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그때, 테오도르가 집무실로 들어왔다. 그는 편지 내용을 확인하더니 차갑게 웃었다.
"협박이라.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협박인데."
테오도르는 로젤린의 어깨를 짚었다.
"로젤린, 결정해. 당신이 하자는 대로 할게. 전쟁을 원해? 아니면 잠입?"
로젤린은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에는 더 이상 망설임이 없었다.
"전쟁입니다. 하지만 군대가 아닌, 제가 직접 갑니다."
그녀는 벽에 걸린 제복을 집어 들었다.
"황제의 목을 따러 가겠습니다."
* 사자는 왕관을 탐하지 않는다
침묵이 내려앉
수만의 기사들은 그 압도적인 광경 앞에 일제히 무기를 바닥에 버리고 무릎을 꿇었다. 새로운 시대의 진정한 주인들이 누구인지, 그들의 두 눈으로 생생하게 목도했기 때문이다.테오도르는 로젤린의 어깨를 커다란 손으로 감싸 안으며 그녀의 뺨에 고인 땀방울을 부드럽게 닦아주었다. 두 사람의 영혼 동기화 사슬을 통해, 오랜 복수와 사투를 끝낸 직후의 깊은 해방감과 안도감이 뜨겁게 교류되었다."끝났군, 로젤린.""네, 전하. 이제 정말로 끝났습니다."로젤린은 비검을 검집에 단단히 집어넣으며 입가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눈부신 미소를 지어 보였다. 평생을 피비린내 속에서 방황했던 그녀에게, 마침내 그 어떤 어둠도 침범할 수 없는 영원한 낙원이 완성된 것이었다.---그로부터 3년의 세월이 흘렀다.제국의 황궁은 부패한 세력들이 완전히 청소된 이후, 빈터발트 대공가의 엄격하고 공정한 가호 아래 새로운 번영의 기틀을 다져가고 있었다. 그러나 제국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력을 쥐었음에도 불구하고, 테오도르와 로젤린은 수도의 화려한 왕좌에 머물지 않았다.그들은 자신들의 진정한 고향이자 구원의 시작점이었던 북부의 대공성으로 완전히 귀환했다.북부의 봄날은 그 어느 때보다 따스하고 청량했다. 가문의 저주가 완전히 박멸된 이후, 동토라 불리던 영지 곳곳에는 푸른 새싹과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하여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대공성 중앙의 푸른 정원.테오도르는 집무복 대신 편안한 셔츠
수만의 기사들이 본능적인 극한의 공포를 느끼며 무기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대공 부처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격의 위압감은, 기사들의 오라와 정신 회로를 세포 단위로 압착하여 단 한 걸음의 전진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멜키오르 황태자 역시 다리가 납덩이처럼 무거워져 성벽 난간을 잡은 채 하얗게 질린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테오도르는 성벽 위의 멜키오르를 차갑게 올려다보며 오른손을 가볍게 치켜들었다. 사내의 은빛 머리칼이 백금빛 폭풍 속에서 거대하게 휘날렸다."멜키오르, 네놈이 감히 내 낙원을 넘본 대가를 치를 시간이다."사내의 냉혹한 사형 선고와 함께, 황궁 전체를 통째로 집어삼킬 듯한 거대한 백금빛 화염의 전조가 제국의 심장부 한가운데에서 잔혹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영원한 낙원의 서막황궁 연병장을 가득 메운 3만 대군의 침묵은 기괴하리만치 무거웠다.하늘을 깨부수고 강림한 테오도르의 백금빛 권능 앞에 제국 최고의 기사들이라 자부하던 이들은 단 한 자락의 검기조차 발산하지 못했다.그들이 쥔 검날은 보이지 않는 신격의 위압감에 짓눌려 파르르 비명을 질렀고, 군마들은 지면에 배를 깔고 엎드린 채 거품을 물었다.성벽 위에서 그 광경을 내려다보던 황태자 멜키오르는 황금 철갑 내부가 축축하게 젖어 드는 것을 느꼈다. 지독한 오한과 공포가 그의 척추를 타고 흘러내렸다. 자신이 평생을 바쳐 쫓았던 황권이라는 절대적인 권력이, 저 아래에 서 있는 은빛 머리칼의 사내 앞에서
* 제국의 심장을 향한 진군대공성 전체를 감싸고 있던 차가운 눈보라가 일시에 걷히며, 북부의 하늘위로 찬란한 햇살이 내려앉았다. 가문의 오랜 비극이었던 용의 저주가 완벽하게 소멸함과 동시에, 빈터발트 영지를 위태롭게 흐르던 지맥의 뒤틀림 역시 대공 부처의 백금빛 마력에 순응하며 명징한 안정을 되찾은 것이었다.그러나 성 내부의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서늘하고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황궁으로 향하는 모든 출입로와 연성 마법진 주변에는 칠흑 같은 대공가 직속의 정예 기사단이 일렬로 늘어서서 검날을 서늘하게 벼리고 있었다.황태자 멜키오르와 부패한 귀족 세력들이 대공가의 공백을 노리고 북부 전역에 은밀하게 심어두었던 세작들과 암살단은, 테오도르가 귀환한 지 단 반나절 만에 흔적도 없이 색출되어 대공성 앞마당에서 가차 없이 목이 잘렸다. 영지 내부의 위협을 단 한 자락도 남기지 않고 완벽하게 청소한 완전한 숙청이었다.테오도르는 집무실 중앙에 길게 펼쳐진 제국 수도의 전략 지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그의 투명한 은빛 머리칼 끝에서는 여전히 미세한 백금빛 화염 파편들이 허공을 부유하며 사방의 대기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머릿속을 가끔씩 헤집던 환청과 광기의 유령들이 완벽하게 사라진 지금, 사내의 판단력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정교하게 회전하고 있었다.붉은 빛 눈동자에는 일국의 군주를 넘어서는 초월적 존재다운 오만함과, 자신의 가족을 건드린 야수들을 단 한 놈도 살려두지 않겠다는 잔혹한 집념이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로젤린은 품에 아기 엘리시아
테오도르는 로젤린의 어깨를 커다란 손으로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사내의 손길에서 전해지는 따스한 온기가 그녀의 가슴 깊은 곳을 채웠다."로젤린, 황궁으로 진군하기 전에 먼저 대공성으로 돌아가 영지를 안정시켜야겠어. 가문의 저주가 정화되면서 북부 전체의 지맥 흐름이 크게 뒤틀렸을 거다. 영지민들을 불안하게 둘 수는 없지.""네, 전하. 멜키오르의 세력들이 대공성 주변에도 마수를 뻗쳤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먼저 내부의 위협을 완벽하게 청소하고, 북부의 군세를 정비하여 황궁의 정적들을 단숨에 짓밟아야 합니다."두 사람의 의견은 단 한 자락의 어긋남이 없이 완벽하게 일치했다. 영혼의 동기화 사슬을 통해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그들에게 더 이상의 불필요한 조율은 사치에 불과했다.테오도르는 오른손을 들어 허공을 향해 가볍게 휘둘렀다. 우웅. 대성당 입구 주변에 흩어져 있던 대공가 직속의 전이 마법진들이 백금빛 화염을 머금으며 찬란하게 깨어나기 시작했다.가문의 저주를 끝낸 테오도르의 권능은 제국 전역에 설치된 빈터발트 고유의 공간 좌표들을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자재로 통제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가자, 로젤린. 우리의 영지로.""네, 전하."두 사람의 신형이 백금빛 마력 폭풍 속으로 부드럽게 흡수되며 설원 위에서 소리도 없이 사라졌다.그 시각, 제국의 수도에 위치한 거대한 황궁의 집무실.황태자 멜키오르는 화려한 황금빛 의자에 오만하게 기댄 채, 눈앞에 펼
로젤린은 품에 엘리시아를 단단히 안은 채 차가운 시선으로 백작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은빛 눈동자에는 자식을 위협한 자들을 향한 자비 없는 사형 선고가 내려져 있었다."전하, 굳이 저들의 목을 일일이 벨 필요도 없습니다. 가문의 성역을 더럽힌 대가가 무엇인지, 제국의 황궁 전체가 똑똑히 지켜보게 만들어야 합니다.""그래, 내 아내의 말이 옳다. 멜키오르 황태자가 그토록 갈망하던 그 고귀한 왕좌가 얼마나 허망하게 부서져 내릴지, 이들의 피로 서막을 열어주지."테오도르의 단호한 선언과 함께, 그의 손끝에서 머물던 백금빛 화염의 폭풍이 전방을 향해 무자비하게 개방되었다. 수천 명의 대군이 전개하려던 오라 실드와 마법 방어막들은 백금의 온기가 스쳐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에 단 한 자락의 흔적도 남기지 않고 하얗게 증발해 버렸다.콰아아아앙.설원 전체가 백색의 광채로 뒤덮이며 황태자의 심복들이 흘린 선혈로 붉게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대공 부처의 완전한 귀환과 함께, 제국의 부패한 권력을 향한 잔혹하고 완벽한 정치적 숙청의 세례가 마침내 피비린내 나는 폭발음 속에서 거대하게 시작되었다.* 반역의 단죄황태자의 심복들이 흘린 선혈이 하얀 설원을 붉게 적시며 기괴한 연기를 피워 올렸다.수천 명에 달하던 황궁 직속 제1기사단과 부패 귀족들의 사병들은 대공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백금빛 화염 폭풍 앞에 단 한 자락의 비명조차 온전히 지르지 못했다.그들이 자랑하던 정예 철갑과 오라 실드는 신격의 권능을 머금
로젤린은 단전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회색의 기백을 가볍게 갈무리했다. 엘리시아의 태초의 성역 가호 덕분에 그녀의 육체는 벨리알의 독소를 완전히 털어내고, 소드 마스터로서의 전성기를 상회하는 초월적인 위능을 보유하게 되었다.숨을 들이쉴 때마다 세포 하나하나가 새로운 활력으로 깨어나는 감각이 생생했다.품 안의 아기는 거대한 각성의 여파로 피곤했는지, 작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엄마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아기의 머리칼 끝에서 은은하게 배어 나오는 백금빛 파동이 대공 부처의 전신을 따스하게 감싸 안았다.'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우리의 영지로, 그리고 우리를 기다리는 이들에게로.'로젤린은 속으로 생각하며 입가에 부드러운 호선을 그렸다. 하지만 그녀의 은빛 눈동자는 지상과 가까워질수록 점차 전장의 사령관다운 차가운 살기를 띠기 시작했다.지하 신전의 저주가 완벽하게 소멸하면서 지상의 지맥 역시 거대한 변혁을 겪었을 터였다. 대공 부처가 지하의 사투에 집중하는 동안, 황궁의 정적들과 멜키오르 황태자의 세력들이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었다.테오도르 역시 지상에서 흘러나오는 불길한 마력의 흔적들을 감지하고는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쥐새끼들이 신전 입구 주변을 촘촘하게도 에워싸고 있군. 우리가 지하에서 저주에 잠식되어 죽거나, 괴물이 되어 기어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린 모양이다.""멜키오르 황태자의 사냥개들이군요. 대공가의 전력이 지하에 묶인 틈을 타 황궁의 중앙 군대를 이동시킨 모양입니다. 감히 빈터발트의 성역을 더러운 군화로 짓밟다니, 대가가 결코 가볍지 않을 거예요."
“으음….”침대 쪽에서 낮은 신음 소리가 들렸다. 테오도르가 부스스한 모습으로 눈을 뜨고 있었다. 붉은 눈동자가 초점을 찾지 못하고 잠시 허공을 헤매다가,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로젤린에게 멈췄다.“…일찍도 일어나는군.”“군인에게 늦잠은 사치니까요. 푹 주무셨습니까?”로젤린의 물음에 테오도르는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자고 일어났는데… 머리가 깨질 것 같지 않아. 심장도, 멀쩡하고.”그의 목소리에는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지난 몇 년간, 아침은 그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밤새 뒤척
“여주인을 능멸하는 건 나를 능멸하는 것과 같다. 한 번만 더 이런 일이 생기면, 그때는 네 목이 남아나지 않을 거야. 알겠나?”“죄,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마르타는 사색이 되어 고개를 숙였다. 하녀들도 벌벌 떨었다. 로젤린은 고기를 씹으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나를 위해서가 아니야.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지.'로젤린은 착각하지 않았다. 테오도르는 로젤린을 아껴서 화를 낸 게 아니다. 자신의 '소유물'인 로젤린이 무시당하는 것이 곧 자신의 권위에 흠집을 내는 것이라 판단했을 뿐이다. '하지만 뭐, 나쁘지 않네
테오도르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다가, 박장대소를 터뜨렸다.“하하하! 걱정 마. 내 취향은 당신처럼 뻣뻣하고 흉터 투성이인 여자가 아니니까. 안심해,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을 테니.”“그럼, 계약 성립이군요.”로젤린이 잡고 있던 손을 흔들며 말했다. 테오도르는 그제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그래. 잘 부탁해, 나의 안식처.”그 말이 묘하게 로젤린의 가슴을 울렸다. '안식처. 평생 전장을 떠돌던 자신이 누군가의 안식처가 된다니. 아이러니한 일이었다.'똑똑.그때, 집무실 문이 열리고 하녀들이 들어왔다. 가장 앞에는 은발
* 사냥개에게는 목줄이 필요하다대공의 집무실에는 기묘한 침묵이 흘렀다. 타닥타닥 타오르는 벽난로의 장작 소리와, 째깍거리는 괘종시계 소리만이 공간을 채웠다. 테오도르는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는 로젤린의 손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거칠고 투박한 손이었다.'손가락 마디마디에는 굳은살이 박여 있었고, 손등에는 자잘한 흉터들이 훈장처럼 남아 있었다. 귀족 영애의 섬섬옥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을 죽이는 손.'하지만 그 손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따뜻하고 청명했다. 마치 뼛속을 갉아먹는 구더기 떼가 순식간에 사라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