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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악마와의 조우(2)

Author: 유리구슬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20 21:31:19

캐비닛에는 태경이 지시한 방어 방안과 법률 서류들이 빼곡히 쌓여 있었다.

지안은 두 손에 뜨거운 인스턴트 커피가 든 종이컵을 쥐고, 탁자 맞은편에 앉은 태경을 바라보았다.

“오늘도 늦게까지 죄송합니다, 변호사님. 매번 이렇게 저희 회사 일에 매달려 주시고…….”

“컨설팅 비용은 추후에 특허가 상용화되면 정식으로 청구할 테니, 벌써부터 빚진 표정 지을 필요 없습니다.”

태경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서류에서 눈을 뗐다.

지안의 피로한 얼굴 위로 희미한 안도감이 번져 있었다.

지난 한 달간 태경은 채권자들의 독촉을 법적으로 막아내고, 얽힌 소송들을 깔끔하게 지연시켰다.

물론 그것은 성원테크를 살리기 위함이 아니라, TK그룹이 흡수하기 좋도록 덩치를 다듬고 타 세력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한 고도의 밑작업일 뿐이었다.

하지만 지안은 철저히 기만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른 채 그를 신앙처럼 의지하고 있었다.

“변호사님 아니었으면…… 저희 아버지, 그리고 우리 공장 식구들 전부 길거리에 나앉았을 겁니다.”

“…….”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지안이 컵을 만지작거리며 작게 미소 지었다.

지치고 갈라진 입술 위로 번지는, 티 없이 맑고 맹목적인 신뢰.

그 미소를 마주한 순간, 태경은 넥타이를 풀던 손가락을 멈칫했다.

심장 한구석이 까끌하게 긁히는 듯한, 생전 처음 겪어보는 이질적인 감각이 정맥을 타고 흘렀다.

그녀의 얇은 손목, 지친 어깨, 그리고 오직 자신만을 향해 열려 있는 무방비한 시선.

그것들을 모조리 짓밟아 부숴버리고 싶다는 파괴 충동과, 동시에 제 품에 가두고 싶다는 기형적인 소유욕이 엉켜 들었다.

태경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며 턱을 굳혔다.

‘건방진 착각이다.’

그는 속으로 차갑게 선을 그었다.

저 여자를 향한 이 불쾌한 시선은 연민이나 끌림 따위가 아니다.

오직 완벽하게 길들여진 사냥감의 목줄을 틀어쥐었을 때 느끼는, 포식자 특유의 정복욕일 뿐이다.

태경은 서늘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지안을 직시하며 손을 내밀었다.

“은혜를 갚으실 거라면,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을 제게 넘기실 차례입니다.”

“아…….”

지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책상 서랍 가장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작은 휴대용 금고를 꺼냈다.

“이 안에 미공개 특허의 핵심 설계도와, 회사의 비자금 흐름이 담긴 진짜 장부 원본이 들어있습니다. 변호사님을 믿기에, 제 전부를 맡깁니다.”

“현명한 선택입니다, 본부장님.”

태경이 금고를 건네받는 찰나, 두 사람의 손끝이 스쳤다.

지안의 차가운 체온이 태경의 손등에 닿았다 떨어졌다.

태경은 금고를 챙겨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아침 일찍 법원에 서류를 접수하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태경이 사무실 문을 열고 나서자, 지안이 자리에서 일어나 깊게 허리를 숙였다.

그녀의 온전한 믿음을 등 뒤로 한 채, 태경은 낡은 복도를 걸어 나왔다.

건물 밖에는 다시 굵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최고급 세단의 뒷좌석에 태경이 몸을 실었다.

운전석에 앉은 수석 비서가 룸미러로 태경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

“대표님. 성원테크의 핵심 자료는 확보하셨습니까.”

태경은 손에 든 작은 금고를 가죽 시트 위로 무심하게 던졌다.

창밖으로 쏟아지는 빗줄기가 그의 차가운 뺨 위로 그늘을 드리웠다.

태경이 넥타이를 거칠게 끌어내리며 낮게 읊조렸다.

“내일 오전 주주총회 직전, 법원에 파산 신청과 동시에 횡령 고발장 접수해.”

“예? 하지만 송지안 본부장은 대표님을 전적으로 믿고…….”

“그래서 넘긴 거잖아. 본인들 숨통을 끊을 진짜 칼자루를.”

태경의 눈동자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자신의 유일한 구원자라 믿었던 남자가 가문을 파멸시킬 사냥꾼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그 여자가 지을 처절한 절망.

그 표정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태경은 입안이 바싹 타들어 가는 듯한 기묘한 갈증을 느꼈다.

“성원테크의 모든 숨통을 끊는다. 단 한 조각의 권리도 남기지 말고 철저하게 짓밟아.”

명령을 내리는 태경의 시선은 짙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지안의 손끝이 닿았던 손등을 엄지손가락으로 꾹 짓누르며, 그는 남은 감정의 찌꺼기마저 잔혹하게 지워냈다.

악마의 덫은, 이미 완벽하게 완성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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