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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7화

작가: 청연
소명준은 멀어지는 소설아의 뒷모습을 노려보며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분을 참지 못하고 길길이 날뛰었다.

“괘씸하기 짝이 없구나! 감히 나를 이토록 무시하다니!”

그때 점주가 슬그머니 다가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세자 저하, 아까 고르신 최고급 붓과 먹은 어찌하시겠습니까?”

“필요 없다!”

소명준은 거칠게 소매를 떨치며 몸을 돌리려 했다.

그러나 점주가 재빨리 앞으로 나서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소명준은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비웃듯 말했다.

“무슨 짓이냐? 고작 장사꾼 주제에 뭘 믿고 감히 이 세자의 앞길을 막아서는 것이냐?”

점주는 방금 전 소설아가 했던 말을 그대로 흉내 내며 능청스럽게 웃었다.

“대하의 법을 믿고 그러는 겁니다.”

순간 주변에서 구경하던 사람들 사이로 와하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소명준이 얼굴을 붉히며 막 욕설을 퍼부으려는 찰나, 점주가 한발 먼저 입을 열었다.

“아까 고르신 물건값은 모두 합해 오십 냥입니다. 아직 대금을 치르지 않으셨습니다.”

“어느 집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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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여진은 궁 안에 있으니 아무리 권세가 있다 한들 이 먼 곳까지 손을 뻗치지는 못할 터였다.더구나 아직 서북 지역에 지진이 일어나지도 않았으며, 채여진이 황제의 총애를 되찾기까지는 아직도 시간이 필요했다.“어머니,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귀인 마마가 다시 폐하의 총애를 되찾기만 하면, 제가 반드시 방도를 마련해 어머니의 억울함을 풀어 드릴게요. 일개 강호의 사기꾼 따위가 감히 이토록 방자하게 굴도록 내버려 둘 순 없잖아요.”곁에서 듣고 있던 소명지가 순진한 얼굴로 말을 보탰다.“어머니, 우리 향을 더 많이 피우고 부처님께 어머니를 굽어살펴 달라고 빌어요.”민씨는 막내딸을 힐끗 바라보더니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저었다.“내일 혼수를 보내기 전까지 월희 쪽에 사람을 보내 소설아를 찾을 수 있을지 기대해 보는 수밖에 없겠구나.”점심시간이 되자 위원후가 잔뜩 성난 얼굴로 찾아왔다.“요 며칠 밥상이 대체 왜 이 모양이오? 죄다 맹물에 삶은 풀 뿐이니 밍밍해서 어디 입에나 대겠소?”소설아가 종적을 감춘 지난 이틀 동안, 후부의 생활비는 온전히 민씨가 감당해야 했기에 후부 전체의 식단이 다시 맹물에 끓인 채소만 먹던 궁색한 시절로 되돌아간 것이다.위원후는 아직 소설아가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민씨가 변명하듯 털어놓았다.“소설아가 사라졌습니다. 게다가 명주의 혼수까지 몽땅 챙겨서 말입니다.”위원후는 아연실색했다.“뭐라?! 지금 그게 무슨 말이오? 혼수 목록은 진작 원씨 가문 어른들께 올려 확인까지 받지 않았소! 당장 내일이 혼례인데, 혼수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원씨 가문의 비웃음을 산다면 내 체면은 물론 위원후부의 명성까지 땅에 떨어질 것이오! 부인, 똑똑히 들으시오. 내일까지 혼수를 온전히 마련하지 못해 이 위원후부의 명예에 먹칠을 한다면, 그 즉시 사당으로 보내 평생 속죄하게 만들 것이오!”위원후는 노성을 터뜨린 뒤, 분노에 찬 얼굴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민씨는 멀어지는 남편의 뒷모습을 매섭게 노려보며 속으로 이를 갈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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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명주는 생각할수록 등골이 서늘해졌다.돌이켜보면, 최근 주방을 관리하며 후부의 삼시 세끼를 도맡아 온 것은 다름 아닌 소설아였다. 만약 소설아가 자신을 해치려 마음먹었다면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을 것이다.하지만 대체 무슨 연유로? 소설아가 자신을 해칠 까닭이 없지 않은가. 자신을 회임한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어 억지로 혼례를 앞당기는 것이, 소설아에게 도대체 무슨 득이 된다는 말인가.오히려 혼례일이 앞당겨지면, 소설아 쪽에서 행여 마음이 바뀌어 혼약을 무르려 해도 그럴 기회가 영영 사라지는 셈이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지나친 기우를 부린 모양이었다.후부로 돌아온 소명주는 곧장 민씨를 찾아갔다.“어머니, 설아 언니가 아무래도 너무 미심쩍어요. 난화문에 한 번 가보시는 게 어떨까요? 그자들이 설아 언니를 몰래 빼돌린 것일지도 몰라요! 설아 언니를 데려가 버리면 장사를 통째로 독차지하겠다는 속셈이잖아요!”민씨 역시 그 말이 일리가 있다고 여겨, 지체 없이 난화문 골목으로 향했다.한편, 왕준은 민씨가 또 찾아왔다는 전갈을 듣자마자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천불이 치밀어 올랐다.이 빌어먹을 여편네 때문에 금의위에 끌려가 그 모진 매질을 당한 것도 모자라, 얼굴에 '추' 자가 새겨지는 치욕까지 겪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저 미련한 여편네는 여태껏 제 처지도 모른 채, 자신이 대체 누구의 미움을 산건 지 짐작조차 못 하고 있었다.“밖에서 두 시진은 족히 기다리게 놔두거라.”두 시진 후, 방에 들어선 민씨는 이번만큼은 몹시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안방에 발을 들이자마자 구석에 놓인 향로의 불부터 껐고, 하인이 내온 찻잔과 다과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그러나 그토록 철저히 경계를 늦추지 않았음에도, 그녀는 또다시 까마득히 정신을 잃고 바닥에 고꾸라지고 말았다.번쩍 정신이 들자마자 그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제 옷매무새를 살피는 것이었다. 다행히 옷차림은 흐트러짐 없이 온전했다.'그런데 온몸이 왜 이리 욱신거리고 아프지?'이상함을 느끼고 몸을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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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명주는 처소로 돌아가 다시 단장을 가다듬었다.민씨는 눈물을 머금은 채, 애지중지 숨겨 두었던 사재 은자를 꺼내 연회상을 몇 상 마련했다. 원래 하인들에게 상으로 내려주기로 했던 상금도 모조리 없던 일로 해 버렸다.그 탓에 하인들의 원성은 자자했다. 심지어 춘경원의 하녀들과 어멈들마저 불만을 감추지 못했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입을 모아 말했다.“역시 큰 아가씨께서 집안 대소사를 맡아 보시던 때가 훨씬 살기 좋았어.”손님들을 맞이하며 진심으로 웃는 사람은 소명지뿐이었다. 민씨와 소명주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체면만 겨우 유지하고 있었다.그때 왕 부인이 혼수에 보탤 선물이라며 백옥 팔찌 한 쌍을 내놓았다.팔찌는 따스하고 부드러운 윤기를 머금고 있었고, 손목에 하얀 달빛을 두른 듯 맑고 은은한 광채를 뿜어냈다. 한눈에 보아도 범상치 않은 명품이었다.하지만 소명주는 그토록 귀한 선물을 받고도 도무지 기뻐할 수가 없었다.그녀의 낯빛이 시종 어두운 것을 눈치챈 왕 부인이 민씨에게 조용히 물었다.“오늘같이 경사스러운 날 어찌 이리 수심이 가득하니? 명주도 영 웃음이 없어 보이는구나.”민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설아가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지 뭐니.”잠시 말을 멈춘 민씨는 안타까운 기색을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비록 수양딸이지만, 내가 그 아이를 아끼는 마음은 명주 못지않았어. 월희야, 오늘은 마음이 어수선해 대접이 소홀했으니 부디 너그러이 이해해줘.”왕 부인은 어제 만났던 단아하고 어여쁜 소녀의 얼굴이 떠올라 다급히 물었다.“아니, 어쩌다 그런 일이 생겼단 말이니? 사람을 풀어 찾아보긴 했고?”민씨는 미간을 깊게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종적조차 찾지 못했어. 하필이면 그 아이가 명주의 혼수까지 몽땅 챙겨 사라져 버렸지 뭐니.”왕 부인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오늘 명주의 낯빛이 유난히 어둡더라니. 그 아이가 혼수를 들고 달아난 거야?”민씨는 오랜 벗의 손을 꼭 잡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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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아가 가볍게 단장을 하고 춘경원으로 가던 중, 문턱에서 마침 위원후와 마주쳤다.위원후는 얼굴에 화색이 만발해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네 어머니 처소에 귀한 손님이 와 계신다. 이따가 들어가거든 절대 입조심하거라. 강북 최고 지방관 부인을 명주의 혼인 증인으로 모실 수 있게 되다니, 진정 조상님께서 보우하심이야.”그는 곁에 있던 하인에게도 득의양양하게 분부했다. “가서 이 소식을 원씨 가문에도 전하거라. 우리 쪽 혼인 증인이 강북 최고 지방관 부인으로 바뀌었다고 말이다!”그 말을 남긴 위원후는 신이 나서 조상님들께 감사 인사를 올리겠다며 사당으로 향했다.소설아가 아직 방 안에 발을 들이기도 전, 안방에서 훌쩍거리며 우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민씨가 한 중년 부인의 손을 꼭 쥔 채 나란히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그 중년 부인은 필시 강북 최고 지방관의 안주인, 왕 부인일 터였다. 왕 부인 곁에는 열여섯, 열일곱쯤 되어 보이는 어여쁜 소녀가 앉아 있었는데 아마도 그녀의 딸인 듯했다.“월희야아 가만 헤아려 보니 우리가 못 본 지도 벌써 십여 년이나 되었구나. 난 처음에 부군이 외직으로 나가봤자 삼 년이면 될 줄 알았어. 그런데 삼 년이 또 삼 년이 되고, 눈 깜짝할 새 이리 오랜 세월이 흘러버렸지 뭐니. 우리 막내딸 혼처를 알아보러 온 게 아니었으면, 아마 여태 경성에 돌아오지 못했을 거야. 눈 깜짝할 새, 우리도 다 늙어버렸구나.”두 사람은 어릴 적 추억을 나누며 또다시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어머나, 이렇게 좋은 날 어머니와 왕 부인 모두 그만 우시고 활짝 웃으셔요.”곁에 있던 소명주와 소명지가 다정하게 두 사람을 달랬다. 그러고는 방 어멈에게 물을 떠 오게 하여 두 부인이 세수를 할 수 있도록 도왔다.왕 부인이 눈물을 닦아내고 새로 분단장을 마친 뒤에야 안방에 처음 보는 아가씨가 와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이 아이는 뉘 집 규수니?”민씨가 재빨리 소개했다. “이쪽은 설아라고 해. 설아야, 어서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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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명준은 왕 태의 댁에서 한 시진 넘게 기다렸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너희 하인들은 대체 어떻게 된 거냐? 감히 본 세자를 이렇게 홀대하다니!"어린 하녀가 깍듯하게 대꾸했다."세자 저하, 저희 주인님께서는 오늘 시간이 없으셔서 손님을 받지 않으십니다."소명준이 욕설을 내뱉었다."정말 예의라곤 없구나. 본 세자 앞에서 감히 '노비'라 자칭하지도 않고 예의를 밥 말아 먹었느냐!"하녀가 코웃음을 쳤다."공자님이 대체 누구신데요?"소명준은 모욕감을 느꼈다."나는 위원후부 세자 소명준이다!"하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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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번 생은 가족부터 다시 선택할 거야   제1화

    "형부… 서두르지 마십시오…""내가 어찌 서두르지 않겠느냐, 곧 있으면 네 언니가 올 텐데…"바람이 등나무 꽃을 흔들며 고요한 연못에 파문을 일으켰다.소설아는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꿈속에서 그녀는 아직 시집가기 전이었다.그녀는 침실 문 앞에 서서 방 안에서 흘러나오는 음탕한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자세히 분별하지 않아도 안에 있는 남녀가 자신의 정혼자 원태준과 동생 소명주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그녀의 정혼자와 동생이, 그녀의 침실에서, 그녀의 침대 위에서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다.침실 안의 목소리는 마치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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