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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편지 봉투에 적힌 “추”라는 글씨체, 너무나도 익숙하고 정겨운 필체를 어루만지던 조연아가 떨리는 손으로 편지지를 펼쳤다.

[연아야, 많이 힘들었지? 그래도 엄마는 네가 자랑스러워. 사랑이라는 마음을 너처럼 마음껏 표현하는 것도 꽤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거든. 우리 딸, 너무나 힘든 사랑 누구보다 잘 해냈어. 그래서 엄마는 네가 자랑스러워. 솔직히 네가 지훈이한테 그렇게까지 목매는 걸 보면서 엄마로서 속상하기도 했어. 우리 딸, 어디 내놔도 부족하지 않은 보석같은 아이인데 왜 굳이 저렇게 힘든 길을 걸으려 하는 걸까 싶어서. 그래서 가끔씩 더 모질게 널 꾸짖었던 것 같아. 하지만 지훈이를 바라보는 네 눈동자가 너무 반짝여서 더는 뭐라고 못하겠더라. 안쓰러운 것과 별개로 네가 한 선택이니 무조건으로 응원해 주고 싶었어. 엄마는 그런 존재니까. 이건 엄마가 너랑 연준이한테 주는 마지막 선물이야. 연준이는 조인주업을, 넌 스타엔터를 맡도록 해. 스타엔터 지분 30%, 넉넉하진 않지만 적어도 회사에서 네 목소리를 낼 정도는 될 거야.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게 이 정도뿐이라 미안하지만 내 자식들이라면 그 어떤 시련이 있어도 누구보다 씩씩하게 이겨낼 거라고 믿어. 연아야, 연준아, 엄마는 평생 일에 빠져서 살았지만, 생의 마지막에서 삶을 돌아보니 엄마가 한 일 중 가장 잘한 게 너희 둘을 낳은 일인 것 같아. 엄마는 이제 그만 편해지려고. 엄마 없다고 너무 슬퍼하지 말고 더 씩씩하게 살아. 너랑 연준이는 엄마가 이 세상에 남겨둔 마지막 빛줄기나 마찬가지니까. 사랑한다, 내 자식들.]

“흐흑, 엄마...”

편지를 다 읽은 조연아는 편지지를 가슴에 부둥켜안은 채 한참을 오열했다.

민지훈과의 결혼을 반대하는 엄마가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는데 못난 딸 뭐가 이쁘다고 지분까지 남겨주셨을까?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걱정만 안겨주는 천하의 불효녀가 또 어디 있을까?

만약 다시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모든 걸 다시 시작할 수만 있다면 민지훈을 볼 수 없는 곳으로 멀리 떠날 텐데...

“연아야, 회장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네 행복만 바라셨어. 이제 그만 양주로 돌아가서 스타엔터 물려받자.”

한참 뒤에야 감정을 추스른 조연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절망과 슬픔으로 가득 찬 임천시, 이제 여길 떠나야 할 때겠지.’

예상 퇴원일보다 하루 일찍 퇴원한 조연아가 병원을 나섰다.

이제 정말 겨울이 왔는지 눈이 부슬부슬 내리는 날, 아름답지만 이곳을 떠나는 그녀의 마음처럼 너무나 추운 날이었다.

패딩을 여민 조연아는 택시에 몸을 실었다.

“YC팰리스로 가주세요.”

“YC팰리스요? 거리가 꽤 되는데. 거긴 무슨 일로 가시려는 거죠?”

인상 좋은 택시기사가 껄껄 웃었다.

“만날 사람이 있어서요.”

……

“YC팰리스는 민하그룹 민지훈 대표가 사는 곳인데. 혹시 아는 사이십니까?”

기사의 질문에 조연아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는 사이... 글쎄? 한때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낯선 사이기도 하지.’

“크흠, 그래요.”

백미러로 그녀를 힐끗 바라본 택시기사가 말없이 운전을 시작했다.

“도착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택시에서 내린 조연아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눈이 말끔하게 치워진 오솔길을 걷던 그때,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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