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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열리지 않는 상자

ผู้เขียน: 데이지
last update วันที่เผยแพร่: 2026-06-18 11:12:32

아침 햇살이 기와 위를 얇게 훑으며 지나갔다.

비가 그치고 얼마 되지 않은 궁의 공기는 습기와 햇빛이 뒤섞여 묘한 온기를 띠고 있었다.

이수는 도진의 뒤를 조심스럽게 따라 걷고 있었다.

비단 치마가 발목에 스치는 소리가 궁의 긴 복도에 조용히 흩어졌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종종 그 소리가 마치 자신이 낯선 인생의  첫 페이지를 넘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도진은 일정한 속도로 걸었다.

돌바닥 위에 닿는 그의 발걸음은 군더더기 없이 단정했다.

앞서가는 그의 뒷모습은 그가 평생 검을 들어왔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 기압처럼 고요하고,

그 고요 아래에는 언제든 벼락을 내릴 수 있는 힘이 감추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수는 그 힘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다.

‘저 사람… 도대체…’

처음 본 순간부터 그녀의 심장 한쪽이  설명할 수 없는 떨림을 만들어냈다.

두근거림이라기엔 너무 날카롭고, 긴장이라기엔 지나치게 깊었다.

마치 아주 오래전,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기다렸던 기억이  몸속 어딘가에서 일어나듯한 감각.

이수는 그 감정을 애써 숨기며 궁의 끝없는 회랑을 바라보았다.

복도 양쪽에는 붉은 단청이 그려진 기둥들이 규칙적으로 이어져 있었고,

그 위에는 구름과 봉황 문양이 고요히 펼쳐져 있었다.

무수한 사람들의 숨과 발자국이 스며든 공간.

그 중심 어딘가에 자신이 ‘세자빈’이라는 이름으로  놓여 있다는 사실이 아직은 믿기지 않았다.

그러던 중, 도진이 불쑥 걸음을 멈췄다.

이수는 움찔하며 멈칫했다.

그의 뒷모습이 갑자기 가깝게 느껴졌다.

마치 그가 멈추자 내가 숨 쉬는 공기도 같이 멎어버린 것처럼.

도진은 고개를 반쯤 돌린 채 말했다.

“마마.”

짧은 부름이었지만 그 속에는 조심스러움과 낯섦,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한 겹의 감정이 묻어 있었다.

이수는 허리를 곧게 세웠다.

“예… .”

도진의 눈이 잠시 그녀의 눈과 닿았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 마주침은 이수에게  작고 기묘한 전율을 남겼다.

허리춤이, 손끝이, 어깨가 아주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스스로 느낄 정도였다.

“앞으로 이 궁에서는…”

그는 말을 잇기 전에 잠시 숨을 고르듯 멈췄다.

그 침묵이 이수의 귀를 간질였다.

“…마마께서 원하시는 대로 움직이기 어려운 날이 많을 것이옵니다.”

이수는 그의 말뜻을 잠시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뜻이오?”

도진은 눈을 깊게 가라앉힌 채 덧붙였다.

“마마는 이제 이 나라의 어버이가 되실 분의 곁에 서는 분이십니다.

어떤 발걸음도, 어떤 말도… 누군가의 두 눈이 지켜보게 될 것이옵니다.”

그의 말은 단순한 조언 같았다.

그러나 그 속에는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인지,

아니면 어쩔 수 없이 경계하라는 경고인지 모를 복잡한 결이 섞여 있었다.

이수는 그 의미를 헤아려보려 했지만 말보다 먼저 그의 표정에 시선이 붙잡혔다.

말수는 적었지만 그의 눈은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을 들여다보는 순간 이수의 마음이 아주 작게 흔들렸다.

‘이 사람… 왜 이렇게…’

익숙한 듯 낯설고, 낯선 듯 익숙했다.

이런 감정은 세자 현을 처음 마주했을 때도  느끼지 못한 떨림이었다.

“제가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오?”

이수가 조용히 물었다.

도진은 잠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마마. 궁은 작은 말 하나에도  귀가 열리는 곳이옵니다.”

그의 음성은 단단했다.

하지만 어디선가 묘하게 따뜻했다.

이수는 그 말을 곱씹으며 고개를 숙였다.

“명심하겠소.”

그녀의 말투는 침착했지만 내면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낯선 공간, 낯선 역할, 그리고… 낯선 남자에게 끌리는 이 기묘한 감정.

그때였다.

멀리서 나직한 발소리가 들렸다.

궁인 몇 명이 허리를 깊게 숙이며 다가오고 있었다.

“마마를 뵙사옵니다.

저하께서 잠시 후 전하와의 조회가 있어 이곳에서 마마를 기다리라 하셨사옵니다.”

이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하늘은 제법 밝아져 있었고, 바람은 아직 젖은 향을 품고 있었다.

도진은 한 걸음 비켜 서며 그녀의 옆길을 열어주었다.

이수는 스스로도 모르게 그의 옆을 지나갈 때 살짝 숨을 들이켰다.

그와 스친 공기 속에서 묘한 냄새가 느껴졌다.

비에 젖은 나무, 칼집에 스며든 기름,

그리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익숙함.

그 익숙함이 무엇인지 이수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단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는 단순히 세자의 호위무사가 아니었다.

그녀의 마음 어딘가 깊은 곳에서 이미 오래전에 자리를 만들어 놓은 사람처럼

아직 열어보지 않은 기억의 상자 속에 조용히 누워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수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

“따라오시오, 나인.”

도진은 고개를 숙였다.

“명 받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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