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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고고한 표정으로 이 말을 내뱉은 민지훈은 이 공간에 더는 머물고 싶지 않다는 듯 미련 없이 자리를 떴다.

빗속을 뚫고 사라지는 롤스로이스를 바라보던 조연아는 쓴웃음을 내뱉었다.

“그러게 착하게 살았어야지.”

민지훈의 차가운 말이 메아리가 되어 조연아의 가슴을 울리고 또 울렸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내가 뭘 더 어떻게 했어야 하는데. 내게 잘못이 있다면 널 사랑한 죄뿐인데...’

민지훈은 그저 그녀의 마지막 자존심마저 짓밟기 위해 온 것인데 행여나 그녀를 도와주러 온 게 아닐까 잠시나마 기대했던 스스로가 너무나 비참하게 느껴졌다.

“윽...”

복부쪽에서 고통이 또다시 밀려오고 뜨거운 피가 다리 사이로 흘러내리며 병원복을 적셨다...

하지만 조연아는 지금 느껴지는 이 고통이 부서질 듯 아픈 몸 때문인지 찢어질 듯 아픈 마음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두 번째 출혈, 병원으로 긴급 이송된 조연아는 바로 대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조연준 역시 매를 맞긴 했지만, 가벼운 타박상에 불과한 반면, 얼마 전 유산을 한 데다 비까지 맞은 조연아는 그야말로 죽을 고비를 넘겨야만 했다.

핏기 하나 없는 창백한 얼굴로 눈을 뜬 조연아가 가장 먼저 들은 건 민지훈이 이혼 발표를 했다는 말이었다.

절망적인 눈동자로 가만히 듣고 있던 조연아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기사까지 났으니 이제 정말 번복은 안 되겠구나...’

하지만 곧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어 보이는 그녀다.

‘조연아, 정신 차려. 설마 다시 돌이킬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 아직도 민지훈을 포기하지 못한 거냐고.’

시어머니 때문에 아이를 잃었고 그 사실을 솔직하게 말했을 때 그는 그녀의 연기력을 비웃었고, 양조장에 쓰러져서 제발 누구라도 그녀를 구해주길 바랐을 때 그는 누구보다 더 잔인하게 그녀의 자존심을 짓밟았다.

11년간 불태운 사랑이 그녀에게 남긴 건 그저 수많은 상처뿐, 그 흔한 행복한 기억 한줄기 없는 결혼생활, 도대체 뭘 바라고 그 긴 세월을 버텼던 걸까.

공허함, 허탈함이 밀려오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애써 이성을 유지해 보아도 그럴수록 슬픔은 더 크게 다가왔다.

“똑똑똑.”

이때 노크 소리가 울리고 조연아는 빠르게 볼에 묻은 물기를 닦아냈다.

부드러운 인상이 인상적인 수트차림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당연하게도 병실에 들어선 건 민지훈이 아니었다.

알면서도 밀려오는 헛헛한 실망감에 스스로가 너무 한심스럽게 느껴지는 조연아다.

“연아야, 이거 봐라?”

고주혁, 유명 변호사이자 엄마의 유능한 조력자였던 사람, 조연아에게는 누구보다 고마운 은인이었기에 그녀는 싱긋 웃어 보였다.

조연아는 가장 좋아하는 가게의 단팥빵 포장백을 힐끗 바라보았다.

“고마워, 오빠.”

“고맙긴.”

고주혁이 백에서 단팥빵을 꺼내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많이 먹어. 한 시간이나 줄 서서 겨우 사 온 거니까.”

고주혁, 민지훈과는 어쩌면 정반대인 남자다. 민지훈이 겨울날 매서운 칼바람 같은 사람이라면 고주혁은 화창한 봄날의 따뜻한 햇살, 간지러운 바람 같은 사람이었다.

‘참 좋은 사람이긴 한데...’

이런 친절함, 이런 따뜻함을 원했던 사람은 단 하나뿐이었는데...

권유를 못 이기고 단팥빵을 베어 문 조연아는 목구멍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평소에 그렇게 좋아하던 달콤한 팥앙금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쓰게 느껴지는 걸까...

잠깐의 침묵을 깬 건 고주혁이었다.

“연아야, 아직도 그 사람이 포기가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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