تسجيل الدخول“편지를 쓰고 있었어.”
한참 뒤에야 글라디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편지요?”
“응.”
글라디의 시선이 슬그머니 릴리스를 피해 아래로 내려갔다.
“릴리스한테 보내려고.”
“……저한테?”
아티니스는 종이에서 시선을 떼고 세이런을 바라보았다.“아기한테 알려주고 싶어요.”세이런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아티니스의 배로 내려갔다.아티니스는 그 모습을 보며 작게 웃었다.“클라루스가 그 전설에 관한 책을 전부 태워 버렸잖아요.”세이런의 표정이 조금 진지해졌다.“응.”“이제 마법도 사라졌고, 오러도 사라졌어요. 그것에 관해 제대로 기록해 둔 책도 없어졌고요.”아티니스는 자신의 손에 들린 펜을 내려다보았다.“그러니까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르면…… 아무도 모르게 되겠죠.”마법이라는 것이 정말 존재했다는 것도. 포르투릭스의 혈통에 오러가 이어졌다는 것도. 그 힘으로 인해 어떤 사람들이 고통받았는지도.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아티니스의 배는 하루하루 눈에 띄게 둥글어졌다.처음에는 옷을 입으면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자세히 보아야 겨우 알 수 있을 정도였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헐렁한 잠옷 위로도 제법 선명하게 곡선이 드러나기 시작했다.아티니스에게는 아침마다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배를 바라보는 새로운 버릇까지 생겼다.그날도 마찬가지였다.잠에서 깨어난 아티니스는 침대에서 내려오자마자 거울 앞으로 향했다. 옆으로 몸을 돌려 한참이나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던 그녀가 아직 침대에 앉아 있던 세이런을 불렀다.“세이런.”“응.”“이것 봐요.”세이런은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그녀 곁으로 다가왔다.“왜?”“어제보다 조금 더 나온 것 같지 않아요?”아
“손주만큼은…… 오러를 가지지 않고 태어났으면 좋겠구나.”그 순간 세이런의 표정도 미세하게 굳었다.가우디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포르투릭스의 혈통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강력한 오러가 이어져 내려왔다.그러나 모든 후손에게 반드시 나타나는 힘은 아니었다. 몇 대 동안 아무런 징조도 보이지 않다가 어느 날 갑작스럽게 한 아이에게 발현되기도 했고, 그렇기에 다음 대에 나타날지, 아니면 몇 세대를 건너뛸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그리고 세이런은 그 힘을 타고난 사람이었다.문제는 그의 몸이 지나치게 강한 오러를 온전히 감당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어린 시절부터 오러를 사용할 때마다 몸은 조금씩 망가졌다. 처음에는 잠시 열이 오르거나 가슴에 통증이 생기는 정도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증상은 심해졌고 결국에는 목숨마저 위태로울 정도가 되었다.가우디에게 그 시간은 평생 지워지지 않을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어린 아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보면서도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던 수많은 날들. 그리고 그 기억의 끝에는 언제나 또 한 사람이 있었다.플로리스.세이런을 세상에 남겨 주고, 정작 자신은 아이를 낳던 날 가우디의 곁을 떠나 버린 그의 아내였다.가우디는 아무 말 없이 눈을 내리깔았다.아티니스의 배를 바라보고 있으면 곧 태어날 손주에 대한 기쁨과 함께, 애써 묻어두고 살아왔던 그날의 기억이 자꾸만 되살아났다.세이런에게 나타났던 오러와 플로리스의 죽음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어쩌면 아무런 관계도 없었을 것이다.그럼에도 가우디에게는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이미 한 번 사랑하는 사람을 출산으로 잃었고, 그 아이마저 평생 자신의 힘 때문에 고통받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으니까.이제 겨우 모든 것에서 벗어나 행복해진 아들과 며느리에게 같은 일이 반복될 가능성은 아주 조금이라도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가우디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무거워졌다
임신 초기가 지나면서 아티니스에게는 입덧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때부터 세이런의 걱정은 한층 더 심해졌다.“우욱…….”아티니스가 식탁에서 급하게 입을 가리는 순간이었다.세이런은 의자가 넘어질 듯 벌떡 일어났다.“아티!”“괜찮…… 우욱.”말을 끝내기도 전에 다시 헛구역질이 올라왔다.세이런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얘졌다.그는 곧바로 아티니스의 등을 쓸어주면서도 어디에 시선을 둬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했다.“의원 불러.”“세이런, 괜찮아요.”“어디가 괜찮아. 하나도 안 괜찮아 보여.”
아티니스가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부터 포르투릭스 대공저의 분위기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가장 크게 달라진 사람은 역시 세이런이었다.원래도 아티니스에게 그 누구보다도 신경을 쓰는 사람이었지만, 임신 사실을 확인한 뒤로는 그 정도가 지나치다 싶을 만큼 심해졌다.“아티.”“네?”“그거 내려놔.”아티니스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들고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찻잔 하나뿐이었다.“……이거요?”“응.”“차 마시려고요.”“내가 줄게.”세이런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그녀의 손에서 찻잔을 가져갔다.아티니스는 잠시 제 빈손을 내려다보다가 어이없
문이 닫히는 소리가 고요한 오두막 안에 유난히 선명하게 울렸다.아티니스의 시선이 닫힌 문에 잠시 머물렀다가 천천히 세이런에게로 돌아왔다.그 순간 그녀는 조금 전까지는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했다.세이런이 웃고 있었다.아침부터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으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감춰 두었던 듯한, 아주 능글맞은 미소였다.“……왜 그렇게 웃어요?”“그냥.”세이런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왔다.“오늘은 아직 아티가 기운이 남아 보여서.”“……네?”아티니스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세이런은 그런 제 아내를 잠시 바라보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낮게 웃었다.
그저 '특별하다'라는 막연한 대답에 아티니스는 눈살을 찌푸렸다.그는 분명 끝까지 진실을 말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무언가를 숨긴 채, 그녀에게서 의도적으로 선을 긋고 있었다.“제가 묻는 건, 그런 게 아니에요.”그녀가 차갑게 내뱉은 말에도 세이런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며칠만 대공작에 머물다 가. 영애의 편지가 오늘 아침에야 도착해서 손님 맞이 준비가 미흡했거든. 아버지도 오늘 도착할 줄 모르고 황실에 계셔.”“제가 여기 더 머무를 이유는 없어요. 전 돌아갈 거예요. 부모님도 걱정하실 테고—”그때, 아티니스는 문득 한
“왜 이렇게까지 하시죠?”아티니스의 목소리에는 불편함과 억눌린 분노가 섞여 있었다.세이런은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차분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잠시 생각에 잠긴 뒤 조용히 입을 열었다.“나는 그 이유를 알아. 그리고 도와줄 수 있어.”“그 말도... 병약하다는 것도, 전부 거짓말이죠?”아티니스는 자리에서 일어섰다.“전 오늘 거절하러 온 거예요. 그리고 비밀을 지켜준다고 한 말… 끝까지 지켜주세요. 전 그걸 확인하러 온 거예요.”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등을 돌렸다.이곳에 더 머무르는 것은 위험하다고 느껴졌다.알아
생각지도 못한 큰 키에 아티니스는 고개를 살짝 들어야만 했다. 그의 가슴팍 너머로 올라간 시선 끝에서 마주한 것은 여전히 보석처럼 빛나는 짙은 자주빛 눈동자였다.‘여전히 잘생겼네… 잘생… 기면 안 되는데. 거절해야돼!’그와 시선이 딱 마주치자, 아티니스는 순간 목적을 까먹을 뻔했다.당황한 그녀는 뒷걸음치며 거리를 두었다.“청, 청혼서가 마음에 들긴요. 협박이나 마찬가지였잖아요!”말을 하려다 목소리가 꼬이고, 톤도 이상해졌다.“대공자의 청혼서를 협박이라니. 너무한걸.”당황한 그녀와 달리, 그는 장난기 어린 미소로 되물
청혼서라는 말에 아티니스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일면식 없는 대공가에서 결혼을 제안하다니. 게다가 시골 영지에 틀어박혀 살아온 자신을 어떻게 알고 보낸 건지 아티니스는 의아했다. “설마… 예전에 황실 파티에서 우리 아티를 본 건 아닐까요?”백작부인이 조심스레 말했다. “시골 영지 영애인 제게 누가 관심을 보였겠어요… 저도 관심 없었고요.”“무슨 소리야. 우리 아티의 아름다움은 태어날 때부터였단다. 세상을 밝혀주는 따스한 아침 햇살 같은 주홍색 머리카락에, 릴리스를 쏙 빼닮은 아메랄드를 담고 있는 두 눈동자. 그 무도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