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두 사람은 질척한 길을 미친 듯이 달렸다.그러던 중 진춘심이 발을 헛디뎌 그대로 바닥에 넘어졌다.“아!”비명이 터졌다. 발목이 보기에도 이상한 각도로 꺾였다.혜니는 새하얗게 질려 곧장 돌아가 진춘심을 일으키려 했다.“엄마! 괜찮아?”“발목... 발목을 삔 것 같아...”통증 때문에 진춘심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혜니가 휴대전화를 꺼냈지만 화면에는 ‘서비스 지역 아님’이라는 표시만 떠 있었다.신호가 완전히 끊겼다.앞쪽 길은 쓸려 내려온 흙과 돌에 완전히 막혀 있었다.두 사람은 꼼짝없이 갇혔다.혜니가 진춘심을 붙
“우리 귀요미, 얼굴이 완전히 꼬질이가 됐네.”경서는 나래를 보자 날이 서 있던 기운이 금세 풀렸다. 쪼그려 앉아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주머니를 뒤졌지만 티슈가 없었다.그때 마디가 반듯한 큰 손이 곱게 접힌 손수건을 내밀었다.경서는 고개도 들지 않고 받아 나래 입가에 묻은 딸기즙을 조심스레 닦아줬다.그제야 윤모는 아이 얼굴을 제대로 봤다. 큰 눈에 긴 속눈썹, 또렷한 이목구비까지 인형처럼 예뻤다.윤모는 아이를 알아봤다. ‘달님’의 동생이라고 알고 있던 아이였다. 그렇다면 은서의 동생이자 경서의 동생이기도 했다.틀림없
경서는 숨을 깊이 들이마신 뒤 억지웃음을 지었다.“심 대표님, 우리 집 정원 쪽에 거북이가 새끼를 낳았는데 보러 가실래요?”윤모가 눈썹을 들어 올렸다. 형편없는 핑계라는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그거 꽤 신기하겠네. 구경이나 하지.”거실 사람들은 멍해졌다. ‘거북이는 원래 알을 낳는 동물 아니었나?’‘새끼를 바로 낳은 거라면... 이건 연구소에 신고해야 할 수준인데.’윤모는 긴 다리로 느긋하게 밖으로 향했다. 반듯한 뒷모습에서도 압박감이 느껴졌다.경서가 서둘러 뒤따랐다.정원 구석진 곳까지 가서야 경서는 더 참지
문 앞에는 키가 훤칠한 남자가 서 있었다. 잘 맞는 검은 정장이 넓은 어깨와 날렵한 허리선을 감쌌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강한 존재감이 느껴졌다.윤모였다.‘심 대표가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온 거야?’은서는 멍하니 굳었다가 곧 얼굴에 환한 기쁨을 띠었다.마지막 동아줄이라도 잡은 듯 윤모에게 급히 달려갔다.“심 대표님, 저 도와주러 오신 거예요?”은서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윤모의 옷자락을 움켜잡았다.“언니가 저더러 N시를 떠나래요. 저 좀 도와주세요. 이대로 가면 앞으로 저 못 보실 수도 있어요.”경서의 가슴이 철렁했다
남자는 하동테크의 한 팀을 맡고 있는 정준이었다.그날 경서를 속여서 휴게실로 보낸 장본인이기도 했다.정준은 은서를 보자마자 거의 기다시피 달려들었다.“은서 아가씨, 살려주세요!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전 아무 상관 없습니다. 약도 아가씨가 준 거고, 시킨 것도 아가씨잖아요!”“무슨 헛소리야!”은서는 혼이 빠질 만큼 놀라 연달아 뒤로 물러났다.“난 당신 모른다고!”정준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재생 버튼을 눌렀다.고요하던 거실에 또렷한 녹음 음성이 흘러나왔다.“약은 와인잔에 넣어. 조금 뒤 건배할 때 직원한테
‘그럼 하씨 본가로 가면 되겠네.’‘마침 하동승도 있을 테니 빚 얘기를 꺼내기에는 오히려 더 좋지.’윤모가 속으로 생각했다....그 시각, 하씨 집안 본가.거실에는 무거운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하동진 가족 세 사람도 모두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상석에는 백발이 성성했지만 여전히 정정한 하씨 집안의 큰어른, 장명희가 앉아 있었다.하동진이 장명희 곁으로 다가가 근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어머니, 오늘은 꼭 은서 편을 들어주셔야 합니다.”“은서도 어머니 친손녀잖아요. 요즘 언론이 매일 쫓아다녀서 집 밖에도 못 나갑니다
‘내가 취한 건가?’샴페인 한 잔 마셨다고 이럴 리가 없었다.혜니는 접시를 내려놓고 서둘러 인우를 찾았다.인우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하지만 또다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그때 키 큰 남자 하나가 갑자기 혜니의 앞을 가로막았다.“아가씨, 정말 아름다우시네요. 저랑 잠깐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죄송합니다. 지금 급한 일이 있어서요.”혜니는 남자를 피해 지나가려 했다.그러나 남자는 웃으며, 휘청이는 혜니의 몸을 덥석 붙잡았다.“좀 취하신 것 같은데요. 제가 정원에 모시고 나가서 바람 좀 쐬게 해 드릴게요.
인우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아이는?”“없습니다.”“좋군.”인우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혜니는 그런 인우를 한 번 바라보았다.‘좋긴 뭐가 좋아.’‘그때 남겨 놓은 네 ‘보물’ 때문에 내가 죽을 뻔했어!’“됐어. 회의 있습니다.”인우가 새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소 비서, 따라와.”“네, 대표님.”새연은 기쁜 얼굴로 회의록을 적을 노트를 챙기러 갔다....결국 회의는 세 시간이나 이어졌다.새연의 키보드는 불꽃이라도 튈 듯 쉴 새 없이 두드려졌다.‘우리 새 대표님... 확실히
엘리베이터 안의 공기가 그대로 굳어 버린 듯했다.사실 혜니는 어젯밤에도 인우의 꿈을 꾸었다....은행나무 아래, 매트, 별빛, 이혼하던 날의 마지막 작별. 혜니가 울부짖었고, 인우는 뜨거운 숨을 귓가에 뿌리며 끝을 정하는 건 자신이라고 했다. “한인우, 이제 그만해.”혜니가 참다못해 목소리를 높였다.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마음까지 산산이 부서지는 기분이었다.인우는 낮게 숨을 내쉬며 혜니를 내려다보았다.뜨거운 기운이 가까이 닿았지만, 인우의 눈빛은 이상하리만큼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그렇게 소리칠 힘은 남아 있
“공주님, 얼른 신발 신자. 늦겠다!” 바쁜 아침, 시간에 쫓기는 윤혜니의 목소리에는 초조함이 묻어 있었다.“싫어! 오늘 어린이집 안 갈래!” 나래는 미꾸라지처럼 몸을 비틀며 말랑한 목소리로 항의했다.“아이고, 우리 착한 아가. 오후에 엄마가 딸기 생크림 케이크 사 줄게. 딸기 맛이야.” 혜니는 온갖 방법을 다 써 목소리를 한껏 부드럽게 낮췄다.달콤한 회유가 통하자 나래는 마지못해 조그만 발을 내밀었다.혜니는 잽싸게 신발을 신기고 아이를 안아 들었다. 계단을 내려가며 핸드폰을 꺼내 소새연에게 전화를 걸었다.“새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