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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협적인 소유의 설계자
위협적인 소유의 설계자
Author: 이클리프

1. 정오의 장미

Author: 이클리프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6-25 20:36:39

엘레니르 제국의 수도 카르네티아.

그곳에 자리한 에르디엔 황궁은 정교한 금박을 두른 화려함의 향연이었다.

 

에르디엔은 황실의 권위가 하늘에 닿아 있음을 증명하듯 채움과 범람 그 자체였다.

그러나 단 한 곳만은 달랐다.

 

아르젠트 궁.

 

황태자의 거처인 이곳은 비움과 질서의 미학이 흐르는, 여름의 열기조차 제 질서 안으로 수렴시키는 거대한 침묵의 공간이었다.

 

밝은색을 거부한 듯 짙은 회색의 석재로 쌓아 올린 외벽은 불필요한 조각과 장식이 없었다.

정원조차 화려하지 않았다.

 

이곳의 아름다움은 사치스러운 장식이 아닌, 단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질서에서 기인되었다.

 

아르젠트 궁은 화려함으로 계절을 선언하지 않는 대신 질서로 계절을 품었다.

 

황태자.

르세인 폰 루카르디아.

 

차가운 질서의 정점에 있는 그의 얼굴은 부드러움과 날카로움의 경계에서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을 가진, 매서운 아름다움을 지녔다.

 

“바델.”

 

낮고 매끄러운 음성이 정적을 갈랐다.

대기 중이던 전속 부관 바델은 르세인의 부름에 곧장 집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황태자 전하.”

 

모든 판단은 감정 이전에 내려져야 한다는 신념이 짙게 내려앉은 르세인의 오묘한 녹색 눈동자가 바델을 직시했다.

 

바델은 침을 삼켰다.

곧 보고해야 할 말은 그의 손을 미약하게 떨리게 만들었다.

 

“보고.”

“어제 오전, 라안느 영애께서 마레즈나를 나섰습니다. 목적지는… 테르시아입니다.”

 

바델의 떨리는 음성에도 르세인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그저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은 생각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필요 없는 말을 걸러내는 과정에 가까웠다.

 

“또 카시안이군.”

 

르세인에게 카시안은 위협의 대상도, 동정의 대상도 아니었다. 자신의 완벽한 소유물에 묻은 불쾌한 얼룩 같은 존재였다.

 

르세인은 바델의 말을 듣고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정확히는 라안느가의 마레즈나가 있을 곳으로.

 

라안느 영애.

엘라엔 폰 라안느.

 

르세인은 그녀가 카시안을 보며 짓는 미소가 진심이라 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그녀가 있어야 할 곳은 카시안의 테르시아가 아니라, 자신의 이 차가운 아르젠트 궁이 될 것이기에.

 

르세인은 늘 감정을 느끼기 전에 상황을 재단했고 욕망을 품기 전에 손익을 계산했다.

 

엘레니르 제국에서 라안느 공작가는 단순한 귀족 가문이 아니었다.

그들은 에르디엔 황실을 지탱하는 거대한 뿌리였다.

 

황후 소생의 적통 황태자인 르세인에게 엘라엔은 반드시 손에 넣어야만 비로소 자신의 완벽한 세상이 완성되는 마지막 조각이었다.

 

훌륭한 가문.

고결한 혈통.

 

르세인은 엘라엔을 떠올리며 짧게 명령을 내렸다.

 

“마차를 준비하라.”

 

바델은 고개를 숙였다.

 

르세인의 결정은 숨을 쉬는 행위처럼 자연스러웠다.

 

그의 세상은 이미 그를 중심으로 정렬되어 있었다.

명령이 없어도, 굳이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

 

 

라안느 공작저 마레즈나는 장미가 만개했다.

 

성벽에는 장미 덩굴이 경계를 부드럽게 숨겼고, 정원의 연못을 따라서도 장미가 심어져 있었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장미 향이 겹겹이 쌓이고, 수면 위로 반사된 빛이 흔들릴 때마다 꽃잎의 붉음도 함께 흔들렸다.

 

이러한 정원 한가운데 장미를 돌보고 있는 그녀는 평범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엘라엔 폰 라안느.

 

제국 최상위 귀족 영애의 의상이라기엔 지나치게 소박했다.

크림색의 얇은 여름 드레스는 장식 없는 끈으로 허리가 묶여 있었고, 접어 올린 소매 사이로 가녀린 팔목이 드러났다.

 

엘라엔의 곁에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해 온 하녀 마리가 있었다.

 

“마리. 오늘 햇빛이 너무 좋지?”

“네, 영애님.”

“장미가 제일 예쁠 시간이야.”

 

엘라엔은 장미 잎을 살짝 들어 올렸다.

가시를 피하는 손끝의 움직임은 고귀한 태생답게 품위가 흘렀다.

 

“여름은 짧아.”

“…….”

“그래서 이렇게 길게 느껴지는 순간이 좋아.”

 

마리는 엘라엔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의 말은 늘 어딘가 더 깊은 곳을 향해 있었기에.

 

그러나 그 깊이를 굳이 따라가지 않아도 지금 이 순간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햇빛은 장미 위에 내려앉았고, 분수대의 물소리는 일정한 리듬으로 이어졌다.

 

정원은 외부의 세상과 단절된 것처럼 평온했다.

 

마리는 엘라엔이 방금 만진 장미를 바라보았다.

 

“장미는… 꼭 영애님 같아요.”

 

그 말은 어딘가 두려움이 섞인 말이었다.

 

엘라엔은 대답 대신 꽃잎을 한 번 더 만졌다.

 

그때, 장미 덩굴 너머로 바깥의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일정한 간격의, 빠르지도 않고 망설임도 없는 발소리가 들렸다.

 

일순 여름 바람이 방향을 틀었고 검은 군복을 입은 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레즈나의 분위기는 이 순간부터 라안느 가문의 것이 아니었다.

 

그들 사이로 한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장미의 붉음과 대조되는 차가운 금빛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걷는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서둘러야 할 이유가 없는 사람의 걸음이었다.

 

르세인.

 

그가 정원에 들어서자 공간의 중심이 이동한 듯했다.

 

장미는 여전히 아름답게 만개했으나 더 이상 이 정원의 주인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의 존재가 자연을 압도하는 순간이었다.

그의 건조한 시선이 엘라엔의 발아래부터 느릿하게 이동해 그녀의 머리카락에 조금 더 오래 머물렀다.

 

엘라엔의 하나로 땋아 내린 와인빛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내리쬐는 햇볕은 붉은 기운을 은근히 살아나게 했다.

 

마리는 반사적으로 엘라엔 앞에 서려고 했으나 르세인의 최정예 기사가 그 앞을 막았다.

 

엘라엔은 그를 보며 마리의 행동을 멈추게 했다.

 

르세인은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 거리를 유지한 채 엘라엔을 직시했다.

 

“라안느 영애.”

 

그 낮은 목소리가 공기를 가르고 들려왔을 때, 마레즈나의 장미 향기가 그에게로 수렴되는 착각이 들었다.

 

그의 부름은 확인이었다. 확인이 끝나면 다음은 절차일 것이다.

 

여름의 장미 향이 더 짙어졌다.

 

엘라엔은 이 여름이 결코 예전과 같지 않을 것임을 직감하며 눈을 가늘게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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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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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술밍키
작가님 문체가 넘 좋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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뚠빵공주
......빅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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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점이
믿고 보는 작가님 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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