ログイン낮게 내리깔린 먹구름이 당장이라도 제국의 대지를 통째로 짓눌러 부숴버릴 듯, 광화문 앞 광장의 하늘은 온통 납빛 어둠으로 가로막혀 있었다.밤새도록 대지를 찢어발기던 폭풍우는 간신히 멎었으나 대기 중에는 여전히 무겁고 습한 물 비린내와 함께, 코를 찌르는 소름 끼치는 혈향(血香)이 지독하게 배어 있었다.대한제국의 오랜 역사와 영광이 숨 쉬던 제국의 심장부, 광화문 광장은 이제 화려한 축제의 장이 아니었다.주권을 찬탈하고 제국을 마피아에게 팔아넘기려 한 역도들을 처단하기 위해 급조된, 거대하고 끔찍한 핏빛 공개 처형장으로 완벽하게 탈바꿈해 있었다.광장의 외곽을 겹겹이 에워싼 수십만 명의 백성들과, 블랙 쉴드의 무자비한 총구에 밀려 궐내에서 강제로 끌려 나온 수백 명의 내각 대신, 그리고 부패 귀족들은 단 한 마디의 숨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쥐 죽은 듯 얼어붙어 있었다.그들의 겁에 질린 시선이 한곳으로 일제히 향했다.광장 정중앙에 거대하고 둔탁하게 세워진, 검은색 대리석 처형대 위였다.그 처형대 위에는 세 명의 죄인이 무릎이 꿇려진 채 널브러져 있었다.서로를 향한 증오심으로 감옥 바닥에서 온몸의 살점과 피를 뜯어먹어 흉측한 몰골이 된 폐황제 유종석,독기에 서려 발악하다가 이내 눈앞에 닥친 죽음의 공포에 질려 초점 없는
비가 간신히 그친 황궁의 오후는 잔인하리만치 고요했고, 기괴할 정도로 황량했다.하늘을 뒤덮은 먹구름은 물러가지 않은 채 낮게 내려앉아 있었고, 전각의 처마 끝에서는 밤새 고인 빗물이 마치 핏방울처럼 대리석 바닥 위로 툭, 툭 끊임없이 떨어지며 사방의 적막을 깨뜨리고 있었다.황궁 전체가 거대한 상가(喪家)라도 된 것처럼, 모든 빛을 잃은 채 잿빛 어둠 속으로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그 침묵의 중심인 황후전 앞마당, 시은은 상후(喪候)를 알리는 우산을 쓰지도 않은 채 마당 한가운데에 망부석처럼 꼿꼿이 서 있었다.핏기 하나 없이 하얗게 질려버린 그녀의 얼굴은 마치 정교하게 깎아 만든 밀랍 인형처럼 차갑고 굳어 있었고,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에 사정없이 젖어 뺨에 달라붙은 칠흑 같은 머리카락과 검은 드레스 자락은 그녀가 마주한 깊은 상실의 슬픔을 바닥으로 뚝뚝 흘려내고 있었다.그녀의 등 뒤에서 수행하던 궁인들과 한비서는 황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지독한 절망의 기백에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사색이 되어 그 뒤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쿠구구구궁-! 끼이이이익-!!그때, 황후전의 정문을 부수어버릴 듯 거친 엔진 굉음을 내뿜으며, 온통 새카만 폭발의 재와 그을음을 뒤집어쓴 군용 지프차 한 대가 미끄러지듯 마당 한가운데로 들어와 거칠게 멈춰 섰다.차체가 찌그러지고 유리가 산산조각 난 차량
"……!"유리 파편과 거센 비바람이 폭풍처럼 들이닥치는 그 뚫린 허공 사이로, 지옥의 밑바닥에서 방금 기어 올라온 듯 붉은 피와 빗물로 처참하게 범벅이 된 거대한 사신(死神) 하나가 짐승처럼 튕겨 들어왔다."누 .. 누구 헉!"비서실장이 경악으로 동공이 찢어지며 그 괴물을 향해 총구를 돌리기도 전이었다.김민혁의 거칠고 거대한 손이 허공을 가르고 짐승의 아가리처럼 뻗어 나와, 총을 쥔 비서실장의 손목을 낚아채고는 그대로 반대편으로 기괴하게 꺾어버렸다.빠가각!!"크아아아아악!!!"뼈와 인대가 형편없이 으스러지는 끔찍한 비명과 함께 권총이 바닥에 나뒹굴었다.하지만 민혁의 자비 없는 도륙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그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허리춤에서 거대한 티타늄 대검을 뽑아 들어, 고통에 몸부림치는 비서실장의 두 무릎을 향해 무자비하고도 정확한 횡베기를 날렸다.서걱-!"아아아아악!! 내 다리!! 내 다리이이!!"비서실장의 두 무릎 아래가 단칼에 무 썰리듯 잘려 나가며, 붉은 피 분수를 천장까지 뿜어냈다
뚜- 뚜- 뚜-.통신이 끊어진 위성 전화기 너머의 공허하고 소름 끼치는 기계음이 시은의 귓가에서 이명처럼 맴돌며 그녀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었다.힘이 풀린 손에서 미끄러진 위성 전화기가 대리석 바닥에 부딪혀 산산조각 나는 소리조차, 아득하게 멀어진 채 들리지 않았다."마, 마마! 정신 차리시옵소서! 마마!!"사색이 된 한비서가 주저앉은 시은의 어깨를 필사적으로 붙잡고 흔들었지만, 시은의 텅 빈 동공은 초점을 잃은 채 허공을 부유할 뿐이었다.'아버님..'14년 전, 고작 13살의 어린 딸을 늑대와 짐승들의 소굴 같은 황궁으로 시집보내며, 홀로 돌아서서 피눈물을 삼키던 아버지,무능하고 탐욕스러운 황제 유종석의 끝없는 핍박 속에서도, '민석그룹'이라는 거대한 자본의 성벽을 피땀으로 쌓아 올려 기어이 딸의 가장 완벽하고 튼튼한 방패가 되어주었던,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따뜻했던 산,그 아버지가...무려 14년 동안 수족처럼 가장 가까이에서 믿고 의지했던 비서실장의 칼에 등 뒤를 찔려 피를 토하고, 무너지는 건물의 잔해 속에 묻혔다."아... 아아...아버님 아버님 !"
가장 치열하고 피비린내 났던 전장의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뒤,역설적이게도 대한제국 황궁의 오후는, 그 어느 때보다 고요하고 눈부시게 평화로워 보였다.맑게 갠 하늘 아래로 따스한 가을 햇살이 황궁의 황금빛 기와 위로 찬란하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대대적인 120명 고위직 숙청 작업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고,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던 썩은 권력의 잔재들은 차가운 법의 심판대와 백사 부대의 총구 앞에서 완벽하게 고개를 숙였다.황후 민시은은 내의전 특별 병동, 자경전(慈慶殿)에 누워있는 대비마마의 병문안을 마치고 긴 복도를 천천히 걷고 있었다.14년 동안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던 거대한 족쇄가 마침내 풀린 듯, 그녀의 발걸음은 평소보다 아주 조금 가벼워 보였다."마마"그녀의 반보 뒤를 조용히 따르던 한비서가 걸음을 멈추고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그의 양손에는 최고급 은쟁반이 들려 있었고, 그 위에는 붉은 밀랍으로 단단히 밀봉된 고급스러운 편지 한 통이 고이 놓여 있었다."아버님이신 민현석 회장님께서 보내신 친필 서신이 막 당도했습니다.""아버님께서?"시은의 차갑고 서늘했던
같은 날 오전 7시,동이 트며 평화롭고 고요하게만 보이던 대한제국의 아침은, 도시 전체의 정적을 찢어발기는 거친 사이렌 소리와 무장 헬기의 프로펠러 굉음과 함께 완벽한 아수라장으로 변모했다.쾅-!!"뭐, 뭣들 하는 짓이냐!! 내가 누군지 알아?! 명색이 이 제국의 국고를 책임지는 내각 재무대신이다! 감히 뉘 안전이라고 군홧발로 현관문을 부수고 함부로 쳐들어와!!"수도 한복판에 자리 잡은 수백 평짜리 최고급 대저택,최고급 이탈리아산 실크 잠옷 차림의 재무대신 박기태가 아침 식사 중 별안간 들이닥친 괴한들에 놀라 식탁을 뒤엎으며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고함을 질렀다.그러나 오만방자했던 그의 그 호통은, 육중한 방탄복과 검은 복면을 쓴 블랙 쉴드 정예 요원 십여 명이 그의 머리에 차갑고 시퍼런 소총 총구를 일제히 들이밀자, 단숨에 짐승의 비루한 앓는 소리로 변해버렸다."황후 마마의 특명이다."부대장이 얼어붙은 재무대신의 이마에 총구를 강하게 밀어붙이며 차갑게 선언했다."재무대신 박기태 당신을 국가 국고 3천억 횡령 및 반란 방조 그리고 내란 음모죄로 이 시간부로 긴급 체포한다.""황....황후가! 나....나는 폐하의 충신이 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