 애리와 레이첼도 자연스럽게 줄리안을 바라봤다.댄이 다시 물었다."확실한 거지?""네.""신곡은 몇 곡이나 썼나?"줄리안은 한 박자 생각한 뒤 대답했다."12곡입니다.""..."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이내 댄이 입을 열었다."내
"...잠깐."톰이 리아와 그 일행들의 진입을 막았다.그리고 차분하게 말했다."초대받은 사람이야?"리아가 고개를 갸웃했다."아니요.""여기 사는데요."톰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었다."...뭐?"리아는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여기 우리 집.""아니, 정확히는 우리 쌍둥이 동생 집.""근데 나도 맨날 와서."그러더니 별장 안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노아!""야, 노아!"잠시 후 노아가 현관으로 걸어 나왔다.리아를 보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너 왜 왔냐?"리아가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무슨 소리야.""나도 여기 살잖아."노아가 헛웃음을 흘렸다."어제 아침에 짐 싸서 나갔잖아."리아가 입을 삐죽였다."그건…“노아가 어깨를 으쓱했다."나갈 땐 마음대로 나가도..."잠깐 뜸을 들인 뒤 말을 이었다."들어올 땐 안 되지.""웃기지 마."리아가 막무가내로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톰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길을 막았다."오늘 파티는 초대받은 분만 입장 가능합니다."리아가 노아를 노려봤다."너, 정말 이럴 거야?"노아는 어깨를 으쓱했다."여기 계신 톰 사령관님 명령이야.""난 권한 없어.""잘 가라."리아는 분을 참지 못한 채 씩씩거리다가 노아를 한 번 더 노려봤다.“엄마한테 이를 거야.”노아가 피식 웃었다.“그래.”“엄마도 초대 안 받았어.”그렇게 말한 노아는 미련 없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리아는 한동안 별장을 노려보다가 등을 돌렸다."그냥 가자.""치사해서 원."그때 일행 중 한 명이 아쉬운 듯 말했다."실버라인 파티라며?""들어가서 사진 좀 찍으려고 했더니…"그 말을 들은 톰의 표정이 한층 더 굳어졌다."계속 여기 있으면 경찰 부르겠습니다."톰의 말에 일행들은 서로 눈치를 보더니 슬슬 발걸음을 돌렸다.잠깐의 소동은 그렇게 끝이 났다.별장 안에서는 다시 음악과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누가 왔다 간거냐?"음악을 잠시 멈춘 DJ 케빈이, 안으로 들어온 노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