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도 이곳 식당에 들어오는 듯했다.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이 열리더니 그들이 우르르 줄지어 들어왔다.“와. 이게 대체 몇 가지야. 평소 우리한텐 왜 이렇게 잘해주지 않은 거야! 뚱땡이 아저씨 사람 차별하는 것 봐.”“배고파 죽겠어. 나한테 젓가락과 그릇을 줘.”“넌 손 없어?”“아가씨... 저쪽으로 좀 가봐요. 나 못 들어가겠어요.”“...”장소월은 의자를 움직여 그에게 길을 내주었다.엽시연은 다리 하나를 올려 그녀의 맞은편 의자를 밟고는 다짜고짜 그녀 앞에 놓여있던 탕수육을 갖고 와 게걸스레 먹기 시작했다.“술이 왔어.”마른 몸집의 남자가 맥주 한 상자를 안고 들어온 뒤 발을 휘저어 문을 닫았다.“내가 해달라고 할 땐 절대 안 해주더니. 너 정말 대단한 여자네!”엽시연이 돌연 장소월을 보며 말했다.“이봐, 촌년, 너 아직 어디에서 왔는지 말하지 않았어. 외지 사람이야?”노란 머리 남자가 말했다.“형님, 딱 봐도 곱게 자란 모범생 같은데 너무 겁주지 말아요.”“왜? 마음 아파? 저렇게 예쁜 여자가 널 거들떠나 볼 것 같아? 저런 여자는 도와줘도 소용없으니까 입 다물어.”장소월이 주전자를 갖고 와 컵에 물을 붓고는 한 모금 들이킨 뒤 컵을 내려놓았다.“난 다 먹었으니까 천천히 드세요.”그녀가 일어서려고 할 때 손 하나가 그녀의 다리를 눌렀다.“급할 게 뭐가 있어요. 좀 더 얘기하다가 가요.”장소월은 그들이 두렵다고 할 수 없었다. 그들은 나쁜 사람인가? 그저 상대하기 껄끄러운 사람으로 보일 뿐이다.진정한 나쁜 사람은 그들과 다르다.그들은 그녀를 겁에 질리게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어딘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그 느낌은 그녀가 처음으로 가져보는 것이었다.“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데요?”그녀의 옆에 앉아있던 노란 머리와 녹색 머리 남자 두 명이 그녀의 몸을 훑으며 빙그레 웃고는 말했다.“형님, 이 아가씨는 형님을 무서워하지 않는데요? 이제 형님도 한물갔네요.”“입 다
“죄송해요. 천천히 들어요. 전 바쁜 일이 있어 먼저 갈게요.”장소월은 혼자 지내는 데에 익숙해져 친구라는 건 만들지도, 믿지도 않았다.이번엔 그들도 가는 그녀를 잡지 않았다.장소월이 방을 나섰을 때 현광원이 앞치마를 입고 손엔 요리 한 접시를 든 채 안에서 걸어 나왔다.“아가씨, 이렇게 빨리 다 먹은 거예요? 그놈들이 또 괴롭혔어요?”“아니요.”“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사실 저들도 그리 나쁜 놈들은 아니에요. 그저 장난을 치고 싶어 하는 것뿐이에요.”“저도 알아요. 전 물건을 살 게 있어서 이만 가볼게요.”“알았어요. 내일도 밥 먹으러 와요. 돈은 받지 않을 테니까 마음껏 먹어요.”장소월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장소월은 그곳을 떠난 뒤 몸에 맞는 옷 몇 벌과 신발 몇 개를 샀다. 변방 지역이라 가격은 별로 비싸지 않았다.그녀는 이곳에서 오랜 시간 머무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3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그녀는 줄곧 현광원의 식당에서 종업원직을 맡아 일했다. 식사 제공에 하루 일당 십만 원이었으니 꽤 괜찮은 보수였다.낮엔 손님이 별로 없어 한가했고 밤엔 비교적 바삐 돌아쳐야 했다.처음엔 너무 힘들어 허리, 다리 어느 곳 하나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점차 익숙해졌다.그녀는 지금까지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없었음에도 그리 어려워하지 않았다.그동안은 가질 수 없었던 평온하고 자유로운 나날의 연속이었다.감시도 없고, 통제도 없고, 안락함도 없고, 부드럽고 푹신한 침대도 없고, 예쁜 옷도 없다...장소월은 그렇게 천천히 일반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본래 하얗고 가냘팠던 손은 물에 담그고 설거지를 한 탓에 껍질이 벗겨지고 거칠어졌다.오 아주머니는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장소월이 이곳 식당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마 백윤서를 보살피느라 바쁠 것이다.하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다. 오 아주머니는 절대 그녀가 이런 일을 하도록 놔두지 않았을 것이니 말이다. 이번 기회에
장표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이봐, 장소월 맞지? 주문할 테니까 이쪽으로 와.”장소월은 그릇을 든 채 못 들은 척 그녀와 비슷한 나이의 누군가를 쳐다보았다.그 사람의 이름은 이혜성이었는데 그녀 역시 이곳에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었다.장소월은 고소한 듯 웃고 있는 이혜성의 얼굴을 쳐다보고는 몸을 홱 돌려 걸어갔다.“이봐, 주문하겠다고 한 말 못 들었어?”장소월은 접시를 내려놓고 손을 깨끗이 씻은 뒤 메뉴판을 들고 그들에게 걸어갔다.“무슨 요리를 주문하시겠습니까?”그녀가 기록하려 펜과 작은 공책 하나를 가져왔다.다섯 쌍의 눈동자가 그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향긋한 먹이를 보는 허기진 늑대와도 같은 역겨운 눈빛에 배 안에 있는 것 모두를 토해낼 것만 같았다.그중 한 명이 말했다.“아가씨, 돈이 부족한 거야? 부족하면 나한테 말해. 이 오빠한텐 돈이 넘쳐나니까.”그가 호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상 위에 올려놓고는 안에서 50만 원을 꺼냈다.“오늘 오빠와 놀아준다면 이 돈은 네 거야.”돌연 귀를 찌르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혜성이 낸 것이었다.“죄송합니다. 전 이곳의 임시 직원일 뿐 그런 일은 하지 않습니다. 메뉴를 더 주문하시겠어요? 하지 않겠다면 전 가보겠습니다.”“뭐가 그리 바쁘다고 그래. 지금 이 식당에 손님은 우리밖에 없잖아. 얼른 앉아서 오빠들과 술이나 마시자.”뚱뚱한 남자 한 명이 파란색 의자를 자신의 옆으로 끌어당겼다.장소월은 그의 말을 무시해 버린 채 몸을 돌렸다.그때 남자가 책상을 힘껏 내리쳤다.“제기랄, 간사한 년, 고상한 척하기는. 진짜 학생이면 왜 이런 곳에서 그릇이나 나르고 있는 건데!”장소월은 몇 걸음 걷다가 멈춰 선 뒤 호주머니에서 분홍색 다이아몬드가 박힌 고급 브랜드 지갑을 꺼내 학생증을 빼내고는 그들의 눈앞에 가져갔다.“아저씨들, 똑똑히 보세요. 이건 제 학생증이에요. 학생증 사진 속 학생이 바로 저고요. 전 제운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에요. 아시겠죠? 그러니까 앞으로 헛된 말을 지어내지 마세요.
남자가 다른 한 손으로 장소월의 옷을 낚아챘다. 단추를 푸니 안에 있던 하얀색 나시가 드러났다.순간 모든 사람들의 눈빛이 번뜩였다.장소월은 옷깃을 꽉 움켜쥐고 힘껏 그의 손목을 깨물었다.그 통증에 남자는 곧바로 손에 힘을 풀었다.드디어 남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장소월은 온 힘을 다해 밖으로 도망쳤다. 그때 어둠 속에서 그녀는 누군가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목엔 은색 목걸이를 걸었으며, 한 손은 외투 호주머니에 넣고, 다른 한 손엔 담배를 든 강용이 걸어오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그 외에도 더 있었다. 백윤서, 엽시연...장소월은 백윤서가 이곳에 왜 왔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유를 막론하고 절대 그녀에게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강용은 고개를 숙이고 백윤서와 말하고 있었으니 아마 그녀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장소월은 다급히 반대 방향으로 집을 향해 도망쳤다.“제기랄, 그년 빠르기도 하네.”장소월은 멈추지 않고 곧장 집으로 달려갔다. 집에 도착하니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고 온몸은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한참 뒤에야 안정을 되찾은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샤워를 하러 화장실로 들어갔다.저녁 12시, 침대에 누워 잠들었던 장소월이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났다.그녀는 꿈속에서 예전에 그녀를 괴롭혔던 변태 망나니를 만났다.애써 잊으려 했던 기억이 또다시 그녀의 머릿속에서 떠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순간 그때의 광경이 또렷이 눈앞에 그려졌다.그녀는 어두운 방 안에서 이불을 푹 뒤집어썼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이 가슴을 짓눌렀다.당시의 끔찍한 광경이 또다시 나타난 것이다...장소월은 오 아주머니가 집에서 가져다준 핸드폰을 꺼내 처음으로 전원을 켰다.문자 알림음이 끊임없이 울렸다. 거의 모두 강영수가 보내온 것이었다. 13일 동안, 백 개를 훌쩍 넘는 개수였다.대부분은 그녀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왜 답장을 하지 않는지
전연우는 다른 번호를 눌렀다.“일 좀 처리해줘...”지시를 마치고 전연우는 마지막으로 장소월에게 전화를 걸었다.휴대전화너머로 차가운 안내음만이 들렸다.“고객님 전화기의 전원이 꺼져있습니다. 잠시 후 다시...”새벽3시.장소월이 묵고 있는 집의 문을 두드렸다.“문 열어. 내가 왔어. 빨리 문 열어...”장소월은 귀를 막고 캄캄한 나머지 손을 내밀어도 보이지 않을 천장을 보고 있었다.이범의 한밤중의 소란은 몇 번째인지 모를 지경이다.저번에 빨래를 널었는데 속옷을 잃어버렸다. 다음날 그녀는 아래층 쓰레기통에서 그것을 보았다.그녀는 이곳에서 평온하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이대로 가다간, 그녀는 자신이 언젠가 미쳐버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이범은 이곳에서 유명한 건달이고 옆집에 사는 성 아주머니의 아들이다...장소월은 문을 열지 않았고 한참 지나서야 그는 떠났다...드디어 조용함을 되찾았다.이날 밤, 장소월은 결코 편안히 자지 못했다. 날이 밝아 깨어나 보니 이미 12시가 넘었다.장소월은 베란다로 갔고 냄비에는 갈비찜, 제육볶음, 잡채가 있었다...그녀는 세탁이 끝난 빨래를 베란다에 걸어 놓았다.한창 빨래를 널고 있는데 문득 맞은편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던 집에 불이 켜지는 걸 보았다.여기 아파트들은 서로 가까이 있어 커튼을 치지 않으면 창문을 통해 안의 방을 볼 수 있는 구조이다.맞은편 창문이 갑자기 열렸다.장소월은 바로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고 있는 강용을 보았다. 두 사람은 시선을 마주쳤다.장소월은 빠르게 반응하여 마지막 옷 한 벌을 빠르게 걸어놓고는 다가가 가스레인지를 끄고 집 안으로 들어가 베란다의 문과 커튼을 닫았다.그녀는 연한 색의 슬립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안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장소월은 바로 옷을 갈아입고 밖에서 놓여있는 요리들을 들고 들어와 밥을 먹기 시작했다.오늘 장소월은 가게에 가지 않을 예정이다. 그녀는 강용과 백윤서가 언제 떠날 예정인지 모르기 때문이다.그녀는 백윤서한테 그녀가 이곳
평소라면 잃어버렸으면 잃어버렸지, 다시 재발급받으면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번에는 다르다.등기본이 없기에 그녀는 신분증을 재발급받을 수 없고 장가네로 가고 싶지 않다.장소월도 인내심이 있는 편이 아니고 평소에 어느 정도 눈 감아 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 대해 준 것이다.예전의 성격대로라면, 장소월은 바로 휴지통을 그녀의 머리에 덮어버렸을 것이다.“이혜성, 그 지갑 안에는 우리 엄마의 사진이 있어. 나한테는 아주 중요해. 그리고 그 안에 신분증... 돈을 갖고 싶은 거면 너한테 줄게. 다른 건 어차피 너에게 중요하지도 않잖아. 그러니 나한테 돌려줘!”이혜성은 옆에 있는 쓰레기통을 발로 걷어찼고 안에 있던 쓰레기가 모두 굴러 나왔다.“장소월, 너 지금 무슨 뜻이야? 네가 지갑을 잃어버린 게 나랑 뭔 상관인데? 난 네 지갑을 가진 적이 없어. 무슨 근거로 나를 모함하는 건데? 못 믿겠으면 경찰에 신고해!”그녀의 목소리는 가게 전체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컸다.장소월은 짜증이 나서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이혜성... 나 평소에 너 건드리지 않았지? 그 핸드크림을 가지고 싶다면, 너한테 줄게. 지갑 돌려줘. 그러면 그냥 없던 일로 할게.”“장소월, 난 네 지갑을 가진 적이 없어. 너 왜 날 모함하는 건데!”주인아저씨는 홀의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 재빨리 걸어 나왔다.“무슨 일이야? 너 근무시간이 저녁 시간대 아니야? 오늘 왜 이렇게 일찍 왔어?”장소월은 숨기려 하지 않았다.“아저씨, 저 지갑을 잃어버렸는데 안에 아주 중요한 사진이 있어요. 그리고 제 신분증도 있고요... 오늘 원래 사직하고 할머니한테 가려고 했는데 신분증이 없어서 티켓을 구매할 수가 없어요.”“왜 그래? 갑자기 왜 가는 거야?”어제저녁 발생한 일을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회상하면 그녀의 마음이 더 불편해질 뿐이다.일을 크게 키우고 싶지도 않다.장소월은 얼버무려 말했다.“그냥 집에 가고 싶어서요. 아저씨, 경찰에 신고해서 제 지갑 좀
예전의 그녀는 금전적인 자원을 너무 쉽게 받았다.돈 버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장소월은 돈을 편지 봉투에 넣었고 꽤 두꺼웠다.주인아저씨는 그녀에게 알바비를 지급해 주고는 배달 하러 나갔다.가게에는 그녀와 이혜성만이 남았다.“이혜성, 내가 너한테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건 네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어서 그런 거야. 네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짓을 했는지는 네가 나보다 더 잘 알겠지. 지금 네가 흘린 눈물, 네가 하는 말은 마음에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도 나한테 증거가 없다는 걸 알고 있어... 네가 널 모함했을 수도 있고. 만약 정말로 내가 모함한 거라면 우선 미안하다고 사과할게. 만약 네가 정말 가졌고 나에게 그 사실을 숨기는 거면 넌 버는 장사야. 그 지갑은 아버지가 나에게 준 생일 선물이고 60만 좌우에 판매되는 한정판이야. 그러나 넌 평생 너의 추악하고 더러움을 고칠 수 없는 거야.”이혜성은 차갑게 비웃었다.“장소월 너 지금 무슨 쇼를 하는 거야? 나보다 조금 더 이쁘장하게 생겼을 뿐, 무슨 부잣집 딸 행세를 하는 거야? 그 지갑이 60만이라고? 왜 600만이라고 하지 않고? 만약 네가 정말 부잣집 딸이라면 지금 이곳에서 알바하면서 설거지하고 있는다고?”“잘난 척 쇼하는 사람은 봤어도 너처럼 쇼하는 사람은 처음 봤어.”“그딴 지갑은 공짜로 줘도 안 가져. 그리고 만약 정말 내가 그 지갑을 가졌다고 한들, 너 어떻게 할 수 있는데? 증거도 없으면서.”이혜성은 예쁜 편이 아니고 마른 체격을 소유하고 있다. 윤기가 없는 머릿카락에, 딱딱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얼굴은 사람에게 까칠한 인상을 남겨주는데 지금 이런 말을 하고 있으니 더욱이 보기가 역겨웠다.처음에 그녀가 왔을 때, 장소월은 그녀에게 자신의 스킨케어 제품을 나눠주는 등 나름 잘 챙겨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너무 탐욕스러워서, 묻지도 않고 자기 마음대로 쓰기 시작했다. 지난번에 그녀는 단지 자신의 물건을 쓰기 전에 자신에게 얘기하고 쓰라는 한마디를 했을 뿐인
“이거 놓으라고. 이 짐승 같은 놈아. 날 건드린다면 우리 아빠가 가만있지 않을 거야.”이범은 미친 듯이 웃었다.“네 아빠? 네 아빠는 병신이야. 온다고 해도 내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한다고.”“살... 살려줘!”“천한 년, 조용히 해! 속옷도 온통 레이스던데, 무슨 연기를 하고 있어.”이범은 바로 뺨을 날렸다.장소월의 얼굴 한쪽이 뺨을 맞았고 그녀는 바로 그의 손을 물었다. 이범은 그녀의 머리를 잡고 힘껏 당겼다.장소월은 또다시 소리를 질렀다.바로 그때 위층에서 한 남자가 내려왔다.장소월은 지푸라기라도 잡은 듯 애원하였다.“살려, 살려줘요... 살려주세요...”좁은 복도에 세 사람이 서 있으니 보다 비좁아졌다.이범은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내 일에 손대지 마.”그는 강렬한 포스를 풍기고 있고 이범보다 한 뼘 정도 더 큰 키에, 얼굴빛은 싸늘했으며 눈을 내리깔고 그를 보며 말했다.“그 손 놔.”“너 당장 꺼져!”“마지막으로 한 번만 경고할게. 그 손 놔!”목소리는 차가웠다.“놓지 않으면 어떡할 건데? 너 내가 누군 줄 알고. 이곳에서 널 죽이는 건 식은 죽 먹기야.”이범은 장소월의 머리를 놓아주었고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키며 악랄하게 얘기했다.그러나 그 사람은 바로 이범을 발로 차버렸고 이범은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져 비명이 들렸다.장소월도 깜짝 놀랐다. 그녀는 이범이 바닥에 그대로 쓰러져 정신을 잃고 이마에서 피까지 흘리는 걸 봤다.장소월도 입을 틀어막아 자신이 소리를 지르는 걸 막아버렸다.그녀가 고맙다고 인사를 하기도 전에 그는 이미 자리를 떴다.장소월은 허둥지둥 계단을 올라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는데, 아까의 두근거림에 당황해서 열쇠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뜨렸다.그녀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문을 걸어 잠그고 옷장에서 자기 옷을 꺼내 트렁크에 넣었다.예전에 그녀는 너무 보호를 잘 받아서 바깥세상이 얼마나 험악한지 전혀 몰랐다!만약 그녀한테 신분이 없고 장가네가 없다면... 장소월은 어떤 인생을 살 게
배가 고픈 데다 아기들이 발길질까지 하니 더욱 아팠다. “아가들아, 제발 차지 마. 규영 언니랑 미진 언니가 곧 맛있는 거 가져다줄 거야.” 그녀가 배를 쓰다듬으며 아이들을 달랬다. 규영과 미진은 그녀의 애처로운 눈빛을 견뎌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뱃속 두 녀석들이 워낙 시끄럽게 움직이고 있으니 더는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알았어요, 아가씨. 간단히 드실 걸 가져다드릴게요. 여기 앉아서 절대 움직이지 마세요.” 그들은 걱정되는 마음에 거듭 당부했다. 소현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여기 이렇게 많은 언니들이 지켜보고 있잖아요. 아무 일 없을 거예요. 절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을게요.” 규영과 미진은 사람들에게 다시 신신당부한 뒤에야 먹을 것을 가지러 자리를 떴다. 지난번 일 이후로 다른 사람은 믿을 수 없게 되어 소현아의 음식은 반드시 그들이 직접 준비해야 했다.소현아는 혼자 소파에 앉아서 작게 아기들과 이야기했다. “아가들아, 소월 이모가 전연우 그 나쁜 놈한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내 전화를 왜 안 받은 거지?” “나 소월이가 너무 걱정돼. 근데 너희가 너무 무거워서 몰래 도망갈 수도 없어.” 그녀에게 돌아오는 답은 점점 잦아드는 태동뿐이었다. 소현아는 아기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못마땅한 듯 입을 삐죽거렸다. 누군가 문을 열었는지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었다. 얇은 연노랑 잠옷만 입고 있던 소현아는 추위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곧이어 도우미들의 공손한 인사 소리가 들렸다. “효연 아가씨.” 천효연은 거만한 눈빛으로 그들을 훑어 보고는 곧장 위층으로 향했다. “여기 뒀던 내 꽃병은 어디 갔어?” 계단 모퉁이에 있던 꽃병이 사라진 걸 발견한 천효연이 불쾌한 얼굴로 물었다.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현아 아가씨가 다치실까 봐 잠시 장식품들을 다 치웠습니다.” 소현아? 그 이름을 들은 순간 천효연의 눈동자에 냉기가 스쳤다. “그 바보는 지훈 씨가 방에 가둬놨잖아?” 도우미
엄마와 통화를 마친 뒤, 소현아는 장소월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전연우 그 나쁜 놈이 소월이를 괴롭히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혹시 소월이는 강용 소식을 알지 않을까... 소현아는 강지훈이 강용의 행방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장소월의 당부를 기억하며 감히 묻지 못했다. 통화음이 두 번 울린 뒤 전화가 연결되었다. 상대가 말하기도 전에 소현아는 흥분해서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소월아! 드디어 전화 받았네! 있잖아, 강지훈 그 나쁜 놈이 나 계속 방에 가둬놓고 문밖으로 못 나오게 했어. 나 진짜 답답해 미치겠어!” “널 여기 데려와 같이 놀려고 했는데, 강지훈의 말이 전연우 그 나쁜 놈이 너 안 보낸다고 하더라고. 둘 다 진짜 짜증 나! 내가 간신히 휴대폰 구해서 전화한 거야. 소월아, 그 나쁜 놈한테 말하고 이쪽으로 놀러 와줄 수 있어?” 한참을 떠들었을 때, 저쪽에서 낮고 위험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지훈이 내가 소월이를 나가지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고? 언제 나한테 물어봤는데?” 소현아는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몇 초 뒤에야 머뭇거리며 다시 말을 꺼냈다. “전... 전연우 씨? 왜 당신이 전화를 받아요?” 전연우가 차갑게 웃음을 터뜨렸다. “나쁜 놈이 전화를 받아서 많이 실망했나?” 소현아는 겁을 먹고 눈알만 뒤룩뒤룩 굴렸다. “저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잘못 들었어요! 소월이는요? 이거 소월이 폰이잖아요. 빨리 소월이한테 돌려줘요!” 전연우가 말했다. “소월이는 전화 안 받아. 다시 전화하지 마.” “소월이한테 나라고 말해줘요. 소월이가 제 전화 안 받을 리 없어요.”소현아는 다급함을 감추지 못했다. “앞으로 다시는 소월이 찾지 마. 바빠서 너랑 소꿉놀이할 시간 없으니까.” “그리고 강지훈한테 전해. 내게 터무니없는 누명 씌우지 말라고.” 전연우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소현아가 다시 걸어봤지만, 상대는 받지 않았다. “현아 아가씨, 이제 일어나서 운동할 시간이에요.” 규영과 미
소현아는 얼굴에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이빨 자국을 달고서 원망 어린 눈빛으로 강지훈을 바라보았다. 강지훈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 말을 들은 순간 소현아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내가 소월이한테 전화해도 돼요?” “그쪽에서 받기만 한다면야.” 소현아는 이제 아침에 있었던 불쾌한 일을 까맣게 잊은 듯했다. “저 밖에 나가서 놀고 싶어요!” 강지훈은 단칼에 거절했다. “안 돼.” 신이 나 붕방거리던 소현아는 김빠진 공처럼 순식간에 축 처져버렸다. “하지만 방에만 계속 있는 건 너무 따분하단 말이에요.” “절대 도망 안 갈게요. 여기 아기들도 있잖아요. 그냥 아래층에서 좀 돌아다니게만 해줘요, 네?” 그녀가 지금 머무는 방은 집에 있던 침실을 완벽하게 똑같이 복원한 곳이었다. 소현아는 이곳을 무척이나 좋아했었다.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최근 며칠 동안 줄곧 악몽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그녀는 방안을 끝없이 걷고 또 걸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방은 갑자기 창고로 변해버렸고, 아무리 깨려고 해도 도저히 깨어날 수가 없었다. 강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소현아는 못마땅한 얼굴로 밥을 한입 삼키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전연우 그 나쁜 놈도 소월이가 마당에서 그림 그리는 건 허락하던데... 강지훈 씨는 날 침실 밖에도 나가지 못하게 하네. 전연우보다도 더 나빠.” “...” “아래층에서만 놀아. 방을 나서면 규영과 미진이 따라갈 거야.”결국 강지훈이 한발 물러섰다. 소현아의 눈에 다시 별빛이 들어왔다. “음, 당신은 전연우 그 나쁜 놈보다 조금 나아요. 정말 아주 조금.” 아침을 먹고 난 뒤 소현아는 바로 휴대폰을 요구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거의 즉시 연결되었다. “현아니? 지금 어디 있는 거야?” 명세진의 목소리는 흥분을 애써 억누르고 있는 듯 조심스러웠다.오랜만에 엄마 목소리를 들으니 소현아는 코끝이 시큰해졌다. “엄마,
강지훈은 한밤중이 되어서야 짙은 피비린내를 풍기며 돌아왔다.옆방에서 샤워를 마친 강지훈은 잠옷을 입고 소현아의 방으로 들어갔다.소현아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2.2미터나 되는 퀸사이즈 침대에서 편안하게 팔다리를 쭉 뻗은 채 말이다. 무슨 꿈을 꾸는지 웅얼거리며 입가에 흘린 침을 닦고 있었다.곤히 잠든 그녀의 모습을 본 순간, 강지훈은 장난기가 발동했다. 침대 곁으로 다가간 그는 이불을 끌어다 그녀의 배를 덮어주고는 코를 꼬집었다.“윽...”잠시 후 소현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편한 듯 눈을 떴다.“강지훈 씨 너무 싫어요. 숨을 쉴 수가 없잖아요. 빨리 놔줘요.”침대 곁에 있는 사람을 본 소현아는 두 손으로 그의 손목을 잡고 떼어내려 했다.강지훈이 말했다. “말해 봐.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 제대로 말하면 놔줄게.”소현아는 씩씩거리며 눈을 감고 어쩔 수 없이 입으로 숨을 쉬었다. 가슴이 뻐끔뻐끔 부풀어 오르는 모습이 마치 복어 같았다.강지훈은 몸을 기울여 그녀의 입까지 막아버렸다.몇 초 지나지 않아 소현아는 다시 웅얼거리며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강지훈은 그저 잠시 그녀에게 장난을 치고 싶었을 뿐이지만, 한번 맛을 보니 멈출 수가 없었다.그는 손을 떼어 그녀의 허리에 얹고 반바지를 벗기려 했다.소현아는 필사적으로 바지를 붙잡고 엉덩이를 비틀며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다.강지훈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손 놔. 살살할게.”“저 졸려요. 자고 싶으니까 강지훈 씨도 빨리 자요.”그녀는 강지훈이 또 키스하려 할까 봐 입술을 굳게 다물고 낑낑거리며 그를 밀치고는 죽은 척 눈을 감았다.강지훈이 어떻게 하든 소현아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고, 나중에는 정말로 다시 잠이 들어버렸다.곤히 잠든 그녀를 바라보는 강지훈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다음 날 아침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강지훈의 몸에 꼭 안겨있었다. 그녀의 코끝에 그의 단단한 가슴이 닿아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어젯밤 일이 떠오른 소현아는 그의 가슴을 힘껏 깨물었다.곧이어
분개하고 있던 천효연의 시야에 문득 옆 방문 앞에 놓인 목욕 가운이 들어왔다.목욕 가운 허리띠에는 검은색 은은한 무늬가 수 놓여 있었는데 누가 봐도 강지훈의 것이었다!강지훈이 그녀를 침대에 버려두고 저 바보 같은 여자를 찾아온 것이다!그 사실을 깨달은 천효연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강지훈은 바람기가 있긴 했지만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라고 천효연은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하여 그녀는 강지훈이 바깥에서 몇 명의 여자를 만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저 바보 같은 여자가 나타난 이후로, 강지훈은 그녀를 안고 있으면서도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그 바보를 위해 그녀에게 손찌검까지 했다!설상가상으로 그 바보는 강지훈의 아이까지 가졌다...천효연은 간신히 벽에 몸을 기댄 채 바닥에 놓인 목욕 가운을 쏘아보았다. 동시에 숨을 죽이고 방 안에서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하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도우미가 다가오자 천효연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어서 요염한 자태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아.”소현아는 입을 크게 벌리고 미진이 밥을 먹여주기를 기다렸다.그녀도 남의 손을 빌려 밥을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부터 손목이 끊어질 듯이 아파 어쩔 수가 없었다.아침밥은 강지훈이 직접 먹여주었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규영과 미진에게 밥을 먹여주라고 지시하고 서둘러 떠났다.“아가씨, 오늘은 어디 불편한 곳 없으신가요?”어제 주인님의 모습은 너무나 무서웠다. 그가 아이를 해치지는 않았을까, 규영과 미진은 걱정이 태산이었다.그들의 마음을 알 리 만무한 소현아는 고개를 흔들었다가 다시 끄덕였다.“손목이 너무 아파요. 어떡하죠?”두 사람은 안도하며 미소를 띤 채 그녀를 달랬다. “이따가 저희가 마사지해 드리면 괜찮아지실 거예요.”소현아는 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점심 식사를 마친 후, 규영과 미진은 의사의 말에 따라 소현아를 데리고 방안을 걸어 다녔다.
강지훈의 움직임은 이전 그 어느 때보다 격렬했다.소현아는 배가 짓눌리는 느낌에 불안해졌다. 또한 콧속으로 불쾌한 향수 냄새가 흘러들어왔다.“윽...”너무나 불편하니 그만해달라고 강지훈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가 입을 틀어막고 있어 다급해진 소현아는 그의 입술을 꽉 깨물어 버렸다.순간 입안에 비릿한 피 냄새가 퍼져나갔다.강지훈이 통증에 약간 뒤로 물러섰다.“강지훈 씨 때문에 아기가 눌렸어요. 그리고 당신한테서 이상한 냄새 나요. 토할 것 같아요.”소현아는 찡그린 얼굴로 몸을 일으켜 앉아 퉤퉤 침을 뱉었다.강지훈의 서늘한 표정을 본 소현아는 토끼처럼 재빨리 배를 감싸 안고 구석으로 도망쳤다.험악한 인상에 입가에 피까지 묻히고 음침한 눈빛을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사납기 그지없었다.소현아는 겁을 먹고 몸을 웅크렸다.“의사 선생님이 아기 다칠 수도 있다고 이러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다른 사람 찾아가서 같이 자요. 하지만 자고 나서는 깨끗하게 씻고 저 찾아와야 해요. 낯선 냄새가 나면 토할 것 같단 말이에요.”그녀가 코를 찡그리며 말했다.“지금 당신 옷에서 이상한 냄새 나요. 도우미 언니들 몸에서 나는 향수 냄새 같아요. 저도 싫고 아기들도 싫어할 거예요.”강지훈은 그녀의 천진난만한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마음속의 욕망은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격렬하게 끓어올랐다.눈앞의 이 토끼 같은 여자를 당장이라도 삼켜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는 몸에 걸치고 있던 목욕 가운을 벗어 던지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옷 벗으니까 냄새 안 나지? 이리 와.”소현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안 갈래요. 당신 때문에 아기가 다칠 수도 있으니까 다른 사람 찾아가세요.”강지훈의 눈빛이 험악하게 변했다. “네가 올래, 아니면 내가 갈까?”소현아는 밖으로 도망쳐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하지만 문까지 도착하기도 전에 강지훈에게 붙잡혀 다시 끌려가고 말았다.그의 무릎에 앉혀진 소현아가 또 울먹거리기 시작하자 강지훈이 소리쳤다.“울지 마!”강지훈도 어
“지훈 씨, 아랫부분으로 도와줄게요...”그녀의 말은 파편처럼 흩어져버렸다. 강지훈은 끝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천효연은 더 이상 요염한 표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손가락으로 강지훈의 다리를 꽉 움켜쥐어 길게 할퀸 자국까지 남겼다.죽을 것 같이 괴로워하는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도 강지훈의 마음속엔 조금의 파동도 일지 않았다.여전히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그는 짜증 섞인 얼굴로 천효연의 입에서 물건을 빼내고 그녀를 잡아 벽에 밀어붙인 다음 다시 아래로 밀어 넣었다.질식하기 직전, 천효연은 삽입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허리를 비틀며 그에게 맞춰 움직였다.“지훈 씨, 정말 대단하네요...”강지훈의 붉게 충혈된 두 눈엔 살기가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손에 잡히는 대로 천 조각을 그녀의 입에 쑤셔 넣었다.천효연의 목소리는 입안에 갇혀버렸다. 쾌감에 찡그려졌던 미간이 더욱 깊게 찌푸려졌다.왜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 걸까? 예전에는 분명 신음소리를 내는 걸 좋아했었는데...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천효연은 기진맥진하여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제서야 강지훈은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흥분은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다.그는 침대에 널브러진 여자를 힐끗 보고는 미간을 찌푸린 채 일어나 욕실에서 간단히 씻은 뒤, 침대 머리맡에 놓인 새 잠옷을 아무렇게나 집어 들고 소현아의 방으로 향했다.소현아는 간신히 울음을 그치고 규영과 미진의 보살핌을 받으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강지훈이 옆에서 방해하지 않으니 밥상에 차려진 맛있는 음식을 와구와구 먹고 있었다.규영과 미진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아가씨, 오늘 너무 많이 드셨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조금만 드시라고 하셨잖아요...”소현아는 퉁퉁 부은 눈으로 그들을 가련하게 바라봤다.“이번 한 번만 먹을게요. 강지훈 씨가 먹으라고 했어요. 못 믿겠으면 직접 물어보세요.”확실히 강지훈이 시킨 것이다. 하여 더 이상 말을 하진 않았지만, 걱정스러움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그때 강지훈
소현아의 울음은 좀처럼 멈출 줄을 몰랐다. 강지훈은 잠시 달래주다가 금세 인내심이 바닥났다.그는 탈옥수를 쫓느라 며칠 동안 뜬눈으로 지새웠음에도 부랴부랴 먼 길을 달려 집에 돌아왔다. 한시라도 빨리 이 여자를 품에 안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이토록 난동을 부릴 줄이야.“아직도 다 못 울었어?”강지훈은 그녀를 품에 가두고 한 손으로 턱을 쥐어 억지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소현아의 속눈썹은 눈물에 젖어 엉겨 붙어 있었다. 너무 심하게 울어서인지 딸꾹질이 멈추지 않아 괴로워진 그녀는 힘껏 입술을 깨물었다.딸꾹질을 멈추려는 그녀의 생각을 알아챈 강지훈은 손가락을 움직여 그녀의 입술을 벌리고 안에 집어넣었다.조금씩 훌쩍거리던 소현아가 또다시 울음을 터뜨렸다.“당신 싫어요. 당신은 전연우랑 똑같이 나쁜 놈이에요! 소월이한테 갈 거예요. 소월이는 나 굶기지 않을 거라고요...”“흐엉, 소월이가 해주는 밥 먹고 싶어요. 소월이가 만든 밥이 제일 맛있는데...”한참을 울고 나서도 머릿속엔 여전히 먹을 것뿐이다.강지훈은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지르고는 한 손으로 그녀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요리사한테 다시 음식을 만들어 가져오라고 해!”잠시 후 따뜻한 음식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향긋한 냄새를 맡자 소현아의 울음소리가 서서히 멈추었다. 그녀는 강지훈의 몸에서 내려와 식탁에 앉아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분명 아까 일이 기분을 상하게 한 듯했다.“주인님, 아가씨께선 임신 중이십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임산부는 정서가 불안정하기에 기분을 잘 살펴줘야 한다고 하셨어요.”규영과 미진은 소현아의 붉어진 눈과 코를 보고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강지훈에게 말했다.강지훈은 섬뜩한 눈빛으로 그들을 쏘아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복도에서 여자 도우미가 새 목욕 가운을 들고 안방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한 아름다운 여인이 그녀 앞에 나타나 손에 들린 옷을 빼앗았다.“줘. 내가 가져다줄게.”도우미는 당황스
소현아는 접시를 끌어안고 좀처럼 내려놓지 않았다.“오늘 모처럼 입맛이 돈다고요. 규영 씨, 미진 씨, 저 조금만 더 먹으면 안 될까요? 아주 조금만 먹고 강지훈 씨에게는 말 안 할게요.”규영과 미진의 얼굴에는 난감한 기색이 가득했다.그들 역시 소현아를 좋아하는지라 마음껏 먹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녀가 힘들어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 때문에 주인님에게 혼나는 건 더더욱 싫었다.“아가씨, 배고프시면 제가 과일 좀 가져다드릴까요? 과일은 아기에게 좋을 거예요.”규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와 협상했다.소현아는 고기가 가득 담긴 접시를 눈앞에 두고도 먹을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까지 왈칵 차올랐다.하지만 배에서 또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자 더는 고집을 부리지 못하고 결국 접시를 내려놓았다.“알겠어요. 그럼 과일 많이 먹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저녁에 배가 고파서 잠이 안 오거든요.”규영과 미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식기를 치우고 과일을 잘라 가져다주었다. 그러고는 맛있게 먹고 있는 소현아의 모습을 지켜보았다.사실 소현아는 살이 잘 찌는 체질은 아니었다. 많이 먹어도 과도하게 뚱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글동글 귀여운 편이었다. 식사량을 줄이자 며칠 만에 눈에 띄게 체중이 줄어들기 시작했다.밖에서 돌아온 강지훈은 한눈에 그녀의 얼굴이 핼쑥해졌음을 알아챘다. 살이 빠져 더 커진 눈은 전보다 더욱 청순하고 순진무구해 보였다.“그동안 제대로 못 먹었어?”그가 손을 뻗어 뺨을 꼬집었다. 감촉도 예전만큼 부드럽지 않았고 손에 잡히는 살도 별로 없었다.소현아의 얼굴이 그의 손에 일그러졌다. 그녀는 배고픔에 가련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강지훈 씨, 저 배가 너무 고파요. 아기 낳는 거 너무 힘들어요. 그만두면 안 될까요? 아기 그냥 다시 돌아가게 해줘요!”강지훈은 어이없음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돌아가? 어디로 돌아가?”소현아는 눈알만 이리저리 굴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녀 역시 아기가 어디로 돌아갈 수 있는지 알 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