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이혼한 뒤 맞은 첫 밸런타인데이. 전이은은 온라인에 공개 구혼 글을 올렸다. [결혼을 전제로 만날 사람 구합니다! 조건만 맞으면 바로 혼인신고 가능!] 함께 올린 사진은 이혼 서류를 들고 선 본인의 전신 사진이었다. 글은 금울시 전체를 뒤흔들었고, 남자들은 기다렸다는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시우는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전처가 이렇게 인기 있으면 줄도 설 수 없게 될 것이다. 결국 화가 난 고시우는 수많은 계정을 사서 댓글창에 열심히 글을 남겼다. [여보, 내가 잘못했어. 내 계정 차단 좀 풀어줘...]
더 보기예전의 이은이라면 차갑게 한 번 흘겨본 뒤,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지나쳤을 것이다.하지만 이번에는 잠시 침묵한 뒤 입꼬리를 올렸다. 말은 날카로웠고 끝까지 파고들었다. “내가 알기로 장 실장은 내 딸을 만난 적이 없죠. 아마 아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를 것 같은데... 엄마인 나도 내 아이 마음을 다 알지 못하는데요.”“어떻게 된 일이죠? 장 실장이 독심술이라도 배웠을까요? 아니면 앞날을 미리 보는 능력이 생겼나요?”“엄마인 나보다 내 아이 마음을 더 잘 안다면, 남의 아이 신경 쓸 시간에 본인 집안부터 챙기시는 게 낫겠어요.”장진은 말문이 막혔다. 눈을 크게 뜨고 이은을 바라보았다. 늘 차갑고 말수가 적던 사람이 이렇게 말로 몰아붙일 줄은 몰랐다. “예를 들면, 장 실장 와이프가 도박에 빠져서 지난달엔 집까지 담보로 잡혔다고 하던데요. 저라면 돌아가서 아내분 속마음부터 들여다보겠어요.”이은은 말을 마치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대표실로 들어갔다.송준은 엘리베이터 쪽에서 천천히 걸어오다가 장진 곁을 지나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장진을 한 번 바라봤을 뿐이었다.이은이 기분이 좋지 않아 장진을 ‘혼냈다’라는 소식은 금세 회사에 퍼졌다.그날 하루 종일 아무도 감히 이은을 건드리려 하지 않았다.모두가 조심했고, 탕비실 출입도 줄였다. 가능하면 각자 자리에서 업무하며 움직이지 않으려 했다.그렇게 오후 3시가 되었다.이은은 서류 가방을 들고 회사를 나섰다. 자료를 준비해 중요한 고객을 만나러 갈 예정이었다.GW그룹의 사업 범위는 넓었다. 엔터테인먼트뿐 아니라 부동산과 관광업에도 손을 대고 있었다.최근에는 관광단지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다. 위치는 금울시가 아니라 근처 바닷가 쪽이었다.“부대표님, 대표님이 예전에 해온읍에서 한동안 지내셨다고 들었습니다. 대표님께 여쭤보면 그쪽을 잘 아실 겁니다.” 송준은 수행 겸 운전까지 맡아 이은을 태워 갔다.이은은 뒷좌석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길고 가는 손가락이
예리가 아들의 집에 있다가 유산하고, 시우가 유니를 때린 일은 주 집사가 이미 문정희에게 전했다. 이은이 딸을 가장 아낀다는 걸 문정희는 잘 알고 있었다. 이은이 친정집으로 돌아갈 정도면 그만큼 몰렸다는 뜻이었다.이 일에서 유니에게도 잘못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우가 아버지로서 잘못 처신한 것도 분명했다.이은은 문정희가 계속 말이 없자, 시우가 회사를 장진에게 맡겼다는 일도 덧붙였다.잠깐이라도 조용해질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몇 분 뒤 통화가 끝났다.이은은 고씨 집안 일을 더 생각하기 싫었고, 오로지 유니와 자신에게 집중했다.이은은 휘란산에 있는 외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혼 문제를 본격적으로 할머니에게 말해야 할 때였다.외할머니는 본래 건강이 좋지 않았다. 이은은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몇 번이나 고민했다.[이은이냐? 정말 오랜만에 외할미한테 전화했구나. 너랑 고 서방은 잘 지내니? 고 서방은 너한테 잘해 주니?]이은이 입을 열기도 전에, 전화 너머에서 외할머니의 늙고도 반가운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노인의 따뜻한 관심은 이은이 준비해 둔 말을 전부 흩어 버렸다.이은과 외할머니 김부자는 한참 안부를 주고받았다. 결국 이은은 김부자에게 이혼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김부자가 계속 같은 말을 했기 때문이다. [이은아, 고 서방이랑 잘 살아야 한다. 네 부모가 하늘에서라도 마음 편히 지낼 수 있게.][전씨 집안은 고씨 집안 덕분에 여기까지 왔어. 우리 집안 사람은 은혜를 알아야 해.]이런 말은 이은도 지겹도록 들었다.하지만 김부자는 지겨워하지 않았다.노인은 말이 많았다. 한 시간 가까이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던 대화가 끝나서야 전화가 끊겼다.외할머니와의 통화가 막 끝나자, 시우의 전화가 곧바로 걸려 왔다.이은은 멍하니 화면을 보다가 손가락으로 수신을 밀었다.[우리 엄마한테 고자질했어?]시우의 답답하고 화난 목소리가 이은의 귀에 박혔다.“아니.” 이은은 부정했다.하지만 사실이 어떻든 시
예리는 역시 배우였다. 들켰다는 당황은 얼굴에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놀라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부대표님, 어떻게 나를 그렇게 오해할 수 있어요?”“내가 뱃속 아이를 얼마나 아꼈고, 지키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부대표님도 알잖아요.”말을 이어 가던 예리는 얼굴을 가리고 울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사람처럼 보였다.이은은 움직이지 않았다. CCTV 영상을 자세히 보지 않았거나, 유니의 팔에 남은 상처를 보지 못했다면 예리의 훌륭한 연기에 속았을지도 모른다.예리는 정말 ‘제대로 된’ 배우였다.연기는 나쁘지 않았다.“강예리 씨, 여기 고시우 없어요. 내 앞에서까지 연기할 필요 없어요.” 이은은 차갑게 말했다. 눈빛에는 피로한 불쾌감이 섞여 있었다.“그 에메랄드 세트는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의 유품이에요. 우리 어머니가 생전에 내 혼수로 남겨 달라고 부탁한 물건이고요.”예리가 눈물을 닦던 손을 멈췄다. 멍한 얼굴로 이은을 올려다보았다. 정말 놀란 듯했다.솔직히 말해 꺼림칙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마침 그때 시우가 물을 받아 돌아왔다.시우는 보온병을 들고 문을 열고 들어왔다. 두 여자의 시선이 동시에 시우에게 향했다.“그 보석이 부대표님 어머니 유품인 줄은 몰랐어요. 시우 오빠가 부대표님이 사과의 의미로 나한테 주는 거라고 해서...” 예리는 다시 공을 시우에게 넘겼다.시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보온병을 침대 옆 협탁에 내려놓았다.시우가 몸을 돌리자, 예리가 입술을 깨물고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빠, 그 에메랄드 세트가 부대표님 어머니 유품이라고 왜 말 안 했어? 알았으면 절대 안 받았을 거야.”시우의 아름다운 얼굴에 적당한 놀라움이 스쳤다. 하지만 곧 잘 감춰졌다.“잊고 있었어.” 한참 뒤 시우가 답했다.이은은 시우가 예리에게 말하는 걸 잊었다는 뜻인지, 애초에 그 보석의 사연을 잊었다는 뜻인지 알 수 없었다.어쨌든 이은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이은은 몸을 돌려 병실을 나섰다. 오
이은은 멈칫했다가 곧바로 사과했다. 민서는 성격이 좋아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민서는 해외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의사였다. 게다가 국내에 심리 전문의가 많지 않아 진료 예약은 이미 이달 말까지 차 있었다.그 말을 들은 이은의 얼굴에 아쉬움이 스쳤다. 유니의 상태는 더 미룰 수 없었다.“이은 씨가 괜찮다면, 저는 한 달에 나흘 쉬어요. 그 휴일 시간을 이용해 아이를 봐드릴 수 있습니다.” 민서는 의자에 앉아 있는 유니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유니는 낯을 심하게 가리지는 않았다. 고개를 들어 민서를 한 번 본 뒤 다시 손에 든 곰 인형을 만지작거렸다.그 한 번의 시선만으로도 민서는 유니가 회피 성향과 자폐스펙트럼장애를 함께 보인다는 걸 판단할 수 있었다.이런 아이는 자기 세계에 오래 머무르고, 계속 회피하려고 한다.지잉- 지잉-때맞지 않은 전화벨이 대화를 끊었다.이은은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보았다. 시우에게 온 전화였다.시우가 재촉하고 있어서 이은은 바로 채연에게 부탁했다.“죄송합니다, 교수님. 제가 10분 정도 자리를 비워야 합니다. 제가 유니를 여기 잠시 두고 가면 아이 상태를 봐 주실 수 있을까요?” 이은은 다시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유니는 채연을 여러 번 만난 적이 있어 거부하지 않았다.채연은 당연히 괜찮다고 했다. 이은은 더 지체하지 않고 진료실을 나와 입원 동으로 향했다.민서는 문가에 서서 멀어지는 이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호기심이 생겨 채연에게 이은에 관해 물었다....“오빠, 유니가 너무 놀랐으니 부대표님이 곁에 있어야지. 못 오는 것도 당연해. 나는 이해해.”시우는 이은에게 전화를 두 번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그리고 기분이 아주 좋지 않은 사람처럼 표정이 차갑게 굳어 있었다.예리는 그 모습을 보고 곧바로 이해심 많은 사람의 역할을 했다.예리가 시우에게 다정하게 말을 막 끝냈을 때였다.쾅!문이 열렸다.이은은 밖에서 막 들어온 터라 온몸에 찬 기운을 두르고 있었다. 검은 코트 위에는 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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