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던 세 사람은 잠시 조용했다.카터 문은 무언가 생각하다가 도현을 바라봤다."강 사장님, 우리 술이라도 한잔하면서 이야기를 이어가시죠."도현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뒤 VIP룸으로 걸어가며 전화를 걸었다. 룸으로 술과 안주를 준비해 달라는 지시였다."그러시죠. 저도 카터 문 선생님과 술 한잔하고 싶었습니다."세 사람은 VIP룸으로 들어갔다.잠시 후 술과 안주가 도착했고, 세 사람은 자리에 앉아 잔에 술을 따랐다.한 잔씩 주고받은 뒤 카터 문이 입을 열었다."제가 조선에서 하던 일은…… 처음에는 그냥 평범한 회사원이었습니다.""대부분의 평민들처럼 말입니다."카터 문은 술잔을 내려놓고 이야기를 이어갔다."그러다 한 귀족을 만나게 됐습니다. 그분께서 저를 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자네는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야. 나랑 같이 일해 보겠나?' 하고요."카터 문은 잔에 남은 술을 마저 비우고 다시 말을 이었다."처음에는 반신반의했습니다. 이분이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가 싶었죠.""하지만 그때 저는 젊었고, 결국 그분을 따라가기로 했습니다. 그 후로 제 인생은 180도 바뀌었죠."그는 잠시 과거를 떠올리는 듯했다."그분을 따라 전국을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때 쉬카이님도 만나게 된 겁니다.""그리고 저는 그분을 따라 중국으로 넘어오게 됐습니다."도현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들었다. 궁금한 점이 생길 때마다 질문했고, 카터 문은 과거를 회상하며 하나씩 대답해 주었다.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도현은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물었다."그럼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그분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카터 문은 고개를 저었다."지금은 저도 모릅니다. 언젠가 그분이 다시 연락하시겠죠."잠시 침묵한 뒤 덧붙였다."워낙 신비로운 분이라서요."도현은 더 궁금했지만, 그 이상 물어볼 수는 없었다.그렇게 세 사람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밤새 술을 마셨다.---많은 시간이 흘렀다.어느덧 몇 번
도현의 업무에는 평일과 주말의 구분이 없었다.회사의 재무 관련 업무는 재무이사에게 물어보며 하나씩 익혀 나갔다.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그때그때 확인했다.로렌을 경영본부장으로 임명한 뒤에는 새로운 부서도 창설해 로렌의 업무를 지원하도록 했다.파격적인 승진에 로렌을 시기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녀의 능력을 알고 있었기에 인정하는 분위기였다.한편, 도현은 현장 업무를 파악하기 위해 직접 움직이기로 했다.주차장으로 내려온 도현은 차에 올라타려다 자신을 부르는 직원의 목소리에 걸음을 멈췄다."사장님, 혼자 가시는 겁니까?""네. 호텔하고 카지노를 좀 둘러보고 오려고 합니다. 늦을 수도 있으니 시간 되면 먼저들 퇴근하세요.""예, 사장님. 다녀오십시오."도현은 직원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차에 올라탔다.---호텔.도현은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직원들이 그를 알아보고 인사했지만, 도현은 손을 내저었다."신경 쓰지 마시고 하던 일들 하세요."직원들이 다시 업무로 돌아가자 도현은 주변을 세심하게 살폈다.호텔의 운영 상태와 직원들의 업무 방식, 고객들의 반응까지.앞으로 구상하는 계획과 현재 상황을 함께 고려해야 했기에 하나도 허투루 볼 수 없었다.도현은 눈에 들어오는 부분을 꼼꼼히 메모했다.한참 동안 호텔을 둘러본 뒤에는 총지배인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운영 현황을 확인하고 몇 가지 의견을 들은 도현은 호텔을 나섰다.이어서 리천에게 전화를 걸었다."형님, 지금 시간 괜찮으십니까?""왜, 무슨 일인데?""카지노에서 한번 뵙고 싶습니다.""그래. 나도 마침 할 이야기가 있었어. 카지노에서 보자.""예, 형님. 그럼 그쪽으로 가겠습니다."통화를 마친 도현은 차를 몰고 카지노로 향했다.---카지노.카지노에 도착한 도현은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수많은 고객이 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지켜봤다.곳곳에서 게임을 진행하는 소리가 들렸고, 사람들의 표정에도 긴장과 기대가 교차했다.그때 카지노
도현은 로렌이 이끄는 대로 거의 끌려가듯 따라갔다.그녀가 선택한 곳은 분위기 좋은 작은 레스토랑이었다. 테이블은 몇 개 없었지만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로렌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사장님은 아직 마카오 지리를 잘 모르시잖아요. 제가 관광도 시켜드릴 겸 데이트 장소는 직접 정할게요. 괜찮죠?"도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럼 장소는 로렌 씨께 부탁드리겠습니다."도현은 레스토랑 내부를 둘러보며 감탄했다."이곳 분위기는 정말 좋네요.""그렇죠? 제가 근처에서 가본 곳 중에는 여기가 제일 괜찮아요."로렌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도현을 바라봤다."사실 마음에 드는 남자가 생기면 꼭 한번 와보고 싶었던 곳이기도 해요."그 말을 하며 로렌은 지그시 도현을 바라봤다.도현은 살짝 당황한 듯 웃었다."왜요? 로렌 씨라면 남자들이 많이 대시했을 것 같은데요.""하하.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하죠."로렌은 어깨를 으쓱했다."제가 성격이 좀 있어서 그런지 남자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기도 하고요.""그렇군요. 아닌 것 같은데요?""하하. 맞아요. 사실 어정쩡한 남자들은 제가 사양이에요."도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웃으며 물었다."그럼 저는 어정쩡하지 않다는 말씀이신가요?"로렌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네. 사장님은 조금 흥미가 당긴다고 해야 하나?"그러더니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참, 사장님은 뭐 좋아하세요?""여기 음식은 평가가 다 괜찮네요."도현은 메뉴판을 살펴보며 말했다."로렌 씨 취향대로 골라주세요. 저는 가리는 음식이 없습니다."로렌은 웨이터를 불러 메뉴판을 살펴본 뒤 몇 가지 음식을 주문했다."사장님, 와인 한잔은 괜찮겠죠?""네, 괜찮습니다."로렌은 와인도 주문했다.잠시 후 음식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음식은 하나같이 보기 좋게 담겨 있었고 향도 훌륭했다.로렌은 와인을 잔에 따르고 잔을 들어 올렸다."우리의 첫 데이트를 위해."도현도 잔을 들어 그녀와 가볍게 건배했다.두 사
도현은 로렌과의 면담에서 반드시 원하는 답을 얻고 싶었다.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설득해야 했다. 로렌 아리사의 능력은 지금 도현에게 너무도 절실했다.하지만 도현이 준비한 조건도 결코 가볍지 않았다.로렌은 서류를 읽다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계약서에 적힌 연봉만 해도 현재 받는 금액의 두 배가 넘었다.물론 조건도 있었다.동일 업종 이직 금지.로렌에게는 사실상 종신계약이나 다름없는 조건이었다.한참 동안 서류를 살펴보던 로렌이 고개를 들었다."제가 이 서류에 사인하면 제가 얻는 건 뭘까요, 사장님?"도현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경영본부장 자리를 제안합니다."로렌의 눈이 커졌다."어머. 저 지금 대리인 건 아시죠?""네, 알고 있습니다."도현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정상적인 성과를 인정받고 승진했다면 지금쯤 부장급으로 대우받아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요."로렌은 서류를 내려놓으며 웃었다."전 지금 자리도 만족해요."도현은 그녀를 바라봤다."진심이십니까?"로렌은 도현의 적극적인 태도에 잠시 머뭇거렸다.그러다 이내 미소를 지었다."그럼 사장님. 저도 조건이 하나 있어요."도현은 곧바로 대답했다."말씀해 보시죠. 가능한 건 맞춰드리겠습니다."로렌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사장님, 저랑 열 번만 데이트해 주세요.""네?"도현의 표정이 굳었다.로렌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데이트요. 그냥 가벼운 만남 말고, 연인끼리 하는 데이트요."그녀는 도현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가능하세요?"순간 도현은 당황한 나머지 손에 들고 있던 컵을 떨어뜨렸다.딸깍!컵이 책상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그 모습을 본 로렌은 환하게 웃었다."사장님, 연애 안 해보셨어요? 하하."도현은 황급히 컵을 바로잡았다."아니요. 그런 건 아니지만……."잠시 말을 고른 뒤 덧붙였다."전혀 예상하지 못한 조건이라 조금 당황스럽습니다."로렌은 웃음을 거두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하하. 그럼 고민해 보시고 오늘 중으로
토요일 아침.도현은 주말이라고 느긋하게 잠을 잘 수 없었다.앞으로 회사의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고민하며 책상 앞에 앉아 메모를 하고 있었다.얼마나 집중했는지 휴대전화가 울리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잠시 후 다시 벨소리가 울렸다.그제야 도현은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아, 죄송합니다. 리천 형님.""아래에 도착하셨다고요? 네, 지금 내려가겠습니다."리천이 도착했다는 말에 도현은 간단히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1층에 도착한 도현은 리천을 발견하고 반갑게 인사했다.그런데 리천의 옆에는 처음 보는 남자가 한 명 서 있었다."도착하시기 전에 미리 연락을 주시지 그러셨어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형님."리천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었다."아니야. 강 사장이 바쁜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안 그래?"그리고 옆에 선 남자를 소개했다."아, 그리고 강 사장. 인사하게. 이쪽은 카터 문이라고 하네. 자네와 같은 조선 출신이야."도현은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안녕하십니까. 강도현입니다."남자도 손을 내밀며 웃었다."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조선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게 됐네요. 문성진입니다. 편하게 카터 문이라고 불러주십시오.""예. 그럼 카터 문 씨라고 부르겠습니다."도현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말했다."아,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 나누시죠."세 사람은 근처의 작은 카페로 들어갔다.자리에 앉자 리천이 먼저 입을 열었다."강 사장. 카터 문 씨는 카지노 업계에서 오랫동안 일한 사람이야."잠시 도현을 바라본 뒤 말을 이었다."쉬카이 형님이 어렵게 수소문해서 모셔 온 분이니 잘 부탁하네."카터 문이 손사래를 쳤다."아이고,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예전에 쉬카이님께 신세를 진 것도 있고요."그는 도현을 바라보며 웃었다."무엇보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강 사장님에게 흥미가 생겼다고 해야 할까요.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도현은 고개를 숙였다."고맙습니다. 저는 지금 무엇보다 사람이 절
도현이 회의실로 들어가자 임직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도현은 천천히 회의실 안으로 들어가 자신의 자리 앞에 서서 직원들을 바라봤다.그리고 직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안녕하십니까. 이번에 본사에서 새로 온 강도현입니다.""자, 다들 자리에 앉으실까요."임직원들과 도현이 자리에 앉았다."자, 오늘은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냥 얼굴 익히려고 만든 자리입니다.""큰 변화가 있어도 다들 잘 따라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지금 앞에 놓인 서류들을 검토해주시고, 내일 이 시간에 다시 회의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이것으로 취임사를 대신하겠습니다."도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자 직원들도 모두 일어나 박수를 쳤다.도현은 회의실을 나서며 직원 한 명 한 명과 악수를 나눴다.짧은 취임사를 대신하는 인사였다.도현이 밖으로 나가자 직원들도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사장실.도현은 자리에 앉아 실무 서류들을 살펴보고 있었다.그때.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네, 들어오세요."문이 열리고 직원 한 명이 들어왔다.직원은 도현의 책상 위에 서류를 올려놓고 말했다."사장님, 정말 비서 없이 괜찮으시겠습니까?""하하. 제가 지금까지 하던 게 비서였습니다.""한동안은 이게 편할 것 같습니다.""예. 그럼 그렇게 알고 따로 준비하지 않겠습니다.""네.""참, 그리고 재무이사님 좀 뵙자고 해주십시오.""예."직원은 물러갔고, 도현은 남은 서류를 검토했다.잠시 후.재무이사가 도현의 방으로 들어왔다.둘은 한동안 서류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의견을 주고받았다.이야기는 순조롭게 진행됐고, 도현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재무이사와의 회의를 마쳤다.재무이사가 자리를 떠나자 직원이 다시 들어와 도현에게 말했다."사장님, 여기 부탁하신 직원 인사기록 카드입니다.""네, 감사합니다. 자리에 놓고 일 보세요."도현은 직원들의 인사기록 카드를 검토하며 앞으로의 구상을 생각하고 있었다.직원들 기록을 보던 중 유난히 눈에 띄는 이름을 하나
도서관에서 만나는 것은 어느새 일상이 되어 있었다.강도현은 자신도 모르게 창가 자리를 먼저 확인했다.그리고.그 자리에 윤서연이 앉아 있으면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졌다.반대로 그녀가 보이지 않으면 괜히 허전했다.오늘도 마찬가지였다."안녕하세요."서연이 먼저 손을 흔들었다.도현은 웃으며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일찍 오셨네요.""도현 씨가 늦은 거예요.""설마 기다리신 겁니까?"장난처럼 던진 말이었다.그런데 서연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조금요.""..."도현은 순간 말을 잃었다.서연은 아무렇지도 않게 책
그날 이후. 강도현은 이상하게도 윤가 저택에서 만난 여자를 잊을 수 없었다. 이름도 모른다. 나이도 모른다. 어떤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자꾸 생각이 났다. "정신 차려." 도현은 고개를 흔들었다. 상대는 귀족이다. 그것도 평범한 귀족이 아니라 최고 명문가 사람. 자신과는 처음부터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적어도 다시 만나기 전까지는. * 며칠 뒤. 서울 시립도서관. 도현은 평소처럼 취업 관련 서적을 찾고 있었다. 그
8년 전. 서울. 조선의 수도. 초고층 빌딩이 하늘을 찌르고 무인 자동차가 도로를 달리는 현대 도시. 하지만 사람들의 신분은 여전히 수백 년 전과 다르지 않았다. 귀족. 그리고 평민. 태어나는 순간 모든 것이 결정되는 나라. 조선이었다. * "도현아! 늦겠다!" 이른 아침. 낡은 주택가 골목에서 중년 여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강도현은 허겁지겁 신발을 신고 밖으로 뛰어나왔다. "다녀오겠습니다!" "밥은 먹고 가!" "시간 없어요!" 도현은 손을 흔들며 골목을 빠져나갔다.
인천국제공항. 수십 명의 기자들이 입국장 앞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플래시가 연신 터졌다. "나옵니다!" 누군가 외쳤다. 곧 검은 정장을 입은 경호원들이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들 사이로 한 남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훤칠한 키. 깔끔하게 넘긴 검은 머리. 차가운 인상 속에서도 묘한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얼굴. 남자의 등장과 동시에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천룡그룹 총수님! 조선 투자 규모가 정말 30조 원입니까?" "왕실과의 회동이 예정되어 있다는 소문이 사실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