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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hor: 청연
대청에서 나온 소설아는 거처를 새로 옮겼다.

그 연놈이 더럽힌 곳에는 단 한 발자국도 들여놓고 싶지 않았다.

이 후부도 이제는 더는 머물 곳이 못 되었다. 하지만 조정의 법도상 여인은 홀로 호적을 가질 수 없으니, 혼인도 하지 않은 몸으로 그녀가 갈 수 있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후부를 떠나기 위해서는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야 했다.

소설아가 하녀들을 시켜 이삿짐을 옮기게 하고, 거처를 옮긴 지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 소명주의 시녀가 찾아왔다.

"큰 아가씨, 둘째 아가씨께서 노비를 보내 물어보라 하셨습니다. 아가씨께서 이제 기향원(綺香園)을 비우셨으니, 둘째 아가씨께서 그리로 거처를 옮기셔도 되겠습니까?"

"그러거라."

소설아의 목소리는 매우 차분하고 냉랭했다.

"감사합니다, 큰 아가씨."

어린 시녀의 뒷모습을 보며 단이가 소설아를 대신해 분통을 터뜨렸다.

"큰 아가씨, 둘째 아가씨는 어찌 매번 아가씨의 물건을 뺏으려 안달인 걸까요?!"

"방만 뺏는 게 아니라, 아가씨의..."

'정혼자까지 뺏으려 들다니.'

소명주가 돌아온 뒤로 소설아가 겪은 서러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기 때문에 단이는 마음이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

"고작 방 하나일 뿐인데, 원한다면 주면 그만이다."

소설아가 담담하게 미소 지었다.

"이번 생은 기니, 언젠가 명주와 결판을 낼 때가 오겠지."

소명주와 소명준의 끈질긴 공세에 민씨와 위원후는 마지못해 소명준의 혼사를 허락했다.

그 소식을 들은 소설아는 그저 살짝 웃어 보이고는, 계속해서 손에 든 장부를 넘기며 지난 몇 년간 자신이 후부의 적자를 얼마나 메꿨는지 계산했다.

민씨는 경영에 소질이 없었다. 노부인이 세상을 떠난 뒤로 후부는 매년 적자가 났고, 전답도 절반 이상 팔아치운 상태였다.

하지만 후부의 주인들은 생활 수준을 낮추려 하지 않았고, 여전히 명문가의 체면을 차리며 사치를 부렸다.

소설아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해 노부인이 자신에게 남겨준 쌈짓돈으로 향료 가게를 열었다.

원래는 혼수 관리하는 법을 배우려던 것뿐이었는데, 뜻밖에도 장사가 너무 잘되어 매년 막대한 수익을 올렸고 분점도 여러 곳 내며 경성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다.

재작년 5월, 민씨가 찾아와 돈이 없다며 하소연하자 그녀는 자진해서 후부의 안살림을 맡았고, 그때부터 공금의 적자는 모두 그녀가 메꾸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헌신을 멈출 뿐만 아니라, 그동안 내어준 것들을 하나하나 되찾아올 생각이었다.

"내가 사 오라고 한 도자기와 고화는 어떻게 되었느냐?"

단이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미 부 안으로 들여와 아가씨의 개인 창고에 두었습니다. 지금 보시겠습니까?"

소설아는 장부를 덮으며 미소 지었다.

"가서 보자꾸나."

개인 창고에는 자단목 상자 두 개가 놓여 있었는데, 그중 하나를 열자 수십 개의 도자기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소설아는 화려한 꽃 그림이 그려진 법랑 삼족 향로를 꺼내 손에 들고 자세히 살폈다.

소명준의 방에도 똑같이 생긴 것이 하나 있었다.

하지만 소명준의 것은 진품이고 이것은 사가에서 만든 모조품으로, 두 물건의 가격 차이는 백 배 이상이었다.

자단목 상자 안의 다른 도자기들도 후부의 주인들이 가진 것들과 똑같은 모양이었다.

다른 상자 하나에는 유명 화가들의 서화 모조품이 가득했다.

위원후는 무부(武夫)이면서도 공연히 풍류를 즐기는 척하며 문인들을 흉내 내어 그림 감상을 좋아했다. 예전에 소설아가 그를 도와 유명 화가의 진품을 꽤 많이 사주었었고, 거기에 들어간 은자만 수만 냥이었다.

위원후는 서화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가짜들로 바꿔치기해도 당분간은 눈치채지 못할 터였다.

"방법을 찾아서 이것들로 전부 바꿔 놓거라."

이 세상에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직 은자를 손에 쥐고 있어야 마음이 놓이는 법이다.

속으로 계산을 해보니, 전부 바꿔치기해서 은자로 바꾸더라도 후부가 그녀에게 빚진 돈을 다 갚기에는 역부족이었기에, 은자를 전부 회수할 다른 방법도 더 고민해 봐야 했다.

은자가 어느 정도 회수되면 이 시끄러운 곳을 떠날 생각이었다.

단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가씨, 저, 전부 다 바꾸신다고요?"

"전부 바꿀 것이다."

소설아가 덤덤하게 미소 지었다.

"서두를 것 없다, 천천히 바꾸면 된다. 먼저 어린 주인들 방의 것부터 바꾸고, 민씨의 것은 그가 외출했을 때 바꾸거라."

"네. 조심해서 처리하겠습니다."

단이는 문득 아가씨가 예전과 조금 달라졌다고 느꼈다.

창고에서 나온 소설아가 분부했다.

"제비집 죽 두 그릇을 끓여 오거라. 그리고 계화떡, 다과도 한 접시씩 챙겨서 자등나무 아래로 가져오너라. 경치를 구경하며 먹을 테니."

지난 생에서는 후부에 좋은 물건이 들어오면 항상 민씨 일행이 먼저였다. 민씨는 그녀가 혈기가 왕성하니 제비집 죽 같은 보양식은 적게 먹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녀는 민씨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한 번도 먹지 않았다.

자신이 양녀라는 사실을 안 뒤로는 매사에 조심하며 후부 안의 다른 사람들에게 비굴할 정도로 비위를 맞췄고, 혹여 실수라도 해서 가족들에게 미움을 살까 봐 전전긍긍했으며, 민씨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랐다.

지금 생각해보니 지난 생의 자신은 너무나도 억울하게 살았다.

자신을 억누르며 남을 챙겨주었지만, 그 누구도 그녀의 호의를 기억해주지 않았다.

어렵게 다시 얻은 삶이니, 이제는 과거의 자신에게 잘해주고 싶었다.

그녀도 제비집을 좋아했다.

이번 생에서는 먹고 싶으면 먹을 것이고, 남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다.

단이가 멍하니 물었다.

"아가씨께서 두 그릇이나 드시게요?"

"나 한 그릇, 너 한 그릇이다."

소설아가 단이를 끌어당겨 함께 앉혔다.

"예?"

단이가 깜짝 놀랐다.

"아가씨, 제비집처럼 귀한 것을 제가 어찌 먹습니까."

"내가 먹어도 된다면 되는 것이다."

지난 생에 그녀가 다리가 부러진 채 곳간에 갇혔을 때, 단이는 그녀를 구하려고 여기저기 도움을 청하러 다니다가 결국 민씨의 노여움을 사서 매질 끝에 죽고 말았다.

이번 생에는 이 충직한 시녀를 반드시 지켜줄 생각이었다.

말을 마친 소설아는 단이의 손을 잡고 억지로 자리에 앉혔다.

*

한편, 소명준은 이 기쁜 소식을 임현에게 전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가 하인을 데리고 춘란원에 도착했으나, 임현의 방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문앞에는 시중드는 사람조차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방 안은 어두컴컴했고, 침상에는 누군가 미동도 없이 누워 있었다.

"임현이냐?"

소명준이 다가가 보니 임현은 입술이 마르고 안색이 창백한 채 침상 위에 잠들어 있었다.

"서방님."

임현이 기척을 느끼고 천천히 눈을 떴다.

소명준이 손을 뻗어 확인했는데, 이마가 불덩이 같았다.

"어찌 된 일이냐?"

소명준의 눈에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아프면 사람을 보내 내게 알렸어야지!"

임현은 입을 가린 채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서방님, 첩에게서 멀리 떨어지십시오. 콜록, 병이 옮을까 걱정됩니다, 콜록."

"아가씨께서 어제부터 열이 좀 있으셔서 골목길 의원에서 약을 지어 먹었는데, 나아지기는커녕 병세가 더 심해졌습니다."

어린 시녀가 물을 떠 와 몸을 닦아주려 했다.

"골목길 의원 따위가 무슨 병을 본단 말이냐!"

소명준이 소리쳤다.

"어서 어의(御醫)를 모셔 오너라!"

어린 시녀가 멍해졌다.

"어... 어의요?"

'소 공자님께서 어디 홀리기라도 한 건가? 우리 춘란원 기녀가 아프다고 어의를 부를 수 있었던 적이 언제 있었단 말인가?'

옆에 있던 하인 연서도 정신이 아득해졌다.

'우리 후부의 주인들이 아파도 어의를 모셔 오기 힘든데, 대체 어디서 어의를 부른단 말인가?'

"세자 저하, 소인이 의원이라도 불러올까요?"

"의원은 무슨, 어의를 모셔 오라니까!"

지난 생에 그들의 후부에는 항상 어의 두 명이 상주했고, 태의원(太醫院) 원장까지도 부를 수 있었다.

연서가 멍하니 있는 것을 보고서야 소명준은 이번 생의 자신이 아직 후부의 세자일 뿐이며, 과거 시험에 합격조차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됐다, 내가 직접 가마."

소명준이 임현을 위해 어의를 부르러 간다는 소문에 춘란원의 기녀들이 모두 술렁였다.

"소 공자님, 혹시 귀신이라도 씐 거 아니야?"

소명준은 왕 태의의 저택 앞에 도착했으나 문지기에게 가로막혔다.

"공자님, 저희 주인님을 뵈려면 먼저 명함을 내셔야 합니다."

소명준이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나는 위원후부의 세자 소명준이다. 왕 태의님께서 우리 후부에 오셔서 진찰을 좀 해주셨으면 한다."

지난 생에 그는 왕 태의의 목숨을 구한 적이 있었고, 왕 태의는 그를 볼 때마다 매우 공손하게 대했었다.

이번 생에 왕 태의에게 임현의 병을 한 번 봐달라고 청하는 것쯤은 과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문지기는 후부의 세자라는 말에, 또 소명준이 입은 비단옷을 보고는 귀한 몸임을 직감하고 감히 거절하지 못한 채 그를 대청으로 안내해 기다리게 했다.

왕 태의는 마침 화초를 가꾸고 있다가 하인의 보고를 듣고 의아해했다.

"위원후부의 세자? 어디서 굴러먹던 몰락한 훈귀란 말이냐. 모르는 사람이니 돌려보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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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명준은 왕 태의 댁에서 한 시진 넘게 기다렸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너희 하인들은 대체 어떻게 된 거냐? 감히 본 세자를 이렇게 홀대하다니!"어린 하녀가 깍듯하게 대꾸했다."세자 저하, 저희 주인님께서는 오늘 시간이 없으셔서 손님을 받지 않으십니다."소명준이 욕설을 내뱉었다."정말 예의라곤 없구나. 본 세자 앞에서 감히 '노비'라 자칭하지도 않고 예의를 밥 말아 먹었느냐!"하녀가 코웃음을 쳤다."공자님이 대체 누구신데요?"소명준은 모욕감을 느꼈다."나는 위원후부 세자 소명준이다!"하녀가

  • 이번 생은 가족부터 다시 선택할 거야   제3화

    "소명주,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고나 있느냐?!"민씨는 염주를 쥔 손끝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을 주었고, 눈앞이 캄캄해지며 하마터면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했다.소명주는 민씨의 표정에 겁을 먹었다."어머니, 제 설명을 들어보십시오…"민씨는 무의식적으로 소설아를 붙잡으려 손을 뻗었으나 허공만을 휘저었다.미간을 살짝 찌푸린 민씨는 소설아가 오늘따라 왜 저러나 싶었다.'후부의 세자가 기녀를 아내로 맞겠다는데, 이토록 큰일 앞에서 소설아가 이토록 침착하다니?''가장 격렬하게 반대해야 할 사람은 바로 소설아가 아닌가

  • 이번 생은 가족부터 다시 선택할 거야   제2화

    "아버지, 어머니, 소자는 평생 임현 낭자가 아니면 장가들지 않겠습니다!""임현 낭자가 비록 춘란원(春欄院)의 기녀라 하나 몸가짐이 깨끗합니다. 경성의 수많은 귀공자가 그녀를 위해 천금을 아끼지 않았으나, 그녀는 오직 소자 한 사람만을 허락했습니다.""부디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허락해 주십시오!""만약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내년 과거 시험에도 응시하지 않겠습니다!"소설아가 문에 들어서자마자 들려온 것은 실로 어처구니없는 망언이었다.'오라버니는 여전히 이토록 어리석기 짝이 없구나. 고작 기녀 한 명 때문에 과거 시험을 담보로

  • 이번 생은 가족부터 다시 선택할 거야   제1화

    "형부… 서두르지 마십시오…""내가 어찌 서두르지 않겠느냐, 곧 있으면 네 언니가 올 텐데…"바람이 등나무 꽃을 흔들며 고요한 연못에 파문을 일으켰다.소설아는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꿈속에서 그녀는 아직 시집가기 전이었다.그녀는 침실 문 앞에 서서 방 안에서 흘러나오는 음탕한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자세히 분별하지 않아도 안에 있는 남녀가 자신의 정혼자 원태준과 동생 소명주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그녀의 정혼자와 동생이, 그녀의 침실에서, 그녀의 침대 위에서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다.침실 안의 목소리는 마치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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