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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승이 된 나에게 무릎꿇고 돌아오라고 비는 오빠들
여승이 된 나에게 무릎꿇고 돌아오라고 비는 오빠들
Автор: 이제리

제1화

Aвтор: 이제리
“우쭈쭈.”

“먹어, 언니, 왜 안 먹어?”

어두컴컴한 밀실에서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온사가 숨죽인 채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그녀의 몸에 있는 쇠사슬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그녀의 목과 사지를 묶어 빠져나갈 수 없게 했다.

그녀의 앞에는 노란색 옷를 입고 있는 소녀가 개 먹이를 들고 개를 놀리는 것처럼 그녀를 놀리고 있었다.

웃을 때 보조개가 예쁘게 생기는 이 소녀는 그녀의 여동생 온모였다.

온모는 뒤에 있던 시녀에게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이거 봐, 우리 언니 진짜 쓸데없다니까? 개로도 못 쓰겠어. 이 몸이 직접 먹여주는데도 감히 안 받아먹잖아.”

시녀는 곧장 앞으로 가 바닥에 있던 사람을 걷어찼다.

차인 사람이 힘겨운 소리를 내자, 그제야 시녀는 온모를 달랬다.

“아가씨, 그러지 마세요. 이 개가 아직도 자기가 국공부 정실 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온모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온사가 정실 딸은 무슨, 아버지랑 오라버니들도 다 모르는 사람이라는데, 개로 써주는 것도 얘한텐 영광이지.”

“불쌍한게 눈치도 없어.”

온모는 차가운 말 한마디를 던지고 온사의 손을 있는 힘껏 짓이겼다.

너무 세게 밟은 탓에 손가락뼈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고, 온사는 고통스러운 듯 흐느꼈다.

“온사, 내가 마지막 기회 한 번 더 줄게, 그 옥패 내놔.”

“흐…… 흐흐……”

이미 정신이 조금 희미해진 온사는 이 말을 듣고 나서야 힘겹게 반응했다.

그녀는 힘없는 웃음을 내뱉고 말했다.

“온모, 너 헛된 희망 가지지 마……”

옥패는 어머니가 그녀에게 물려준 유일한 물건이었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녀는 절대 온모에게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멍청한 것, 네가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온모는 눈에서 불을 뿜을 것처럼 화를 냈다.

마침 이때, 밖에 있던 누군가에 의해 밀실의 문이 열리고, 실루엣 몇 개가 밀실로 들어왔다.

온모는 그들을 돌아보고 급히 개 사료를 시녀의 품에 숨기며, 마치 마술이라도 부린 듯 순식간에 순수하고 귀여운 얼굴로 바뀌더니 기뻐하며 그들에게 달려갔다.

“아버지, 오라버니들!”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

그들은 명나라 진국공과 그의 아들들이었다.

진국공은 워낙 키도 크고 인물이 출중했다.

그의 아들 4명 역시 그대로 물려받아 모두 키와 몸집도 크고, 외모도 아주 뛰어났다.

진국공의 성격도 조금씩은 닮아, 다들 차갑고 사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예외일 때도 있었다. 온모가 부드럽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그들을 부르면 차갑고 매정해 보이는 이들의 얼굴에도 생기가 돌았다.

둘째 오라버니 온자신은 경멸하는 눈으로 바닥에 있던 온사를 흘끗 본 뒤 입을 열었다.

“막내야, 어때? 얘가 훔쳐 간 옥패는 돌려받았어?”

훔친 게 아니야!

그녀는 훔치지 않았다.

그건 애초에 그녀의 옥패였다.

“휴, 아니요.”

온모는 굉장히 실망한 듯한 말투로 한숨을 쉬며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어머니가 물려준 유일한 물건이고, 저한테 제일 중요한 물건인 거 알면서도 제가 아무리 부탁해도 안 돌려줘요.”

“저 이제 진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온모는 말끝에 마치 곧 울기라도 할 듯, 목소리가 떨렸다.

듣고 있던 온자신 일행은 마음이 너무 아팠다.

“온사, 정말 실망스럽구나!”

온자신이 화를 냈다.

입구 쪽에 서있던 셋째 오라보니 온자월도 순식간에 얼굴이 굳어지며 날카롭게 빛나는 검을 뽑아 들었다.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 이상, 손을 자르고, 자를 때마다 한 번씩 물어보자. 계속 말하지 않으면 손과 발을 모두 베어버릴 게야. 감히 우리 막내 물건을 훔치다니. 네 뼈도 네 입만큼 고집스러운지 보자고!”

“손을 자를 필요는 없어.”

이때, 큰오라버니 온장온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누군가 온사가 잡혀오기 전에 급하게 뭔가를 삼키는 걸 봤다고 했어.”

온사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당황한 눈빛이 역력했다.

온자신 일행은 이 모습을 보자 문득 깨달았다.

온자신은 화를 내며 말했다.

“온사 너 미쳤어? 차라리 옥패를 삼키는 한이 있더라도 막내한테 돌려주지 않겠다는 거야?!”

갑자기 온사의 눈에 광기가 돌았다.

기왕 다 들킨 거, 이제 숨길 것도 없었다.

“하하…… 그래요, 나 미쳤어요!”

“온모가 날 이 꼴로 만들고, 우리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나한테 물려준 걸 빼앗으려고 하는데 안 미치고 배기겠어요?”

흥분한 온사가 쇠사슬을 잡아끌자, 쇠사슬 소리와 그녀의 목소리가 밀실에 울려 퍼졌다.

“이제 두 가지 선택지 밖에 없어요. 포기할래요? 아니면 내 배를 가를래요?”

항상 차가운 눈으로 조용히 지켜보던 넷째 오라버니 온옥지를 포함한 온자신 일행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그들의 아버지, 즉 진국공 온권승을 바라보았다.

이럴 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온모는 어두운 기색이 스치더니 입을 삐죽거리며 딱 한마디를 했다.

“아버지, 저 어머니 보고 싶어요.”

그 순간 온사는 온권승의 얼굴에 나타난 미세한 변화를 보았다.

그녀는 그녀가 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온권승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온사, 네 오라버니들을 탓하지 말거라. 탓하려면 날 탓해.”

“만약 다음 생에 네가 다시 온씨 가문의 딸로 태어난다면, 온씨 가문이 제대로 보상해 줄 테니.”

온사는 웃는 것 같기도, 우는 것 같기도 한 얼굴로 마치 미친 것 같기도, 정신이 나간 것 같기도 했다.

그녀의 두 눈에서 눈물이 서서히 흘러내렸다.

“아니요, 다음 생에는 절대 온씨 가문 여식으로 태어나지 않을 겁니다!”

얼음장 같이 차가운 검이 온사의 배를 찌르고, 그녀의 마지막 숨이 밀실에서 사라져 가는 순간, 갑자기 진작 그녀의 몸과 하나가 된 옥패에서 빛이 나며 그녀의 몸 안에서 눈부신 빛을 뿜어냈다.

------

명나라, 76년.

초여름.

진국공 저택.

오늘 진국공 저택은 아주 떠들썩했다.

경성의 모든 사람들은 진국공의 두 여식이 함께 성년식을 진행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때 저택 안, 안방.

“아, 안 돼……”

침대 위, 15살의 한 소녀가 마치 무서운 꿈이라도 꾼 듯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곧이어 그녀는 두려움이 가득한 두 눈을 번쩍 뜨고 비명을 지르더니 급히 침대에서 일어나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무언가를 막았다.

“아!”

하지만 상상했던 배를 가르는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온사는 한참 후에야 두려움에 떨며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이제 보니, 주위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 밀실이 아니었다.

아버지와 큰오라버니, 그리고 온모 일행도 없었다.

그저 고요한 방에 있는 거라곤 익숙한 장식품들뿐이었다.

온사는 두려움에 가득 찬 머리로 한참을 생각하다가 여기가 어딘지 겨우 생각해냈다.

“여기 옛날 내 방이잖아?”

그녀가 아직 국공 저택에서 부모님과 오라버니들의 사랑을 받을 때 지내던 그 방이었다.

“아니, 내가 왜 여기에 있지?!”

드디어 깨달은 온사는 놀라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비틀거리며 바닥에 넘어졌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나 왜 여기로 돌아온 거야?!”

그녀는 재빨리 도망가려 했다.

아버지와 오라버니들에게 잡힐 수 없었다.

만약 잡힌다면 그녀는 죽은 목숨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입구에 도착하기도 전에 갑자기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

“아가씨, 언제까지 주무시려고 그러세요. 오늘 아가씨와 막내 아가씨의 성년식 날이잖아요. 늦으시고 제가 안 깨웠다고 하시면 안 돼요.”

온사의 귀에 시녀의 거침없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문을 열려고 손을 뻗었던 온사가 깜짝 놀라 손을 내렸다.

그 말에 그녀는 움직임을 서서히 멈추고 멍한 얼굴을 했다.

“서…… 성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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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омментари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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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얌
무슨 하녀가 아가씨한테 이렇게 말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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