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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았다

Author: JANGO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27 12:41:34

며칠 후, KKB 숙소.

수려는 침대에 누워 휴대전화로 인터넷 기사를 보고 있었다. 학폭 의혹을 반박하는 기사도 올라왔지만, 처음 터진 폭로 기사만큼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댓글을 읽던 손가락이 어느 한 줄에서 멈췄다.

누구든 때렸으면 학폭이지. 나 고등학교 때 얘 아는데 성격 더러웠음. 앞으로 TV에 나오지 마라. 이제 호빠나 뛰세요~ㅋㅋ

수려는 더 상처받기 싫어 화면을 껐다.

똑똑.

문이 열리고, 화면으로만 보던 새 멤버가 들어왔다. 깨끗한 피부에 긴 팔다리, 아직 앳된 얼굴이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새로 뽑힌 KKB 멤버, 김종훈입니다."

수려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야기는 들었지만, 생각보다 빨랐다.

"……그래."

휴대전화가 울렸다.

수혁 대표였다.

"수려야. 숙소에 새 멤버 갔을 거야. 사용법이랑 이것저것 좀 알려줘."

그러곤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진짜 숙소에 자리가 없어. 당분간 집에 가 있든지, 네가 알아서 숙소 하나 잡아서 지내."

"대표님!"

"나도 지금 골치 아프다. 나중에 또 통화하자."

뚝.

전화가 끊겼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자신의 집이었다. KKB의 리더로서 당연히 있어야 할 자리였다.

수려는 종훈을 바라봤다.

"너. 이 바닥…… 조심해. 언제든 나처럼 될 수 있으니까."

가방 하나를 집어 들고 숙소를 나섰다.

쾅.

문이 닫혔다.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집에는 왠지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누구와도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연락처를 넘기던 손가락이 한 이름에서 멈췄다.

준성.

신호가 한 번 울리기도 전에 전화가 연결됐다.

"수려야?"

"……나 며칠만 신세 좀 져도 될까."

준성은 이유를 묻지 않았다.

"당연하지. 원하면 계속 지내도 돼. 주소 보낼게."

준성의 자취방은 좁았지만 깨끗했다. 옷장 하나, 책상 하나.

손님용이라기엔 낡은 이불 한 채.

"수려야, 좀 불편해도 참아. 방이 이거밖에 없다."

"아니야. 고마워."

"고맙긴. 너 아니었으면 나 지금 여기도 없어."

준성이 캔맥주 두 개를 꺼내며 웃었다.

"우리 추억 이야기하면서 오랜만에 술 한잔 마셔 볼까?"

추억이라…….

그 웃음이, 요즘 들어 처음 보는 편안한 표정이었다.

수려는 그 뒤로 방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빈 라면 봉지와 식은 치킨 상자가 방 한구석에 쌓여 갔고, 소주병이 하나둘 늘어날 때마다 시간의 감각도 함께 흐릿해졌다.

TV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면 껐고, 휴대전화가 울려도 받지 않았다.

어느 순간 확인해 보니 부재중 전화가 여든 통 넘게 쌓여 있었다.

배가 고픈 건가.

아니었다.

슬픈 건가.

그것도 아니었다.

이제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지금, 눈을 뜨고 있는 것조차 지겨웠다.

준성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퇴근길에 반찬을 사 오거나, 조용히 방문을 두드리고 물 한 잔을 놓고 갔다.

철컥.

문이 열렸다.

수려는 눈도 뜨지 않았다.

"우리 아들."

수려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엄마?"

눈앞에 엄마가 서 있었다.

손에 들린 비닐봉지 사이로 매콤달콤한 양념 냄새, 그 밑에 깔린 엄마 특유의 냄새가 번져 왔다.

"엄마가 아들 좋아하는 닭도리탕 해 왔어. 배고프지? 얼른 씻고 밥 먹어. 머리가 이게 뭐야, 다 떡졌네."

수려는 멍하니 엄마를 바라보다 천천히 물었다.

"엄마…… 어디 갔었어? 나 힘든데. 나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만큼 잘못한 거 아니지? 나……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지?"

엄마는 미소로 답했다.

부드러운 손으로 수려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래. 엄마만 알고 있으면 됐어.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엄마는 알잖아. 네가 어떤 사람인지."

엄마가 희미하게 웃었다.

수려도 따라 웃었다.

그런데 엄마의 모습이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했다.

다급하게 손을 뻗었지만, 이내 사라졌다.

"잠깐만. 엄마 가지 마, 안 돼!"

아무것도 없었다.

조금 전까지 느껴졌던 온기도, 손바닥에 남아 있어야 할 감촉도.

"……!"

수려가 눈을 떴다.

다시 어두운 방이었다.

"……꿈이었구나."

한동안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보고 싶다……."

똑똑.

준성은 출근한 뒤였다.

"누구지……?"

며칠째 씻지도 못한 머리, 흐트러진 옷차림 그대로 문을 열었다.

복도에는 정장 차림의 남자 두 명이 서 있었다.

"한수려 씨? 대령산업개발 비서실에서 나왔습니다. 한 회장님께서 오늘 오후에 잠시 뵙자고 하십니다."

할아버지…….

수려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욕실 쪽으로 몸을 돌렸다.

"준비하겠습니다."

대령산업개발 본사.

지하 주차장에 검은색 세단 한 대가 멈춰 섰다.

거대한 유리 외벽.

어릴 적에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곳처럼 보였던 건물이었다.

비서를 따라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숫자가 올라갈수록 심장이 조여 왔다.

맨 위층, 복도 끝.

육중한 문이 열렸다.

넓은 집무실 안쪽에 한대령이 서 있었다.

예전에는 천하무적처럼 강해 보였던 할아버지였지만, 지금은 불쌍할 정도로 쇠약하고 평범한 노인처럼 보였다.

"……왔구나."

수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앉아라."

할아버지는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한동안 말없이 바라봤다.

낯설고도 무거운 시선이었다.

"얼굴이 많이 상했구나. 기사는 봤다. 학폭이니 뭐니 하는 것들."

"……죄송합니다."

"죄송할 게 뭐 있어. 사실이 아니라며."

수려는 고개를 들었다.

할아버지의 표정에서는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할아버지."

"내가 오늘 널 부른 건 위로하려는 게 아니다."

한대령이 테이블 위에 서류 봉투 하나를 올려놓았다.

"이걸 받아 들고 일본으로 가라."

"대신……."

한대령의 다음 말이 이어지려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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