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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0화

Author: 코코넛 서고
진방옥은 맹은영이 들고 온 소식에 기겁하며 무심코 외쳤다.

“게이네!”

맹은영은 처음 듣는 말에 눈을 반짝였다.

“게이? 뭐가 게이입니까? 먹는 게를 말하는 겁니까?”

그러자 서인경이 대신 설명했다.

“이 사람 고향에선 남자끼리는 게이라고 하고 여자끼리는 레즈라고 부르네. 워낙 흔해서 별로 놀라지도 않지.”

맹은영의 입이 동그랗게 벌어졌다.

“어머? 당신 고향이 천주라면서요? 경성이랑 멀지도 않은데 풍속이 그렇게 개방적이란 말입니까? 설마 당신도…?”

진방옥은 그녀를 흘겨보더니 능숙하게 손끝을 세워 난초손을 만들고 목소리를 가늘게 흉내 냈다.

“이제 다 들켰으니 숨기지 않을게요. 같은 자매끼리 예의를 좀 갖춰 주세요.”

맹은영은 온몸에 소름이 돋은 듯 부르르 떨더니 굵은 목소리로 외쳤다.

“꺼지십시오!”

두 사람의 극단적인 대비에 서인경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장난이 끝나자 진방옥도 진지해졌다.

“원래 자유 연애라는 것은 성별 가리지 않습니다. 저는 그런 것에 선입견도 없고요.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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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을 거슬러   제1060화

    서인경을 이렇게 얼버무리게 둘 수는 없었다.손산이 상황을 보자마자 곧장 앞으로 나섰다.“황후 마마께 여쭙겠습니다. 폐하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이처럼 큰 궁연인데 어째서 황후 마마와 태자만 계신 것입니까?”이 질문은 사실 대전에 모인 모든 사람이 궁금해하던 것이었다.그동안 황제는 중병이라는 말만 전해졌던 터라 요즘 궁 밖에서는 온갖 소문이 떠돌고 있었다.어떤 이는 황제가 황후에게 연금되었다고 말했고 또 어떤 이는 황제가 이미 경성을 떠난 틈을 타 황후가 대신들을 불러 세력을 모으려 한다고 했다. 심지어는 황제가 이미 살해되었고 지금 진국의 강산은 서 씨 가문 손에 넘어갔다고까지 떠들어대는 자들도 있었다. 서인경이 서 씨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옛 장군부의 영광을 되찾으려 한다는 말까지 덧붙여졌다.이처럼 온갖 유언비어가 뒤섞여 대신들의 마음속에는 수많은 의문이 쌓여 있었다. 오늘 그들은 반드시 진실을 확인하고자 했다.서인경의 시선이 대전을 천천히 훑었다.그러다 문득 맹국공 곁을 보았다. 예전 같으면 늘 함께 있던 사람이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서왕과 서왕비는 어디 있느냐?”풍 내관이 앞으로 나와 대답했다.“군주께서 갑자기 병이 났다고 합니다. 그 일로 서왕과 서왕비께서는 궁으로 오시던 도중에 급히 돌아가셨습니다. 조금 전 사람을 보내 사죄를 전했습니다. 오늘 궁연에는 참석하지 못하니 황후 마마의 용서를 구한다고 말입니다.”서인경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이상했다. 병이 나기에는 너무도 갑작스러웠다.그녀는 슬쩍 아래쪽에 서 있던 육승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육승은 뜻을 알아차리고 곧장 대전을 빠져나갔다.서인경은 다시 계속 문제를 걸어오던 손산을 바라보았다.“손 대인은 본궁에게 꽤 불만이 많은 듯하군.”손산은 오늘 누군가 뒤를 봐 준다는 자신감이 있었는지 목을 꼿꼿이 세우며 물러서지 않았다.“백관이 이미 여러 날 폐하를 뵙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폐하의 병세도 석연치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를 의심할 권리가 있습니다. 황후 마마

  • 시간을 거슬러   제1059화

    “변통을 나르는 어린 내시에게 전갈을 보내거라. 본궁이 연기준이 궁에 없는데도 감히 궁연을 연 이유는 이미 장생불사 약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라고. 본궁은 죽지 않는 몸이 되었으니 오늘 궁연은 바로 연 씨의 강산을 서 씨의 강산으로 바꾸는 자리라고 말이다.”태상황이 평생 집착하는 것은 오직 장생불사 약이었다. 그에게 장생불사 약만 손에 들어온다면 자신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무적의 존재가 될 것이라 믿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누구에게도 의지할 필요가 없을 테니 말이다. 거기에는 자신의 뒤에 있는 그 사람도 포함이었다.육승은 서인경의 지시를 듣자마자 곧바로 일을 처리하러 나갔다.서인경은 태자의 손을 잡고 천천히 궁연이 열리는 전각을 향해 걸어갔다. 점점 가까워질수록 떠들썩한 소리가 점점 커졌다.궁연 전에 퍼진 소문이 너무 갑작스러웠던 탓인지 사람들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듯했다. 모여 서 있는 대신들 사이에서는 낮고 뒤섞인 속삭임이 끊이지 않았다.“밖에서 떠도는 소문이 사실인가? 황후 마마께서 정말 폐하가 계시지 않는 틈을 타 반역을 꾀하는 건 아니겠지?”“나는 꽤 그럴듯하다고 보네. 황후 마마께서는 친아들이 있음에도 태상황의 열다섯 째 황자를 태자로 세웠네. 그 이유가 뭐겠는가? 결국 그 열다섯 째 황자가 서 씨 집안 사람이기 때문이지.”“침상에서 불어넣는 바람이 참 대단하군. 예전에 그토록 명성이 높던 상왕이 이렇게 귀가 얇은 사람일 줄 누가 알았겠나.”“이 황후라는 사람… 나라를 망칠 상이로군.”그 말을 듣고 있던 한 사람이 곧바로 반박했다.“그건 말이 안 됩니다. 지금의 대황자도 서 씨 집안 혈통 아닙니까? 태자께서 황후 마마의 친아들이든, 사촌이든 결국 서 씨의 피를 이은 건 마찬가지인데 굳이 이런 일을 벌일 이유가 있겠습니까?”그 말을 한 사람은 맹국공부의 장남이자 맹은영의 오라버니인 맹경휘였다.그러자 호부 상서 손산이 코웃음을 쳤다.“그야 명분을 쌓기 위해서겠지. 게다가 대황자는 아직 한 살도 되지 않았네. 앞으로 무슨

  • 시간을 거슬러   제1058화

    대전을 지나 서인경은 안쪽 내전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그녀의 손에는 일불락 사기가 들려 있었다.두툼한 그 책은 이미 수없이 넘겨 본 터라 내용은 거의 외울 정도였다.연기준이 곁에 있을 때면 둘은 종종 이 책을 펼쳐 놓고 함께 이야기하곤 했다. 그 속에서 화족에 대한 흔적을 찾아 보려 했기 때문이다.그러나 꼬막이가 짚어 주었던 부분을 제외하면 다시 살펴보아도 유의미한 단서는 더 이상 발견되지 않았다.서인경은 다시 한 번 천 년 전 일불락에서 벌어졌던 그 전투의 기록을 읽어 내려갔다. 잠시 후, 마지막 장을 덮고는 책을 내려놓고 긴 의자에 몸을 기대어 뒤로 누웠다.눈을 감고 잠시 숨을 고르며 마음을 가라앉혔다.문밖에서는 안포가 지키고 있었다. 가끔씩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느 대신이 궁에 들어왔는지, 그 곁에는 누가 함께 왔는지 그는 계속해서 보고하고 있었다.서인경은 조용히 그 말을 들으며 머릿속으로 사람들을 하나씩 정리해 갔다.오늘 궁연에 참석한 이들 가운데에는 그저 구경 삼아 온 사람도 있고, 연기준이 정말 후궁에 없는지 확인하려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오늘 궁연에서 일을 벌여 연기준이 없는 틈을 타 황후와 태자를 공격하려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배후가 누구든 서인경은 반드시 그들을 끌어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수세에 몰린 채 언제든 또 다른 화를 맞게 될 테니까.*얼마 지나지 않아 태자와 운 유모가 안으로 들어왔다.태자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황숙모. 오늘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황숙모께서는 유청을 데리고 먼저 피하십시오. 전조의 일은 제가 막아 보겠습니다.”서인경은 태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진심이었다.그녀는 미소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태자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아직 그런 상황까지 온 것은 아니다. 설마 너도 연기준이 없으면 내가 당하기만 할 거라고 생각하느냐?”태자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곧 서인경의 시선을 받자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황숙께서 계시지 않으면 아무래도

  • 시간을 거슬러   제1057화

    “황후 마마, 저도 함께 가게 해 주세요. 혹시 위험한 일이 생기면 제가 곁에서 도울 수 있습니다.”서인경은 고개를 저었다.“너희는 꼬막이만 잘 지켜라. 꼬막이만 안전하다면 나는 반드시 안전할 수 있다. 헌데 꼬막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어떤 패를 쥐고 있어도 결국은 꼼짝없이 잡히게 될 거다.”꼬막이는 그녀의 유일한 약점이었다.봉한설은 그 말을 듣고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꼬막이는 제가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황후 마마께서 걱정하지 않게 하겠습니다.”그날 밤, 서인경은 침상에 누워 꼬막이를 품에 안았다. 눈을 감아도 머릿속에는 온통 연기준의 모습뿐이었다.연기준 당신은 지금 무사한가요?*한편, 황량한 산야 어딘가.연기준은 이틀 밤낮을 쉬지 않고 말을 달린 끝에 지금은 한적한 산속에서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그는 손에 마른 식량을 쥐고 천천히 씹어 먹었다. 그의 시선이 밝게 펼쳐진 밤하늘에 머무르자 문득 그 여자가 그리워졌다.서인경이 혼자서 꼬막이를 데리고 후궁의 상황을 버텨 낼 수 있을까. 만약 사람들이 그가 경성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면 태상황은 틀림없이 대신들과 손잡고 그녀를 공격할 것이다.다행히도 그는 미리 대비해 두었다. 그녀가 대응할 수 있도록 충분한 사람들을 남겨 두었다. 그러니 부디 모든 일이 무사하기를.*다음 날 아침.서인경은 이른 시간에 일어났고 꼬막이 역시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옷에는 자주색 문양이 수놓아져 있어 어린 몸에도 귀한 기품이 드러났다.“모후, 저도 궁연에 갑니까?”서인경은 고개를 저었다.“너는 가지 않는다. 곤녕궁에서 봉한설과 평이와 놀거라.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고, 말썽 부리지도 말고, 절대 밖에 나가지도 말거라. 알겠느냐?”꼬막이의 얼굴이 금세 시무룩해졌다. 그게 무슨 재미가 있단 말인가.서인경은 그 표정을 보고 웃으며 달래 주었다.“네가 그 약속을 지키면 네 아버지가 돌아왔을 때 억지로 공부하지 않게 해주마.”그 말을 듣자 꼬막이의 눈이 번쩍 빛났다. 그는 곧

  • 시간을 거슬러   제1056화

    안포의 빈정거림은 꽤 정확한 지적이었다.한때 후궁 궁투의 승자였던 그 태황태후는 아마 아직도 과거의 승리에 취해 있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지금 이미 천하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일 수도 있었다.서인경은 알고 있었다. 내일 열릴 궁연에서 상대해야 할 사람이 하나 더 늘어났다는 것을.하지만 이 방법밖에는 없었다. 누군가가 먼저 연기준이 후궁에 없다는 사실을 터뜨리면 상대가 다음에 어떤 수를 쓸지 알 수 없었으니까.사람들을 궁 안으로 끌어들여 먼저 움직이는 것. 그것이야말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밤이 되었을 때, 육승이 궁 밖에서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다.위영의 가족들이 결국 입을 열었던 것이다.위영은 지난 몇 년 동안 한 사람에게서 계속 돈을 받아 왔고 결정적인 순간에 그 사람을 위해 일을 하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형부에서는 그 증거들을 모아 맹국공부 문 앞에 공개했다. 그제야 몰려와 공격하던 군중들이 겨우 흩어졌다.한편 서왕부는 여전히 조용했다.서인경은 짐작했다. 아마 상대는 아직 서왕부를 공격할 명분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궁연을 당당히 열겠다고 하니 상대는 연기준이 정말로 궁을 떠났는지 의심이 생겼을 터. 그래서 일단 움직임을 멈춘 듯했다.맹국공부가 무사하다는 소식을 듣자 서인경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하지만 그 숨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육승이 또 하나의 폭탄 같은 말을 꺼냈다.“맹국공부 사람들은 모두 무사합니다. 다만 맹 아가씨께서 사라졌습니다.”서인경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사라졌다고? 그게 무슨 말이냐?”육승이 편지 한 통을 내밀자 서인경은 곧바로 받아 펼쳤다.편지에는 맹은영이 서인경의 말투를 흉내 내며 이렇게 적어 놓았다.“세상이 이렇게 넓으니 저는 한 번쯤 돌아다녀 보고 싶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 길에서는 반드시 진방옥을 붙잡고 다닐 겁니다. 절대 저를 잃어버리게 하지 않을 거예요.”진방옥과 함께 떠났다고?서인경은 그제야

  • 시간을 거슬러   제1055화

    “폐하, 변통을 나르는 내시 소양자가 돌아와 전했습니다. 그 큰 인물께서 몇 번이나 당부했다고 합니다. 연기준과 서인경은 계략이 많은 사람들인데 그녀가 감히 궁연을 연다는 것은 어쩌면 연기준이 아예 궁을 떠난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합니다. 정말 그렇다면 우리의 계획도 바뀌어야 한답니다. 모든 일은 모레 정오 궁연이 끝난 뒤 상황을 보고 다시 정하겠다고 했습니다.”태상황의 얼굴이 어둡게 굳었다. 또 기다려야 한다니. 그는 이미 충분히 오래 기다려 왔다.서인경이 자신의 침상 곁에 있던 여인까지 서슴없이 죽이는 모습을 본 뒤로 그는 하루라도 더 기다리는 일이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그 사람의 도움 없이는 태상황 혼자서는 서인경을 이길 자신이 없었다. 분노를 억누른 채 그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좋다. 하루 더 기다리겠다. 그자가 짐을 실망시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그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이었다.*다음 날.늘 고요하던 후궁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수레바퀴 소리, 이별의 인사, 짐을 옮기는 소리들이 후궁 곳곳에서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태황태후는 불당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지만 밖에서 들려오는 소란에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이 서인경이라는 계집이 끝내 우리 진국 황실 자손들을 경성 밖으로 내쫓아 황실의 복을 흩어 놓으려 하는구나! 대체 무슨 속셈이냐!”옆에 있던 유모가 슬그머니 말을 보탰다.“태황태후 마마, 우리 진국 황실은 원래 자손이 번성하고 복이 이어지던 집안이었습니다. 헌데 그녀가 이렇게 뒤흔들어 놓으니 폐하께서는 이제 비빈은커녕 통방 시녀 하나도 없습니다. 이대로라면 진국의 강산을 이을 사람이 결국 그녀의 아들 하나뿐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태상황의 열다섯 째 황자를 태자로 세우도록 밀어 준 것이겠지요. 겉으로는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라 하지만 실은 앞으로 자기 아들과 경쟁할 사람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열다섯 째 황자는 지금 의지할 세력도 없으니 훗날 태자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도 결국 그녀 손에 달린 셈이지요.”태

  • 시간을 거슬러   제525화

    서인경은 낮이 저물고 밤이 찾아올 때까지 두 늑대를 따라 굽이진 산길을 오르고 또 올랐다. 길이 얼마나 꼬불꼬불한지 그녀는 몇 번이고 방향을 잃을 것만 같았다. 서인경은 여러 번 멈춰 서서 늑대에게 물었다.“도대체 어디로 데려가는 것이냐?”그러나 늑대는 말이 없었다. 오히려 그녀의 옷자락을 이로 물고 놓아주지 않았다.서인경은 이 늑대가 자신을 해치지 않으리란 걸 알기에 따라왔지만 이쯤 되니 인신매매범에게 끌려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길 중간에 몇 번이나 쉬어가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마침내, 두 늑대는 그녀를 이끌고 한

  • 시간을 거슬러   제547화

    하루의 기다림은 연기준에게 있어 일 년처럼 느껴졌다.한편, 서인경은 자신이 얼마나 오래 잠들어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혼이 몸으로 돌아온 순간, 그녀는 번개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듯한 현기증과 땅이 흔들리는 듯한 거대한 진동이었다.그녀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때 눈앞에 펼쳐진 것은 산속의 동굴 전체가 무너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팔괘를 받치던 돌기둥들은 흔들거리며 금이 가 있었고 그 모습은 언제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태로워 보였다.팔괘진을 지키던 여덟 장로와 늑대들

  • 시간을 거슬러   제538화

    서인경의 심장은 북을 쳐대듯 거세게 뛰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그녀는 눈앞의 맹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무리의 맨 앞에 선 호랑이는 살기를 머금은 눈으로 서인경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마지막엔 그녀의 꽉 쥔 주먹에 시선을 고정했다.서인경은 그 시선을 따라 손을 내려다보았고 순간 심장이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역시 이곳의 짐승들은 밖의 것들과 달랐다. 그녀의 미세한 움직임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호랑이가 반응하기도 전에 서인경은 재빨리 손을 들어 가루를 한 움큼 뿌렸다. 그러나 뜻밖에도 호랑이는

  • 시간을 거슬러   제559화

    만수림 밖.서인경이 그곳에 들어간 뒤로 봉한설은 한 발자국도 떠나지 않은 채 줄곧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조빈은 여러 번 말려봤지만 통하지 않자 결국 만수림 밖에 나무집을 짓기 시작했다.“제가 그냥 심심해서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만수림 안의 것들은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거든요. 왕비 마마께서 이번에 들어가셨으니 언제 돌아올지 누가 알겠습니까? 어쩌면 몇 년은 걸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저희 집은 튼튼하게 지어야겠습니다. 적어도 삼오 년은 버틸 수 있게 말입니다.”봉한설은 바닥에 앉은 채, 불만 가득한 얼굴로 그를 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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