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이 세 가지만 일치한다면 섭정은 절대 이 고변의 늪을 빠져나갈 수 없었다.
저벅, 저벅.
전각의 모퉁이를 돌아 이헌이 여유로운 걸음으로 마당에 모습을 드러냈다.그의 등 뒤로 사관이 붉은 지장이 찍힌 진술서 두 장을 받쳐 들고 따르고 있었다.“어찌 되었느냐. 네 억울함을 씻어낼 증명은 끝났느냐.”
이도가 흥미롭다는 듯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이헌은 어전 한가운데 버티고 서서, 대신들을 짐승처럼 훑어보며 서늘한 실소를 흘렸다.“전하. 인간의 혓바닥은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 거짓된 뼈대를 흉내 낼 수는 있으나, 그 뼈대에 붙은 살점과 핏줄까지 똑같이 위조할 수는 없는 법이옵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거짓말쟁이들을 한자리에 모아두고 추궁하면, 저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무릎을 꿇어라.”매서운 북풍이 잦아들고, 흐린 구름 사이로 한 줄기 창백한 겨울 햇살이 쏟아져 내리던 압록강 이남의 거대한 토벌군 본영.수만 명의 조선군과 수만 명의 여진족 병사들이 둥그렇게 에워싼 그 살얼음판 같은 진영의 한가운데서, 이헌의 묵직하고도 지엄한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털썩-!그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불과 며칠 전까지 조선의 심장부를 향해 시퍼런 칼을 겨누었던 여진족의 최고 수장 야루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차가운 눈밭 위로 두 무릎을 꿇었다.그의 등 뒤로 도열해 있던 수천 명의 여진족 장수들과 전사들 역시, 자신들의 수장을 따라 일제히 무기를 내려놓고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야루.”이헌이 칠흑 같은 갑옷을 입고 단상 위에서 천천히 걸어 내려와, 야루의 눈앞에 섰다.그의 손에는 낡고 거친 오랑캐의 시미터가 아니라, 조선 무관을 상징하는 시퍼렇고 정교하게 벼려진 환도(環刀) 한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네놈이 피로써 바친 항복의 맹세와, 이 조선에 영구히 귀속하겠다는 그 약조를 내 섭정의 이름으로 받아들이겠다.”이헌이 환도를 야루의 어깨 위로 툭, 하고 가볍게 얹으며 선언했다.“오늘 이 시간부로 너는 더 이상 국경 밖을 떠도는 야만적인 오랑캐의 수장이 아니다.위대한 대명천지 조선의 무관(武官)이자, 나 도원수 이헌의 명을 받드는 직속 부장(副將)이다! 내 너에게 조선의 관직과 이 검을 하사할 것이니, 평생토록 압록강의 든든한 방패가 되어 짖어라!”“망극하옵니다……! 대군 마마의 하해와 같은 은혜, 뼛속 깊이 새기겠사옵니다!”야루가 덜덜 떨리는 두 손을 치켜들어, 이헌이 하사한 조선의 환
하지만, 감옥 안의 핏덩이가 된 젊은 관료들은. 칼에 베여 죽어가는 와중에도 이도의 그 찌질한 발악을 보며 처절하게, 그리고 비웃듯 낄낄거리며 웃고 있었다.그들의 찢어진 영혼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북방의 사신(死神)이 자신들을 구원하러 벼락처럼 도래할 것이라는 확신이 시퍼르게 살아 숨 쉬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날 밤. 한양의 밤하늘.“펑! 퍼버벙!”왕 이도가 북방 전쟁의 승리(사실상 이헌의 죽음)를 자축하며 쏘아 올린 거대하고 화려한 폭죽들이. 까만 도성의 밤하늘을 오색찬란하게 찢으며 미친 듯이 수놓고 있었다.백성들은 영문도 모른 채 흉흉한 폭죽 소리에 귀를 막으며 떨었고, 훈구파 대신들은 그 불꽃 아래서 부어라 마셔라 주지육림의 끔찍한 끝을 달리고 있었다.그들은 이 화려한 궐 안에서, 영원한 권력을 손에 쥐었다고 맹신하며 축배를 들고 있었다.하지만.그 미친 왕이 쏘아 올린 멍청한 축하 폭죽 소리가 궐을 가득 채우고 있던 바로 그 시각.수천 리 떨어진 칠흑 같은 북방의 꽁꽁 얼어붙은 압록강 협곡에서는.한양의 그 썩어빠진 구체제를 완벽하게 엎어버릴, 거대하고 압도적인 핏빛 폭풍이 귀환을 위한 무자비한 시동을 걸고 있었다.“전군! 횃불을 들어라!”애꾸눈 무영의 거대한 사자후가 압록강의 칼바람을 찢고 터져 나왔다.화르르륵-!순식간에 북방의 어둠을 완벽하게 밀어내며, 십만 개가 넘는 시뻘건 횃불들이 일제히 태백산맥의 골짜기를 가득 채우며 켜졌다.그것은 한양 도성의 얄팍한 폭죽 따위와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얼어붙은 대지를 불태우는 듯한 거대한 불기둥의 장관이었다.“…….”그 십만 개의 횃불이 짐승처럼 일렁이는 진영의 가장
육중한 철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시뻘건 횃불을 든 무리들이 옥사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독한 술냄새를 풍기며 비단 용포 자락을 질질 끄는 사내.잔치판에서 흠뻑 취해 권력욕에 완벽하게 미쳐버린 왕, 이도였다.“크큭…… 쥐새끼들처럼 바닥에 웅크리고 있구나.”이도가 횃불 너머로, 쇠창살 안의 참혹한 광경을 내려다보며 비릿하게 조소했다.감옥 안의 상황은 끔찍한 생지옥 그 자체였다.이헌이 조선의 백성을 위해 직접 발탁하고 등용했던, 조선의 미래를 짊어질 꼿꼿한 젊은 실학파 관료들.그들은 훈구파의 무자비하고 잔혹한 고문에 온몸의 살갗이 찢어지고 뼈가 부러진 채, 피투성이가 되어 더러운 짚단 위에 짐승처럼 널브러져 있었다.매일 밤마다 옥사를 함께 쓰던 동료들이 끌려나가 불에 달군 인두에 지져져 끔찍한 비명을 지르다 죽어가는 것을, 두 눈을 뜨고 고스란히 지켜봐야만 했던 소름 끼치는 시간들.“전하…….”피투성이가 된 젊은 관료 하나가, 창살을 피 묻은 손으로 꽉 부여잡고 짐승처럼 헐떡이며 이도를 원망스럽게 올려다보았다.“어찌…… 어찌 이러실 수 있사옵니까.우리 군대가, 수만 명의 아군이 북방에서 오랑캐와 뼈를 깎으며 싸우고 있거늘…… 어찌 고의로 보급을 끊어 그들을 굶주린 사지로 몰아넣는단 말이옵니까! 전하께서는 정녕 이 나라의 군주가 맞으시옵니까!”관료의 피 토하는 듯한 원망과 절규에, 이도의 입가에 걸려있던 조소가 일순간 싸늘하게 식었다.“네놈이 정녕 살기 싫어 환장을 했구나.”이도가 창살 가까이 뱀처럼 다가가, 쪼그려 앉으며 눈을 희번덕거렸다.&ldq
[정치 교차]“마시자! 부어라! 취하여라! 오늘 밤은 조선의 새로운 태양이 완벽하게 떠오른 참으로 기쁜 날이 아니냐!”한양의 궐내, 경회루.매서운 한겨울의 북풍이 무색할 만큼, 거대한 누각 안은 십여 개의 화로가 내뿜는 후끈한 열기와 진동하는 독한 술 냄새로 기괴하게 달아오르고 있었다.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려진 산해진미, 그리고 팔도에서 뽑혀 올라온 기생들의 화려한 비단 치맛자락이 어지럽게 춤을 추는 완벽한 주지육림(酒池肉林)의 연회장.그 방탕하고 썩어빠진 짐승들의 잔치판 한가운데서, 왕 이도가 붉게 달아오른 취한 얼굴로 금잔을 높이 치켜들며 미친 듯이 폭소를 터뜨렸다.“전하!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전하의 하해와 같은 성은에 신들, 감읍할 따름이옵니다!”“전하 만세! 만세! 영원무궁토록 만만세이옵니다!”비단 관복을 차려입은 훈구파 대신들이, 턱밑으로 기름진 고깃기름을 뚝뚝 흘리며 일제히 바닥에 엎드려 아부의 만세를 부르짖었다.북방의 얼어붙은 압록강에서 피 말리는 핏빛 지략전 끝에 평화 협정이 완벽하게 체결되고, 조선의 영토가 확장되었다는 사실을. 그들은 꿈에도, 단 1푼도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그저 자신들이 고의로 보급로를 완벽하게 끊어버렸으니. 눈엣가시 같던 무소불위의 섭정 이헌과 수만 명의 토벌군 군대가, 그 끔찍한 북방의 첩첩산중에서 꼼짝없이 얼어 죽고 굶어 죽었을 것이라.그리 완벽하고도 멍청한 착각과 확신의 늪에 빠져, 매일 밤 승전보조차 없는 그들만의 더러운 핏빛 잔치판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좌상! 내 아우 놈은 지금쯤 어찌 되었을 것 같으냐!”이도가 기생의 무릎을 베고 비스듬히 누워, 잔혹하게 킬킬거리며 물었다.훈구파의 영수 좌의정이 음흉한 미
무영은 조약문을 소중하게 품속 깊숙이 집어넣고는, 짐승처럼 절을 올린 뒤 눈보라가 치는 천막 밖으로 튕겨 나가듯 내달렸다.“헉…… 헉……!”살을 에고 뼈를 부수는 끔찍한 북풍이 몰아치는 압록강 이남의 조선 토벌군 본영.수만 명의 조선군 병사들은 무기를 쥔 채 얼어붙은 눈밭에 웅크리고 앉아, 강 한가운데의 회담장 천막만을 핏발 선 눈으로 주시하고 있었다.군량미는 완전히 바닥이 났고, 병사들의 입술은 동상으로 시커멓게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그들의 눈동자에는 오직 ‘오늘 밤 저 강을 넘어오는 오랑캐 놈들의 칼에 목이 잘리거나, 아니면 굶어 죽거나 둘 중 하나다’라는 끔찍하고 절망적인 죽음의 체념만이 짙게 깔려 있었다.얼어 죽을 날만 짐승처럼 기다리며,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던 그 끔찍한 절망의 진영.그때였다.“끝났다아아아-!”칠흑 같은 어둠과 눈보라를 찢고, 강기슭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오는 거대한 피투성이 그림자.오른쪽 안대를 휘날리며 허공에 무언가를 높이 치켜든 흑위대장 무영의 피 토하는 듯한 짐승의 절규가, 진영의 고막을 무자비하게 때렸다.“전쟁이 끝났다! 도원수 마마와 부인 마마께서 오랑캐 놈들의 항복을 완벽하게 받아내셨다!”“……?!”웅크려 있던 수만 명의 병사들이 일제히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홱 쳐들었다.“놈들이 우리 조선의 발밑에 기어들어 와 귀속을 맹세하고, 영토를 지참금으로 바치며 항복 문서에 수결을 하였다!이 지독하고 끔찍한 전쟁은 이제 영원히 완벽하게 끝이 났다! 우리는 살았다!”무영이 붉은 수결이 선명한
“수결을 마쳤소.”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이 몰아치는 압록강 한가운데.꽁꽁 얼어붙은 두꺼운 얼음판 위에 덩그러니 세워진 임시 가죽 천막 안에서, 짐승의 앓는 소리 같은 탁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여진족의 수장 야루는 핏발 선 눈으로 거친 숨을 헐떡이며, 자신이 방금 피눈물을 머금고 수결(서명)과 시뻘건 지장을 찍은 조약문을 탁자 위로 밀어냈다.자신의 손으로 부족의 독립을 포기하고, 스스로 목줄을 차며 조선의 방패막이 사냥개가 되겠다는 가장 치욕적이고도 완벽한 항복 문서였다.하지만 야루의 행동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굵은 손을 품속으로 집어넣더니, 오래되고 누렇게 바랜 낡은 양피지 가죽 지도 하나를 꺼내어 이헌의 코앞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이게 무엇이냐.”이헌이 뱀처럼 서늘한 시선으로 양피지 지도를 내려다보며 물었다.“우리가…… 우리 여진족이 압록강 이북에 차지하고 있던 본토의 영토 지도요.”야루가 피가 나도록 꽉 깨물었던 아랫입술을 떼며, 쥐어짜 내듯 대답했다.“우리가 영원히 조선의 백성으로, 조선의 발밑에 귀속하겠다는 것을 증명하는 완벽한 증표요.조선이 우리 십만 부족민에게 매년 겨울마다 구휼미를 내려주고, 따뜻한 솜옷과 소금 교역을 보장하여 생존을 약조해 준다면.우리는 이 압록강 이북의 넓고 척박한 영토를, 우리 여진족이 조선에 들어가는 일종의 ‘지참금(持參金)’ 격으로 위대한 조선의 영토에 기꺼이 바치겠소.”“……!!”그 말을 들은 이헌의 퀭하게 파였던 눈동자가, 일순간 기악하며 찢어질 듯 커졌다.이헌의 등 뒤에 조용하고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