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극 로맨스 / 회귀한 대군의 후회 / [1화] 악마와의 조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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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대군의 후회
회귀한 대군의 후회
작가: 유리구슬

[1화] 악마와의 조우(1)

작가: 유리구슬
last update 게시일: 2026-07-20 21:30:42

빗방울이 최고급 통유리창을 거칠게 때렸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대형 로펌 ‘태산’의 대표 변호사 탑층 집무실.

차태경은 짙은 회색 슈트 주머니에 한 손을 찔러넣은 채, 창밖의 흐린 도심을 무심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태경 변호사님. TK그룹 측에서 의뢰한 적대적 M&A 건, 타겟 기업의 분석이 끝났습니다.”

뒤에 선 수석 비서가 조심스럽게 서류철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태경은 천천히 몸을 돌려 책상으로 다가갔다.

테이블 위를 스치는 그의 길고 뼈마디가 도드라진 손가락이 서류의 첫 장을 넘겼다.

[타겟: 성원테크. 대표: 송학수. 실질적 경영 대행: 송지안 본부장.]

태경의 시선이 서류 우측 상단에 클립으로 고정된 증명사진에 머물렀다.

송지안.

단정하게 묶은 머리, 옅은 화장기, 고집스럽게 다문 입술.

기울어가는 가업을 살리겠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다는 스물일곱의 여자였다.

“현재 성원테크의 재무 상태는 바닥입니다. 주거래 은행에서 대출 연장을 거부하면 당장 다음 주에 1차 부도가 납니다.”

“기술력은.”

“확실합니다. TK그룹이 노리는 것도 성원테크의 미공개 특허 기술 세 건입니다. 껍데기는 버리고 핵심 기술만 집어삼키는 것이 이번 합병의 목표입니다.”

태경은 서류를 덮으며 낮게 입꼬리를 올렸다.

완벽한 사냥감이었다.

숨통을 조이면 조일수록 발버둥 치겠지만, 결국 스스로 목줄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약자.

그는 책상 위의 만년필을 집어 들며 서늘하게 명했다.

“은행 쪽에 손을 써둬. 내일 오전 중으로 대출금 상환 압박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라고 해.”

“예. 그리고 성원테크 측에는 어떻게…….”

“내가 직접 가지.”

태경의 짙은 눈동자에 서늘한 흥미가 스쳤다.

가장 완벽한 파멸은, 사냥감이 제 발로 사냥꾼의 아가리 속으로 걸어 들어오게 만드는 것이다.

---

다음 날 오후, 장대비가 쏟아지는 K은행 본점 로비.

지안은 물에 젖은 서류 가방을 품에 끌어안은 채 멍하니 서 있었다.

머리카락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져 낡은 정장 재킷을 적셨지만, 그녀는 닦아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지점장님! 제발 3개월, 아니 한 달만이라도 기한을 연장해 주십시오! 당장 다음 달이면 특허 승인이 떨어집니다!”

조금 전, 지점장실 문을 붙잡고 매달리던 자신의 목소리가 귓가에 이명처럼 맴돌았다.

돌아온 것은 싸늘한 거절과 보안요원의 제지뿐이었다.

아버지는 병상에 누워 있었고, 공장 직원들의 월급은 석 달째 밀려 있었다.

눈앞이 새카맣게 점멸했다.

무너지는 다리에 힘을 주며 걸음을 떼려던 찰나였다.

툭.

지안의 손에서 미끄러진 서류 가방이 대리석 바닥으로 떨어지며 안의 서류들이 쏟아져 내렸다.

지안은 숨을 헐떡이며 황급히 바닥에 주저앉아 젖은 종이들을 긁어모았다.

그때, 불쑥 뻗어 나온 커다랗고 단단한 손이 흩어진 서류 한 장을 집어 들었다.

“성원테크의 부채 상환 연기 신청서라.”

낮고 부드러운, 그러나 묘하게 귀를 파고드는 서늘한 음성이었다.

지안이 놀라 고개를 들었다.

완벽하게 재단된 네이비 슈트,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머리칼, 그리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짙고 깊은 눈동자.

태경은 무릎을 굽혀 지안과 시선을 맞추며, 젖은 서류를 털어 그녀에게 건넸다.

“이런 서류 백 장을 들이밀어도 은행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저들은 가능성이 아니라 담보를 믿으니까요.”

“누구시죠……?”

“차태경이라고 합니다.”

태경은 품에서 명함을 꺼내 지안의 손에 쥐여주었다.

‘기업 회생 및 법률 컨설팅 전문 변호사 차태경’.

지안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성원테크의 특허 기술에 관심이 있는 투자자를 대리하고 있습니다. 송지안 본부장님, 맞으십니까.”

“저를…… 아십니까?”

“비를 너무 많이 맞으셨군요. 일단 일어나시죠. 당신을 도울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이, 지금 당신 눈앞에 있습니다.”

태경이 지안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지안은 벼랑 끝에서 내려온 구원의 동아줄을 보듯, 떨리는 손으로 그의 손을 잡았다.

태경의 입가에 찰나의 호선이 그려졌다 지워졌다.

덫이, 완벽하게 맞물리는 순간이었다.

---

그로부터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성원테크의 허름한 본사 사무실 안은 늦은 밤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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