เข้าสู่ระบบ명절 특유의 분주함이 깨끗이 사라진 넓은 공간은 적막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예전에는 부산한 움직임으로 활기가 넘쳤지만, 이제는 벽면에 내걸린 장식마저 무기력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오늘이 설 연휴의 마지막 날임에도 불구하고, 고미주와 차진아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림자처럼 조용히 존재감을 드러내던 선우현의 모습도 자취를 감추었고, 조용히 움직이는 도우미들 사이에서 오직 차진철 회장만이 고독한 군주처럼 홀로 서 있었다.
지난번 방문 때는 팽팽한 긴장감 탓에 목덜미가 뻣뻣하게 굳어가는 기분이었지만, 이번에는 오히려 그 압박감이 걷히자 묘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아버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하시고, 일도 쉬엄쉬엄 하십시오.”
차준호의 목소리에는 지난
차준호는 정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거실의 통유리창 앞에 서서 신하늘과 통화를 이어가던 중, 천천히 몸을 돌렸다.“내가 질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체스판 위에 얼굴을 묻을 듯 깊이 숙인 채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차진철 회장의 모습에 차준호는 가벼운 실소를 흘렸다.승리를 놓친 아쉬움이 저리도 큰 걸까. 나이가 몇인데 자신과 마주 앉아 이토록 아이처럼 승부욕을 드러내는지.하지만 차진철 회장의 그 천진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오늘만큼은 그에게 살가운 아들 노릇을 해낸 것 같아 차준호 역시 은근히 기분이 좋아졌다.“기특한 녀석. 이렇게 아비를 이겨 먹으려고 작정을 하고 덤볐단 말이지. 이건 도저히 수가 없군. 졌어, 졌어.”투덜거리면서도 내심 싫지 않은 기색을 내비친 차진철 회장은 이내 판을 물리며 새로이 체스 기물들을 세팅하기 시작했다.오늘 신하늘에게도 판정패를 당하고, 아들에게마저 판을 내주었으니 아마 이길 때까지 체스를 두자고 고집을 부릴 터였다. 아니나 다름없이 그의 얼굴에는 껄껄 웃음꽃이 피어 있었다.“준호야, 한 판 더 하자. 얼른 이리 와.”“저 지금 통화 중이잖아요.”하지만 신하늘의 답장이 지체되자 차준호의 신경이 이내 날카롭게 곤두섰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삐걱거리는 불협화음이 아슬아슬하게 울리고 있었다.명절 내내 그녀는 마치 거꾸로 뒤집힌 모래시계처럼, 마지막 모래알이 전부 떨어져 내리면 미련 없이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위태로움을 풍겼다.이렇게 혼자 돌려보내는 게 영 마음에 걸렸는데.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그녀의 음성 역시 전과 달라져 있었다.― 3월 2일에 말씀해 주세요.신하늘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 톤 낮게 가라앉아 있었고, 단호한 가시가 돋
한남동 저택을 벗어난 나는 곧바로 택시를 불러 타고는, 편안하게 뒷자리에 젖혀 앉아 창밖 풍경을 바라보았다.긴장이 한꺼번에 풀린 탓인지 스르르 눈이 감기며 잠시 졸기까지 했다.어느덧 한낮을 넘어선 시간이라 그런지, 다행히 차가운 공기는 아침보다 한결 부드럽고 투명해진 기분이었다.갈비찜에 따뜻한 떡국까지 든든하게 챙겨 먹고, 회장님과의 체스판에서도 사실상 승기를 잡은 채 나왔으니 오늘 하루의 큰 위기는 무사히 넘긴 셈이었다.차준호는 아버지와의 체스를 이어가야 했기에 다행히 나를 따라 나오지 못했다. 이런 날만큼은 차진철 곁에서 효자 노릇이라도 좀 해주는 편이 오히려 그의 신상에 훨씬 이로울 것 같았다.웅-.휴대전화 진동이 울려 확인해 보니, 이아준이 보낸 명절 안부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하늘아, 아, 난 명절이라는 게 진짜 없어졌으면 좋겠어. 이 집안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있으니까 숨이 막혀 죽겠다.]이아준은 이번 명절 역시 괴로운지 푸념 어린 문자를 보내왔다.나 역시 명절이란 그저 학교나 회사를 가지 않아도 되는 긴 휴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날이었다. 오히려 남들의 행복과 대비되어 내 마음이 한층 더 황량해지는 날이라, 차라리 없어도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내 코가 석 자인 처지였지만, 그래도 오랜 친구인 이아준에게만큼은 조그만 숨통이라도 틔워 주고 싶었다.[그래, 조금만 더 버텨. 그 사람들에게 멋지게 한 방 먹인다며. 얼마 안 남았잖아?]나는 살포시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이아준에게 답장을 보냈다. 이아준이 머무는 저택에는 이왕춘 회장은 물론이고, 녀석을 피 말리게 만드는 나지란과 이아정 같은 이들이 바글거리고 있을 터였다.녀석이 짊어진 시름의 깊이를 감히 다 가늠할 수는 없어도, 친구로서 따뜻한 위로 한마디쯤은
나와 차진철 회장이 체스판을 펼칠 즈음, 차준호는 검은 슬랙스에 단정한 화이트 니트로 갈아 입고 계단을 내려왔다.그러고는 내 옆자리에 무심한 태도로 앉아 책을 펼쳐 들었다.그의 시선이 체스판에 닿는 순간, 입가에 걸린 미소는 오래된 유화 속 인물처럼 은은하게 빛났고, 이따금 책장 넘기는 소리만이 조용한 귓전을 맴돌았다.어느덧 한 시간이 흘렀다.차진철 회장의 공격적인 수가 체스판을 조여 오기 시작하자, 내 손바닥에는 기분 나쁜 땀이 배어 나왔다.“신 비서, 체스는 상대방의 실수를 기다리는 게임이 아니야.”차진철 회장의 목소리에는 세월이 묵직하게 배어 있는 전략가의 여유가 서려 있었다. 그렇다고 승리를 확신하는 오만한 뉘앙스도 아니었다.누군가 말했던가. 체스는 인생과 같다고.변화무쌍하게 흔들리는 체스판은 마치 요즘 내 위태로운 삶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만 같았다.하지만 100%의 승리도, 100%의 패배도 결국 끝까지 가봐야 아는 법. 내게도 분명 남은 길이 있으리라 믿었다.체스판 위에서 차진철의 퀸이 대각선으로 크게 이동하며 내 킹을 위협했고, 두 개의 룩은 직선으로 촘촘한 포위망을 구축했다.마치 그의 절대적인 권력이 내 삶을 바짝 옥죄어 오는 듯한 환영이 보였다.내 비숍은 외곽에 고립되어 있었고, 나이트는 중앙에서 초조하게 숨을 죽인 채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퀸을 이용해 아주 좋은 수를 찾으셨네요. 하지만 제게도 아직 가능성은 보이네요.”단순한 허세로 뱉은 말이 아니었다. 희미하지만 분명 돌파구가 존재한다는 직감이 나를 강렬하게 지배했다.경험이 풍부한 차진철 회장은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나를 반드시 굴복시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때 고미주는 그 말이 일리가 있다 여겼는지, 떡국을 뜨던 숟가락을 놓더니 차진아의 흘러내린 머리칼을 가만히 뒤로 넘겨주었다.“엄마, 오빠가 비밀로 하는 게 뭐가 있긴 있나 보구나?”“그냥 때가 되면 다 밝혀질 거야.”차진아는 떡국을 삼키며 장난기 어린 애교를 담아 눈매를 휘어 접었다. 그러고는 생글생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세상에 영원한 비밀이 어디 있겠어? 거짓말도 결국 다 밝혀진다고.”“입은 똑똑한 내 딸이라니까.”고미주는 그리 말하며 피식 웃고는 주방으로 향해 문어를 더 가져왔다. 국자로 차진아의 그릇에 문어를 듬뿍 얹어주며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이 카페는 다음 달부터 내가 운영 잘할 테니까 나한테 맡겨. 엄마는 이제 새 출발해도 돼.”그 소리에 고미주는 냄비를 내려놓자마자 손바닥으로 찰싹! 차진아의 등짝을 후려쳤다.“새출발? 게다가 카페 운영을 지금 한다고? 공부나 열심히 해서 대학이나 가!”“아우, 아파! 알았어, 알았다고!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외국인 손님들이 욕하겠네! 한국사람 이상하다고!”고미주는 외국인 손님들의 눈치를 살피며 어깨를 찔끔 움찔거렸다.그러고는 차진아를 향해 눈을 한번 흘기고는 따뜻한 국물까지 그릇에 가득 채워주었다.“나중에 엄마 나이 들면 이 카페 너 줄 테니까, 아프지나 마. 난 너만 행복하면 되니까.”고미주의 나지막한 한숨에는 자식을 향한 깊은 모정과 지나온 세월에 대한 탄식이 엉켜 있었다.“우리 엄마, 명절 아침부터 딸을 울릴 작정이야?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내가 나중에 성공해서 이 건물 3층
대한민국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굴지의 대기업 CC그룹 회장이 머무는 한남동 저택.명절 특유의 분주함이 깨끗이 사라진 넓은 공간은 적막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예전에는 부산한 움직임으로 활기가 넘쳤지만, 이제는 벽면에 내걸린 장식마저 무기력하게 느껴질 정도였다.오늘이 설 연휴의 마지막 날임에도 불구하고, 고미주와 차진아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그림자처럼 조용히 존재감을 드러내던 선우현의 모습도 자취를 감추었고, 조용히 움직이는 도우미들 사이에서 오직 차진철 회장만이 고독한 군주처럼 홀로 서 있었다.지난번 방문 때는 팽팽한 긴장감 탓에 목덜미가 뻣뻣하게 굳어가는 기분이었지만, 이번에는 오히려 그 압박감이 걷히자 묘한 안도감이 밀려왔다.“아버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하시고, 일도 쉬엄쉬엄 하십시오.”차준호의 목소리에는 지난 1월보다 훨씬 깊은 여유와 은은한 차분함이 배어 있었다.반면에 차진철 회장의 입술 끝에 걸린 미소는 찰나에 사라졌다. 역시 내게 벽을 세우는 것인가. 그의 시선은 칼날처럼 날이 선 채로 나를 향했다.“그래, 알았다. 신 비서도 내게 인사하러 온 건가.”차진철의 눈에 비친 나는 여전히 차준호의 수행 비서일 뿐이었다. 조금 전 정원을 내려다봤기 때문인지, 그의 말투에는 묘한 경계심이 스며 있었다.“네, 회장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약소하지만 명절 선물입니다.”그가 선물이 든 쇼핑백을 받아 들자, 손가락 끝으로 무게를 가늠하는 미세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뭘 이런 걸 다. 이따 식사하고 풀어 보지. 요즘 준호 게임 출시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며?”차준호는 차진철 회장 대신 쇼핑백을 소파 위에 내려놓고는, 마치 내 마음을
20명이 넘는 톱 연예인들과 스태프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특집 예능 프로그램 대기실.카메라 불빛과 조명 아래에서 늘 매끄럽게 포장되던 이들이 한데 엉켜 웅성거리는 소음은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 정도였다.화려한 분장과 향수 냄새가 엉킨 그 어수선한 공간 속에서, 세나는 강소희가 던진 미끼를 직면하고 있었다.“신 비서님 알지? 너랑 친한 도국의 소꿉친구인 신하늘 씨 말이야. 요즘 핫한 세종동 천사라고 난리잖아?”“······그럼요.”“나도 준호랑은 엄청 친한데, 참! 신 비서님은 회사 쉬는 건가?”세나는 강소희가 지금 자신을 떠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바보가 아니었다.세나의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자신은 나름대로 차준호 대표의 소속사 가수이자 도국과도 엮여 있는 당사자였다. 말 한마디에 다른 사람의 입장까지 걸려 있기에 어느 때보다 신중해야 했다.“게임 개발실에서 철야 근무하신다는 소문은 들었어요. 더 열심히 일하신다고 하더라고요.”“그래? 차 대표님이랑은 어때 보여?”역시 강소희의 본론은 이것이었다.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바로 그때, 손에 쥐고 있던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구원과도 같은 전율이었다.저 멀리 대기실 구석에서 나나가 눈짓을 보내며 전화를 걸어온 것이었다. 세나는 조심스레 손을 들어 보이며 이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아, 선배님. 죄송합니다. 잠시만요.”그러자 강소희는 오히려 손짓을 해 보이며 전화부터 받으라는 듯 너스레를 떨었다.“전화 먼저 받아. 참, 내가 이번에 들어가는 영화 OST에 도국이랑 듀엣 해줬으면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의 정적을 깨우는 밤 11시 반 무렵.창밖으로는 하얀 눈꽃이 송이송이 흩날리며 세상의 모든 소음을 집어삼키고 있었지만, 강남 C 호텔 25층 로열 스위트룸 내부는 숨 막힐 듯 팽팽한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조도를 최대한 낮춘 짙은 어둠 속에서 나는 차준호라는 거대한 포식자에게 온전히 잠식당한 채, 밤을 녹여내는 은밀하고도 위태로운 시간을 보냈다.내 몸의 지도를 그보다 더 세밀하게 파악하고 있는 존재는 세상에 없었다. 귓가를 어지럽히는 그의 뜨겁고도 습한 숨결이 예민한 목덜미를 따라 부드럽게 흘러내
난 차준호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오전에 회사에 들른 뒤 자료를 챙겨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버스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은 진창에 처박힌 내 마음처럼 흐릿했다.가던 중에 벨이 울려 확인하니 반가운 도국이었다.-하늘아, 어디야?요즘 부쩍 날 챙겨 주는 도국과 이아준이었다. 회사 일로 바쁜 날 염려해 주는 동시에 고민이 있는 엉망인 내 상태를 눈치챘는지 여러모로 신경 써주니 고맙기만 했다.“바쁜데, 뭘 또 전화까지. 난 병원 가는 길.”-어제도 밤새 게임같이 해 놓고 피곤하겠네.“오늘 3시 출근이라 늦잠 잤어. 참,
무슨 그런 거짓말을.내 머릿속에선 운명 교향곡이 요동쳤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한 거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수면 부족과 카페인의 부작용일까. 평소 차분함과 다혈질이 공존하던 내 감정은 이미 균형을 잃은 지 오래였다.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화살은 이미 날아갔고 물은 엎질러졌다.“재미있네. 나는 신 비서를 좋아하지도, 사귈 리도 없을 텐데?”차준호는 내 말을 믿지 않았는지 코웃음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난 목에 닿은 펜던트를 무의식적으로 만지다가, 그의 손길이 닿았던 순간이 떠올라 몸을 떨었다.이걸 그가 크
사람들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유령처럼 떠돌던 이름의 실체.신하늘, 신 비서. 차준호는 누워 있는 내내 의식의 수면 아래에서 울리던 그 이름이 내심 신경 쓰였다.하지만 드디어 눈앞에 나타난 실체를 마주한 순간, 관자놀이가 끊어질 듯 욱신거리며 지독한 두통이 밀려왔다.그녀의 이름 세 글자가 왜 이토록 심장 가장 깊은 곳을 거슬리게 긁어내리는 걸까. 기묘한 일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졸졸 쫓아다녀 철벽만 치기 바빴던 강소희랑 같이 사고가 났다니. 하지만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한 톨의 아쉬움도 일지 않았다.대신 눈앞의 신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