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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Author: 유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28 16:19:01

아침이 밝았다.

서화는 거의 잠들지 못했다.

낯선 침상은 지나치게 푹신했고.

이불은 따뜻했으며.

방 안에는 밤새 불이 꺼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눈을 감으면.

절벽이 보였다.

“서화야!”

빗물에 젖은 오라버니의 얼굴.

자신을 붙잡고 있던 손.

조금씩 미끄러지던 손가락.

그리고.

마지막 순간.

“오라버니!”

서화가 눈을 떴다.

“…….”

낯선 천장.

잠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돌아왔다.

설원.

검은 옷을 입은 남자.

알아들을 수 없는 말.

거대한 성.

두 개의 달.

그리고.

조선이 없는 지도.

서화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밤새 손에 쥐고 있었던 백옥 노리개가 손바닥 안에 있었다.

“……꿈이 아니었구나.”

꿈이기를 바랐던 모양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자신의 방이고.

밖에서는 어머니가 부르고.

사랑채에서는 아버지가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들리고.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도겸이.

‘언제까지 잘 거냐.’

하고 놀려주기를.

서화는 한동안 노리개만 내려다봤다.

그러다 손등으로 눈가를 문질렀다.

“안 돼.”

울 시간에 하나라도 더 알아봐야 한다.

아버지가 그랬다.

모르는 것이 있다면 두려워하기 전에 먼저 알아보라고.

‘여기가 어디인지.’

‘어떻게 왔는지.’

‘그리고.’

서화가 노리개를 꼭 쥐었다.

‘어떻게 돌아갈 수 있는지.’

아무것도 모른다면.

하나씩 알아내면 된다.

서화는 침상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곧 문제가 생겼다.

“…….”

어제 마리엘이 가져다준 옷.

다시 봐도 익숙하지 않았다.

긴 치마까지는 괜찮았다.

문제는 위였다.

“어찌 목을 이렇게…….”

서화가 옷을 들고 심각하게 고민하던 순간.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예.”

문이 열렸다.

마리엘이었다.

그녀는 서화가 아직 속옷 차림인 것을 보고 상황을 금세 이해했다.

그리고 침상 위의 옷을 가리켰다.

서화는 고개를 저었다.

“못 입겠습니다.”

마리엘이 고개를 갸웃했다.

서화는 옷의 목 부분을 가리켰다.

그다음 자신의 목 아래를 가리고 다시 고개를 저었다.

“여기가 너무 보입니다.”

마리엘은 잠시 서화를 바라봤다.

그리고.

“아.”

알아들었다.

서화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바로 그것입니다.”

마리엘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그녀는 옷장을 열어 몇 벌을 살폈다.

잠시 후.

목까지 올라오는 흰 블라우스와 짙은색 치마를 꺼냈다.

서화의 얼굴이 밝아졌다.

“이것이 훨씬 낫습니다.”

마리엘은 여전히 말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표정은 알아들었다.

잠시 후.

옷을 갈아입은 서화가 거울 앞에 섰다.

여전히 낯설었다.

그러나 어제보다는 나았다.

마리엘이 서화 뒤로 다가왔다.

그리고 머리카락을 바라봤다.

서화의 긴 검은 머리는 풀어진 채 허리까지 내려와 있었다.

마리엘이 빗을 들어 보였다.

“…….”

서화가 잠시 멈췄다.

빗.

그걸 보는 순간 어머니가 떠올랐다.

‘서화야, 가만히 좀 있으렴.’

‘다 했습니까?’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서화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마리엘이 그것을 알아차렸다.

빗을 내려놓으려 했다.

그런데 서화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의자에 앉았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마리엘은 천천히 서화의 머리를 빗기 시작했다.

사각.

사각.

방 안에 빗질 소리가 났다.

서화는 거울 속 마리엘을 바라봤다.

나이는 어머니와 비슷했다.

손길도 조심스러웠다.

그래서였을까.

서화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께서도 제 머리를 자주 빗어주셨습니다.”

마리엘의 손이 잠깐 멈췄다.

뜻은 몰랐다.

그러나.

어제 들은 단어 하나는 기억했다.

“……어머니?”

서화의 눈이 커졌다.

마리엘이 조심스럽게 다시 말했다.

“어머니.”

서화가 천천히 웃었다.

“예.”

가슴 한쪽이 아팠다.

그래도 웃었다.

“어머니.”

서화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아주 부드럽게 말했다.

“제가 가장 사랑하는 분입니다.”

마리엘은 그 말까지는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서화의 표정을 보고.

조용히 그녀의 어깨를 한번 토닥였다.

그날부터.

서화는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누가 시킨 것은 아니었다.

살아남으려면 필요했다.

그리고.

돌아가려면 더더욱 필요했다.

처음은 사물이었다.

마리엘이 컵을 들었다.

“컵.”

“……컵.”

서화가 따라 했다.

물을 가리켰다.

“워터.”

“워……터.”

이번에는 빵.

“브레드.”

“브레드.”

문.

창문.

의자.

침상.

하나씩.

서화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기억했다.

한 번 듣고.

두 번 따라 하고.

글자가 있으면 그것까지 확인했다.

문제는 이 세계의 문자였다.

“……이것이 글자입니까?”

서화는 에드윈이 가져온 책을 보며 심각하게 물었다.

물론 그는 알아듣지 못했다.

에드윈은 글자 하나를 가리켰다.

발음을 했다.

서화가 따라 했다.

다음 글자.

또 다음.

한참 후.

에드윈은 서화를 기묘하게 바라봤다.

“당신.”

자신을 가리켰다.

“에드윈.”

“에드윈.”

서화가 바로 따라 했다.

그가 서화를 가리켰다.

서화는 그 뜻을 알아들었다.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윤서화.”

“윤…….”

에드윈이 난처해졌다.

“서화.”

“서……화.”

“윤서화.”

“윤서화.”

조금 어색했지만 알아들을 만했다.

서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에드윈은 종이에 글자를 적었다.

SEOHWA.

서화는 그것을 바라봤다.

그리고 옆에 붓으로 적었다.

尹書花.

에드윈의 눈이 커졌다.

그는 종이를 거의 낚아채듯 가져갔다.

“이게 당신네 문자입니까?”

서화는 못 알아들었다.

하지만 그가 무엇을 궁금해하는지는 알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에드윈의 눈이 반짝였다.

이번에는 자기 이름을 가리켰다.

서화가 눈을 깜빡였다.

“……이것으로 써달라는 겁니까?”

에드윈이 기대하는 얼굴로 자신을 가리켰다.

“에드윈.”

서화는 고민했다.

정확한 뜻도 모르는데 한자로 바꾸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발음을 따라 적었다.

에드윈.

한글.

이번에는 에드윈이 굳었다.

“……또 있어?”

서화는 그 반응이 재미있어졌다.

한자를 가리켰다.

“한자.”

한글을 가리켰다.

“한글.”

그리고 자신을 가리켰다.

“조선.”

에드윈은 세 단어를 번갈아 바라봤다.

머리가 복잡해지는 얼굴이었다.

서화가 처음으로 조금 웃었다.

“그렇게 신기하십니까?”

에드윈은 당연히 못 알아들었다.

그래도 서화가 자기를 놀리고 있다는 건 어쩐지 알 것 같았다.

카시안은 사흘 동안 침상에서 나오지 못했다.

정확히는.

서화가 나오지 못하게 했다.

카시안이 몸을 일으키려고 하면.

서화가 나타났다.

“안 됩니다.”

말을 알아듣지 못하던 첫날에도.

표정만 보면 알 수 있었다.

둘째 날.

카시안이 침상에서 내려왔다.

서화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

“…….”

둘이 마주봤다.

서화가 침상을 가리켰다.

카시안이 무시했다.

서화가 다시 가리켰다.

카시안도 문을 가리켰다.

나가겠다는 뜻이었다.

서화의 눈이 가늘어졌다.

“안 됩니다.”

그사이 서화가 새로 배운 말이 있었다.

이 세계의 말로.

“노.”

카시안의 눈썹이 꿈틀했다.

서화가 다시 침상을 가리켰다.

“노.”

“…….”

“침상.”

아직 문법은 엉망이었다.

그래도 뜻은 분명했다.

안 돼. 침대로.

카시안이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제국 북부의 주인에게.

침대로 돌아가라고 명령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레오넬은 옆에서 입술을 깨물었다.

웃으면 죽는다.

절대로 웃으면 안 된다.

카시안이 서화를 내려다봤다.

“내가 누군지는 알고 이러는 건가?”

서화는 못 알아들었다.

다만.

그의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환자는 의원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카시안은 서화를 바라봤다.

서화도 지지 않고 올려다봤다.

잠시 후.

카시안이 돌아섰다.

그리고.

침상에 앉았다.

레오넬의 눈이 커졌다.

에드윈은 입을 벌렸다.

서화만 태연했다.

“진작 그러시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날 이후.

대공성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정체불명의 동방 여인이 대공 전하를 살렸다.

바늘로 저주를 멈췄다.

대공 전하에게 명령한다.

그런데.

대공 전하가 말을 듣는다.

마지막 소문이 가장 믿기 어려웠다.

나흘째.

서화는 제법 많은 단어를 알게 되었다.

완전한 문장은 아직 어려웠다.

그래도.

사람.

먹다.

자다.

아프다.

좋다.

싫다.

어디.

이름.

가다.

오다.

집.

가족.

같은 단어들은 알았다.

그리고 오늘.

반드시 배워야 할 단어가 있었다.

“돌아가다.”

에드윈이 말했다.

서화가 따라 했다.

“돌아가다.”

발음은 여전히 어색했다.

에드윈이 고쳐줬다.

서화가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조금 나았다.

“집.”

“집.”

“가족.”

“가족.”

서화가 반복했다.

집.

가족.

돌아가다.

세 단어.

그것만 알면.

적어도 자신의 뜻은 전할 수 있다.

서화가 종이에 적었다.

조선.

그리고.

가족 네 명을 그렸다.

아버지.

어머니.

오라버니.

자신.

자신만 조금 떨어져 그렸다.

그 모습을 에드윈이 조용히 바라봤다.

며칠 동안 함께 공부하면서.

그 역시 이제 알았다.

서화가 그리는 세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왜 그녀가 매번 지도를 들여다보는지도.

에드윈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서화.”

서화가 고개를 들었다.

그는 지도를 가리켰다.

“조선.”

서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에드윈이 다시 지도를 가리켰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없다.”

서화의 표정이 굳었다.

이번에는.

그 말을 알아들었다.

없다.

“……없다?”

“그래.”

에드윈이 대륙 전체를 손으로 훑었다.

“조선. 없다.”

서화의 손끝이 굳었다.

알고 있었다.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들으니 달랐다.

“없다…….”

조선이 없다.

아버지가 없다.

어머니가 없다.

오라버니가 없다.

아니.

서화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닙니다.”

에드윈이 멈췄다.

“있습니다.”

서화는 아직 이 세계 말로 그 문장을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조선말로 말했다.

“조선은 있습니다.”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제가 거기서 왔으니까요.”

에드윈은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반박하지 않았다.

그날 오후.

카시안은 서화를 불렀다.

이제 서화도 그 정도의 상황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카시안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침상이 아니라 창가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서화가 미간을 좁혔다.

“…….”

카시안이 먼저 말했다.

“오늘은 침상으로 돌아가라고 하지 마.”

서화는 대부분 못 알아들었다.

다만 ‘침상’이라는 단어가 들렸다.

서화가 침상을 봤다.

카시안이 한숨을 쉬었다.

“아니다.”

서화는 그 앞에 앉았다.

그리고 맥을 짚었다.

카시안은 이제 익숙하게 손목을 내주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다.

서화의 손가락이 그의 맥 위에 얹혔다.

“……좋습니다.”

이 세계 말로 배운 단어를 사용했다.

“좋다.”

카시안이 그녀를 바라봤다.

“좋다고?”

서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검은 문양을 확인했다.

확실히 줄었다.

하지만 사라지지는 않았다.

“이것.”

서화가 문양을 가리켰다.

“나쁘다.”

카시안의 입가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그 정도는 자신도 알고 있었다.

서화가 침을 준비했다.

카시안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봤다.

침을 놓는 손은 능숙했다.

망설임이 없었다.

그런데.

며칠 사이.

서화의 얼굴은 조금 수척해져 있었다.

밤마다 제대로 잠들지 못한다는 보고도 들었다.

그리고 매일.

지도를 본다고 했다.

카시안이 입을 열었다.

“서화.”

서화의 손이 멈췄다.

처음이었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정확하게 부른 것은.

서화가 고개를 들었다.

“……제 이름.”

자신을 가리켰다.

“서화.”

카시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화.”

발음이 제법 정확했다.

서화는 아주 조금 웃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를 가리켰다.

“카시안.”

“그래.”

서화가 잠시 고민했다.

“대공.”

카시안이 눈썹을 올렸다.

“그것도 배웠나?”

서화는 대공이라는 말의 정확한 의미를 아직 몰랐다.

다만.

높은 사람.

아주 높은 사람.

그 정도는 알아냈다.

그래서 며칠 전 자신이 얼마나 무모했는지도 조금은 깨달았다.

손등을 때리고.

침상으로 돌아가라고 손짓하고.

검을 내려놓으라고 화냈다.

‘……이미 지나간 일이다.’

서화는 깨끗하게 생각을 접었다.

카시안이 그 표정을 보고 묘하게 웃었다.

그때.

서화가 품에서 종이를 꺼냈다.

카시안의 표정이 달라졌다.

며칠 전의 그림이었다.

가족.

그리고 서화.

서화가 가족을 가리켰다.

배운 단어를 하나씩 꺼냈다.

“가족.”

카시안이 그림을 바라봤다.

서화가 아버지를 가리켰다.

“아버지.”

어머니.

“어머니.”

그리고 도겸.

“오라버니.”

카시안의 눈이 마지막 사람에게 머물렀다.

오라버니.

설원에서도 들었던 말이었다.

서화가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서화.”

그리고.

가족을 가리켰다.

“조선.”

마지막으로.

자신에게서 가족 쪽으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배운 말을 떠올렸다.

한 단어.

그리고 또 하나.

서화가 천천히 말했다.

“집.”

카시안의 눈이 그녀에게 향했다.

“돌아가다.”

문법은 엉망이었다.

그래도.

뜻은 통했다.

서화가 다시 말했다.

조금 더 정확하게.

“서화.”

자신.

“집.”

조선.

“돌아가다.”

카시안은 말이 없었다.

서화가 답답한 듯 종이에 다시 화살표를 그었다.

그리고.

이 세계 말과 조선말을 섞어 말했다.

“저는.”

자신을 가리켰다.

“집으로.”

가족 그림을 가리켰다.

“돌아가야 합니다.”

마지막 부분은 조선말이었다.

그러나.

카시안은 이해했다.

며칠 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 여자는 머물 생각이 없다.

카시안이 천천히 물었다.

“돌아가고 싶나?”

서화는 문장을 전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돌아가다.’

그 단어는 들었다.

서화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망설임은.

조금도 없었다.

“돌아갑니다.”

그리고.

아직 제대로 배우지 않은 말까지 어떻게든 이어붙였다.

“가족.”

손을 가슴에 올렸다.

“기다리다.”

카시안의 눈빛이 아주 조금 변했다.

서화가 다시 말했다.

“가족…… 저.”

말이 막혔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답답했다.

그러다.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도겸의 손.

절벽에서.

끝까지 자신을 붙잡았던 손.

서화의 눈이 붉어졌다.

“오라버니가.”

이번에는 조선말이었다.

“마지막까지 제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카시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가 떨어지는 걸 봤습니다.”

목소리가 떨렸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화가 입술을 깨물었다.

“제가 죽은 줄 아실 겁니다.”

더는 이 세계의 말을 사용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냥 말했다.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다.

“어머니는 밤마다 잠을 못 주무실 겁니다.”

눈물이 떨어졌다.

“아버지는 괜찮다고 하시면서 계속 저를 찾으실 것이고.”

한 방울.

“오라버니는.”

서화가 숨을 삼켰다.

“자기 탓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카시안은 단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런데도.

움직이지 않았다.

서화가 울음을 삼킬 때까지.

그저 듣고 있었다.

한참 후.

카시안이 말했다.

“알아듣지는 못한다.”

서화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하나는 알겠군.”

카시안이 그림 속 가족을 가리켰다.

그리고.

서화를 가리켰다.

그다음.

가족 쪽으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서화의 눈이 커졌다.

카시안이 말했다.

“돌아가고 싶은 거겠지.”

서화가 입술을 달싹였다.

정확히 알아듣지는 못했다.

하지만.

알았다.

자신의 뜻을.

이 남자가 이해했다.

“……예.”

서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가고 싶습니다.”

카시안은 그녀를 한참 바라봤다.

그러다.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두 사람은 처음으로.

말이 아닌 것으로 완벽하게 대화했다.

그날 밤.

대공성 지하.

에드윈은 오래된 문 앞에 서 있었다.

“……이게 왜.”

사백 년 동안 열리지 않았던 문.

어젯밤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문 가운데 있던 고대 문양이 완전히 드러났다.

원.

두 개의 세계.

그 사이를 연결하는 하나의 선.

에드윈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문자가 빛났다.

그는 고대어를 읽었다.

“첫 번째 아이는…… 돌아갔다.”

다음 문장.

“두 번째 아이 역시 돌아가려 할 것이다.”

에드윈의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마지막.

그러나 문은 두 번 같은 것을 돌려보내지 않는다.

“…….”

에드윈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뜻이지?”

에드윈이 돌아봤다.

카시안이 서 있었다.

“전하.”

카시안의 시선이 벽으로 향했다.

“읽어.”

“…….”

“전부.”

에드윈은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 읽었다.

첫 번째 아이.

돌아갔다.

두 번째 아이.

돌아가려 한다.

그리고.

돌려보내지 않는다.

침묵.

카시안의 얼굴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읽히지 않았다.

한참 뒤.

그가 물었다.

“두 번째 아이가.”

잠시.

“서화라는 뜻인가?”

“아직 확신할 수 없습니다.”

“가능성은.”

에드윈이 대답하지 못했다.

그 침묵이 대답이었다.

카시안은 벽에 새겨진 문장을 바라봤다.

몇 시간 전.

자신을 바라보며 필사적으로 가족 그림을 가리키던 여자.

돌아가겠다고 했다.

망설임 없이.

그리고.

이 문은.

그 여자를 돌려보내지 않겠다고 한다.

카시안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에드윈.”

“예.”

“찾아.”

“무엇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카시안이 벽에서 시선을 떼었다.

“돌려보내는 방법.”

에드윈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전하.”

“저 여자는 내 목숨을 살렸다.”

카시안이 말했다.

“원하지 않는 곳에 붙잡아두는 것으로 그 빚을 갚을 생각은 없다.”

그리고 돌아섰다.

에드윈이 급히 물었다.

“정말 돌아갈 방법이 있다면요?”

카시안의 걸음이 멈췄다.

“그때는.”

에드윈이 침을 삼켰다.

카시안은 아직 서화를 알게 된 지 고작 며칠뿐이었다.

그래서 대답은 간단했다.

“보내야지.”

그는 아직 몰랐다.

언젠가.

똑같은 질문을 다시 받게 되었을 때.

그 대답 하나를 입 밖으로 내는 것이.

자신의 몸을 잠식하는 저주보다 훨씬 고통스러워지리라는 것을.

같은 시각.

조선.

비가 그친 절벽 아래에서.

도겸이 미친 사람처럼 돌을 헤집고 있었다.

“도겸아.”

정헌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만하거라.”

“없습니다.”

도겸이 말했다.

손가락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시신이 없습니다.”

“…….”

“아무것도 없습니다.”

절벽은 높았다.

사람이 떨어졌다면.

흔적이라도 있어야 했다.

하지만.

없었다.

도겸이 절벽 위를 올려다봤다.

그날 보았다.

서화의 허리춤에서 빛나던 백옥.

그리고.

절벽 아래에서 벌어졌던 검은 무언가.

“아버지.”

도겸이 천천히 일어났다.

“서화는 죽지 않았습니다.”

정헌이 아들을 바라봤다.

“제가 봤습니다.”

도겸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러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떨어진 게 아닙니다.”

그날 이후.

모두가 윤서화가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윤도겸만은 끝까지 같은 말을 했다.

“서화가 제 눈앞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한연화가 딸에게 백옥 노리개를 건넸던 오래된 함에서.

아무도 본 적 없는 글자 하나가 나타났다.

희미한 붉은빛을 내며.

門.

문.

두 세계에서.

동시에.

닫혀 있던 것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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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에서 온 아씨는 돌아가고 싶다   이곳에서도 기다리는 사람이 생깁니다

    아침이 밝았을 때, 서화는 어젯밤 자신이 했던 생각을 모른 척하기로 했다. 이곳에서도 좋은 것이 생기고 있다. 그 말은 이상할 정도로 오래 마음에 남았다. 마리엘이 가져다준 쌀죽도, 에드윈과 밤늦게까지 기록을 뒤진 일도, 레오넬이 이제는 자신을 볼 때 검부터 잡지 않는 것도. 그리고 무엇보다 카시안이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의 귀환 방법을 함께 찾고 있다는 사실도. 좋은 일이었다. 분명 좋은 일인데. 서화는 자꾸만 그것을 경계하게 되었다. 좋아하게 되면 떠나기 어려워질 것 같아서. 익숙해지면 그만큼 이별이 아파질 것 같아서. 그래서 아침 식사가 끝나자마자 곧장 에드윈을 찾아갔다. 생각할 틈을 만들지 않으면 됐다. 언어를 배우고, 기록을 읽고, 돌아가는 길을 찾으면 된다. “에드윈.” 연구실 문을 열자 안쪽에서 무언가 요란하게 무너졌다. 쾅! “…….” 서화가 멈췄다. 잠시 뒤 책더미 사이에서 에드윈의 머리가 불쑥 올라왔다. “괜찮아!” 서화가 천천히 눈썹을 올렸다. “안 물었습니다.” 조선말이었다. 에드윈은 당연히 알아듣지 못했다. “왜 그런 표정이야?” 서화는 연구실 바닥을 둘러봤다. 책, 종이, 작은 수정구, 마법 도구와 잉크병이 뒤섞여 있었다. 며칠 전보다 더 엉망이었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위험.” 에드윈이 아래를 내려다봤다. “아.” 그제야 자신도 책 한 권을 밟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서화의 표정이 더 싸늘해졌다. 에드윈이 재빨리 발을 뗐다. “책은 안 망가졌어.” 서화는 못 알아들었다. 대신 책을 집어 먼지를 털고 책상 위에 올려놨다. “책.” 그리고 에드윈을 가리켰다. “소중.” “…….” “소중.” 그녀가 다시 강조했다. 며칠 전 배운 단어였다. 에드윈은 어쩐지 혼나는 기분이 들었다. “알았어.” 그가 손을 들었다. “정리하겠습니다.” 서화는 ‘정리’라는 단어를 몰랐지만 에드윈이 책을 치우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 조선에서 온 아씨는 돌아가고 싶다   남쪽의 문을 찾아서

    남쪽 해안에서 사흘 동안 나타났다가 사라진 문.그 기록 하나 때문에 서화는 밤이 늦도록 지도를 떠나지 못했다. 북부에서 남쪽 끝까지 이어진 길 위를 손가락으로 천천히 따라가며 몇 번이고 거리를 가늠했다. 이 세계의 지리를 완전히 익힌 것은 아니었지만, 북부와 남쪽 사이에 얼마나 많은 도시와 산맥, 강이 놓여 있는지는 이제 알 수 있었다. 하루 이틀에 다녀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그런데도 마음은 이상할 만큼 조급하지 않았다.이전까지의 길은 늘 막혀 있었다. 검은 문을 열라는 목소리, 알 수 없는 대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존재.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줄 때마다 그 끝에는 반드시 찜찜한 무언가가 붙어 있었다.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윤연화가 남긴 길이었다.자신과 같은 조선 사람. 가족을 그리워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지 않으려 했고, 결국 검은 문을 닫은 여자. 그런 사람이 마지막에 남긴 말이었다.문은 하나가 아니란다.서화는 그 말을 믿어보고 싶었다.아니, 믿기만 해서는 안 됐다.확인해야 했다.“남쪽.”서화가 지도 끝을 가리켰다.맞은편에 앉아 있던 에드윈이 피곤한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는 밤새 기록을 뒤진 탓에 머리가 평소보다 더 엉망이었다.“남쪽.”서화가 다시 말했다.그리고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나.”손가락을 남쪽으로 움직였다.“가다.”에드윈의 얼굴이 즉시 굳었다.“안 돼.”서화가 눈을 가늘게 떴다.그 단어는 너무 잘 안다.“왜?”“멀어.”에드윈이 지도를 길게 쓸었다.“아주 멀어.”서화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였다.“알다.”“그리고 위험해.”그가 산맥과 숲을 가리켰다. 이어 마수를 뜻하는 그림까지 급히 그렸다. 그제야 서화는 그의 걱정을 이해했다.“마수.”“그래.”“기사.”서화가 손으로 검을 쥔 시늉을 했다.“같이.”에드윈이 눈을 크게 떴다.“지금 호위까지 데려가겠다고?”문장이 길어지자 서화는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에드윈의 표정만으로 충분했다. 그는 자신의

  • 조선에서 온 아씨는 돌아가고 싶다   문 너머의 것은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서화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어둠은 사라졌다.가족의 모습도.도겸의 손도.전부.백옥 노리개는 다시 평범한 빛을 되찾았다.그런데.심장은 아직 빠르게 뛰고 있었다.“…….”서화가 천천히 손을 펼쳤다.손바닥이 축축했다.조금 전까지.그 너머에 오라버니의 손이 있었다.닿지는 않았지만.분명히 봤다.아버지.어머니.오라버니.모두 살아 있었다.자신을 찾고 있었다.그리고.자신의 목소리를 들었다.그 사실만으로도 다리가 풀릴 것 같았다.기뻐서.당장 울고 싶었다.그런데.그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문만 열면 모든 것이 끝날 텐데.』그 존재는.자신을 집으로 돌려보내려는 것이 아니었다.계속해서 문을 열라고 했다.대가가 무엇인지 묻자 대답하지 않았다.조선이 위험한지.이 세계가 위험한지.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그리고 자신이 물었다.당신, 문 너머에서 나오고 싶은 겁니까?대답은 없었다.하지만.그 침묵이 이상하리만큼 분명했다.서화가 백옥 노리개를 움켜쥐었다.“저를 이용하려는 거군요.”처음 설원에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드디어.』『찾았다.』『문을 여는 아이야.』그때는 뜻을 몰랐다.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았다.문을 여는 아이.자신을 그렇게 불렀다.처음부터.기다리고 있었다.서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늦은 밤.대공성의 복도는 조용했다.경비 기사들이 서화를 발견하고 놀랐다.“서화 아가씨?”마리엘이 그렇게 부르기 시작한 뒤.성 안의 몇몇 사람들도 어색하게 그 호칭을 따라 하고 있었다.서화는 기사에게 물었다.“카시안.”그리고 손가락으로 주변을 가리켰다.“어디?”기사가 잠깐 망설였다.이 시간이라면 대공은 집무실에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그가 방향을 알려줬다.서화는 곧장 걸었다.집무실 앞.레오넬이 있었다.“서화?”그는 서화의 얼굴을 보는 순간 웃음기를 거뒀다.“무슨 일이지?”서화는 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대신.“카시안.”문을 가리켰다.“지금.

  • 조선에서 온 아씨는 돌아가고 싶다   첫 번째 여인의 이름

    윤연화.서화는 날이 밝을 때까지 그 이름을 바라보았다.백옥 위에 나타났던 글자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다시 아무리 들여다봐도.평범한 흰 옥일 뿐이었다.그런데도 서화는 눈을 떼지 못했다.“윤연화…….”어젯밤.분명히 보았다.윤.연.화.그리고.너의 피가 처음 문을 닫았다.“피.”서화가 천천히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봤다.핏줄 위로 손가락을 가져갔다.사백 년 전 조선에서 이 세계로 건너왔던 여인.자신과 같은 백옥 노리개를 가지고 있던 여자.그리고.자신의 피와 연결되어 있다는 존재의 말.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이 겹쳤다.“우리 집안 사람이라는 뜻인가.”하지만 이상했다.서화는 자신의 집안에 그런 이야기가 있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윤씨 집안은 오래된 양반가였다.족보도 있었다.선대에 관한 기록도 적지 않았다.어릴 때 아버지에게 가계에 관해 배운 적도 있었다.그런데.이세계에 다녀온 여인이라니.그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잊을 리 없다.더구나 백옥 노리개는.“어머니께서 주셨는데.”서화의 손이 멈췄다.이상하다.백옥 노리개는 아버지의 윤씨 가문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다.어머니 한연화가.외가에서 물려받은 것이다.그런데 이름은.윤연화.“…….”서화의 눈빛이 달라졌다.같은 ‘연화’.그것까지 우연일까?“아니야.”무언가 있다.자신이 모르는 이야기가.서화는 침상에서 내려왔다.생각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확인해야 해.”누구에게?이 세계에서 사백 년 전의 기록을 읽을 수 있는 사람.한 명이 바로 떠올랐다.“에드윈.”쾅!연구실 문이 열렸다.책상에 엎드려 잠들어 있던 에드윈이 펄쩍 뛰었다.“뭐야!”서화가 들어왔다.“에드윈.”“서화?”그는 눈을 비볐다.창밖은 아직 완전히 밝아지지도 않았다.“지금 몇 시인지 알아?”서화는 절반도 못 알아들었다.그러나.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종이를 꺼냈다.그리고 붓을 들었다.에드윈이 멍하니 바라봤다.서화가 한자를 적었다.尹蓮

  • 조선에서 온 아씨는 돌아가고 싶다   돌아가는 길에는 대가가 필요합니다

    희망이 생긴 날 밤. 서화는 오히려 잠들지 못했다. 사백 년 전. 조선에서 이곳으로 온 여인이 있었다. 그리고. 돌아갔다. 그 사실 하나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돌아갔다…….” 서화는 침상 위에 앉아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되뇌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막연했다. 돌아가야 한다. 반드시 돌아갈 것이다. 그렇게 마음먹었지만 정작 방법은 하나도 몰랐다. 그러나 이제는 달랐다. 길이 있었다. 누군가 이미 그 길을 지나갔다. 그렇다면. 자신도 찾을 수 있다. 서화는 품에서 백옥 노리개를 꺼냈다. 달빛 아래. 옥은 다시 평범한 흰빛으로 돌아와 있었다. “당신이 그분을 돌려보낸 것입니까?” 물론 대답은 없었다. “그렇다면 저도…….” 말을 멈췄다. 어젯밤 들었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서화야.』 도겸의 목소리. 꿈이었을까. 아니. 서화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너무 선명했다. 오라버니 특유의 말투까지. 어릴 적부터 수없이 들어온 목소리를 잘못 알아들을 리 없었다. “오라버니도 찾고 계시는군요.” 입가에 작은 웃음이 번졌다. 그러다 금세 사라졌다. ‘손.’ 꿈에서 본 도겸의 손은 피투성이였다. 서화가 눈을 감았다. 절벽. 자신의 손을 붙잡고 있던 오라버니. 마지막 순간. 자신을 놓친 사람. “……또 자기 탓을 하고 계시겠지.” 그 사람이라면 그럴 것이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서화가 나무에서 떨어져 무릎을 다쳤을 때도. 자신이 조금만 빨리 왔으면 막았을 거라고 했다. 서화가 감기에 걸렸을 때조차 전날 함께 밖에 나간 자기 탓이라 우겼다. 그런 오라버니가. 자신의 손을 놓쳤다. “바보.” 서화의 목소리가 떨렸다. “오라버니 탓이 아닌데.” 노리개를 꼭 쥐었다. “그러니까 제가 직접 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살아 있다고. 괜찮다고. 오라버니가 놓은 것이 아니라고. 그리고.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는지도 전부 따질 겁니다.” 눈물이 맺혔지만. 서화는 웃었다. 그날

  • 조선에서 온 아씨는 돌아가고 싶다   오라버니는 저를 찾고 있을 겁니다

    문.門.한연화는 한참 동안 함 안쪽을 바라보았다.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희미한 붉은빛이.분명 글자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여보.”연화의 목소리가 떨렸다.방 한쪽에서 젖은 도포를 갈아입던 윤정헌이 고개를 돌렸다.“왜 그러오?”“이것 좀…… 보세요.”정헌이 다가왔다.그 뒤로 도겸도 따라왔다.도겸의 손은 엉망이었다.절벽 아래의 돌과 흙을 맨손으로 헤집은 탓에 손톱이 깨지고 손가락 곳곳에서 피가 배어 있었다.연화가 그 손을 발견했다.“도겸아.”그러나 도겸은 자신의 손을 감췄다.“괜찮습니다.”“그게 어찌 괜찮은 손이니.”“어머니.”도겸이 함을 가리켰다.“먼저 이것부터 보십시오.”연화의 입술이 굳게 다물렸다.정헌이 함을 들어 올렸다.딸에게 백옥 노리개를 건넬 때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없었다.평범한 나무함이었다.연화의 어머니에게서.그리고 그 어머니에게서.몇 대를 거쳐 내려왔던 것.“문.”정헌이 글자를 읽었다.“門이구려.”도겸의 얼굴이 굳었다.“문이라고요?”“그래.”“아버지.”도겸이 급하게 정헌을 바라봤다.“제가 봤던 것도…….”말이 끊겼다.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서화의 손.자신의 손가락 사이에서 미끄러지던 손.그리고 절벽 아래.분명히 열렸던 검은 무언가.처음에는 자신도 믿을 수 없었다.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으니까.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서화는 떨어지지 않았다.사라졌다.도겸이 함을 움켜쥐었다.“문이었습니다.”정헌이 아들을 바라봤다.“무엇이?”“서화 아래에 생긴 것 말입니다.”도겸의 숨이 거칠어졌다.“검은 구멍처럼 보였지만…… 지금 생각하면 문이었습니다.”연화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도겸아.”“서화는 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아니.”도겸이 이를 악물었다.“끌려갔습니다.”정적이 내려앉았다.빗물이 처마 끝에서 떨어졌다.뚝.뚝.뚝.정헌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평생 학문을 익힌 사람이었다.괴력난신을 함부로 입에 올리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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