تسجيل الدخول모르면 모른다고 말할 것. 그 번호 없는 명령이 생긴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카렐에게서 청첩장이 왔다. 처음에는 단순한 사내 행사 초대인 줄 알았다. 메일 제목도 평범했다. [개인 일정 관련 초대] 나는 별생각 없이 열었다가 화면을 한참 봤다. “뭐야.” 한예린이 맞은편에서 물었다. “왜?” “카렐 결혼한대.” “드디어 말했네?” 나는 바로 고개를 들었다. “알고 있었어요?” “재무팀에서는 몇 명 알았어.” “나는 왜 몰랐지?” 한예린이 어깨를 으쓱했다. “총괄님한테 연애 보고까지 해야 돼?” 말문이 막혔다. “…그건 아니지.” “그렇지.” “그래도 부대표잖아.” “그래서 결혼식은 초대했잖아.” 맞는 말이었다. 나는 청첩장을 다시 봤다. 장소는 프라하 외곽의 작은 예식장이었다. 신부 이름은 익숙했다. 몇 번 현장 보고서에서 본 이름. 프라하 현장 엔지니어였다. 나는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이 사람 혹시…” “알아?” “예전에 창고 동선 수정안 냈던 사람 아닌가?” 한예린이 웃었다. “맞아.” “카렐이 그때 엄청 칭찬했는데.” “그래서 눈치챘어야지.” “업무 칭찬이었잖아.” “업무 칭찬만 했겠지. 회사에서는.” 나는 괜히 청첩장을 다시 읽었다. 카렐이 회사에서 사적인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직설적인 성격이지만 자기 사생활은 의외로 철저했다. 결혼까지 준비하면서도 티를 거의 내지 않았다니. 조금 놀라웠다. 그날 저녁 도현에게 말했다. “카렐 결혼해요.” 도현이 책에서 눈을 들었다. “그렇습니까?” “놀랍지 않아요?” “조금.” “그게 다?” “제가 많이 놀라야 합니까?” 나는 그를 빤히 봤다. 도현이 한 박자 늦게 알아차렸다. “왜 그렇게 봅니까?” “이제 질투 안 해도 되겠다 생각 안 했어요?” 그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결혼한다고 질투할 이유가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아직도?” “감정이 그렇게 논리적으로 정리되지는 않습니다.”
집에 돌아온 밤. 도현이 먼저 말했다. “오늘은 새로운 명령을 하나 만들고 싶습니다.” 나는 소파에 기대 앉은 채 그를 봤다. “갑자기?” “네.” “번호는?” “없습니다.” 나는 웃었다. “다행이네.” “왜요?” “또 13, 14 이런 거 붙이기 시작할까 봐.” 도현의 표정이 아주 조금 굳었다. “번호는 만들지 않기로 했습니다.” “알아요.” “그런데 왜 묻습니까?” “혹시 몰라서.” 도현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 “내용은?” 그가 잠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십시오.” 나는 몇 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웃었다. “그게 무슨 명령.” “당신에게 가장 어렵습니다.” 웃음이 조금 줄었다. 맞는 말이었다. “나한테만?” “아닙니다.” “주인님도요.” 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럼 공동 명령?” “그 표현도 나쁘지 않습니다.” “주인님이 내리고 주인님도 지키는 명령?” “네.” 나는 팔짱을 꼈다. “이상한데.” “무엇이?” “예전에는 명령하면 내가 지키는 거였잖아요.” “지금도 기본은 그렇습니다.” “근데 이건 같이.” “이건.” 도현이 천천히 말했다. “제가 지키지 않으면 당신에게 요구할 수 없는 내용이니까.” 그 말은 마음에 들었다. “그럼 카드 써요?” 내가 일부러 물었다. 도현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왜?” “카드는 태웠으니까.” “[12]는 남겼잖아요.” “그건 시작점이고.” “이건?” “그냥 오늘부터 말로 기억하면 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 같으면 이런 문장은 카드가 됐을지도 몰랐다. 글씨로 적고. 확인하고. 서랍에 넣고. 나중에 다시 꺼내 봤을 것이다. 지금은 아니었다. 한 문장.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좋아요.” 내가 말했다. “그럼 지금 바로 시험해 볼까요?” 도현의 눈썹이 아주 조금 올라
세 달 뒤. 숫자가 나왔다. 예상대로 매출 성장률은 낮아졌다. 전년 동기 대비 증가 폭은 이전 분기보다 작았고, 외부 투자자들이 기대했던 수치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 다른 숫자가 있었다. 핵심 직원 퇴사자. 0명. 처음이었다. 나는 보고서를 한참 봤다. “진짜 0이에요?” 한예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휴직자는?” “있어요. 퇴사는 아니고.” “이직 예정자는?” “현재까지 확인된 사람 없습니다.” 카렐이 옆에서 태블릿을 넘겼다. “핵심 인력뿐 아니라 전체 자발적 퇴사율도 낮아졌습니다.” “얼마나?” “작년 동기 대비 31%.” 나는 화면을 다시 봤다. 매출 숫자였다면 바로 반응했을 것이다. 잘했네. 더 올릴 수 있겠네. 다음 목표는 얼마. 예전의 나는 항상 그랬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0명. 아무도 떠나지 않은 분기. 그 숫자가 이상하게 오래 눈에 남았다. 월간 운영회의에는 처음으로 직원대표도 참석했다. 새로운 성장 목표를 평가하기 위해 만든 자리였다. 도시별 책임자. 재무. 인사. 운영. 직원대표까지. 나는 일부러 보고서를 먼저 설명하지 않았다. “어땠어요?” 직원대표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확실히 덜 지칩니다.” “구체적으로?” “승인 대기 시간이 줄었고요.” “네.” “갑자기 추가되는 신규 프로젝트가 거의 없었습니다.” 카렐이 바로 끼어들었다. “거의가 아니라 없었습니다.” 직원대표가 웃었다. “맞습니다.” “또요?” “중간관리자들이 예전보다 휴가를 실제로 씁니다.” 나는 인사 자료를 봤다. 정말이었다. 휴가 사용률도 올라가 있었다. “이게 다 성장률 낮춘 것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한예린이 말했다. “전부는 아니겠죠.” 카렐도 고개를 끄덕였다. “시스템 개선 영향도 있습니다.” 직원대표가 덧붙였다. “그래
로마 프로젝트를 거절한 뒤. 이사회에서는 처음으로 ‘성장률 목표’를 낮췄다. 숫자만 보면 꽤 큰 변화였다. 예전에는 매년 다음 도시를 검토했고. 다음 시장을 찾았고. 매출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 신규 프로젝트를 계속 넣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방향이 달랐다. 매출보다 직원 유지율. 신규 도시보다 기존 도시의 안정성. 외형 성장보다 운영 지속성. 보고서를 처음 본 몇몇 이사들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성장률 목표를 이 정도로 낮추겠다는 겁니까?” “네.” “투자자 반응을 고려한 겁니까?” “고려했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자료를 넘겼다. “지난 2년 동안 도시가 늘었고.” “네.” “조직도 계속 커졌습니다.” “그게 회사 성장 아닙니까?” “맞아요.” “그럼 왜 지금 멈춥니까?” 나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회의실 벽면 화면에는 다섯 도시의 숫자가 떠 있었다. 프라하. 바르샤바. 뮌헨. 파리. 스톡홀름. 전부 조금씩 달랐다. 매출도. 인력 규모도. 이직률도. 운영 안정성도. 겉으로는 하나의 유럽 조직이었지만. 실제로는 다섯 개의 서로 다른 조직을 동시에 끌고 가는 구조였다. “지금까지는 늘리는 데 집중했어요.” 내가 말했다. “이제는 유지하는 데 집중하려고 합니다.” 한 이사가 바로 물었다. “정체를 선택하는 겁니까?” 나는 그를 봤다. “지속을 선택하는 겁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정체와 지속은 다릅니다.” 나는 말을 이었다. “성장을 멈추겠다는 게 아니라.” “그럼요?” “성장의 기준을 바꾸겠다는 겁니다.” 화면을 넘겼다. 이번에는 매출 그래프 대신 직원 유지율이 나왔다. “올해부터 유럽 지역 주요 성과지표에 직원 유지율을 더 크게 넣겠습니다.” 다음 장. “도시별 초과근무.” 다음. “중간관리자 교체율.” 다음. “총괄 승인 없이 처리할 수 있는 의사결정 비율.” 카렐이 옆에서 화면을 보고 있었다. 나는 그를 한번 쳐다봤다. “이것도 넣
한 달 뒤의 밤이 지나고 며칠 뒤. 다시 회사로 돌아오자 기다렸다는 듯 새로운 제안이 올라왔다. 로마. 처음 보고서 제목을 봤을 때부터 무슨 내용인지 짐작했다. [유럽 총괄실 산하 디자인 연구센터 설립 검토안] 현재 다섯 도시의 구조와는 조금 달랐다. 프라하와 바르샤바가 운영과 생산. 파리가 브랜드와 시장. 뮌헨이 기술. 스톡홀름이 지속가능성과 북유럽 사업의 중심이라면. 로마에는 제품과 공간, 브랜드 경험을 함께 연구하는 디자인 센터를 두자는 제안이었다. 규모도 크지 않았다. 초기 인력 스물여덟 명. 본격적인 지사도 아니었다. 독립적인 영업 조직을 만들 필요도 없고. 운영 부담도 다른 도시보다 훨씬 적었다. 재무팀 검토도 나쁘지 않았다. 현지 지원 정책까지 붙으면 초기 비용의 상당 부분을 줄일 수 있었다. 회의 자료만 보면. 거절할 이유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회의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모두 내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예린이 먼저 설명을 시작했다. “초기 투자 규모는 예상보다 크지 않습니다. 로마시 쪽 지원 조건까지 반영하면 첫 2년은—” 나는 첫 장을 넘겼다. 두 번째 장에는 현지 인력 확보 가능성. 세 번째 장에는 예상 비용. 그다음은 후보 건물이었다. 나는 한 장만 제대로 보고 자료를 덮었다. “안 합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한예린이 말을 멈췄고. 카렐도 나를 봤다. 뮌헨에서 연결된 화면까지 잠잠해졌다. 카렐이 가장 먼저 물었다. “검토하지 않으시겠다는 뜻입니까?” “네.” “자료를 아직 다 안 보셨습니다.” “알아요.” “사업성이 나쁘지 않습니다.” “그것도 알아요.” 카렐의 눈썹이 조금 움직였다. 내가 먼저 웃었다. “오늘은 반대 안 해요?” “지금 하고 있습니다.” “역시.” 카렐이 자료를 앞으로 당겼다. “적어도 이유는 듣고 싶습니다.” “지금 다섯 도시도 충분해요.” 그 말 뒤로 또 잠깐 조용해졌다. 한예린이 물었다. “인력 문제 때문에요?”
제주에서 돌아온 다음 날. 낮 동안은 이상할 만큼 평범했다. 나는 밀린 메일을 정리했고. 도현은 서재에서 회의 자료를 확인했다. 같은 집에 있었지만 각자 자기 일을 했다. 한 달 전과 달라진 건 거의 없어 보였다. 다만. 서로가 어디 있는지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방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불안하지 않다는 점. 그리고 필요하면 언제든 부르면 된다는 걸 알고 있다는 점. 그게 달랐다. 저녁을 먹고 난 뒤.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제주에서 가져온 노트를 정리하고 있었다. 도현이 맞은편에 앉았다. 한참 말이 없었다. 나는 먼저 고개를 들었다. “왜 봐요?” “생각 중입니다.” “뭘?” 도현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늘은 원합니까?” 질문의 의미를 바로 알았다. 한 달 동안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제주에 첫 일주일 같이 있을 때도 일부러 쉬었다. 그 뒤로는 서로 다른 도시에서 지냈다. 그러니까 오늘은. 한 달 만이었다. 나는 노트를 덮었다. “네.” 도현의 시선이 조금 깊어졌다. 하지만 곧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오랜만이라도 기존 범위를 그대로 가정하지 않겠습니다.” “알아요.” “한 달 전 괜찮았던 게 오늘도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네.” “무엇이 좋습니까?” 나는 잠시 생각했다. 이상하게. 오히려 분명했다. 한 달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더 잘 알 것 같았다. “손목.” 도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안대는 싫어요.”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리드도 오늘은 싫고.” “좋습니다.” 나는 잠시 멈췄다. 도현이 기다렸다. 재촉하지 않았다. “목소리는…” “네.” 나는 그를 바라봤다. “좀 세게.” 그 순간. 도현의 눈빛이 천천히 달라졌다. 조금 전까지 남편이던 얼굴에서. 익숙한 무게가 내려앉았다. 그래도 마지막 확인은 같았다. “색깔.” “초록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