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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운명의 첫 그림자

Author: 데이지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6-18 11:11:01

아직 한 마디도 들은 적 없는 사람.

이름조차 모르는 남자.

하지만 왜인지 모르겠는 떨림이 그의 모습과 함께 가슴 위로 올라왔다.

‘저 사람…’

그녀는 이유 없이 손끝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공기는 다른 무사들과는 달랐다.

기세라기보다, 결이 있었다.

그 결은 단단하고 곧았지만 어딘가에 오래된 상처를 품은 듯한 분위기였다.

한편, 세자의 곁에 서 있어야 할 자리에 그는 정확히 서 있었다.

세자 현. 오늘 그녀가 첫 인사를 올려야 할 사람.

혼례를 올릴 예비 남편이자, 나라의 중심이 되어갈 사람.

그러나 지금 이수의 시선을 붙잡아 두는 사람은

세자가 아니라 그 옆에서 묵묵히 서 있는 무사 한 사람이었다.

“마마를 뵙사옵니다.”

현의 목소리가 조용히 내려왔다.

이수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천천히 예를 올렸다.

그의 음성은 부드럽고 명확했다.

왕세자의 위엄을 갖추었으나, 그 아래에 복잡한 감정이 한 겹 숨겨져 있었다.

그녀가 얼굴을 들기도 전에, 그 옆의 무사가 한 발 앞으로 나왔다.

그는 절도 있게, 그리고 어떤 이유인지 모르게 자신도 모를 무게를 지닌 표정으로 말했다.

“세자빈마마의 걸음을 인도하라는 전하의 분부가 있었습니다.”

현이 낮게 웃었다.

“오늘 하루쯤은 네가 함께 모셔도 괜찮겠지.”

이수는 그제야 얼굴을 들었다.

그리고, 그와 눈이 마주쳤다.

찰나였지만, 그 순간 세상은 아주 얇은 막처럼 흔들렸다.

그의 눈은 깊었다.

바람 없는 날의 연못처럼 고요했지만,

그 속에서는 오래된 상처의 그림자 같은 것이 문득 스치는 듯했다.

그리고, 그 눈이 그녀를 보는 순간 이수는 숨을 들이쉬는 것조차 잠시 잊어버렸다.

‘이 사람을 본 적이… 있었던가?’

말이 되지 않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세상이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마음이 이렇게 낯설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다.

“이쪽으로 드시옵니다.”

그의 음성이 가까이에서 들렸다.

저음이었고, 담담했으며,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지만 차갑지도 않았다.

그저 묘하게 마음에 남는 음성이었다.

이수는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궁의 복도는 길고 조용했다.

비가 스쳐간 기와가 햇빛을 받아 아직 마르지 않은 물기를 은빛으로 반짝였다.

발걸음과 함께 비단 치마가 돌바닥을 스치며 아주 미약한 소리를 냈다.

그가 앞서 걷고, 그녀가 뒤를 따르는 형태였다.

그의 뒷모습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폭우에도 젖지 않을 것처럼 곧았고, 폭풍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처럼 단단했다.

그런데 어딘가에 아주 작은 슬픔이 묻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서 온 것인지 이수는 알 수 없었다.

“마마.”

그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이수의 심장이 작게 떨렸다.

그를 부른 것도 아닌데 왜 자신이 심장이 먼저 반응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처음이시지요. 궁의 공기는 익숙해지는 데 조금 시간이 걸리옵니다.”

그의 목소리는 다정하지도 않았고, 환대하려는 의지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따뜻했다.

이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짧은 대답이었지만 그 속에는 많은 떨림이 담겨 있었다.

그 떨림은 좋은 의미도, 나쁜 의미도 아니었다.

그저 운명의 시작 같은 떨림이었다.

그들이 걷는 복도 아래로 햇빛이 조금씩 강해졌다.

문틈 사이로 스며든 빛줄기들이 바닥에 길게 누워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빛 위를 두 사람의 그림자가 나란히 걸어갔다.

아직 그들은 알지 못했다.

이 만남이 비극의 씨앗인지, 기적의 시작인지.

다만 분명한 것은 이 순간이 천 년을 돌아 다시 이어질 이야기의 첫 장면이라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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