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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기관 앞으로 찾아온 검은 세단

Author: yeye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30 21:06:00

다음 날 이른 저녁,

공공기관의 업무가 끝나고 퇴근 시각을 알리는 종이 울릴 무렵이었다.

정문 앞 너른 도로변에는 눈에 띌 정도로 위압적인 광채를 내뿜는

검은 세단 두 대가 엔진 시동을 켠 채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지나가는 시민들과 동료 청경들조차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기는 차를 보며

저마다 힐끔거리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건물 안에서 정복 차림의 모자를 단정하게 고쳐 쓰며 걸어 나오던 차수아의 눈에도

그 검은 세단이 들어왔다. 그녀의 미간이 미세하게 찌그러졌다.

시이익—.

수아가 다가오는 것을 확인한 앞 차량의 뒷좌석 창문이 스르륵 내려갔다.

그 안에는 얼굴에 옅은 상처 자국이 남은,

험악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백호파의 수장, 백 현이었다.

백 현은 사뭇 진중하고 무거운 눈빛으로 수아를 응시하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차수아 씨."

수아는 멈춰 서서 차 안의 남자를 싸늘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어제 골목길에서 부하들을 보내 자신을 시험하려 들었던

조폭 무리의 우두머리라는 것이 한눈에 느껴졌다.

"……?"

"차수아 씨, 저는 백진혁의 애비 되는 사람입니다.

 잠시 대화하고 싶은데, 차에 좀 타시겠습니까?"

정중한 척 격식을 차리려 하지만,

그 기저에 깔린 오만함과 압박감은 감추어지지 않았다.

수아의 입꼬리가 차갑게 비틀렸다.

그녀는 조폭이라는 존재 자체를 치를 떨 정도로 경멸했다.

남편을 앗아간 세상의 부조리와 맞닿아 있는 어둠의 세력들이,

어디서 감히 애 아빠라는 타이틀을 내세우며 자신을 가르치려 드는 것인가.

"아…… 그 깡패 무리 우두머리.....!"

수아가 팔짱을 낀 채 차창을 내려다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왜 그 차에 타야 하죠? 그리고……

 적어도 사람을 불러내어 그런 무례한 부탁을 하실 때는

 차에서 내려서 예의를 갖춰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내가 당신, 그 깡패조직의 똘마니라도 됩니까?"

백 현과 수아의 첫 대면.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공기 중에 날카로운 번개처럼 스파크가 튀었다.

백 현은 평생 자기 앞에 고개를 숙이지 않던 이들이 벌벌 떨던 것과 달리,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자신을 노려보는

이 당당한 전직 요원의 눈빛에서 묘한 전율을 느꼈다.

하지만 그 광경을 지켜보던 부하의 입장은 달랐다.

"아니, 이 아줌마가 진짜 겁도 없이 어디서 우리 보스한테 눈을 똑바로 떠!"

앞자리에 타고 있던 백 현의 오른팔, 태현이 참지 못하고 문을 박차고 내렸다.

태현은 성큼성큼 다가가 퇴근길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아의 손목을 거칠게 낚아채려 했다.

조폭 보스 앞에서 기를 꺾어놓겠다는 멍청한 충성심이었다.

스으윽—.

하지만 태현의 손끝이 닿기도 전에,

수아의 손이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움직였다.

반사 신경으로 태현의 손목 관절을 역으로 움켜쥔 수아의 눈빛이 살기로 번뜩였다.

지나가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자,

수아는 이를 악물며 곧장 태현의 손목을 거칠게 뿌리쳤다.

"하…… 정말.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점잖게 나누어야 할 대화 따위는 애초에 없어 보이지만."

수아는 태현을 한심하다는 듯 쏘아보며 백현을 향해 턱짓했다.

"학부모로서, 그리고 당신 자식 버릇을 바로잡아 주기 위한 차원에서

 한 번쯤 얼굴은 마주해 주죠.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저런 썩어 빠진 깡패 차에는 절대 타지 않을 테니까……."

수아는 손가락으로 두 블록 건너에 있는 한적한 카페 옆 골목을 가리켰다.

"저 골목 옆 공터로 오시죠. 걸어서 오든, 차를 타고 오든."

그렇게 말하곤 대답조차 듣지 않은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먼저 걸음을 재촉하는 차수아.

그 당당하고도 서늘한 뒷모습을 바라보는 백 현의 눈동자가 깊게 빛났다.

여자가 이토록 매력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살아오면서 처음 깨달았다.

살면서 지금껏 자신에게 이렇게 당당하게 말 한 여자는

단 두 명 뿐이었다.

백진혁의 엄마였던 미경과 지금 눈 앞에 있는 여자, 차수아.

조폭 보스의 권력에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제압해 버리는 저 기개.

백 현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리며 차에서 내리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한 발 앞서,

뒤따라오던 세 명의 백호파 간부들이 보스의 체면을 지켜주겠다는

쓸데없는 충성심에 사로잡혀 수아의 뒤를 잰걸음으로 바짝 쫓아가기 시작했다.

"저 건방진 아줌마가 어디서 보스를 무시해? 정신을 좀 차리게 해 줘야겠군!"

백 현이 뭐라 말하고 말릴 사이도 없이

간부들이 수아를 에워싸듯 골목 안으로 밀어 넣으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앞서 걸어가던 수아가 피식 코웃음을 치며

순식간에 몸을 반 바퀴 돌렸다.

전직 안보국 블랙 요원의 실전 전투 감각이 일순간에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퍼억—! 으드득—!

백 현이 듸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재빨리 차에서 내려 달려갔지만.

그가 도착하기도 전에.

그리고 "멈춰!"라고 소리칠 새도 없이

골목 안에서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잠시 후. 백 현이 황급히 골목으로 들어섰을 때,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백호파에서 손꼽히는 정예 간부 세 명이 영문도 모른 채

골목 아스팔트 바닥에 나뒹굴며 뒹굴고 신음하고 있었다.

"이, 이 자식들……! 내가 언제 공격하라고 명령을 내렸지?!"

백 현은 기가 막히다는 듯 소리를 버럭 질렀다.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당황하고 분통을 터뜨린 이유는

부하들이 맞아서가 아니었다.

간부들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수아의 하얀 손목 위에

자칫하면 깊게 베일 뻔한 작은 칼자국과 함께

붉은 피가 뚝뚝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난 그저 대화를 좀 해보려던 거였는데……

 이 미련한 곰탱이 같은 자식들!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버려!

 그리고 감히 내 명령도 없이 칼 휘두른 놈은 각오 단단히 하고 있어라."

백 현이 뒤따라온 태현을 향해 살기 어린 눈빛으로 고함쳤다.

태현은 진땀을 흘리며 바닥에 엎드린 간부들을 걷어차며 물러나게 했다.

백 현은 미안함과 걱정이 뒤섞인 얼굴로

피가 맺힌 손목을 감싸 쥔 수아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수아의 눈동자는 이미 이성을 잃을 정도로 사나운 분노로 불타고 있었다.

어제는 부하들을 보내더니,

오늘은 대낮부터 조폭 무리를 이끌고 와

자신을 협박하고 부하들까지 시켜 위협을 가했다고 오해한 수아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거친 호흡을 몰아쉬었다.

"이러려던 게 아니었는데……."

백 현이 조심스럽게 한 걸음 다가서며 해명하려 입을 열었지만,

수아는 그를 향해 살기 어린 시선을 던지며 으르렁거렸다.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

 당신이랑 나눌 대화 따위 없으니까.

 다음 번엔 이 정도로 안 끝날거야.

 전부 수족을 못 쓰게 만들어 경찰에 넘겨 버릴테니까."

두 사람의 첫 공식 대면은 파국과 오해,

그리고 더 깊고 짙은 집착의 소용돌이를 예고하며

폭풍 전야처럼 팽팽하게 얼어붙고 있었다.

(이후, 백 현의 섣부른 첫마디가 어떤 살벌한 기싸움을 불러일으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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