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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목에 겨눠진 칼

Autor: 비밀
last update Data de publicação: 2026-07-08 13:37:51

통로 안의 공기가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천장에서 똑똑 떨어지던 물방울 소리마저 끊긴 것 같았다.

돌아보지 않아도, 엘로라는 그 목소리의 주인을 알았다.

낮에 대전에서 목덜미를 짓누르던 시선이, 지금 등 뒤에서 똑같이 내려앉고 있었으니까.

몸을 돌리자 어둠 속에서 검은 망토를 두른 남자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즉위식 예복도 채 벗지 않은 차림이었다.

가슴께에 수놓인 황금 사자가 횃불을 받아 번쩍였다.

그 위에서, 피 한 방울을 떨어뜨린 것 같은 붉은 눈동자가 서늘하게 빛났다.

황제 칼리안 그레이스.

불과 몇 시간 전, 그녀가 고개를 조아리며 충성을 맹세한 남자였다.

"화,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인사는. 이제 와서."

칼리안이 다가왔다.

큰 키가 좁은 통로를 꽉 채워, 그가 한 걸음 디딜 때마다 어둠이 한 뼘씩 그녀 쪽으로 밀려왔다.

가죽 장화가 젖은 돌을 밟는 소리가 귓속을 긁었다.

엘로라는 로웰의 손을 끌어당겨 유모를 등 뒤로 숨기고 반걸음 앞으로 나섰다.

"저는 죽이셔도 좋습니다."

"그래?"

"대신 유모는 살려주세요."

"내가 왜."

"마지막 소원이니까요."

"남의 소원 들어주는 취미는 없는데."

"그럼 오늘 하나 생기시는 거죠."

칼리안의 한쪽 입꼬리가 비틀렸다.

다음 순간, 칼집에서 검이 뽑혔다.

쇳소리가 통로를 길게 긁고 지나갔다.

로웰이 짧은 비명을 삼켰다.

엘로라는 눈을 질끈 감았다.

'끝이구나. 유모, 미안해.'

삼 년 넘게 흙을 퍼 나른 손이 지금 그녀의 등 뒤에서 떨고 있었다.

억울함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혀뿌리가 썼다.

태어나서 한 번도 제 것이었던 적 없는 삶이, 끝마저 남의 칼끝에서 정해지고 있었다.

목덜미에 차가운 기운이 닿았다.

아프지 않았다.

눈을 뜨자 검 끝이 목 바로 앞, 한 치 거리에서 멈춰 있었다.

칼리안이 재미있다는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왜. 정말 죽일 줄 알았나?"

"……아니셨어요?"

"아직은."

"……."

"겁은 많으면서 도망은 부지런하군."

그가 검을 거두고 어둠 쪽으로 손가락을 까딱였다.

검은 갑옷의 기사들이 쏟아져 나와 통로 양쪽을 막았다.

기사 둘이 로웰의 양팔을 붙잡았다.

"유모!"

"아가씨, 괜찮아요! 괜찮으니까……."

"폐하, 유모는 죄가 없어요!"

"알아. 죄는 네가 지었지."

엘로라가 몸을 던지듯 로웰에게 달려들려 했지만, 칼리안의 손이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손아귀는 쇠고랑처럼 단단했다.

아프게 조이지는 않았다.

다만 손가락 하나 비틀 틈도 없었다.

"죽이진 않아."

칼리안이 몸을 숙여 그녀와 눈높이를 맞췄다.

숨결이 뺨에 닿을 만큼 가까웠다.

서늘한 철 냄새와 타다 남은 향 냄새가 섞여 났다.

"그럼요."

"지하 감옥. 네가 얌전하면 저 여자도 얌전히 산다."

"제가 또 도망치면요?"

"네가 상상하는 그대로."

엘로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이 남자의 붉은 눈을 보고 있으면, 그 장면이 저절로 그려졌다.

"……이 통로, 어떻게 아셨어요."

"이 궁에 내가 모르는 쥐구멍은 없어."

"유모가 몇 년을 걸려 판 길이에요."

"알아. 삼 년 반."

손목을 쥔 그의 엄지가 맥이 뛰는 자리를 지그시 눌렀다.

엘로라는 그제야 깨달았다.

이 남자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알면서 지켜보기만 했다.

오늘 밤, 그녀가 제 발로 이 길에 들어서기를 기다리면서.

로웰이 끌려갔다.

멀어지는 쇠사슬 소리 사이로, 유모가 몇 번이고 그녀를 불렀다.

아가씨, 아가씨.

엘로라는 그 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붙잡힌 손목을 빼내지 못했다.

칼리안이 그제야 손을 놓았다.

손목에 그의 손가락 자국이 붉게 떠올라 있었다.

해진 장갑 구멍으로 삐져나온 엄지가 제멋대로 떨렸다.

엘로라는 그 손을 치마 주름 속에 감췄다.

칼리안이 내일 날씨라도 말하듯 덧붙였다.

"오늘 밤부터 넌 내 침실에서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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