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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2화

Author: 이야기보따리
“나 지금 바로 갈게요.”

하종호가 전화 너머에서 바로 답했다.

유미나는 담요 한 장을 들고 와 심유빈에게 덮어주고는 옆에 앉아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아침까지만 해도 혈색이 좋았는데 지금 눈앞에 앉아 있는 심유빈은 얼굴이 종이처럼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정말로 한순간에 피와 기운을 몽땅 빼앗긴 사람처럼 보였다.

‘또 피를 뽑은 건가? 하지만 지난번 채혈한 지 아직 일주일도 안 됐는데...’

그녀는 따뜻한 물 한 컵을 따라 가져왔다.

“물 좀 마셔.”

심유빈이 팔을 들어 올리는 순간 통증에 작게 숨을 들이켰다. 흰 니트 아래로 붉은색이 번져 나오고 있었다.

“유빈아, 여기 피 나고 있어!”

유미나가 놀라며 말했다.

심유빈은 급히 소매를 걷어 올렸다. 주삿 바늘이 꽂혔던 자리에서 다시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약상자 좀 가져와... 빨리.”

유미나는 아무 말 없이 바로 약상자를 가져왔다. 지혈 거즈를 꺼내 건네주자 심유빈은 그것을 상처 위에 세게 눌렀다.

‘단 한 방울도 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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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1536화

    심유빈의 어린 시절은 매질과 욕설, 어머니의 철저한 외면으로 채워져 있었다.심유빈이 고이한에게 의지하며 삶이 완전히 달라진 뒤에야 심미정은 조금씩 어머니다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하지만 지금 심미정이 내뱉은 말은 심유빈에게 또 다른 사실을 깨닫게 했다.지난 몇 년 동안 심유빈은 좋은 음식과 값비싼 술을 챙기며 어머니를 보살폈다. 하지만 결국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어머니의 진심 어린 관심도 사랑도 아니었다.심유빈은 한때 수천만 명의 팬들에게 사랑받던 사람이었고 국제 무대에서는 피아노 여신이라 불리기도 했다.누구보다 강한 자존심으로 버텼는데 지금 심유빈은 이렇게까지 무너져버렸다.“유빈아, 그 하종호 말이야... 하종호가 예전부터 계속 너 좋아했잖아. 결혼했다고 해도 한번 찾아가 봐. 조금만 도와달라고 하면 이 빚 정도는 갚을 수 있지 않겠어?”“입 다물어요!”심유빈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 목소리는 너무 차가워 등골이 서늘할 정도였다.“엄마가 저지른 그런 더러운 일들, 저는 상관하지 않을 거예요.”“유빈아, 유빈아...”심미정은 몇 초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자신이 방금 내뱉은 말이 얼마나 잔인한지조차 깨닫지 못한 듯했다.심유빈은 휴대폰을 집어 들고 문을 세게 닫은 뒤 밖으로 나갔다.밖에서는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고 하늘에는 밝고 깨끗한 달이 떠 있었다.모든 것이 문득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 순간 하종호의 다정하고 부드러운 얼굴이 떠올랐다.마치 오래전에 끝나버린 한 장면처럼 매일 그녀에게 안부를 묻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처럼 대해주던 그 남자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만약 하종호가 지금 그녀 앞에 나타난다면 심유빈은 아마 그의 눈을 제대로 바라볼 용기조차 없을 것 같았다.그의 눈에서 혐오와 경멸을 마주하게 될까 두려웠다.자신이 이런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그는 결국 자신에게서 멀어질 거라고 생각했다.심유빈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휴대폰을 꺼내 하종호에 관한 소식을 검색했다.최근 하종호가 언론에 포착된 것은 공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1535화

    “못 믿겠으면 네 엄마한테 직접 물어봐. 자기가 얼마 빚졌는지 본인이 제일 잘 알 테니까.”심유빈은 이 사장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는 이 근처에서 칠팔 년 동안 가게를 운영해 온 사람이었다.“제가 대신 갚을게요.”심유빈을 휴대폰을 꺼냈다.사장은 그녀가 돈을 보내려는 모습을 보자 서둘러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입금 처리를 했다.확인이 끝나자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였다.“다음부터는 어머니한테 돈 없으면 도박하지 말라고 해.”문을 닫고 들어온 순간, 심유빈의 마음은 바닥까지 가라앉았다.보름 남짓한 시간 동안 그녀는 이미 두 번이나 어머니 대신 빚쟁이들의 돈을 갚아주었다.남은 돈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돈을 어머니의 도박 빚을 갚는 데 쓰고 싶지는 않았다.삼십 분 뒤, 심미정이 돌아왔다.소파에 앉아 있는 딸을 본 순간 심미정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과 눈치를 살피는 표정이 스쳤다.“유빈아, 뭐 먹었니?”심유빈의 시선이 차갑게 어머니에게 향했다.“밖에서 도대체 얼마를 빚진 거예요? 전부 솔직하게 말해요.”“유빈아, 나... 나 그렇게 많이 빚진 건 아니야.”심유빈은 옆에 있던 쿠션을 집어 그녀에게 던졌다.“빨리 말해요. 안 그러면 엄마가 죽든 살든 저도 더는 신경 안 쓸 거예요.”심미정은 놀라 몸을 움츠렸다.그러고는 침실로 들어가 장롱 안에서 작은 노트 하나를 꺼내 왔다. 딸에게 노트를 건네는 손끝은 조심스러웠지만 끝까지 눈은 마주치지 못했다.심유빈은 그녀의 손에서 노트를 거칠게 낚아챘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노트를 펼치자 안에는 날짜와 빚 목록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몇십만 원부터 수천만 원에 달하는 금액까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총액이 정리되어 있었다.약 십오억이 넘는 금액이었다.심유빈은 온몸에 힘이 빠져 그대로 쓰러질 것 같아 급히 소파를 짚으며 숨을 몰아쉬었다.“엄마... 어떻게 이렇게 많은 돈을 빚질 수가 있어요? 이 돈을 도대체 무슨 수로 갚으려고요?”심미정은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1534화

    고이한은 그녀가 건넨 재킷을 받아 팔에 걸친 뒤, 아이패드를 들었다.“가자. 강 박사 좀 보러.”두 사람이 차례로 휴게실을 나서자 복도 의자에 앉아 있던 김경환이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고이한이 건넨 아이패드를 받아 들었다.강준석은 이미 깨어 있었다. 서류를 살펴보는 그의 안색은 전날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예지야, 대표님이랑 먼저 가서 일 봐. 여긴 이제 내가 알아서 하면 돼.”소예지가 잠시 망설였다. 옆에 있던 이서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그래. 예지야, 실험실로 돌아가. 내가 여기 남아서 지켜볼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할게.”고이한도 소예지를 바라봤다.“실험실까지 데려다줄게.”결국 소예지도 더는 거절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강 선배. 그럼 먼저 갈게.”그녀는 이서연을 향해 다시 한번 당부했다.“일 있으면 바로 전화해.”병원을 나온 뒤, 고이한은 직접 운전해 소예지를 실험실까지 데려다주었다.실험실에 도착한 소예지는 흰 가운으로 갈아입고 안으로 들어갔다. 고이한은 곧바로 실험실 책임자의 사무실로 향했다.이번 안채린 사건 이후 내부 관리 체계를 다시 점검하고 직원들의 업무 상태와 근무 환경을 확인해야 했다.같은 시각, D국의 낡은 아파트 안.심유빈은 조용히 하루를 견디고 있었다. 이곳에 온 지도 어느덧 보름이 넘었다.그녀는 어머니의 아파트에서 지내고 있었다.예전에 어머니를 위해 사준 집이었고 지금 그녀가 그나마 안정적으로 머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하지만 과거 그녀가 누렸던 삶과 비교하면 삼십 평 남짓한 이 집은 지나치게 좁고 답답했다.어머니는 여전히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가 밤늦게 돌아왔다.사람들을 만나고 각종 모임에 시간을 쓰느라 딸에게 제대로 된 세 끼 식사조차 챙겨줄 여유가 없었다.심유빈 역시 오랫동안 요리를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었고 직접 손을 움직여야 했다.열여덟 살 이전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지워버리고 싶을 만큼 치욕스러웠던 시절, 그때 억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1533화

    블라인드 사이로 스며든 오후의 햇살이 바닥 위에 옅은 무늬를 드리우고 있었다.고이한은 소파 한쪽에 등을 기댄 채 태블릿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화면 위로는 실시간 환율 그래프가 붉고 푸른 선을 그리며 끊임없이 오르내렸다. 그 미세한 변화를 그의 깊은 눈동자가 그대로 담아내고 있었다.길고 단정한 손가락이 이따금 화면을 스치며 몇 개의 수치를 확인하고 표시를 남겼다.하지만 오래 집중하지는 못했다.그의 시선은 어느새 몇 번이고 맞은편 소파에서 몸을 웅크린 채 잠든 여자에게로 향했다.소예지는 어젯밤 제대로 잠들지 못한 데다 몸살기까지 겹쳐 평소보다 훨씬 깊이 잠들어 있었다.가지런한 속눈썹이 조용히 눈가를 덮고 있었다.평소의 차갑고 날카로운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채, 잠든 얼굴에는 한없이 느슨한 기색만 남아 있었다.고이한의 눈빛이 서서히 깊어졌다.그는 애써 시선을 거두고 다시 태블릿 화면으로 돌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소예지가 잠결에 자세를 바꾸며 옆으로 몸을 돌렸다.이마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 한 올이 눈가에 걸리자 그의 시선은 다시 그곳으로 향했다.몇 초 동안 그 머리카락을 바라보던 고이한은 결국 태블릿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그가 무심코 뻗은 손끝은 머리카락보다 먼저 소예지의 뺨에 닿았다.부드럽고 따뜻한 감촉이 전해지는 순간, 고이한의 목울대가 저도 모르게 움직였다.조용한 휴게실 안에서는 그 작은 움직임마저 유난히 선명하게 느껴졌다.그 순간 소예지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고이한의 손이 그대로 멈췄다.그녀의 미간이 다시 스르르 풀리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그는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여 이마 위로 내려온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손끝이 그녀의 귓바퀴를 스치듯 지나갔다.고이한은 천천히 손을 거두려 했지만 어느새 손끝은 그녀의 귓불에서 뺨으로 옮겨가 있었다.그의 손길이 유난히 뜨겁게 느껴졌는지 잠든 소예지가 살짝 몸을 뒤척였다.그러고는 무의식적으로 그의 정장 재킷 자락을 끌어당겨 얼굴 반쪽을 따뜻한 옷감 안에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1532화

    “상처가 조금 깊은 것뿐이야. 며칠 쉬면 괜찮아질 거야.”강준석이 고개를 들어 고이한을 바라보았다.“고 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다음 주 제품 발표회에는 지장 없을 겁니다.”그 말에 소예지가 고이한을 돌아보았다.‘설마 고이한이 강 선배에게 무리해서라도 발표회에 참석하라고 한 건 아니겠지?’그녀의 표정에 의심이 스치는 걸 본 고이한이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는 억울하다는 듯 강준석을 바라보았다.“상처가 생각보다 심한데 무리하지 않는 게 좋겠어.”강준석이 순간 당황했다. 방금 자신의 말 때문에 소예지가 오해했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예지야, 오해하지 마. 대표님이 나한테 강요하신 게 아니야. 내가 스스로 가고 싶은 거야. 절대 대표님 탓하지 마.”그제야 소예지도 자신이 조금 과하게 반응했다는 걸 깨달았다.강준석이라면 이 프로젝트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오랫동안 공들여온 일이었고 몸 상태만 허락한다면 어떻게든 발표회에 참석하려 할 사람이었다.그런 선택은 누가 시킨다고 해서 바뀔 게 아니었다.고이한의 눈빛에 희미한 웃음기가 떠올랐다.“강 박사를 내가 말려줄까?”소예지가 당황해 고개를 저었다.“강 선배가 직접 결정하게 해.”옆에서 지켜보던 이서연은 내심 놀란 눈치였다. 소예지가 고이한을 대하는 분위기가 예전과 사뭇 달라져 있었다.그리고 처음으로 고이한이 이렇게 편안하게 웃는 모습을 보았다.강준석도 가볍게 웃으며 덧붙였다.“대표님이 나한테 강요하신 게 아니야. 내가 직접 이 발표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거야. 걱정하지 마. 나 정말 괜찮아.”소예지가 조금 멋쩍은 듯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좋아. 하지만 약속해 줘.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절대 억지로 버티지 마.”“그래. 약속할게.”강준석이 확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발표회 날에는 현장 근처에 의사를 대기시켜 둘게.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바로 대응할 수 있게.”고이한이 말한 뒤, 시선을 소예지에게 옮겼다.“당신도 너무 걱정하지 마.”그때, 병실 문이 열리고 경찰관 두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1531화

    소예지는 고이한의 솔직한 고백에 잠시 말을 잃었다.그가 자신의 잘못을 이렇게 직접 인정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몇 초간 그를 바라보다 소예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이미 벌어진 일이니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는 거야. 다시는 같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면 돼. 안채린 일은 법에 맡기자.”이제 와서 누구의 잘못인지 따지는 건 의미가 없었다.안채린과 그녀 사이의 갈등은 이미 오래전부터 쌓여 있었다.이번 일이 고이한 때문이 아니었더라도 안채린은 결국 자신의 분노를 다른 누군가에게 돌렸을 것이다.오래 쌓인 상처와 분노가 작은 자극 하나에도 터져 나올 만큼 이미 위태로운 상태였다.“그래. 이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일단 밥부터 먹자.”고이한은 더 말을 잇지 않고 젓가락을 들어 소예지의 접시에 반찬을 놓아주었다.소예지가 잠시 멈칫했다.“내가 알아서 먹을게.”“오늘 밤은 간병인 배치해 둘게. 열 시쯤 이문혁이 집까지 데려다줄 거야. 가서 쉬어.”하루 종일 쌓인 긴장 때문인지 소예지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고이한의 시선이 그 위에 잠시 머물렀다.소예지는 그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소예지는 많이 먹지는 않았지만 디저트만은 깨끗하게 비웠다.고이한은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그녀가 조금이라도 더 먹는 모습에 속으로는 마음이 놓였다.저녁 여덟 시가 지나자 강준석은 몇 번이나 소예지에게 돌아가 쉬라고 권했다. 결국 아홉 시가 되어서야 소예지는 먼저 병원을 나섰다.집에 돌아와 딸을 품에 안는 순간, 뒤늦게 밀려온 두려움에 숨이 잠시 막혔다.‘만약 강 선배가 그 포크를 대신 막아주지 않았다면 안채린이 찌르려 했던 곳은 바로 내 심장이었을 거야.’소예지는 고하슬을 품에 안은 채 한동안 놓지 않았다. 어린 고하슬은 무슨 일인지 알 수 없다는 듯 엄마를 올려다보며 물었다.“엄마, 왜 그래요?”딸에게서 나는 익숙한 향을 깊게 들이마시자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았다.“아무것도 아니야.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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