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현수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JJ 엔터테인먼트 신사옥 앞의 작은 오피스텔 문을 열고 들어섰다.
도어록을 누르는 지문 위로 식은땀이 들러붙어 몇 번이나 경고음이 울렸다.
태하의 차량이 참혹하게 전복되던 사고 현장을 바로 눈앞에서 목격하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쥐새끼처럼 도망쳐 나온 곳이 겨우 이 답답한 오피스텔이라니.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눌러써도 그렇지. 오늘도 돌아다니는 동안 누구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 대한민국 최고 걸그룹의 보컬이었는데. 그 유명세도 무색하게, 자신의 인지도만 없는 현실이 초라함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그 년, 용기는 대단하네.’
현수는 화장대 앞에 털썩 주저앉아 입술을 마구 짓씹었다. 거울 속에 비친 제 눈동자가 흉흉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결국 그 남자는 살아났을 것이다. 그리고 불길 속으로 뛰어든 경신은 몸과 얼굴에 불이 그을린 채, 평생 끔찍한 화상 치료의
현수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JJ 엔터테인먼트 신사옥 앞의 작은 오피스텔 문을 열고 들어섰다.도어록을 누르는 지문 위로 식은땀이 들러붙어 몇 번이나 경고음이 울렸다.태하의 차량이 참혹하게 전복되던 사고 현장을 바로 눈앞에서 목격하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쥐새끼처럼 도망쳐 나온 곳이 겨우 이 답답한 오피스텔이라니.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눌러써도 그렇지. 오늘도 돌아다니는 동안 누구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 대한민국 최고 걸그룹의 보컬이었는데. 그 유명세도 무색하게, 자신의 인지도만 없는 현실이 초라함으로 돌아왔다.‘그래도 그 년, 용기는 대단하네.’현수는 화장대 앞에 털썩 주저앉아 입술을 마구 짓씹었다. 거울 속에 비친 제 눈동자가 흉흉하게 흔들리고 있었다.결국 그 남자는 살아났을 것이다. 그리고 불길 속으로 뛰어든 경신은 몸과 얼굴에 불이 그을린 채, 평생 끔찍한 화상 치료의 고통 속에서 살아가겠지.자신은 몸과 얼굴이 생명인 고귀한 연예인이니까 몸을 사리는 게 당연했다.자신은 지극히 이성적이고 현명했을 뿐이다.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그렇게 합리화를 시도해 보았지만, 그 가녀린 몸으로 태하를 끌어내던 경신의 잔상이 가슴속에 날카로운 가시처럼 박혀 내려가지 않았다.비겁하고 졸렬한 제 모습에 치가 떨렸고, 동시에 목숨을 걸고 남자를 얻어낸 그 여자에 대한 자격지심이 속을 새하얗게 태웠다.똑- 똑-.그때, 침묵을 깨고 정적을 가르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방문이 두드려졌다.[현수 씨, 나야! 보고 싶어서 왔어!]문 너머로 들려오는 도윤의 익숙하고 다정한 목소리.현수는 순간 흠칫하며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그래, 도윤 씨! 내 인생에는 당신이라도 있어야 해!’스
응급실 복도, 세상 어디에도 없을 달콤한 기류를 뿜어내는 태하와 경신. 그들의 토크 타임에 혹여 방해가 될까 봐 멀찍이서 숨을 죽인 채 지켜보는 그림자들이 있었다.“사장님, 저거 봐요. 기적인가요?” “봉 실장, 이거 꿈 아니지?”태하가 사라져 한참을 헤매던 마호와 봉선규는, 뜻밖의 장소에서 경신과 ‘꽁냥’거리는 태하를 목격하고는 기염을 토했다.“둘이 사이가 안 좋았던 게 맞나 싶네요. 경신 양은 태하를 얼음처럼 대했었는데.” “경신 양은 기억을 잃은 상태니까 가능한거죠.”마호는 경신이 머리를 다쳤을까 봐 다른 의미로 머리가 어지러워졌다.“···그러고 보니 경신 양의 성격도 완전히 바뀌었더라고.” “어쨌든 저런 모습은 정말 놀랍네요.”과거의 태하는 무조건 일방통행으로 마음을 밀어붙였고, 경신은 그를 거부하며 멀어지려고만 했다. 마호가 보기에 둘은 늘 벼랑 끝에 선 아슬아슬한 연인 같았다.그런데 지금, 전혀 다른 사람처럼 마주 앉아 있다니. 마호는 인간적인 미소를 짓고 있는 태하를 보며 나지막이 읊조렸다.“태하의 진심이 하늘에 닿았나 봐.”오직 한 여자에게만 꽂혀 있는 태하의 집요한 진심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마호와 봉선규는 그가 행복하길 간절히 바랐다. *** 생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을 경신은 잘 알고 있었다.태양처럼 빛나다 한순간 별처럼 저버린 남자로 인해 처절하게 아파본 그녀에게,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행위는 결코 용납되지 않았다.하지만 태하는 결이 달랐다. 자신이 위험해지는 건 싫다니. 심장에 이토록 커다란 파동을 일으키는 건 반칙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도자기를 다루듯 제 얼굴의 그을음을 하나하나 닦아내는 태하를 보며, 경신은 몸 둘 바를 몰라 발가락을 오므렸다.
병원 응급실 복도의 디지털시계는 이미 토요일 새벽 1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손을 다친 경신은 세수조차 제 마음대로 할 수 없어, 시커먼 그을음을 뒤집어쓴 채 무력하게 의료진을 기다릴 뿐이었다.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공평한 선물은 시간이라지만, 경신에게 오늘의 시간은 유독 길고도 가혹했다. 차디찬 침상 위에서 깜빡깜빡 졸다 깨기를 반복하던 경신은 서서히 밀려오는 현실적인 통증에 몸을 떨었다.“아이고, 힘드네···.”당장이라도 기숙사로 도망치고 싶었지만, 대형 사고로 마비된 응급실에서 경신의 차례는 아직 멀어 보였다. 그때, 경신의 병상 근처 의자에 어린아이와 아주머니 한 분이 자리를 잡았다. 모자는 경신을 보자마자 흠칫 놀라며 시선을 피했다.“엄마, 저 누나 무서워.” “쉿!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임산부지만 아직 스물한 살의 청춘이라 ‘누나’ 소리를 듣는 건 다행이었으나, 이어지는 대화는 마냥 웃어넘길 수 없었다.“화상을 입었나 봐. 온몸에 그을음 좀 봐라. 쯧쯧, 얼마나 아플까.” “그럼 죽어?” “병원에서 치료받으면 살아. 하지만 엄청 고생하겠네.”흉흉한 대화가 귓가를 스쳤다. 경신은 못 들은 척 눈을 감았지만, 아이의 천진난만한 목소리는 고스란히 마음을 긁어내렸다. 아침까지만 해도 평범한 일상을 보냈는데, 하마터면 삶의 궤적을 뒤트는 사건을 맞이했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엄마, 집에 가고 싶어. 병원 무서워.” “거봐, 너도 이제 아무거나 입에 넣지 마. 구슬 삼키면 큰일 난다고 엄마가 말했지?”아주머니는 가방에서 주스를 꺼내 아이에게 건넸다. 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주스를 쭉쭉 빨아먹는 동안, 아주머니는 아이의 이마를 쓸어 넘기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잠시 후, 수납 영수증을 든 아이의 아빠가 미안한 기색이 역
태하의 단호한 명령에 구조대원 여럿이 경신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경신의 외상과 골절을 살피느라 정신없이 손을 움직였다.“저 차 상태 좀 봐! 사람이 살아 있는 게 용하네.” “저 불덩이에서 탈출했다고? 천운이군, 천운이야!” “저기 실려 가는 여자가 그 탈출한 주인공인가 봐요!”주변의 웅성거림에 경신은 아찔해졌다. 그녀는 다급히 태하를 가리키며 외쳤다.“전 정말 괜찮아요! 이 남자부터 응급실로 데려가 주세요!” “나보다 이 여학생부터 부탁합니다!”하지만 태하의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경신의 외침을 집어삼켰다. 그를 보던 대원들이 경신을 확인하더니 눈이 휘둥그레져 어수선하게 움직였다.“여자 환자분, 진짜 심각하네요!” “학생! 정신 차려요! 어떻게 이 상태로 버틴 거야!” “세상에! 미안합니다, 학생! 우리가 늦어서 이렇게 방치되다니!”착각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경신은 민망함에 차마 눈을 뜰 수가 없었다.“저기요, 저 폭발한 차에 타고 있던 분은 이 남자고요, 전 그냥 옆을 지나다가…….”참다못한 경신이 팩트를 날리자, 그제야 대원들의 시선이 태하에게 닿았다.“아! 맙소사! 늦어서 죄송합니다! 1차 충돌 차주 분이십니까?” “네. 하지만 절 사지에서 끌어낸 건 이 여학생입니다.”태하의 뻔뻔하리만치 차분한 증언에 경신은 기가 찼다. 사고 당사자가 저렇게 어필을 해대니, 졸지에 자신은 목숨 걸고 화마에 뛰어든 세기의 의인이 되어버렸다.“충격이 상당했을 텐데 남자분도 응급실로 모시겠습니다! 잘 버티셨습니다!” “이분을 구조하느라 엉망이 되셨군요! 손바닥도 엉망이십니다!”실제로 경신의 양 손바닥은 화상으로 짓물러 있었고, 옷은 잿더미를 뒤집어쓴 넝마나 다름없었다. 결국 경신은 ‘전국구 의인’ 타이틀을 달고, 태하는 입술
큰일이었다.태하의 깊고 짙은 눈동자를 계속 보고 있다가는 정말 영혼까지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당황으로 일렁이는 제 눈빛을 이 오만한 남자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오기이기도 했다.태하의 크고 단단한 손이 경신의 가느다란 손목을 쥐었다. 그러고는 아주 천천히, 제 시야를 가린 그녀의 손을 옆으로 밀어내었다.“왜?”“부끄러워서 그래요. 보지 마세요.”사고의 원인 중 상당 부분이 자신에게 있다는 진실이 날아와 박히자, 경신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만약 그를 구하지 못해 그가 잘못되었다면, 아마 남은 평생을 죄책감이라는 가시권 속에서 헤맸을 것이다.다시 내려다본 그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였다. 이마 옆으로 흐르는 붉은 피조차 누아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치명적으로 어울려서, 경신은 윽, 소리를 삼키며 다시 그의 눈을 가려버렸다.“왜.”태하가 다시 손목을 밀어내며 왼쪽 입꼬리를 나른하게 올렸다.“내 표정 들키기 싫어서요.”“솔직하네.”달달하면서도 서늘한 그의 미소에 가슴이 터질 듯 요동쳤다.‘아가들아, 엄마 심장이 제정신이 아니라 놀랐지? 걱정 마. 절대 이 남자한테 안 홀릴 거니까.’하지만 그 다짐이 무색하게, 경신의 호기심은 자꾸만 선을 넘었다.경신은 주문을 걸 듯 배를 문지르며 시선을 돌렸다. 제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 자신만만한 남자의 얼굴을 더 볼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생명의 은인으로서, 그리고 사고의 원인 제공자로서 인사는 해야 했다.“태하 씨, Gracias(고마워요).”“나도.”연기와 메케한 냄새, 사람들의 비명이 뒤섞인 아
각종 사이렌 소리가 합창하듯 울려대는 지금, 지옥이 따로 없었다. 경신은 귀가 먹먹해 비현실적인 고요 속에 갇힌 기분이었다. 시야조차 확보되지 않아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하기 힘들었지만, 차갑고 딱딱한 시멘트 바닥에 누워 숨을 몰아쉬는 것을 보니 저승길을 건너지 않은 것만은 확실했다.20여 미터 떨어진 곳, 태하의 차는 이미 화마에 처참히 삼켜져 검은 불기둥을 내뿜고 있었다. 반대편 사고 현장에는 경찰차와 구급차, 소방차들이 섬광을 내뿜으며 집결해 있었다. 저 멀리 수십 미터 밖에서는 아까는 보이지 않던 구경꾼들이 모여들어 핸드폰으로 이 비극을 찍어대고 있었다.비릿한 탄내와 함께 분노가 치밀었지만, 불경한 감정조차 태교에 해가 될까 싶어 집 나간 정신줄을 간신히 붙잡았다.“참! 태하 씨!”경신은 미처 몰랐는데, 그는 자신 옆에 그림자처럼 딱 붙어 손까지 부서질 듯 꽉 잡고 있었다. 옆으로 누워 거칠게 가슴을 들썩이는 태하의 모습은 마스크를 쓴 채 눈을 감고 있어도 지독하게 비현실적이고 근사했다.“다행이네요, 태하 씨. 정말 애썼어요.”경신이 떨리는 몸을 일으켜 부르자, 그가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낮게 입을 열었다.“···신아. 너는?”폭발음 때문에 귀가 먹먹한 탓일까. 제 이름을 부르는 저음이 유독 진득하게 귓가를 파고들어 뒷목이 화끈거렸다. 과외를 할 때 그가 이렇게 이름을 불렀던가?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신아’라고 다정하게 부른 것 같았는데 확신이 서지 않았다. 시야도 흐릿한데 귀까지 제구실을 못 하나 싶어 얼굴이 붉어졌다. 임신 중인 지금 남자의 미색에 설렐 때가 아니었다.“···저는 괜찮을 거예요.”크게 심호흡을 하고 손을 배에 갖다 대었다.구조대원에게 손짓을 하고 기다리며 태하와 마주하게 되자, 배 속의 아가들이 무사할지 걱정이 엄습했다. 만신창이가 된 제 몸보다 연약한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