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2. 얇은 막, 그 너머의 세계
행랑채의 가장 구석진 방, 돌쇠의 거처 앞에 도착했을 때 정씨 부인은 헉 하고 숨을 삼켰다.
낡은 문짝은 아귀가 맞지 않아 밤바람이 불 때마다 을씨년스럽게 덜컹거렸다. 문풍지가 파르르 떨리는 소리가 들렸다.
파르르, 파르르.
그 미세하고 신경질적인 떨림은 마치 가녀린 늑골을 부수고 튀어나올 듯 펄떡이는 그녀의 심장 박동과 기묘하게 맞물려 뛰고 있었다.
눈앞에 누렇게 변색되고 때 탄 창호지 문이 있었다. 이 얇고 더러운 종이 한 장.
손가락에 침을 발라 찌르면 허무하게 뚫릴 이 나약한 장막. 이것이 문명과 야만을, 도덕과 본능을, 상전과 하인을 가르고 있는 유일한 경계였다. 손가락 하나만 튕겨도 찢어질 듯한 이 알량한 종이벽이, 지금껏 그녀의 숨통을 쥐고 있던 견고한 '법도'의 실체였다.그녀는 문 가까이 귀를 가져다 댔다.
퀴퀴한 흙냄새와 땀에 전 마른 지푸라기 냄새가 훅 끼쳐왔다. 평소라면 코를 막았을 그 역한 냄새조차, 지금 그녀의 콧속 점막에는 살아있는 생명을 일깨우는 치명적인 촉매제였다.쉬이... 색... 쉬이... 색...
규칙적이고 깊은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폐병으로 늘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쌕쌕거리던 죽은 남편의 얕은 숨소리와는 근본부터 달랐다. 깊고, 묵직하고, 땅의 육중한 울림을 닮은 소리였다. 폐부 깊숙한 곳에서 대지의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셔 펄펄 끓는 오장육부로 데운 뒤, 다시 세상 밖으로 뿜어내는 수컷의 맹렬한 리듬이었다. 그것은 겨울잠을 자는 산짐승의 호흡이자, 살아있는 대지의 박동이었다.그 소리를 듣는 순간, 정씨 부인의 다리 사이, 잔뜩 메말라 갈라져 있던 계곡이 찌릿하게 꿈틀거렸다.
눈으로 담거나 살을 섞지 않았음에도, 단지 저 얇은 문 너머에 '살아있는 수컷'이 웅크린 채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굶주린 점막은 격렬하게 반응하며 끈적한 수액을 배어내고 있었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열리고 달아오르는 것. 그것은 핏방울 하나하나가 지배하는 거스를 수 없는 섭리였다.명백한 음행(淫行)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바싹 말라 부서져 가는 그녀에게는 이 목마름을 축여줄 유일한 생명수였다.
그녀의 흔들리는 시선이 문 하단을 향했다. 관리가 되지 않아 여기저기 찢어지고 거칠게 덧대어진 문.
그 귀퉁이에 누군가 뚫어놓은, 혹은 쥐가 갉아먹은 작은 구멍 하나가 보였다.그 작은 시커먼 구멍, '본능의 눈'이 그녀를 집요하게 부르고 있었다.
'보아라. 두려워하지 말고 들여다보아라. 네가 밤마다 살을 쥐어뜯으며 갈구했던 것이 무엇인지 똑똑히 목격하라.'
단전 밑바닥에서 치밀어 오른 붉은 목소리가 귓바퀴를 파고들며 태고의 야차처럼 속삭였다.
그녀는 주저 없이 툇마루 아래 더러운 흙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결백하던 하얀 치맛자락이 먼지 구덩이에 닿아 짓이겨졌지만, 그녀는 그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옷이 더러워지는 것, 차가운 흙바닥에 뼈마디가 시린 것 따위는 조금도 중요치 않았다. 거역할 수 없는 억센 인력에 이끌린 쇳가루처럼, 그녀의 모든 신경과 예민해진 살갗은 오직 저 낡은 문 귀퉁이에 뚫린 작은 구멍, 그 칠흑 같은 심연으로 속절없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녀는 천천히, 턱관절이 바들바들 떨릴 만큼 느리게,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들어 그 좁은 구멍으로 눈을 가져다 댔다.
5. 굴복과 수용: 혀의 속죄돌쇠는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억센 손으로 바닥에 던져진 속옷을 집어 들었다. 안주인의 명은 거역할 수 없는 하늘이었다. 어기는 순간 사지가 찢겨 죽어 나갈 뿐이었다.하지만 그 잔인한 명령 이면에는, 이빨을 감춘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 독사처럼 숨죽이고 있었다. 그는 피 끓는 본능으로 어렴풋이 깨달았다. 마님이 자신을 멍석에 말아 내치지 않고, 오히려 이 밀실 안에서 가장 은밀하고 치욕적인 행위를 강요하고 있다는 것을. 이것은 살이 찢기는 벌이 아니라, 짐승에게 내리는 가장 달콤한 상일 수도 있다는 것을.그는 천천히, 침을 꼴깍 삼키며 아주 묵직하게 그 하얀 천을 제 두꺼운 입술로 가져갔다. 천에 밴 마님의 부드러운 살 냄새. 그리고 어젯밤 짐승처럼 뿜어냈던 자신의 비릿한 진액의 냄새.그는 짐승처럼 눈을 감고 그 무명 천을 거친 입술에 짓이기듯 비비며, 붉은 혀를 내밀어 그 빳빳하게 굳은 얼룩을 축축하게 맛보았다. 짭짤하고, 씁쓸하며, 비릿한 맛. 피와 땀이 뒤섞인 생명의 맛이었다.그것은 하늘이 무너질 듯 수치스러웠으나, 동시에 쪼그라들었던 그의 사타구니를 다시금 불덩이처럼 달구어버리는 치명적인 기폭제가 되었다. 어젯밤 짚더미 위에서 헐떡이던 쾌락의 기억이 혀끝을 타고 척추로 내리꽂혔다. 그의 흉폭한 붉은 기둥이 다시금 삼베 바지 속에서 미친 듯이 핏대를 세우며 꿈틀거리기 시작했다.정씨 부인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그 적나라한 광경을 내려다보았다. 마치 집채만 한 맹견이 주인의 발밑에 바짝 엎드려, 던져주는 먹이를 침을 흘리며 받아먹는 모습을 굽어보는 잔혹한 조련사처럼.그녀의 호흡이 불을 삼킨 듯 거칠어졌다.'그래, 그렇게 짐승처럼 핥는 것이다. 너는 이제 온전히 나의 것이다. 네 통제 못 할 욕망도, 네 비참한 수치심도, 네 그 흉폭하게 솟아오르는 기둥도 모조리 내 손바닥 안에서만 숨 쉴 수 있는 것이다.'그녀는 소복 치마폭 아래로 자신의 하얀 허벅지를 손톱이 파고들도록 꽉 쥐었다. 어젯밤 헛간
4. 훈육이라는 이름의 애무: 언어의 채찍"고개를 들라."서슬 퍼런 빙장(氷藏) 같은 목소리였다.돌쇠는 덜덜 떨리는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의 눈가는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고, 입술은 바싹 타들어가 갈라져 있었다. 도살장 앞에 끌려온 짐승의 핏기 없는 눈.정씨 부인은 그 짐승과 정면으로 시선을 옭아맸다. 그녀의 눈빛은 겉으로는 얼음장처럼 차가웠으나, 그 깊은 동공 속에는 도깨비불처럼 음란하고 푸른 불꽃이 끈적하게 일렁이고 있었다."너는 개다."그녀가 나직하게, 뼈를 씹어 뱉듯이 내뱉었다."주인의 물건을 함부로 탐하고, 발정 난 개새끼처럼 아무 데나 더러운 진액을 흩뿌리고 다니는 천박한 수캐란 말이다."그녀는 그를 서늘한 언어로 채찍질했다. 그 말은 가문을 더럽힌 종놈을 향한 모욕이었으나, 동시에 기이하고 끈적한 음란한 춘의(春意)를 품고 있었다. 그를 도덕을 아는 '인간'이 아닌 본능뿐인 '개'로 격하시킴으로써, 오히려 양반가의 썩어빠진 예법과 금기를 여지없이 벗어던진 육체적 얽힘의 가능성을 활짝 열어젖힌 것이다. 짐승과는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까. 짐승의 교미에는 법도가 없으니까."이런 미친 개에게는 살이 터지는 몽둥이가 약이라 들었다. 내 당장 관아에 고하여, 네놈의 그 음탕하고 흉폭한 양물(陽物)을 뿌리째 썰어내어 개먹이로 던져줄 수도 있단 말이다."돌쇠의 눈동자가 극한의 공포로 뒤집힐 듯 흔들렸다. 양물이 잘려 나가는 거세의 공포. 그것은 사내로서의 모든 생명력과 남성성이 시궁창에 처박히는 끔찍한 종말이었다. 그는 사시나무 떨듯 바닥을 기며 빌었다."마님, 제발... 제발 그곳만은... 목숨만 살려주십시오..."하지만 정씨 부인은 자비 없이 말을 이었다. 목소리의 톤을 살짝 낮추며, 은밀한 뱀처럼 귓가를 핥았다."허나... 가문의 정결한 명예가 네놈의 더러운 피로 더럽혀질까 두려워, 내 이번만은 관아에 알리지 않겠다."그것은 자비가 아니었다. 그것은 짐승의 목에 시퍼런 족쇄를 채우는 사육의 시작이었다.
3. 증거물의 제시: 누런 얼룩정씨 부인은 천천히, 짐승의 숨통을 조이듯 아주 느릿하게 자개장 서랍을 열었다.드르륵.그리고 어젯밤의 그 문제적인 물건을 끄집어냈다. 눈부시게 하얀 무명 천 조각.바닥에 처박혀 있던 돌쇠의 핏발 선 눈동자가 그곳에 콱 고정되었다.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미친 듯이 흔들렸다. 그의 굵은 얼굴이 일순간 잿빛으로 질려버렸다."이것이 무엇이냐."정씨 부인은 그 다리속곳을 하얀 엄지와 검지로 집어 들어, 마치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오물이라도 되는 양 그의 코앞에 대고 싸늘하게 흔들었다."내 다리속곳이 어찌하여 네놈의 더러운 헛간 짚더미 위에서 뒹굴고 있었느냐?"그녀의 목소리는 매의 발톱처럼 날카로웠다."내가 잃어버린 줄 알고 온 하인들을 닦달하게 만들었던 이것이, 왜 네놈의 품속에 들어 있었느냔 말이다."그리고 그녀는 기어이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짐짓 역겹다는 듯 서늘한 표정을 지으며, 말라붙은 누런 얼룩의 한가운데를 그의 코앞에 바짝 들이밀었다. 네놈이 저지른 짓의 냄새를 맡아보라는 듯이."그리고... 이 더럽고 짐승 같은 자국은 대체 무엇이란 말이냐."돌쇠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목숨이 날아갈 공포와 함께 끔찍한 수치심이 거대한 해일처럼 밀려와 그의 숨통을 짓눌렀다. 자신의 가장 은밀하고 짐승 같은 욕정의 배설물을, 하늘같이 고고하고 정결하다 믿었던 마님에게 고스란히 들켜버린 것이다. 그것도 핏대가 서도록 헐떡였던 가장 적나라한 증거물과 함께."죽여주십시오, 마님! 소인이... 소인이 잠시 미쳐 돌아갔던 모양입니다요! 당장 제 손목을 잘라주십시오!"그는 방바닥에 쿵, 하고 머리를 찧었다. 이마에서 시뻘건 피가 맺힐 정도로.쿵, 쿵.살이 부서질 듯 찧어대는 그 둔탁한 소리가 오히려 정씨 부인의 심장을 찌릿하게 울렸다. 치마폭 아래 감춰진 그녀의 아랫배가 뻐근하게 조여들었다.그녀는 환희에 차 즐기고 있었다. 눈앞의 이 태산 같은 사내가, 어젯밤에는 제 속곳에 코를 박고 짐승처럼 포효하
2. 죄인, 아니 제물: 무릎 꿇은 짐승문이 열리고 묵직한 그림자가 넘어왔다.끼이익.아침 햇살이 그의 육중한 등 뒤에서 쏟아져 들어왔으나, 돌쇠는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벌벌 떨며 방 안으로 기어 들어왔다. 그는 죄인이었다. 지난밤, 자신이 주워온 마님의 속곳에 미친 듯이 숫짐승의 욕정을 배설하고 정신을 잃었을 때, 그는 이성이 여지없이 끊어진 발정 난 개에 불과했다.하지만 아침이 되어 서늘한 이성을 되찾았을 때, 그는 자신의 대역죄가 발각되면 당장 멍석말이를 당해 뼈가 부서지거나 관아에 끌려가 사지가 찢길 것이라는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더욱 끔찍한 것은, 그가 무아지경 속에서 잠든 사이 손에 꼭 쥐고 있던 그 젖은 속곳이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사실이었다.그는 직감했다. 누군가가 보았다. 누군가가 가져갔다. 그리고 지금 안방 마님의 뜬금없는 호출은 그 잔혹한 심판의 시작을 의미했다."그 자리에 무릎을 꿇어라."정씨 부인의 서늘한 명이 얼음장처럼 떨어졌다.돌쇠는 털썩, 흙먼지가 묻은 무릎을 방바닥에 꿇었다. 마당에서 도끼를 휘두르던 그의 흉폭하고 집채만 한 몸집이 한순간에 벼랑 끝에 몰린 초식동물처럼 작아졌다.정씨 부인은 그를 서늘하게 내려다보았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히는 시선. 이것은 일방적이고도 절대적인 권력의 구도였다. 하지만 이 권력은 단순히 양반과 머슴이라는 얄팍한 신분적 우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타락한 욕망을 흔적 없이 숨긴 자가, 짐승 같은 욕망을 적나라하게 들켜버린 자에게 행사하는 잔인하고도 숨 막히는 혼백의 우위였다."네 죄를 네가 알렷다."질문이 아니었다. 퇴로를 가차 없이 차단해버리는 무자비한 선고였다.돌쇠의 태산 같은 어깨가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렸다. 식은땀이 구릿빛 관자놀이를 타고 굵게 흘러내렸다."마... 마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요..."그는 감히 변명조차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1. 아침의 형장: 백색의 위선핏기 없이 창백한 아침 해가 떠올랐다. 지난밤 시커먼 헛간을 지배했던 그 눅눅하고 펄펄 끓던 정욕의 그림자는, 눈부신 태양 빛 아래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린 듯했다. 만동 김씨 가문의 태산 같은 기와집은 다시금 숨 막히게 엄격한 유교적 질서 속으로 빈틈없이 회귀해 있었다.마당은 흙먼지 하나 없이 빗자루 자국이 선명했고, 장독대는 서늘하게 닦여 아침 햇살을 반사했으며, 사랑채에서는 족보를 읊는 점잖은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이것은 흠잡을 데 없이 정결하고도 죽어있는, 철저한 백색의 세계였다.그러나 안방의 공기는 달랐다. 정씨 부인은 문을 굳게 닫아걸고 아랫목에 꼿꼿이 정좌해 있었다. 그녀의 앞에는 흑단으로 짠 작은 자개장 하나가 놓여 있었다. 표정은 조상들의 위패처럼 차가운 얼음장 같았고, 굳게 다문 입술과 눈빛은 서릿발처럼 날카로웠다.하지만 그녀의 하얀 손은 달랐다. 무릎 위에 단정히 놓여 있어야 할 손가락이, 자개장 서랍 속에 반쯤 숨겨진 '무언가'를 끊임없이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눈부시게 하얀 다리속곳이었다.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순결한 백색이 아니었다. 지난밤, 돌쇠가 헛간에서 짐승처럼 헐떡이며 토해낸 끈적하고 비릿한 생명의 흔적이 그 얇은 천 위에 빳빳하게 누렇게 말라붙어 있었다. 그것은 이정표였다. 그녀가 가야 할, 아니 이미 목까지 푹 잠겨버린 타락과 쾌락의 심연으로 안내하는 가장 불경하고도 매혹적인 피의 이정표.정씨 부인은 그 딱딱하게 굳은 얼룩을 하얀 검지 끝으로 천천히 쓸어보았다.까슬까슬.연한 손끝에 닿는 짐승의 굳은 감촉. 그것은 혐오스럽기보다는, 지문을 타고 척추 끝까지 내리꽂히는 벼락같은 전율이었다. 그것은 수컷의 실체, '절정을 토해낸 진액'이었다.그녀는 문밖의 기척을 살피고는, 속곳을 들어 코끝에 바짝 가져다 댔다. 밤새 냄새는 말라붙어 옅어졌지만, 여전히 그 깊은 무명 올 속에는 사향과도 같은 비릿하고 짙은 수컷의 체취가 뱀처럼 똬리를 틀고 끈적하게 배
7. 되돌아오는 길, 배덕한 훈육의 예고정씨 부인은 소리 없이 짐승의 굴에서 발걸음을 돌렸다. 안채로 돌아가는 길, 차가운 흙을 밟는 그녀의 발걸음은 올 때보다 백배는 더 가벼웠다. 먹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민 창백한 달무리가 타락한 그녀를 비웃는 듯 서늘하게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그녀는 더 이상 단 한 줌의 수치심도 느끼지 않았다.그녀의 펄떡이는 혈관 속에는 이제 양반가의 썩어빠진 푸른 피가 아니라, 헛간에서 목도했던 그 흉폭한 붉은 기둥처럼 미치도록 뜨겁고 짐승 같은 붉은 피가 거세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안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젖은 요 위에 나른하게 몸을 뉘었다. 눈을 감아도 잔상처럼 핏대를 세우고 솟구치던 돌쇠의 그 붉은 기둥이 시뻘겋게 아른거렸다. 그녀는 하얀 손을 뻗어 자신의 젖은 아랫배를 끈적하게 쓸어내렸다."기어이... 내 속곳을 훔쳐 품었구나..."그녀는 어둠 속에서 들끓는 숨결로 달콤하게 속삭였다.이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대역죄였다. 양반가의 물건을 훔친 절도죄이자, 감히 상전의 흔적을 짐승처럼 능욕한 파렴치한 죄. 내일 아침 동이 트면, 그녀는 이 집안의 안주인으로서 마땅히 그 종놈을 안마당으로 불러 무릎을 꿇리고 서슬 퍼르게 추궁해야 했다.하지만 그 매서운 추궁은 결코 죗값을 묻기 위한 형벌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네놈이 감히 발정 난 들개처럼 마님의 냄새를 핥고 다녔느냐"고 짓밟으며, 그 육중한 사내에게 짐승의 수치심을 안겨주고, 다시 그 질척이는 수치심을 이용해 자신의 굶주린 욕정을 끝까지 채워 넣기 위한 철저하고 배덕한 유희, 사랑의 훈육이 될 것이다.그녀는 돌쇠의 목숨을 쥐었다. 아니, 펄펄 끓는 그의 욕망의 시퍼런 목줄을 여지없이 틀어쥐었다. 이제 그녀는 암컷의 우아한 손짓으로 그 거친 밧줄을 당기기만 하면 된다.동이 터오고 있었다. 하얀 무덤 같던 만동 김씨 가문의 검은 기와지붕 위로, 시뻘건 아침 태양이 마치 어젯밤 돌쇠의 흉폭했던 핏덩이처럼, 그리고 정씨 부인의 오장육부에서 꿈틀대는 새로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