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차가 대문 앞에 멈춰 서자, 철문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외부와 완전히 분리된 공간. 철저한 보안이 세팅된 곳.
아파트는 사절이다. 보는 눈이 많다는 건 전부 다 위험 요소니까.
주차를 하자마자 강리아를 안아들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품에 안긴 무게는 가벼웠고, 꽤나 작고 앙증맞았다.
침대 위에 눕혀두고, 위스키 잔을 채웠다. 오늘따라 알코올이 흐릿하게 느껴졌다.
“뭘까. 진짜 뒤지고 싶었던 건가.”
한 모금, 두 모금. 침묵이 이어지던 찰나, 리아의 눈꺼풀이 작게 떨려왔다. 동시에 세준의 입꼬리도 함께 올라갔다.
“일어나.”
눈꺼풀이 다시 한번 떨렸다. 이번엔 확실했다. 의식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강리아.”
눈을 뜬 리아는 천장을 먼저 보고, 이내 시선을 흘렸다.
낯선 공간, 낯선 남자. 아니,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남자. 그 남자가 떡하니 자신을 바라보며 서 있는 상황이 생경하긴 했지만, 여전히 놀람도 비명도 없었다.
“아까.. 그 아저씨... 맞죠..?”
뭐, 서른여섯이면 아저씨 맞지. 그나저나 여전히 예상 밖의 반응을 보이는 강리아. 넌 어떤 삶을 살아왔길래 이러는 거니.
호기심이 잔뜩 몰려들었다. 손끝이 탁탁, 맑은 크리스탈 잔을 두드렸다.
“안 무서워?”
“무서워요.” “근데도 태도가 그따위라고?” “왜.. 왜 데려왔어요? 왜 안 죽였어요?” “왜일 것 같아?”섬뜩한 물음에 리아는 이불을 꽉 움켜쥐었지만 시선은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준의 모습을 위아래로 천천히 훑으며 눈을 깜빡였다.
삼십 대? 아니면 사십 대? 그건 잘 모르겠고, 키는 꽤 커 보였다. 180cm는 족히 넘어 보이는데.
무엇보다 체격이 단단했다. 한 손에 잔을 든 팔뚝은 물론, 짝다리를 짚고 서 있는 허벅지까지. 솔직히 한 대만 맞아도 즉사할 것 같았다, 그게 위압적이면서도 또 신기했다.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근데 혹시 운동선수세요?”
“풉, 운동선수가 널 죽이러 갔겠어?” “아...”탁, 잔이 테이블 위에 내려앉고 세준은 가까이 다가가 리아의 턱부터 움켜쥐었다. 알코올 향과 함께 섞인 남자의 체취가 확 풍겨왔다.
동시에, 그 작은 몸이 바짝 긴장한 걸 느끼면서도 손아귀 힘은 부드럽지 않았다.
“선택해.”
“뭘.. 뭘요...?” “여기서 뒤질래, 아니면 살래.” “무.. 무슨 말씀이신지 잘..” “딱히 뒤지기 싫은 거면, 키워줄게. 예쁘게.”키운다. 리아에게 그 말은 익숙하지 않았다.
고아원에서 나와 처음 독립을 했을 때, 누군가 원룸으로 찾아와 카드 하나를 쥐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사고 싶은 건 다 사라. 집도 마련해 주겠다. 다만, 그건 부모를 찾지 않는 조건이다.
솔직히 꿈만 같았다. 살아갈 날이 막막했는데, 때마침 누군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준 기막힌 타이밍이었다.
그래서 그 한적한 동네로 이사를 갔다. 일을 할 필요도 없었다. 한도가 얼마인지도 모를 카드로 필요한 건 그때그때 샀다. 딱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들만.
근데 지금, 누군지도 모를 남자가, 되려 죽이려고 찾아온 남자가 이제 와 자신을 키워주겠다는 말을 하는 이질적인 상황이 이해될 리 없었다.
“혹시.. 저희 부모님이 보내신 거예요?”
“아니.” “그럼... 왜..” “나도 외롭고 너도 외롭고.” “근데 왜... 죽이려고 하신 건데요?” “뒤질 짓을 했나 보지.”솔직히 입이 막혔을 땐, 강도나 살인마가 침입한 줄 알았다. 태어날 때부터 지지리 재수라곤 없던 인생, 죽는 순간까지 재수가 없구나.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래도 살면서 누군가에게 못되게 군 적은 없는데.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러는 걸까.
“저.. 뭐 잘못했어요?”
“하, 쪼끄만 게 더럽게 물어재끼네.” “죄송합니다..”붙잡았던 턱을 놓자, 리아는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턱만 놓아졌을 뿐, 거리는 알코올 향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거리. 딱 그대로였다.
“대답.”
“네..?” “뒤질 거냐고, 살 거냐고.”무슨 의도인지 몰라 섣불리 대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혹시나 마지막 기회를 주는 거라면 죽기보단 살기를 택하는 게 낫지 않을까.
“살.. 살려주실 거예요?”
“살겠다고 하면.” “그럼.. 살래요.”세준은 한걸음 물러나 리아를 다시 한번 내려다봤다.
아직도 얜 자신이 노브라인 상태도 모르는 건지. 당장 옷을 벗겨 날것 없는 모양새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건 길들임이 아니다. 아껴둘수록 맛있는 법이다.
“그럼 조건부터 상의할까.”
“네?.. 네..” “하나, 이 집에서 나가지 않는다.”첫 번째 조건부터 보통이 아니었다. 누가 봐도 이곳에 가둬두겠다는 확실한 선언이었다.
한가로운 오후, 새근새근 잠이 든 세화의 얼굴을 바라보던 중 인아의 핸드폰이 갑작스레 울렸다.짧은 진동이 여러 번. 잠시의 틈도 없이 끊임없이 울렸고, 무슨일인가 싶어 화면을 확인한 인아는 화들짝 놀랐다.소화의 어린이집, 노을반 부모들의 단톡방이 그야말로 난리가 나버린 것. - 혹시 제가 잘못 들은 걸 수도 있는데요... 혹시 서율이 어머님 관련해서 들으신 분 계세요?- 무슨 일이요?- 저도 어제 다른 분께 들었어요. 그분, 유명한 AV배우로 활동중이라는 얘기가 있던데요...- 진짜요? 서율이 어머님, 맞나요? 보고 계시나요?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이건, 그 홍아린이라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구나. 아무래도 소란의 당사자는, 아직 이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저도 그래서 여쭤보는 거예요. 처음엔 그냥 말도 안 되는 소문인 줄 알았는데 검색해보니까, 진짜 비슷한 사람이 나오더라고요. 성함도 그렇고....근데 서율이 엄마가 그 여자였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단톡방에는 워낙에 관심이 없었지만, 김서율. 그 이름은 소화가 쫑알쫑알 얘기했던 이름이었다. 서율이는 양보도 잘 하고, 사과도 잘 하고. 그래서 선생님들이 다 예뻐한다고.이 와중에도 말들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잠깐만요. 그럼 우리 애들이랑 매일 같이 지내는 거잖아요?- 아이들이야 무슨 잘못이 있겠어요. 그런데 저는 좀 불편하긴 하네요.- 저도요. 솔직히 아이가 그 집에 놀러 가겠다고 하면 걱정될 것 같아요. 과한 반응일 수도 있는데, 아무래도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도 중요하지 않나요?- 아이들한테도 나중에 알려질 텐데...- 근데 그게 애들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어른들 이야기일 뿐이잖아요.- 물론 그렇긴 한데요, 저는 원장님께 한번 말씀드려보려고요. 이런 건 유치원에서도 알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요.- 뭘 말씀하시게요?- 아무래도 다른 아이들한테 영향을 줄 수도 있으니까요. 안 그래도 요즘 애들, 성에 눈을 뜨는 시기가 이르잖아요.잠시 후, - 안녕하세
꼭 연예인을 만난 기분이 잠시 들긴 했지만, 호준은 자켓 안 주머니에서 명함 지갑을 꺼내들었다.차를 세워둔 곳은 유치원 주차장이다. 그렇다면, 이 여자 역시 유치원에 방문했다는 뜻."같은 학부모 같은데, 깔끔하게 보험으로 처리하죠."명함을 받으며, 이제야 호준의 얼굴을 올려다본 여자가 흠칫 놀랐다.여자의 정체는 홍아린이었고, 호준의 말대로 아이를 등원시키던 길에 접촉 사고를 냈던 것이다.아린은 호준의 얼굴을 모를리 없었다.'하필 여기서, 이렇게 만난다고? 왜...?'비록 오래 전 일이긴 하지만, 강인아의 채널에 직접 댓글을 달고 스폰으로 몰아갔던 장본인이었으니까."저기요?""아 네, 연락드리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호준의 차가 그 자리를 떠나고 나서야, 아린은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었다.그날의 일을 얼마나 후회했던가. 그 강인아라는 여자도 어느날 갑자기 소리 소문 없이 채널을 정리하더니, 혹시 결혼까지 골인한 건가?여전히 미안한 감정은 남아있었고, 강인아도 도호준도 진심으로 행복하길 바랐다. 왜냐면, 자신 역시 누구보다 행복하니까.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차에 올라탄 아린은, 수혁에게 전화를 걸었다."여보.""응, 서율이는?""등원 잘 했지. 근데, 접촉사고가 조금 있었어.""뭐? 괜찮아? 안 다쳤어?""으응, 서율이 데려다주고 난 뒤에 난 사고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자기 말이야, 자기.""나도 멀쩡해요."수혁은 아이가 태어난 후에도 여전히 감독 일을 이어가고 있었고, 아린은 공백기를 가진 후 다시금 촬영에 복귀했다.결혼은 계획의 한 부분이었지만, 출산은 아니었다.피임 부작용이 생겨 잠깐 멈췄던 그 찰나에, 아이가 덜컥 들어서 버린 것.그때부터 인생에는 예기치 못한 큰 변화가 생겼지만, 이제 와서 엄마로만 살아가긴 죽어도 싫었다.여자로서의 삶이 완전히 끝나는 것 같아서."사고 접수하고 촬영장으로 갈게.""응, 서두를 필요 없어."***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온 호준은 인아에게 오늘 있던 일을 넌
인아의 눈이 동그래졌다."뭐라고요? 갑자기요?""어. 내 인생에 딸 둘도 이미 넘치는 축복이고. 우리 집도 공주 셋이면 충분하잖아.""아버님 아시면 큰일나요.""큰일 안 나."세상에, 이런 생각을 하기까지 혼자서 얼마나 고민을 많이 했을까. 인아는 호준의 허리를 바짝 끌어안으며 괜스레 장난을 쳤다."드디어 생산직에서 서비스직이 되는 건가요?""혼나.""왕비를 혼낼 수는 없을 텐데요.""그건 또 무슨 헛소리야.""공주 둘의 엄마면 왕비잖아요."하여간, 기지배가 확실히 똑똑해졌다니까.그의 손이 인아의 옷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전할 말은 끝났으니, 이제 해야 할 일을 할 시간이었다."정관수술 해도, 정액 양은 안 줄어든대.""...네?""혹시 걱정할까 봐.""아.... 그런 것까지는 안 궁금했는데."그때,"뿌아아아아아앙....!"아기 침대에 누운 세화가 울음을 터뜨렸다.인아는 서둘러 옷을 추스르고는 벌떡 일어나, 세화를 품에 안고 등을 토닥였다."우리 딸도 아빠 말이 어이가 없었구나. 아구 똑똑해, 아구 기특해.""뭐? 기특?""됐고요, 너무 아쉬워요. 세화한테는 젖도 못 먹이고."호준 역시 바지춤을 추스르며, 협탁 위에 놓인 태블릿 화면을 바라보았다.진짜 공주는 어찌나 예쁜 꿈을 꾸는지, 손가락을 쪽쪽 빨며 꿈나라를 여행중인 모양이었다.지금이라도 방문을 벌컥 열고, 온 얼굴에 뽀뽀폭격을 내리고 싶을 만큼 말이다."뭘 아쉬워. 아빠가 대신 배 터지게 먹었는데.""어머, 미쳤나 봐.""솔직히 맛은 더럽게 없더라.""근데
육 개월의 시간이 흘렀지만, 세화는 여전히 한 가족이 되지 못했다.입양 심사는 생각보다 까다로웠고, 반드시 필요한 절차와 시간은 상상 이상이었다.하지만 결심이 끝나서 그런지, 그 시간이 그리 애타고 불안하진 않았다.온 가족이 주말마다 보육원을 찾았고, 그럴수록 소화의 작은 머릿속에도 세화라는 이름이 자리잡기 시작한 모양이었다."떼화눈 온제 지짜 동생이 돼?"호준이 소화의 말랑한 볼에 코를 비볐다."공주야, 세화를 왜 이렇게 기다려? 동생이 그렇게 갖고 싶어?""아가잖아. 그래서 기여우. 이름두 조아.""그랬구나. 아빠 눈에는 우리 공주도 애기고, 그래서 귀엽고, 어디든지 다 예뻐.""쩌엉말?""그럼. 아빠는 거짓말 안 해."꿀이 뚝뚝 떨어지는 다정스러운 부녀의 대화에 인아는 설거지를 하며 피식피식 입꼬리를 올렸다.씹, 씨발, 썅, 미친, 좆.세상에 험한 욕이란 욕은 입에 달고 살던 인간이 세화가 태어난 이후부터는 아빠의 정석이 되어버렸다.그 사실이 왜 이렇게 웃기던지. 오늘따라 장난기가 발동하고 말아버렸다."소화야, 소화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움마!""푸하하하."호준이 소화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저 기지배는 철이 바짝 든 것 같으면서도 이럴 땐 영락없는 철없는 기지배다."상관없어. 아빠가 소화를 짝사랑하면 돼.""그게 무야?""있어. 엄마가 아빠한테 엄청 오래 했던 거."?이번에는 인아의 입에서 실소가 터져나왔다.물론 먼저 좋아한 건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엄청 오래는 아니지 않나?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잠깐이었던 것 같은데.그때, 소화가 꺄르르 웃으며 크게 외쳤다."끼지배! 끼
평화로운 저녁.아기 의자에 앉은 소화가 숟가락을 꼬옥 쥐고는 입을 앙 벌렸다. 미역국에 말아준 밥이 꽤나 맛있는 모양이었다."공주,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야지.""꺄악!"호준과 인아는 엉망이 된 식탁과 소화의 얼굴을 보면서도 함박 웃음을 머금었다.오늘따라 양갈래로 묶은 머리는 왜 이렇게 앙증맞고 귀여운 건지, 이건 무슨...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존재가 따로 없었다."그렇게 맛있어?""웅, 근데 압빠. 나두 동생.""뭐?""수챠니눈 동생이랑 똑가튼 옷 입눈대. 로션두 똑가툰고 바룬대."부부의 눈동자가 단번에 마주쳤고, 역시나 인아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곧바로 물어버렸다."우리 딸, 동생 있었으면 좋겠어?""웅, 아니문 언니두 갠차나.""만약에, 엄마가 소화보다 동생을 더 많이 안아줘야 하면 어떡할 거야? 그건 동생을 더 사랑해서가 아니라, 더 어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거든."소화가 미역이 잔뜩 달라붙은 손으로 턱을 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훔, 원래 동생은 그런거쟈나.""뭐라고..?""수챠니가 그래써. 동생은 작아서 더 마니 울고 더 마니 이뿌다고 해야 한다고."호준의 손이 소화의 볼을 쓰다듬었다. 놀랍게도 눈시울마저 붉어져 있었다."우리 공주는 누굴 닮아서 이렇게 똑똑해?""움마.""정말? 그쪽은 아닐 텐데.""움마."도무지 인정할 수 없었지만, 사랑하는 딸 앞에서 더한 부정은 금물이었다.그나저나 우리 소화가 언제 이렇게 큰 건지, 말은 또 어쩜 이렇게 잘 하는지.울컥거리는 마음을 꾸역꾸역 참아내던 호준은, 제대로 사레가 걸려버렸다."컥.""
그날 이후, 인아와 호준의 사이에는 조금씩 냉기가 돌았다.인아는 소화 앞에서는 예전과 똑같이 행동했지만, 소화가 없을 땐 말수까지 눈에 띄게 줄어버렸다.오늘도 소화를 재우고 나온 호준은, 향이 좋은 와인과 치즈를 준비해 침실로 향했다.문이 열리고,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던 인아는 스르륵 핸드폰을 내려놓았다."뭐하고 있었어?""그냥요. 갑자기 왠 와인이에요.?"분위기 좀 내고 싶어서. 요즘 통 대화도 못 했잖아."인아에게 와인 잔을 내밀던 호준의 표정이 단번에 굳었다.베개 아래에 반쯤 나온 핸드폰 화면 안, 입양에 대한 글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하,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 건데."호준의 시선을 확인한 인아가 흠칫하더니, 핸드폰을 아예 뒤집어버렸다."뭐가요.""우리한테 아이가 없는 것도 아니고, 매일 매일 사랑을 갈구하는 소화가 있잖아. 모든 결정에 있어서 일 순위는 소화여야한다고."인아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아니요? 저는 우리 소화 그렇게 안 키울 거예요. 부모의 결정을 존중할 줄 아는 아이로 키울거예요."세상에나, 기지배의 입에서 저런 말이 튀어나왔다는 사실에 호준은 뒤통수가 얼얼할 지경이었다.허구한 날 동화책을 읽어주더니 어휘력이 상승한 건가?아니면, 부모가 되어야 진짜 어른이 된다는 장모님의 말씀이 진리였던 건가?아무리 그래도 믿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이 문제에 대해 결단을 내릴 때였다."사랑을 어떻게 나눠서 주냐고."그 말에 인아의 눈이 조금 커졌다.호준은 진심이었다.
리아의 눈에, 아저씨는 나쁜 사람 같진 않아 보였다. 아까랑은 달리 해칠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단 말이다. 아까도 죽이긴커녕 오히려 살려줬잖아..?“감.. 감금이에요?” “감금 반, 보호 반.” “네..?” “넌 지금 나가면 어차피 뒤져.” “아.... 네.”지나치게 얌전한 대답이었다. 퍽 순수한 모습에 입꼬리가 움직여 힘겹게 참아냈다. 이 정도면 조련은 꽤 쉽겠다는 생각이 들어 벌써부터 기대감이 만발했다. “둘, 시키는 건 뭐든 한다.”시키는 거? 시키는 건 뭐지? 아... 집안일? 빨래, 청소는 얼마든지 할
“눈 떠.”그 말과 함께 입을 막고 있던 손을 떼어냈다. 비명을 지르든 말든, 어차피 아무도 들어줄 리 없는 동떨어진 주택이니까. 하지만 리아는 기침도, 비명도 없었다. 오히려 도세준 만큼이나 차분해보였다.“아저씨... 저 죽이러 온 거죠.” “뭐 이딴 년이 다 있어.” “해요…… 일.”그동안 타깃들 중 절반은 살려달라 아우성이었다. 나머지 절반은 그 아우성을 내뱉을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근데 얘는 뭐냐고. 왜 사람을 당황스럽게 만드는 거냐고. “돌겠네, 씨발.”한 발 뒤로 물러서자, 리아가 몸을 일으켜 침대 헤
“거참, 더럽게 을씨년스럽네.”대문 앞, 가죽 장갑을 고쳐 낀 도세준. 그가 담벼락을 넘는 건 순간이었다. 오늘은 유독 기분이 좆같았다. 이딴 귀찮은 일에 직접 움직인 건 꽤 오랜만이었으니까. 그동안은 분명 아랫것들이 대신하던 일이었다. 짜증을 내면서도 직접 움직인 이유는 단 하나. 여태 지불한 정산금만 해도 17억에 육박하는 VIP 강 회장. 그가 이번 타깃을 전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번엔 직접 움직여주게.” “회장님. 부하들도 믿을만한 놈들입니다.” “알고 있네. 하지만 이번엔 그 어떤 여지도 남겨선 안 돼.”
오늘은 부디 아무 일도 없길, 제발 평온한 주말이 되길. 그 바람으로 서재에 틀어박혀 시간을 흘려보냈다. CCTV도 보지 않았다. 어젯밤, 그 작은 배를 만지던 감각을 잊고 싶었다. 아침부터 슬립 차림으로 다가오던 그 미소도 함께 떨쳐내기 위함이었다. 집 안도 잠잠했다. 발소리도, 쓸데없는 콧노래도 오늘은 없었다. 점심은 따로 먹었다. 같이 먹자는 리아의 말에 세준은 바쁘다며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그냥 그러고 싶었다. 리아는 침실에서 드라마와 영화를 번갈아 틀어두고도, 생각은 오직 하나에 꽂혀 있었다. 아저씨는 어떤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