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성지우와 진건우는 성하린의 약점이었다.그녀는 예전에 아이들이 납치당했던 일을 떠올렸다.사실 이미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그래서 문중엽이 문강찬의 일을 조사해 달라고 했을 때 승낙했다.“그때 지우가 납치된 일도 그 사람들과 관련 있어.”문강찬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이번엔 두 아이를 그냥 놔줬지만 다음번에도 그럴까? 다음에도 손을 봐줄 거로 생각해?”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성하린의 마음을 깊게 찔렀다.성하린은 누가 범인인지 짐작하고 있었지만 증거가 없었다.그녀 혼자서는 아이들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었다.문강찬은 재촉하지 않고 그녀가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기를 기다렸다.2분쯤 지나서야 성하린은 마침내 고개를 들어 문강찬을 바라봤다.“꼭 나여야 해?”그에게는 분명 더 많은 선택지가 있을 터였다.“너 말고는 못 믿겠어.”문강찬은 단호했다.결국 성하린은 승낙했다.감동한 문강찬이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입 맞추려 했지만, 성하린은 피했다.그녀의 눈빛은 차갑고 감정이라고는 전혀 없었다.“우리 관계는 협력 관계일 뿐이야.”그녀는 미리 선을 그었다.문강찬은 순순히 받아들였다.“내가 경솔했어.”그는 먼저 손을 놓아주고 그녀를 거실 안으로 들인 뒤, 문을 열어 오창윤을 들여보냈다.성하린을 마주한 오창윤은 조금 어색해했다.“성하린 씨.”문강찬이 말했다.“오창윤, 하린이 곁에 경호원 한 명 붙여.”“한 명이요?”“정확히는 두 명이지. 하지만 한 자리는 내가 맡을 거야.”문강찬은 성하린을 직접 곁에서 지켜야 했다.오창윤은 이해하고는 서둘러 준비하러 갔다.심지어 집안의 고용인들까지 내보냈다.지금 모든 사람의 눈에는 문강찬이 이미 죽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그가 살아 있다는 사실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았다.그리고 식사는 오창윤이 직접 가져다주기로 했다.성하린은 그런 배치에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성하린은 무심히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처리해야 할 서류들을 넘겨봤다.문강찬은 그녀의 옆에 앉아 조용히 내용을 설명해 주었
성하린은 창밖을 바라봤다.표정은 읽을 수 없었다.“그 질문은 오 비서님이 묻는 거예요? 아니면 그 사람이 시킨 거예요?”오창윤은 표정이 굳었다. 놀라기도 하고 찔리기도 한 그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성하린 씨...”성하린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오 비서님이 준 서류에 표기한 그 상세한 메모들은 전부 그 사람이 직접 적은 거죠? 제 말이 틀렸나요?”오창윤은 할 말을 잃었다.차는 해오름 앞에 멈춰 섰다.성하린은 차에서 내려앉으러 들어가지 않고 문 앞에 잠시 서 있었다.어제까지만 해도 그를 위해 눈물 흘렸다는 생각이 들자 스스로가 우스워졌다.그는 그녀를 완벽하게 속이고 있었다.그 상세한 메모를 보지 못했다면 아마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문강찬은 죽지 않았고, 모든 건 그가 일부러 꾸민 일이었다.그녀는 발걸음을 옮겨 안으로 들어갔다.짐을 챙겨 떠날 생각이었다.하지만 막 들어서자마자 뒤따라 들어온 남자가 품에 끌어안았다.문가의 어스름한 불빛 아래, 남자의 얼굴에는 감춰지지 않는 미소가 떠올랐다.“하린아.”성하린은 그를 알아봤다.아침에 함께 나갔던 운전기사였다.그는 계속 그녀의 곁에 있었다.성하린은 그의 품에서 벗어나 차갑게 올려다봤다.“재밌어?”문강찬은 그녀를 더 꼭 끌어안았다.“일부러 숨기려던 건 아니었어.”사실 그는 적당한 때가 되면 그녀에게 말할 생각이었다.다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하린아, 미안해.”그는 사과하고 있었지만 마음속은 달콤함으로 가득했다.그녀가 자신을 위해 울어줬다는 건 마음속에 아직 자신의 자리가 있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성하린은 손으로 그의 몸을 밀어내며 최대한 거리를 두었다.그녀는 이미 다 눈치챘다.그래서 일부러 문도윤과 식사했고, 오창윤에게도 서류 이야기를 꺼냈다.문강찬은 생각보다 훨씬 침착하지 못했다.“살아 있다면 이런 일은 직접 처리해.”그녀에겐 그럴 자격도 의무도 없었다.문강찬의 손가락이 그녀의 눈가를 스쳤다.
성하린은 문중엽이 문강찬의 일을 자신에게 맡긴 건 문서현과 문성환을 경계하고 있다는 말이라 생각했다.그래서 그녀의 대답에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멀지 않은 곳에 앉아 있는 문서현과 문성환을 힐끔거렸다.문강찬이 사라진 지금, 가장 유력한 후보는 바로 저 두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문서현은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어딘가 차가운 기색이 섞여 있었다.“성하린 씨도 잘 알고 있군요. 어르신이 굳이 성하린 씨를 부르지만 않았어도 여긴 성하린 씨를 반기지 않았을 거예요.”그녀는 성하린이 들고 있는 서류를 바라봤다.생각해보면 답은 뻔했다. 오창윤이 미리 준비를 해줬으니 저렇게 막힘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성하린은 미소를 지으며 문서현의 도발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그럼 직접 할아버지께 말씀하시죠.”그녀의 뒤에는 어르신이 계셨다.문서현이 더는 말하지 못하자 문성환이 분위기를 풀며 말했다.“성하린 씨, 서현이는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에요. 다들 더 나은 미래와 발전을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거예요.”성하린은 서류만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은 순간, 회의실 문이 열리며 문도윤이 들어왔다.그는 성하린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성하린, 정말 너였구나.”문서현이 눈살을 찌푸렸다.“아는 사이야?”문도윤은 우아하게 두 손을 펼쳤다.“제가 전에 말했던 아주 재능 있는 조향사가 바로 이 사람입니다. 성하린 씨, 연구개발팀에 합류하지 않을래요?”그의 열정적인 권유에 성하린은 망설임 없이 거절했다.문도윤은 다시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지우는 잘 지내? 본지도 오래됐네. 그 꼬마가 나한테 전화도 안 해.”겉으로 보기엔 성하린과 문도윤은 꽤 가까운 사이인 것 같았다.성하린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그의 말에 맞장구쳤다.“지금은 오빠가 생겨서 나보다도 오빠만 따라다녀.”문도윤은 한숨을 쉬었다.“정 없는 꼬마 같으니.”성하린은 시간을 확인하고 말했다.“같이 식사할래?”“좋아.”두 사람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듯
“조사에 결과에 따르면, 경찰은 약물이 잘못 투여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어요. 아마 간호사가 교대하는 과정에서 약을 잘못 바꾼 것 같아요.”‘약을 잘못 바꿨다고?’성하린은 그 결과를 인정할 수 없었다.“강찬 씨가 있던 병실은 최고급 병실이었어요. 다른 환자도 없었는데 간호사가 어떻게 약을 잘못 준비하겠어요?”오창윤도 생각해보니 확실히 이상했다.하지만 현재의 초기 조사 결과는 그랬다.“조제부터 주사까지, 약물을 접한 사람을 전부 조사했어요?”성하린이 물었다.“전부 조사했어요. 아직은 수상한 점이 발견되지 않았고요.”오창윤은 서류를 성하린에게 건넸다.“그리고 그룹 고위층도 전부 이 일을 알게 됐어요. 상황이 좋지 않아요.”성하린은 눈썹을 치켜들었다.“그건 회장님께 가서 말씀드려야죠.”그녀는 거래 하나만 해도 수백억 원이 오가는 상장 그룹을 관리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오창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회장님께서 모든 결정을 성하린 씨께 맡기라고 하셨습니다.”성하린은 미간을 찌푸렸다.‘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야. 할아버지께서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사실 성하린 씨,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그룹 운영 시스템은 이미 안정적으로 자리 잡혀 있어서 당장 큰 문제는 없을 거예요.”오창윤은 성하린을 안심시키려 했다.“다만 이사회 사람들 앞에는 직접 모습을 드러내셔야 해요.”문강찬을 대신해서 말이다.성하린은 지금 작은 향수 회사를 직접 운영하고 있었기에, 경영이라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점점 체감하고 있었다.그녀는 얼굴을 내밀 자격조차 없는 자신의 처지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오창윤이 서류 한 부를 건넸다.“이건 문 대표님이 생전에 결재하셨던 문서예요. 몇 군데 수정이 필요한 부분이 있는데, 전부 표시해 두었어요. 그때 가서 보고 질문만 하시면 돼요.”성하린이 눈썹을 치켜들었다.“꼭 제가 가야 해요?”지금 그녀는 문강찬의 전처라는 입장으로, 그를 한 번 보러 와준 것만으로도 이미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찬 씨...’그 이름만 떠올려도 성하린은 마음이 저릿하게 아팠다.‘강찬 씨의 결말이 어째서 이렇게 되어야 했을까...’그녀는 차가 어디로 가는지도 신경 쓰지 못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해오름 앞에 멈춰 서 있었다.익숙한 장소였다.주인이 집에 없어서인지 고용인들은 작은 조명 몇 개만 켜두고 있었다.오창윤이 급히 말했다.“성하린 씨, 죄송해요. 방금 기사님께 주소를 말씀드리는 걸 깜빡했네요. 지금 바로 모셔다드리겠습니다.”“괜찮아요. 잠깐 걸을게요.”성하린은 차 문을 열고 내렸다.정말 오랜만에 이곳에 왔지만, 서로 얽혀 지내던 시간이 마치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그녀는 천천히 계단을 올라 비밀번호를 입력했다.문이 열리더니 고용인이 급히 달려 나왔다.“문... 아니, 성하린 씨.”고용인은 몹시 기뻐했다.“돌아오셨군요.”“대표님은 아직 안 들어오셨어요. 요즘 계속 집에 안 계셨는데... 들어와 앉아 계세요. 제가 대표님께 전화할게요.”성하린과 문강찬의 관계를 늘 지켜봐 온 고용인은 두 사람이 다시 이어지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성하린은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익숙한 인테리어, 벽에 걸린 그림조차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오창윤은 고용인이 전화하려는 것을 막았다.“성하린 씨.”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오늘 밤 여기서 쉬실 건가요?”그는 지금 성하린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는 걸 알아차렸다.그녀는 슬픔을 마음 깊이 숨기고 있었다.오창윤은 문득 그녀 역시 참 안쓰러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성하린은 잠시 생각하다가 조용히 응했다.오창윤은 고용인에게 방을 정리하라고 시켰다.고용인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의 지시로 지난 3년 동안 매일 안방을 청소해왔어요. 성하린 씨가 돌아오시기만 기다리면서요.”성하린은 이미 위층으로 올라간 뒤였다.안방 문을 열자, 방 안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옆 객실도 마찬가지로 잘 정리되어 있었지만 남성용 물건들이 많이 놓여 있었다.문강찬의 물건이었다.
성하린을 깔보는 문서현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성하린, 강찬 일은 오빠가 도와주게 해. 그래도 강찬의 아버지인데 힘을 좀 보태야지.”“그럴 필요 없어요.”성하린은 오창윤에게 사람을 시켜 문강찬의 시신을 잘 지키게 한 뒤, 몸을 돌려 원장실로 향했다.문강찬의 죽음에 대해 병원은 전적인 책임을 져야 했다. 원장은 도저히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어서, 관련된 사람들을 일찍부터 사무실로 불러 조사하고 있었다.그리고 지금, 마음속으로도 어느 정도 판단을 끝낸 상태였다.한참을 기다린 끝에, 성하린이 모습을 드러냈다.경찰 두 명이 그녀와 함께 나타났다.원장은 깜짝 놀랐다. 성하린이 이 일을 조사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경찰까지 올 줄은 몰랐다.성하린이 담담히 말했다.“수사는 제가 전문이 아니라서 경찰 두 분께 도움을 요청했어요.”“이, 이건...”원장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오창윤은 이미 사람들을 데리고 사무실 문 앞을 지키며 누구도 드나들 수 없게 막고 있었다.경찰의 질문이 시작됐다.성하린은 창가에 서서 뭐라고 답하는지 하나하나 마음속에 새기며 빠르게 분석했다.문강찬은 세 번째 수액을 맞은 뒤 문제가 생겼다.그 뒤로는 CCTV 확인이 이어졌다.주차장에 세워진 차 안에서 문서현의 표정은 유난히 차갑고 뒤틀려 있었다.문성환은 주먹을 꽉 쥔 채 이를 악물고 말했다.“네가 죽였어.”문서현은 비웃으며 말했다.“죽인 건 오빠죠.”그녀는 문성환을 바라보며 비아냥거리며 말했다.“사람을 찾은 건 오빠였잖아요.”“넌 그냥 병원에 며칠 더 입원하게만 한다고 했어.”“전 그렇게 말했죠. 그런데 오빠가 데려온 사람이랑 어떻게 얘기했는지는 저도 모르잖아요.”“일부러 그런 거지?”문성환은 이제야 깨달았다.문서현은 처음부터 문강찬을 죽일 생각이었고, 그래서 일부러 자신을 부추긴 것이었다.“아버지께 말할 거야. 진짜 범인은 너라고.”문성환은 몸을 돌려 차에서 내리려 했다.“그래요. 말해봐요. 어차피 범인으로 몰리는 건 오빠일 테니까
성하린이 병원에 남아 지키겠다고 했지만 문강찬과 온기찬 모두 반대했다.“임신했잖아. 밤새우면 안 돼.” 문강찬이 말했다.온기찬도 거들었다.“집에 가서 쉬어요. 제가 여기를 지키다가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할게요.”그때 복도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은빛 머리의 노인이 걸어왔다.온기찬이 급히 다가갔다.“할머니.”강차순은 여든이 넘었지만 걸음이 빨랐고, 몸도 매우 정정했으며 눈빛도 또렷했다.그녀는 온기찬의 부축을 뿌리치고 성하린의 앞에 서서 그녀를 위아래로 살폈다.“네가 성하린이냐?”이미 상대의 신분을 짐작하고 있
차에 올라타자 문강찬은 피곤한 듯 미간을 주물렀다.성하린은 옆에 조용히 앉아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그건 모두 문씨 집안의 일이니 그녀와는 상관없었다.“윤슬아... 윤슬아...”문강찬이 갑자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목소리에는 어딘가 애틋하고 부드러운 기색이 섞여 있었다. “할머니가 늘 널 윤슬이라고 부르셨잖아. 사실을 알고 일부러 그랬던 거야?”그는 지난 일을 들먹이며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히려 했다.성하린은 그저 담담하게 그렇다고 한마디 했을 뿐, 그와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문강찬은 갑자기 손을 뻗어 그녀를 끌어안
“윤슬이는 정말 똑똑했어요. 배우는 것도 빨랐고 하나를 알면 열을 아는 아이였죠. 저는 달랐어요. 뭐든 서너 번은 배워야 겨우 익혔어요. 그래도 스승님은 늘 절 격려해 주시고 싫은 내색 한번 없이 몇 번이고 가르쳐 주셨어요.”그 시절의 기억에는 온기가 담겨 있었다.너무 따뜻해서,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윤슬이는 늘 말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우리만의 향수 신앙이 있어야 한다고. 그래서 나중에 ‘24절기’ 향을 만들어 냈죠.”“우리는 약속했어요. 24절기를 널리 알리고, 동양 향수를 전 세계로 알리자고.
문강찬은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선택권을 성하린에게 넘겼다.성하린은 별말 없이 조건을 내걸었다.진태호가 남으려면 자신이 할머니 유골을 가져가게 해달라고 했다.쓸모도 없는 유골 대신 아들이 돌아오는 게 훨씬 이득이라고 생각한 진성국은 이내 동의했다.장례식이 끝난 뒤, 문강찬은 성하린을 해오름으로 데려왔다.일을 정리한 뒤 할머니를 팔리읍으로 모실 계획이었지만 성하린은 단 하루도 기다릴 수 없었다.그녀는 온기찬에게 연락해 당일 차로 바로 팔리읍으로 떠났다.온기찬은 건우도 함께 데려갔다.문강찬이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성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