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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망치던 밤

Penulis: 비밀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7-08 13:36:35

이십 년이 흘렀다.

그리고 선황 카시안이 죽었다.

부고가 내려온 날부터 황궁은 소리를 잃었다.

시녀들은 발뒤꿈치를 들고 걸었고, 시종들은 복도 모퉁이마다 멈춰 뒤를 살폈다.

장례가 채 끝나기도 전에 황태자 칼리안은 피비린내 나는 권력 다툼을 단 사흘 만에 정리했다.

황위를 넘보던 숙부 둘이 목을 잃었다.

그들을 따르던 백작가 셋이 문을 닫았다.

즉위식이 끝난 그날 밤, 궁 안의 누구도 감히 새 황제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못했다.

*

대전에는 낮부터 피 냄새가 떠돌았다.

향을 아무리 피워도 덮이지 않는, 녹슨 쇠 같은 냄새였다.

대신들이 줄지어 충성을 맹세하는 동안, 기둥 뒤편에는 덜 닦인 핏자국이 거뭇하게 남아 있었다.

엘로라는 황녀들의 맨 끝자리에 서 있었다.

차례가 오자 대전이 잠깐 조용해졌다.

누군가 부채를 접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엘로라 그레이스. 새 황제 폐하께 충성을 맹세합니다."

옥좌 위의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른 이들에게는 턱 한 번 까딱하고 넘어가던 붉은 눈이, 그녀 앞에서 멈췄다.

멈춘 채 떠나지 않았다.

엘로라는 조아린 목덜미에 그 시선이 칼등처럼 얹히는 걸 느꼈다.

뒤편 어디선가 킥킥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반푼이가 드디어 목이 날아가겠네."

"쉿, 들려요."

"들으라고 하는 소리야."

그날 저녁, 로웰이 처음으로 그 말을 꺼냈다.

오늘 밤, 떠나자고.

*

지하 통로 입구는 허리를 굽혀야 겨우 들어갈 만큼 낮았다.

곰팡이 냄새와 젖은 흙냄새가 뒤섞여 숨을 들이쉴 때마다 목이 따끔거렸다.

벽에 꽂힌 횃불 하나가 바람도 없는데 자꾸만 흔들렸다.

"아가씨, 이쪽이요. 머리 조심하시고."

"유모, 정말 이 끝이 궁 밖이야?"

"그럼요."

"어떻게 장담해?"

"제가 팠으니까요. 몇 년을 두고."

"……몇 년?"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거든요. 자, 발밑. 물 고였어요."

로웰은 더 묻기 전에 그녀의 손을 끌었다.

거칠고 따뜻한 손이었다.

이십 년 동안 한결같이 그랬다.

엘로라는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좁은 틈 너머로 황궁의 첨탑들이 달빛 아래 검은 칼날처럼 솟아 있었다.

스무 해를 산 곳이었다.

제집이라 느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도 발바닥이 바닥에 들러붙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궁 안의 모두가 그녀를 반푼이 황녀라 불렀다.

선황이 밖에서 데려온 사생아를 후궁의 딸이라 우겨 황녀 자리에 앉혔다는 소문은, 이 궁에서 비밀도 아니었다.

황실의 피가 반쯤 섞였을까 말까 한, 출처를 알 수 없는 계집아이.

그래도 선황이 살아 있을 땐 버틸 만했다.

허수아비 황제라 불리던 그 사람은, 다른 건 다 내줘도 그녀만큼은 끝까지 쥐고 놓지 않았다.

그 손이 이제 없었다.

새 황제는 하루에도 몇 명씩 사람을 죽인다는 폭군이었다.

'반푼이 하나쯤, 그 남자한텐 결재 서류 한 장보다 가볍겠지.'

손끝이 얼음물에 담갔다 뺀 것처럼 저렸다.

엘로라는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반달 모양으로 남았다.

"손 내밀어 보세요."

"왜?"

"얼른요."

로웰이 품에서 작은 꾸러미를 꺼내 쥐여주었다.

마른 빵 두 덩이와 은화 몇 닢.

그리고 다 해진 털실 장갑 한 켤레.

"이거 내 장갑이잖아."

"버리라 하신 걸 제가 챙겼죠. 끼세요."

"유모는?"

"전 손이 원래 뜨끈하잖아요. 아시면서."

엘로라는 장갑을 꼈다.

엄지 쪽에 구멍이 나 있었다.

열 살 때부터 끼던 장갑이었다.

털실에서 로웰의 앞치마 냄새가 났다.

잿물 비누와 마른 빵 냄새.

"가자, 유모."

앞은 어둠뿐이었다.

그래도 저 끝에는 적어도, 그녀의 목을 노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통로 안으로 들어섰다.

고인 물이 신발 밑에서 철벅거렸다.

등 뒤의 횃불 빛이 점점 작아지더니 바늘구멍만 해졌다.

서른 걸음째였다.

뚜벅.

그들의 것이 아닌 발소리가 어둠을 울렸다.

엘로라의 발이 그대로 멈췄다.

손안에서 로웰의 손이 차갑게 굳었다.

뚜벅. 뚜벅.

서두르지 않는 걸음이었다.

쫓는 사람의 걸음이 아니었다.

이미 덫에 걸린 짐승에게 다가가는, 느긋한 걸음이었다.

그 끝에서, 음산할 만큼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 어딜 도망가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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