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MELDEN제조상궁이 쏟아부은 차가운 향유가 유희의 은밀한 곳을 타고 눅진하게 흘러내렸다. 수치심에 눈물조차 마른 유희는, 천장을 응시한 채 주먹을 으스러져라 움켜쥐었다.이윽고 연호가 그녀의 메마른 몸 위로 무겁게 몸을 겹쳐왔다.기녀에게 배웠던 서막은 없었다. 달콤한 입맞춤도, 살을 애무하는 부드러운 손길도.그는 그저 짐승의 털을 벗겨내듯 유희의 하얀 적삼을 거칠게 벗겨냈다..“아악……!”비명 섞인 신음이 유희의 파리한 입술 사이로 터져 나왔다.그것은 기녀가 말했던 쾌락의 서막이 아니었다.몸이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지막지하게 파고드는 날 것 그대로의 통증.묶여있는 다리는 어쩌지 못하고 침상 기둥에서 바들바들 떨려왔다.홧홧하게 타오르는 통증은 골반을 타고 척추까지 붉게 물들였다.월향이 그랬던가.사내는 낮에는 군자이나 밤에는 짐승이 된다고.하지만 제 위의 사내는 짐승조차 아니었다.그저 의무를 다하기 위해 움직이는, 감정 없는 조각상이었다.정사가 이어지는 내내, 연호는 유희를 단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그의 무심한 눈동자는 여전히 방안의 어느 한구석, 혹은 어둠 속에 머물러 있었다.쳐다보지도, 만지지도, 소리 내지도 말라는 제조상궁의 호령에 갇힌 유희는, 제 몸을 뚫고 들어오는 육중한 통증만을 온전히 감내해야 했다.[살이 찢기는 통증이 밤새 마마를 짓누를 것이옵니다.]그제야, 차 상시가 했던 말의 뜻을 깨달았다.유희는 통증으로 흐릿해지는 정신을 붙들며 요를 부여잡은 주먹을 더욱 강하게 쥐었다.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핏방울이 맺혔으나, 무너지는 것은 육신이 아니라 가슴이었다.‘나도 필요한 건 당신의 씨일 뿐이니. 이 치욕의 대가로 네놈의 아이를 배어, 내 아비의 칼자루 위에 이 제국을 올려놓으리라.’유희는 마지막까지 꼿꼿하게 눈을 뜨고 천장을 응시했다. 수치심과 아픔은 독기로 변해 그녀의 혈관을 타고 끈적하게 흘러들었다.정사가 끝나자, 연호는 일말의 여운도 없이 유희의 몸에서 물러났다. 그는 침상 옆에 던져두었던 흑단색 침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연호의 육중한 흑룡포 깃을 향해 천천히 들이밀어지는 찰나.“문밖의 제조상궁을 들여라.”나직하지만 얼음장처럼 차가운 음성과 함께 유희의 손이 허공에서 우뚝 멈췄다.‘제조상궁을……? 갑자기 왜?’유희가 당황하여 고개를 들자, 연호는 그녀를 투명한 유령 취히듯 무심한 시선으로 흑단목 문 너머를 응시했다.“어서.”그의 재촉에 문이 열리고, 백발이 성성한 노상궁이 춘화첩을 든 채 침소 안으로 들어와 무릎을 꿇었다. 평생을 궐의 법도에 얽매여 살아온 노상궁의 눈동자는 감정이라곤 한 줌도 남지 않은 산송장이나 다름없었다.그녀는 황제의 가장 은밀한 사생활과 잠자리를 관리하며, 임신의 시기와 체위, 그리고 황실의 법도를 감독하는 최고 상궁이었다.연호는 유희에게서 한 걸음 물러나, 제조상궁을 향해 무심하게 명했다.“천 씨 가문의 여식이 아직 궐의 법도를 모르니, 황실의 대통을 품기 위한 예법을 하나부터 열까지, 소상히 일러주어라. 단 한 치의 어긋남도 없어야 할 것이다.”“……폐하?”유희의 눈동자가 수치와 경악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동의는 처음부터 필요치 않았다.연호의 명이 떨어지자, 제조상궁은 춘화첩을 내려두고 품에서 붉은 비단 끈과 두꺼운 법도서를 꺼내들었다.“천 귀인 마마. 합궁(合宮)은 춘정(春情)을 나누는 천박한 유희가 아니라, 제국의 대통을 잇는 가장 신성하고 엄숙한 의식이옵니다. 하여, 지금부터 마마께서 지키셔야 할 법도를 일러드리겠사옵니다.”제조상궁의 쩍쩍 갈라진 목소리가 넓은 침전에 메아리쳤다. 연호는 흥미조차 없다는 듯, 창가의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그 굴욕적인 광경을 무심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첫째, 합궁이 시작되면 마마께서는 오직 천장만을 응시하셔야 하옵니다. 함부로 고개를 돌려 지존하신 용안(龍顔)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은 불경이옵니다.”유희의 아랫입술이 파르르 떨렸다.그러나 제조상궁의 건조한 입술은 멈추지 않았다.“둘째, 옥체(玉體)에 함부로 손을 대거나 안으려 들어서는 아니 되옵니
밤이 깊어지자, 대전(大殿)의 침전에는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문이 열리고, 황제의 수발을 드는 지밀상궁이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들어와 옥좌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머리 위로 받쳐 든 은쟁반 위에는 후궁들의 이름이 새겨진 옥패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폐하, 밤이 깊었사옵니다. 어느 처소로 발걸음을 하시겠사옵니까.”지밀상궁은 속으로 당연히 오늘 갓 입궐한 실세, 천 귀인(유희)의 명패가 선택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태후의 입김과 천 장군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으니, 이토록 무심한 황제라 할지라도 형식적인 절차나마 경화전으로 향할 것이 뻔했다.그러나 턱을 괸 채 서류를 내려다보던 연호의 서늘한 시선이 은쟁반 위를 무심하게 훑더니, 곧 길고 하얀 손가락이 뻗어 나와 가장 구석에 놓인 낡은 나무패 하나를 툭, 건드렸다.지밀상궁의 동공이 잘게 떨렸다.천 귀인의 화려한 옥패가 아닌, 장식 하나 없는 투박한 나무패.“이건 뭐지?”“……저, 송구하오나 폐하. 새로 들어오신 숙원께서는 성이 없는 관계로 아직 온전한 명패가 없사옵니다. 하륜 대인의 식솔이었다 하였으니, 편의상 ‘하(河)’ 씨 성을 붙여 명패를 새로 파 올릴까요?”지밀상궁이 식은땀을 흘리며 조심스레 묻자, 서류를 넘기던 연호의 손이 우뚝 멈췄다.‘하륜의 식솔이라, 하씨라.’연호의 차가운 입술 사이로 서늘한 실소가 새어 나왔다.“아니다, 없는 것을 굳이 만들 필요가 있겠나.”연호가 나직하게 읊조리며 나무패를 손가락으로 튕겨냈다.“없을 무(無) 자를 써서 무씨(無氏)로 하여라.”“무…… 무 숙원이옵니까?”“그래. 오늘 밤은 무 숙원의 처소, 침향각으로 간다.”연호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지밀상궁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서둘러 고개를 조아렸다. 성씨조차 가질 수 없었던 비천한 계집이, 황제가 직접 내린 성을 하사받는 기이한 순간이었다.연호는 무심한 걸음으로 침전의 거대한 문을 향해 걸어갔다. 내관이 황급히 다가와 무거운 흑단목 문을 좌우로 열어젖혔다.그러
눅눅한 탕약 냄새를 뒤로하고 나오자, 초겨울의 시린 바람이 유희의 달아오른 뺨을 서늘하게 식혔다. 황후가 내뱉은 마지막 경고가 가시처럼 마음에 걸렸으나, 유희는 제 발걸음 소리에 맞춰 흔들리는 화려한 노리개를 보며 오만하게 입술을 깨물었다.‘흥, 죽어가는 이의 마지막 발악일 뿐이지. 오늘 밤이면 이 궁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온 천하가 알게 될 것이다.’유희는 더욱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자신의 처소인 경화전(慶華殿)으로 향했다.경화전의 마당은 이미 새로 입궐한 실세 귀인에게 줄을 대려는 하급 후궁들로 가득 차 있었다.김 희빈, 이 숙의…… 저마다 뼈대 있는 가문의 성씨를 내세우며 앉아 있는 여인들을 훑어보던 유희의 시선이 돌연 한곳에 꽂혔다.상좌와 가장 먼 구석, 분명 주인이 있어야 할 방석 하나가 덩그러니 비어 있었다.“저긴 누구 자리지?”차가운 목소리에 근처에 서 있던 궁인 하나가 눈치를 살피며 바닥에 이마를 붙일 듯 조아렸다.“……그게, ‘미옥’이라 하는 숙원의 자리이옵니다.”미옥.김씨니 천씨니 하는 당당한 성씨 하나 없이 그저 이름만 덜렁 불리는 그 명칭에 유희의 입가에 비릿한 조소가 걸렸다. 성을 가질 자격조차 없었던 근본 없는 노비 출신이라는 낙인이 그 짧은 이름 두 글자에 고스란히 박혀 있었다.‘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만도 못한 것이 감히 내 첫인사를 망쳐?’유희의 눈썹이 파르르 떨릴 즈음, 마당 끝에서 초라하리만치 수수한 차림의 미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서두르는 기색 하나 없이, 죽은 사람처럼 정적인 걸음으로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미옥, 귀인 마마를 뵙사옵니다. 도착이 늦어 송구하옵니다.”“송구하다?”유희가 찻잔을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챙강, 하는 날카로운 소리에 후궁들이 어깨를 움츠렸다. 유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미옥에게 다가갔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화려한 비단 치마가 물결치며 월향의 짙은 향기를 흩뿌렸다.“출신조차 불분명한 천한 것이 폐하의 은애를 입었다 하여, 이제는 눈에 보이는 것이
교태전의 문이 열리자, 짙은 탕약 냄새 사이로 차가운 침묵이 흘러나왔다.유희는 비단 소매로 코끝을 가리며 걸음을 옮겼다. 침상에 비스듬히 기대앉은 황후는 유희의 예상보다 훨씬 평온한 안색이었다. 뺨은 패였으되 눈동자만큼은 정갈하게 빛나고 있어, 마치 폭풍전야의 고요함을 품은 듯했다.‘산송장이나 다름없다더니, 기세만큼은 여전하구나. 허나 그것도 얼마남지 않았다.’유희는 입가에 승리자의 미소를 머금은 채 무릎을 꿇었다.“귀인 천씨, 황후 마마를 뵙사옵니다.”황후는 대답 대신 천천히 찻잔을 내려놓았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조차 나지 않는 완벽한 몸가짐이었다. 그녀의 시선이 유희의 화려한 옷자락을 지나, 잔뜩 달아오른 그 오만한 얼굴에 머물렀다.‘제 향기에 취해 제 발밑에 구덩이가 파인 줄도 모르는 가여운 것.’“입궐하자마자 자시전에 들러 태후의 교지라도 받은 모양이지. 네 기세가 교태전의 담장을 넘을 듯하구나.”황후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으나 지극히 담담했다. 유희는 황후의 여유로운 태도에 내심 당황하며 더욱 독기를 뿜어냈다.“송구하옵니다, 마마. 태후마마께서 신첩을 어찌나 어여삐 여기시는지, 아프신 마마를 대신하여 내명부의 기강을 바로잡으라며 신첩의 손을 꼭 쥐어주셨사옵니다. 특히…… 황자 아기씨의 안위가 마마의 시든 품 안에서 위태로워 보인다며 무척 걱정하시더군요.”유희가 황후의 아픈 곳을 찌르듯 쐐기를 박았다.“하여 신첩, 마마의 무거운 짐을 덜어드리고자 합니다. 이제는 갓 피어난 신첩의 강건하고 화려한 치맛자락 아래 아기씨를 누이심이 어떠하옵니까. 신첩이 마마를 대신해 아기씨를 아주 안전하게 품어드릴 테니 말입니다.”황후는 유희의 전신에서 진동하는 그 노골적인 기운을 가늘게 뜬 눈으로 천천히 훑었다. 기방의 비릿한 체취가 채 가시지도 않은 듯한 그 천박한 몸짓으로 제 아들을 입에 올리다니.‘가련한 것. 제 손에 쥔 것이 독이 든 성배인 줄도 모르고 저토록 기세 좋게 축배를 드는구나. 네가 화려한 수의(壽衣)를 입고 춤을 추는 동안, 나는
자시전(慈侍殿)의 육중한 문턱을 넘자, 서늘한 단향목 내음이 훅 끼쳐왔다. 태후의 수족이자 자시전의 대소사를 관장하는 차 상시가 가장 먼저 마중을 나와 허리를 굽혔다.“귀인 마마를 뵙사옵니다.”가늘고 높은 미성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고개를 든 차 상시와 시선이 얽힌 순간, 유희는 저도 모르게 흠칫하며 시선을 비껴냈다.처음 그를 대면했을 때 느꼈던 감정이 순수한 경악과 놀라움이었다면, 다시 마주한 지금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묘한 당혹감이었다. 나이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미소년 같은 얼굴. 거세된 환관 주제에 어지간한 여인보다도 수려하고 기이한 그 아름다움이, 오늘따라 유독 소름 끼치도록 요사스럽게 다가온 탓이었다.그러나 당혹감에 시선을 피한 유희와 달리, 창백하리만치 흰 얼굴에 눈웃음을 매단 차 상시의 시선은 예사롭지 않았다. 그의 탁한 눈동자는 유희의 화려한 당의 자락을 넘어, 그녀의 붉게 달아오른 뺨과 나른하게 풀린 목덜미에 들러붙듯 끈적하게 머물렀다.차 상시의 가느다란 눈매가 흥미롭다는 듯 유려하게 휘어졌다. 유희의 걸음이 닿는 곳마다 은밀하고도 달큰한 최음의 향취가 훅 끼쳐왔기 때문이다.‘독기 어린 살기(殺氣)만 번뜩일 뿐, 사내를 옭아맬 색(色)이라곤 한 줌도 없던 아가씨가 아니었나.’불과 며칠 전 대면했을 때만 해도 꼿꼿하고 서늘하기만 하던 몸선이었다. 하나 지금 그녀의 몸에서는 밤의 기술을 갓 익힌 여인 특유의 눅진한 열기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차 상시는 속으로 뱀처럼 혀를 날름거리며 비릿하게 웃었다.‘입궐을 앞두고 어지간히 다급하셨던 모양이지. 가문에 어디 천한 기녀라도 몰래 불러들여, 그 상스러운 교태라도 전수받으셨나.’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젖어 있는 그 농염한 기운을 간파한 차 상시의 입가에 기분 나쁜 호선이 짙어졌다.노골적인 그 시선에 유희는 찰나의 불쾌함을 느꼈으나, 이내 등줄기가 짜릿해지는 우월감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저자도 한낱 사내라고, 계집의 기운에 이리 동하는 꼴이라니.’제 몸에 깃든 색기가 황궁의 늙은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