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201 화

Author: 양순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4-27 08:40:57
태후전의 문이 열리자, 무거운 침향(沈香)의 냄새가 훅 끼쳐왔다.

심야의 정전은 곳곳에 켜진 촛불로 인해 거대한 그림자들이 뱀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선호는 그 자리에 냅다 무릎을 꿇었다.

황족의 체면 따위는 내다 버린 지 오래였다. 그는 발을 질질 끌며 기어가 화려한 보료 위에 앉아 있는 태후의 치맛자락을 우악스럽게 부여잡았다.

“마마! 태후 마마……! 부디 이 조카를 살려주시옵소서!”

마차 안에서 초희의 젖가슴에 파고들어 두려움을 잊으려 했던 그 나약한 본성이, 이제는 궐 안의 가장 거대한 모성(母性)인 태후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Latest chapter

  • 환관의 비   300 화

    다음 날 아침. 눈부신 햇살이 스며드는 전각 안.미옥은 나른한 손길로 정무를 앞둔 연호의 허리띠를 매어주고 있었다. 연호는 말없이 턱을 괸 채, 제 앞의 미옥을 내려다보았다.어젯밤 초희가 쏟아낸 그 끔찍한 병증.포궁악창이라 했던가.연호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비틀려 올라갔다. 우연치고는 지나치게 완벽한 타이밍이었다.‘네가 부린 수작이겠지. 그러니 셋이 함께하자는 얼토당토않은 말을 꺼냈겠지.’연호는 제 옷깃을 여미는 미옥의 턱을 느릿하게 쥐어 올렸다.‘궁에 나가 있던 그 시간 동안 무엇이 너를 이리 변하게 만든 거지? 아무래

  • 환관의 비   299 화

    안락당(安樂堂).평안을 누리라는 그 이름이 무색하게, 이곳은 황궁에서 가장 짙은 죽음의 그림자가 웅크린 무덤이었다.굳게 닫힌 창살 너머로 훅 끼쳐오는 공기는 멀쩡한 사람의 폐부마저 단숨에 병들게 할 만큼 무겁고 탁했다.독하게 달여낸 탕약 냄새, 시체를 닦아낼 때 피우는 값싼 향 냄새, 그리고 그 모든 것으로도 덮지 못한 채 허공에 끈적하게 들러붙어 있는 썩은 피고름의 비린내.낡은 병풍 너머 곳곳에서 들려오는 것은 생명이 꺼져가는 자들의 가래 끓는 숨소리와 건조한 신음뿐이었다. 살아 숨 쉬는 사람의 생기(生氣)라고는 단 한 줌

  • 환관의 비   298 화

    "아읏……!"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아래를 파헤쳐지는 수치심에 초희가 신음을 뱉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초희의 안쪽 깊은 곳을 짚어보던 의녀의 두 눈이 공포로 크게 확장되었다. 부드러워야 할 살점 너머로, 기괴할 정도로 크고 단단한 덩어리가 만져진 탓이었다.의녀는 벼락을 맞은 사람처럼 털썩 주저앉으며 바닥에 이마를 찧었다."폐하! 이, 이건 단순한 염증이 아니옵니다!""무슨 소리야! 네년이 내게 분명 며칠 쉬면 낫는 병이라 하지 않았느냐!"초희가 피가 날 만큼 입술을 깨물며 소리쳤으나, 의녀는 사시나무 떨듯 고개를

  • 환관의 비   297 화

    끔찍한 악취의 근원이 다름 아닌 제 몸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초희의 입술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초희는 사시나무 떨듯 경련하며 허겁지겁 침상 위에 깔린 붉은 비단 이불자락을 끌어당겨 제 흉한 아래를 가렸다. 그러나 덜덜 떨리는 손끝에 피가 섞인 끈적하고 탁한 갈색 고름이 미끈하게 묻어나오자, 그녀의 눈동자는 공포로 뒤덮혔다."당장 치워라."머리 위로 얼음장처럼 차가운 음성이 떨어져 내렸다."저 더러운 것을 당장 연화당 밖으로 내던져."연호는 초희를 여인은커녕 사람으로도 보지 않는다는 듯, 혐오가 담긴 얼굴로 굳게 닫힌 문 너

  • 환관의 비   296 화

    그 순간, 초희의 심장이 바닥으로 쿵 처박혔다.위는 입은 채 아랫도리만 벗으라니. 그것은 여인으로서의 최소한의 교감조차 허락하지 않겠다는 노골적이고 수치스러운 명령이었다.하지만 굴욕감에 굳었던 것도 아주 찰나였다. 초희는 이내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번들거리는 눈빛을 빛냈다.'수치심? 그깟 게 대수야.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사내의 혼을 쏙 빼놓고 옭아매는 건 아랫도리뿐이야. 세상천지에 그보다 확실하고 중요한 게 어디 있어.'애초에 고고한 귀족 영애들처럼 고상한 교감을 나눌 생각 따위는 없었다. 그저 단 한 번, 저 오만하고

  • 환관의 비   295 화

    끼기긱-.무거운 연화당의 문이 조심스레 열렸다.독한 향유를 머리끝까지 들이붓고, 치맛자락 아래로는 아직도 매캐한 쑥 훈증 냄새를 품은 초희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문턱을 넘어서던 찰나였다."……!"초희의 걸음이 돌처럼 굳어버렸다. 숨을 쉬는 것조차 잊은 채, 그녀의 시선은 반쯤 걷힌 붉은 휘장 너머, 너른 침상 위로 벼락처럼 내리꽂혔다.그곳에는 숨 막히도록 농밀하고도 노골적인 정사(情事)의 한복판이 펼쳐져 있었다.붉은 곤룡포를 반쯤 벗어 던진 연호가, 제 무릎 위에 미옥을 온전히 올려앉힌 채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있

  • 환관의 비   77 화

    새벽이슬이 채 마르기도 전, 편전(便殿)에서 아침 조회(朝會)를 마친 연호는 곧장 발걸음을 돌렸다. 황제의 뒤를 따르는 상시와 내관들이 숨을 죽인 채 잰걸음으로 그 묵직한 보폭을 쫓았다.침향각(沈香閣)이었다.싸늘한 아침 공기를 가르며 걷는 연호의 입가에는 희미한 호선이 걸려 있었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간밤에 홀로 남겨두었던 한 여인에 대한 상념으로 가득 차 있었다.‘너는 지금쯤 어찌하고 있을까.’연호는 궐내의 여인들이 보이는 빤한 생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황제가 다른 여인의 처소에 들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

  • 환관의 비   75 화

    **홀로 남은 침향각.미옥은 등잔불 하나 켜지 않은 캄캄한 방안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유희의 꽃신에 짓밟혔던 손등은 어둠 속에서도 욱신거리며 붉은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기어이 경화전으로 가셨다는 거지.’미옥은 이 위태로운 궁궐 한복판에서 언제 제 목이 달아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입술을 깨물며 전전긍긍하고 있었다.‘내가 너무 자만했나…….’폐하께서는 그 어느 여인에게도 마음을 준 적이 없다는 말이 새삼 서늘하게 가슴을 찔렀다. 동시에 아랫배 저 안쪽에서부터 은밀하고도 뜨거운 열기가 훅, 달아올랐다.‘어제만 해도 제

  • 환관의 비   74 화

    제조상궁이 쏟아부은 차가운 향유가 유희의 은밀한 곳을 타고 눅진하게 흘러내렸다. 수치심에 눈물조차 마른 유희는, 천장을 응시한 채 주먹을 으스러져라 움켜쥐었다.이윽고 연호가 그녀의 메마른 몸 위로 무겁게 몸을 겹쳐왔다.기녀에게 배웠던 서막은 없었다. 달콤한 입맞춤도, 살을 애무하는 부드러운 손길도.그는 그저 짐승의 털을 벗겨내듯 유희의 하얀 적삼을 거칠게 벗겨냈다..“아악……!”비명 섞인 신음이 유희의 파리한 입술 사이로 터져 나왔다.그것은 기녀가 말했던 쾌락의 서막이 아니었다.몸이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지막지

  • 환관의 비   73 화

    “모욕이라니. 황후도 예외는 없었다. 제국의 대통을 잇기 위해 가장 안전하고 완벽한 그릇의 역할을 다하라는 것인데, 천 장군의 여식은 황실의 법도가 우스운 모양이지.”연호의 그 한마디에 유희는 벼락을 맞은 듯 입을 다물었다.제 아비의 이름을 들먹이며 짓누르는 그 완벽한 명분 앞에서는, 어떤 앙탈도 그저 천박한 기생의 수작으로 전락할 뿐이었다.“의식을 치를 준비를 하라.”연호가 짧게 턱짓하자, 두 명의 힘센 나인이 소리 없이 다가와 유희의 어깨를 짓누르고 그녀를 침상 위로 눕혔다.침상의 기둥에 두 발목이 단단히 결박된 채,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