ログイン“네, 엄마.”유도현의 그 한마디가 폐교 교실 안에 오래 머물렀다.유서연은 아들의 손을 놓지 못했다. 손가락 마디마다 힘이 없었지만, 그 손만큼은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었다.유도현도 피하지 않았다.유도현. 유도하.두 이름이 그의 안에서 부딪히는 대신, 처음으로 나란히 앉았다.서아는 그 모습을 보며 눈을 감았다.이름을 되찾는다는 건 누군가의 과거를 지우는 일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이름과, 빼앗긴 이름이 서로를 죽이지 않도록 자리를 만들어주는 일이었다.그때 차라온이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유도현 씨.”유도현은 천천히 그녀를 보았다.차라온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저는 당신과 어머니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두 사람의 선택을 빼앗았습니다.”교실 안은 조용했다.“강도현이 했던 짓을 증오하면서, 저도 같은 방식을 썼습니다. 다만 더 다정한 말로 포장했을 뿐입니다.”유서연이 낮게 말했다.“라온아.”차라온의 눈물이 떨어졌다.“저는 용서받으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오늘부터 강윤서 기념재단의 모든 권한을 독립 보호 절차에 넘기겠습니다. 제가 숨긴 아이들 명단도, 보호 장소도, 감시 기록도 전부 제출하겠습니다.”지연이 차갑게 물었다.“그럼 ‘윤서의 후계자’는 당신이야?”차라온은 고개를 저었다.“처음엔 저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서아의 눈빛이 굳었다.“그럼 누구예요.”차라온은 떨리는 손으로 노트북을 열었다.“3년 전, 재단 내부에서 갈라졌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천천히 돌려주자고 했고, 다른 사람은 끝까지 숨겨야 한다고 했습니다.”“다른 사람?”차라온은 화면을 돌렸다.Kang Yoon-seo Memorial FoundationDelegated Control: Protected Child BCurrent location: Taesung Medical Archive도윤의 얼굴이 굳었다.“Protected Child B. 태성의료기록보관소.”유도현이 물었다.“그 사람도… 우리 같은 사람입니까?”차라온은
차라온은 파일을 들고 한참 서 있었다.N-00 Maternal Identity — Final Key얇은 종이철 하나였다. 하지만 그 안에는 유도현이 평생 찾던 질문의 끝이 들어 있었다.서아는 그것을 받지 않았다.“유도현 씨에게 줘요.”차라온의 손끝이 떨렸다.“제가요?”“네.”서아의 목소리는 단단했다.“숨긴 사람도 당신이고, 지키려 했던 사람도 당신이라면, 이제 돌려주는 사람도 당신이어야 해요.”차라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그 사람이 나를 원망하면요.”“원망할 수 있죠.”짧은 침묵.“그것도 빼앗지 마요.”차라온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서아는 그녀를 데리고 아래층 교실로 내려갔다.교실 안, 유도현은 아직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었다. 정하린이라는 가명 뒤에 숨어 있던 여자는 지친 얼굴로 아들의 손등을 쓰다듬고 있었다.그 손길은 어색했다.수십 년을 잃어버린 손이었다. 하지만 유도현은 그 손을 피하지 않았다.차라온이 들어오자 민재가 먼저 고개를 숙였다.“라온 누나…”유도현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당신이었습니까.”차라온은 대답하지 못했다.유도현은 천천히 일어났다.“내가 어머니를 찾지 못하게 한 사람.”차라온은 입술을 깨물었다.“맞아요.”교실 안이 조용해졌다.차라온은 도망치지 않았다.“저는 당신을 보호한다고 생각했습니다. N-00이 움직이면 잔여 감시망이 깨어난다고 믿었고, 당신 어머니와 직접 연결되면 두 사람 모두 위험하다고 판단했습니다.”유도현은 낮게 물었다.“그래서 내게 묻지도 않았습니까?”“네.”“내 어머니에게도?”차라온의 눈물이 떨어졌다.“네.”유도현은 웃었다.무너진 웃음이었다.“강도현과 뭐가 다릅니까.”차라온은 고개를 숙였다.“다르지 않았습니다.”그 대답에 모두가 멈췄다.차라온은 떨리는 손으로 파일을 내밀었다.“그래서 돌려드리러 왔습니다.”유도현은 파일을 바라봤다.그러나 바로 받지 못했다.그 안에 있는 이름을 너무 오래 기다렸다. 기다린 만큼 두려웠다.서아가 조용히
Unknown S-line successor.그 문장 앞에서 모두가 멈췄다.강도현은 잡혀갔다. 하지만 끝난 게 아니었다.강도현의 방식으로 사람을 지우던 자가 있었다면, 이번에는 강윤서의 이름으로 사람을 묶는 자가 있었다.서아는 민재를 바라봤다.“누가 시켰어.”민재는 고개를 숙였다. 방금 전까지 날카롭던 얼굴은 사라지고, 겁먹은 아이 같은 표정만 남아 있었다.“말하면 안 돼.”태준이 낮게 말했다.“이미 말했어. 윤서의 후계자.”민재의 손이 떨렸다.“그 사람은 우리를 살렸어.”지연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방금 도현 씨랑 어머니 이름 뿌리려던 사람이 할 말은 아닌데?”민재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그러니까 막으려고 한 거야!”교실 안이 조용해졌다.민재는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N-00이 산모랑 직접 만나면 감시 트리거가 열린다고 했어. 이름이 연결되면, 잔여 라인이 움직인다고 했어. 그래서 접촉을 끊어야 한다고…”유도현의 얼굴이 굳었다.“그래서 내 어머니 이름을 밖에 뿌리려고 했습니까?”“진짜 이름은 아니야.”민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가짜 후보였어. 외부를 그쪽으로 돌리려고. 진짜 이름이 드러나지 않게.”서아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미끼였다는 거네.”민재는 입술을 깨물었다.“보호하려고…”“그 말 하지 마.”서아가 낮게 끊었다.“그 말로 태성이 엄마들을 묶었고, 아이들을 옮겼고, 이름을 지웠어. 이제 그 말까지 물려받을 필요 없어.”민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정하린은 휠체어 위에서 유도현의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민재를 보며 작게 말했다.“민재야, 너도 아이였어.”민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그러니까요.”그는 울음을 참는 얼굴로 말했다.“아이였으니까 알아요. 이름을 찾는다고 다 행복해지는 거 아니에요. 어떤 사람은 무너져요. 어떤 사람은 지금 가족을 잃어요. 어떤 사람은 자기가 살아온 삶이 전부 거짓이 되는 걸 견디지 못해요.”그 말은 교실을 무겁게 눌렀다.틀린 말은 아니었다
Audio transmission active.External upload initiated.도윤의 태블릿 화면이 붉게 깜박였다.폐교 교실 안, 유도현은 휠체어에 앉은 여자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정하린. 아니, 아직 진짜 이름이 열리지 않은 사람. 세 번 돌아왔고, 세 번 막혔고, 수십 년 동안 도하라는 이름을 품고 살아온 어머니.그녀가 방금 처음으로 아들을 불렀다.“도하야.”그 이름이 다시 세상 밖으로 던져지려 하고 있었다.태준은 복도 끝의 남자를 벽으로 밀어붙였다.“누구한테 보냈어.”남자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웃었다.“너희가 이름을 원했잖아. 이제 모두 알게 될 거야.”지연이 그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아 바닥에 던졌다.“입 좀 닫아.”하지만 도윤의 얼굴은 풀리지 않았다.“휴대폰 하나가 아닙니다. 전송은 이미 중계 서버로 넘어갔습니다. 파일명은 N-00 Maternal Proof. 안에 모자 관계 확인 자료와 정하린 씨 실명 후보가 포함돼 있습니다.”유도현의 손이 굳었다.“실명 후보?”한재욱의 목소리가 전화 너머로 낮게 들렸다.“아직 검증 전 자료일 가능성이 큽니다. 저게 퍼지면 잘못된 이름까지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서아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가짜 이름으로 다시 죽일 생각이었네.”정하린은 힘겹게 숨을 쉬었다. 눈은 유도현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도하야… 보지 마.”그 말에 유도현의 눈이 흔들렸다.“왜요.”“엄마 이름은 나중에 봐도 돼.”그녀는 손끝에 힘을 주었다.“네가 먼저 무너지면 안 돼.”유도현은 아무 말도 못 했다.평생 듣고 싶었던 이름 앞에서, 어머니는 또 자신을 밀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알았다.버려서가 아니었다.지키려고.서아가 도윤에게 말했다.“파일 자체를 막을 수 있어요?”“완전 차단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원본 신뢰도를 깨뜨릴 수 있습니다.”“신뢰도?”“검증 전 자료라는 법적 경고, 개인정보 침해 경고, 그리고 피해자 동의 없는 자료라는 보호 서명을 동시에 붙이면
검은 승합차의 후미등이 강릉 밤길 속으로 사라졌다.유도현은 창문틀을 붙잡은 채 숨을 몰아쉬었다.“따라가야 합니다.”태준은 이미 도윤에게 손짓하고 있었다.“차량 위치.”도윤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번호판 일부와 CCTV 동선 잡았습니다. 해안도로 쪽으로 빠집니다. 그런데 차량 등록자 정보가 이상합니다.”서아는 화면을 보았다.Registered owner: Kang Yoon-seo Memorial Foundation강윤서 기념재단.죽은 강윤서의 이름이, 살아 있는 사람을 데려간 차량 위에 남아 있었다.윤정원의 얼굴은 통화 화면 너머에서 굳어 있었다.“그 이름으로 등록된 재단은… 없어야 해요.”서아가 물었다.“없어야 한다는 건요?”윤정원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윤서가 죽은 뒤, 제가 작은 재단 설립 서류를 준비한 적은 있어요. 윤서 이름으로 피해자 지원을 하려고요. 하지만 강도현이 알게 될까 봐 접었습니다. 정식 운영한 적 없습니다.”도윤이 화면을 확대했다.“법인 설립일은 2001년. 대표자는 여러 번 바뀌었고, 현재 대표자는 비공개 신탁 처리되어 있습니다.”한재욱의 목소리가 낮아졌다.“죽은 사람의 이름으로 보호망을 만든 겁니다.”지연이 곧장 말했다.“보호망인지 납치망인지 아직 모르잖아요.”유도현은 뒤돌아섰다.“저한테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저 차에 있다면 가야 합니다.”서아가 그를 막았다.“혼자 가면 안 돼요.”“방금 봤잖습니까. 여기 있었어요. 손수건도, 쪽지도.”그는 손수건을 움켜쥐었다.도하.“평생 처음으로 제 이름이 남아 있는 곳에 왔는데, 또 놓쳤습니다.”그 목소리가 무너졌다.서아는 그 앞에 섰다.“놓친 게 아니에요.”“그럼 뭡니까.”“살아 있다는 흔적을 찾은 거예요.”유도현은 숨을 멈췄다.서아는 낮게 말했다.“지금까지는 어머니가 돌아왔다는 기록만 있었어요. 이제는 어머니가 여기 있었다는 증거가 있어요. 방금 떠났다면, 아직 찾을 수 있어요.”태준이 차 키를 들어 올렸다.
강릉으로 향하는 차 안은 조용했다.누구도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유도현은 뒷좌석에서 오래된 아기 사진을 두 손으로 쥐고 있었다. 젖은 종이처럼 구겨진 손끝이 계속 떨렸다.N-00.도하.Mother returned three times.그 세 문장이 차 안을 떠나지 않았다.서아는 앞좌석에서 창밖을 바라봤다. 바다가 가까워질수록 공기는 차가워졌고, 도로 옆으로 어두운 산길이 길게 이어졌다.태준이 낮게 말했다.“도착까지 10분.”도윤은 노트북을 열어둔 채 시설 기록을 계속 확인하고 있었다.“강릉 보호시설 정식 명칭은 해온요양원입니다. 겉으로는 장기요양 및 정신재활 시설로 등록돼 있습니다. 그런데 2007년 이후 태성문화재단 후원금이 꾸준히 들어갔습니다.”지연이 뒷좌석에서 팔짱을 꼈다.“또 문화재단이네. Garden Line이랑 같은 냄새 나.”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 회계 코드가 Garden Line 보조 항목과 겹칩니다.”유도현이 낮게 물었다.“그곳에… 그 사람이 있을까요.”아무도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서아는 뒤를 돌아봤다.“있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유도현의 눈빛이 흔들렸다.서아는 이어 말했다.“하지만 기록은 거기서 멈췄어요. 그러니까 거기서부터 찾아야 해요.”유도현은 고개를 숙였다.“또 없으면요.”“그럼 다음 흔적을 찾을 거예요.”“계속 없어지면요.”서아는 잠시 침묵했다.그 질문은 유도현만의 것이 아니었다. 서아도 하윤을 찾으며 수없이 자신에게 물었던 말이었다.계속 없으면. 계속 늦으면. 끝내 도착하지 못하면.서아는 조용히 말했다.“그때도 멈추지 않을 거예요.”유도현은 그녀를 바라봤다.“왜 그렇게까지 해줍니까.”서아는 대답하지 못했다.그의 어머니를 찾는 일은 서아의 일이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알았다.핏빛 유산은 한 사람의 상처로 끝나지 않는다. 하윤의 이름을 지키려면, 하윤보다 먼저 숫자가 된 아이들의 이름도 찾아야 했다.“당신이 첫 번째 아이니까요.”유도
문이 잠긴 소리가 아직 공기 속에 남아 있었다.철컥.그 짧은 금속음이—이 방을 완전히 밀실로 바꿔버렸다.윤서아는 움직이지 않았다.눈앞.한수민을 닮은 여자.하지만—전혀 다른 존재.“…엄마 아니야.”그 말이 머릿속에서 반복됐다.도윤이 먼저 움직였다.문으로 달려갔다.손잡이를 잡았다.철컥.돌아가지 않았다.“잠겼습니다.”낮고 짧은 보고.서아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당황하지 마.”도윤이 뒤를 돌아봤다.“상대가 유도했습니다.”“알아.”짧은 침묵.서아의 시선이 방 안을 훑었다.문. 창문. 가
비는 멈추지 않고 내리고 있었다.차창 위로 흐르는 물방울이 시야를 흐릿하게 만들고 있었다.윤서아는 아무 말 없이 앞을 보고 있었다.손에는—반지.피가 말라붙은 채 남아 있는 반지.“…이상해요.”강도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서아의 시선이 움직이지 않았다.“뭐가.”“당신 어머니.”짧은 침묵.“죽은 기록이 없습니다.”서아의 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뭐?”도윤이 말을 이었다.“사망 신고.”“없습니다.”정적.“장례 기록도 없고.”“화장 기록도 없습니다.”차 안 공기가 멎었다.“…그럼 뭐야 그게.”
어둠 속에서 소리가 먼저 떠올랐다.삐— 삐— 삐—규칙적인 기계음.그 다음에야 감각이 돌아왔다.차가운 공기. 무거운 몸. 그리고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답답함.윤서아는 아주 천천히 눈을 떴다.흐릿한 천장. 형광등 불빛이 번져 보였다.“…여기…”입을 열었지만 소리는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목이 바짝 말라 있었다.그때였다.“환자분! 눈 뜨셨어요?”간호사의 목소리가 갑자기 가까워졌다. 발걸음 소리가 이어졌고, 곧 의사가 따라 들어왔다.서아의 시야에 여러 얼굴이 겹쳐 보였다.“의식 돌아왔습니다. 동공 반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윤서아는 비를 맞은 채 서 있었다.숨이 가빴다.“…태준.”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눈앞.강태준.그리고—그 옆에 서 있는 윤지연.“왜 여기 있어…”짧은 침묵.지연이 먼저 웃었다.“언니.”한 걸음 다가왔다.“죽은 줄 알았는데, 끈질기네.”공기가 식었다.서아의 시선이 태준에게 향했다.“…너.”입술이 떨렸다.“설마…”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서아를 보고 있었다.감정 없는 얼굴.“…말해.”“아니라고 해.”정적.하지만—그는 끝내 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