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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일진 진혁의 트라우마

Author: yeye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31 13:24:49

학교에서 거칠 것이 없던 백진혁의 세상이

송두리째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그날 이후부터였다.

조직의 보스이자 아버지인 백 현이 민우의 엄마에게 흥미를 갖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모르는 백진혁은,

오늘도 어깨에 힘을 주고 등교하여 학교 복도를 당당하게 누비고 다녔다.

거대 조폭 조직 '백호파' 보스의 아들이라는 타이틀은

여전히 그에게 거칠 것 없는 무기이자 갑옷이었고,

일진의 우두머리인 자신을 학생은 눈을 나래깔고 슬금슬금 피하기 바빴다.

하지만 그 평화롭고 오만한 등굣길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우연히 학교 식당 앞 복도에서,

진혁은 눈에 익은 뒷모습과 마주쳤다.

강민우였다.

그리고 민우의 곁에는 지난번 민우의 엄마에게 톡톡히 도움을 받았던

그 부잣집 도련님 찬서가 마치 보디가드처럼 딱 붙어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민우에게 아부하듯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 부잣집 아들 녀석의 얼굴을 보는 순간,

진혁의 머릿속에는 며칠 전 골목길에서 겪었던 끔찍한 기억이

불현듯 폭발하듯 떠올랐다.

전직 국가안보국 요원이라는 정체 모를 아줌마에게

손목이 꺾이고 어깨 인대가 마비되어 바닥을 기던 그 치욕적인 공포.

자신을 벌벌 떨게 만들었던 그 서늘한 눈빛이 고스란히 겹쳐졌다.

진혁은 저도 모르게 흠칫하며 몸을 되돌렸다.

두 사람은 진혁의 존재 따위는 신경 쓸 가치도 없다는 듯

편안한 발걸음으로 시끌벅적한 식당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무런 위협도 가하지 않았건만,

진혁의 심장은 미친 듯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수아의 살벌한 손동작과 차가운 눈빛이 트라우마처럼 뇌리를 찌르자,

진혁은 속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스스로 중얼거렸다.

"아…… 오늘따라 식당 밥이 왜 이 모양이야. 사식이 확 땡기네……."

말도 안 되는 변명과 함께 진혁은 급하게 발걸음을 돌렸다.

그는 학생들이 득글거리는 정문 식당을 피해,

터덜터덜 학교 앞 구멍가게 같은 편의점으로 향했다.

진혁의 똘마니들은 뭣도 모르고 편의점 간식 먹을 생각에

신나서 떠들며 따라 왔지만 진혁의 걸음걸이에는 힘이 없었다.

진혁은 아무 도시락이나 하나를 대충 집어 들고

구석 자리에 짱박혀 앉아 도시락을 아무렇게나 대충 삼키는

자신의 꼴을 보니 현타가 밀려왔다.

'내가 왜…… 내가 왜 이 찐따 같은 녀석들을 피해

 편의점 구석에서 도시락이나 먹고 있는 거지?'

이 상황이 스스로 생각해도 황당하고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아까 식당 복도에서 스쳐 지나갈 때 보았던 민우의 눈빛에는

분명 지난 번과는 다른 여유가 서려 있었다.

그 눈빛은 분명 지난번 자신의 엄마에게 민우 패거리들이 호되게 당한 이야기를

그 부잣집 놈의 입을 통해 낱낱이 전해 들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이 나라의 정치인들이나 경찰 간부들조차

백호파의 눈치를 보며 함부로 굽신거리지 못하는데,

그런 백호파의 수장이 바로 자신의 아버지인데...

왜 유독 자신만 저 모자 앞에서 이렇게 맥을 못 추리고 움츠러드는 것인지.

자존심이 상해 미칠 것만 같았다.

저 두 사람이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아니 적어도 이 도시에 존재하는 한 이 찜찝하고 불쾌한 패배감과 트라우마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진혁은 젓가락을 내던지며 이를 갈았다.

아버지 백 현이 하루빨리 이 거슬리는 모자를

완전히 짓밟아 이 도시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만들어 주기를,

진혁은 마음속으로 간절하고 또 간절하게 바라고 또 바랬다.

못난 모습이라도 어쩔 수 없었다.

이런 마음, 이런 생각.... 아무도 모를테니 상관없었다.

방과후 골목길은 진혁 패거리들의 행패가 사라져 평화롭고 조용했다.

진혁이 피씨방에서 게임이나 하고 있어도 

어느 하나 누구를 삥 듣자고 말하는 아이들이 없었다.

차수아, 그 아줌마의 무서운 손이 , 그 날까로운 눈이 

어디에선가 자신을 바라보로 금방이라도 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수아의 효과가 얼마나 더 지속될지, 

이 평화가 얼마나 더 지속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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