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9화 당신이 나한테 가당키나 해요?

손남영이 아래턱을 만지작거리며 자리에 멈추어 서 있는 성연신을 보며 물었다.

“아는 사람이에요?”

성연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왜 빨리 달려나가서 영웅처럼 구해주지 않고요?”

그가 배시시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연약한 여자가 변태한테 당하는 걸 보고만 있으려고요?”

“알긴 하는데 친하진 않아.”

그 말인즉슨 도와줄 생각은 없다는 것이다.

‘연약한 여자’ 라니... 혼인신고를 하던 날 그 무거운 캐리어를 혼자 끌고 다니던 여자가 아닌가...

그 반응은 손남영이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성연신은 오지랖을 부리며 다른 사람의 일에 참견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손남영은 여전히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왜냐하면 눈앞의 그 여자가 너무나도 매혹적인 미모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길고 곧게 뻗은 다리, 잘록한 허리, 백옥같이 하얗고 광채가 도는 피부, 몸에 걸친 심플한 정장을 뚫고 드러난 완벽한 S라인 몸매, 그야말로 국내 최고 인기 여배우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절세미인이었다.

손남영은 그런 여자가 고초를 겪는 건 보고 싶지 않아 성연신에게 말했다.

“형과는 안 친하다고 했잖아요. 그럼 내가 가서 도와줄까요?”

순간 성연신이 차가운 눈으로 그를 쏘아보며 날카롭게 내뱉었다.

“뭐라고?”

그의 과격한 반응에 화들짝 놀란 손남영은 손을 내저으며 다 장난이라는 듯 말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제가 저기에 껴서 뭘 하겠어요!”

성연신은 그제야 심지안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중년 남자는 어딘가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듯 필터 없이 입에 담지 못할 더러운 말들을 내뱉었다.

“너 내 앞에서 연기하지 마!”

중년 남자는 어디에서 우스운 얘기라도 들은 듯 비릿한 웃음을 짓고는 사방에 침을 튀기며 말했다.

“지금 곧바로 나한테 사과하고 얌전히 올라가. 내가 6층에 방을 잡아놓았으니까. 일이 끝나면 내가 사인해 줄게. 쓰레기 년이 감히 나한테 귀한 집 아가씨 행세를 할 생각은 하지도 마!”

“나한테 같이 자달라고 하기 전에 거울로 당신 얼굴부터 좀 보세요. 나한테 당신이 가당키나 하겠어요?”

심지안은 두려움에 손끝까지 부들부들 떨렸지만 기세만큼은 단 한 보도 물러서지 않았다.

두 사람의 목소리는 지하주차장의 넓고 빈 공간을 타고 더 크게, 더 멀리 뻗어 나갔고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른 중년 남자는 더는 이곳에서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는 생각에 엘리베이터 쪽으로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성연신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심지안에게로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역시 심지안은 그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지 않았다. 그녀는 힘에선 중년 남자의 상대도 되지 않았지만 머리로는 한 수 위였다. 그녀는 기회를 엿봐 온 힘을 다해 그의 급소를 힘껏 걷어찼다.

이어 돼지 멱따는 듯한 소리가 지하주차장에 울려 퍼졌다.

중년 남자는 터질 듯 시뻘게진 얼굴로 중요 부위를 손으로 감싸고 바닥에서 데굴데굴 뒹굴었다.

심지안은 그 기회를 틈타 재빨리 밖으로 도망쳐 나갔다. 주차장을 나서니 뜨거운 햇빛이 머리 위로 내리쬐었다. 아직 5월임에도 벌써 여름에 접어든 듯 무더위가 한창이었지만 그녀는 온몸에 얼음장같이 차가운 냉기가 맴돌아 사시나무 떨듯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심지안은 심전웅이 아무리 자신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고 해도 자신의 친딸이 몸을 파는 것으로 계약을 성사시키길 바랐다는 건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 사람이 중간에서 수작을 부려 사실을 왜곡시켰을지도 모른다...

심지안은 더는 이 일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 더 깊게 파고들었다가 알게 될 진실과 마주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어디에 무엇을 하러 가야 할지 몰라 힘없는 눈까풀을 내리깔고 거리에서 오가는 차량들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심전웅의 전화였다.

심지안은 잠시 머뭇거리고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너 내가 계약을 하라고 했잖아. 그런데 감히 우 대표를 때려?”

분노 가득한 심전웅의 목소리가 핸드폰을 뚫고 나와 심지안의 귀에 때려 박혔다.

심지안은 핸드폰을 꽉 움켜쥐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전 계약을 하러 간 것이지 몸을 팔려고 간 게 아니에요.”

Related chapters

Latest chapter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