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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철저한 기만과 배신(1)

Auteur: 유리구슬
last update Date de publication: 2026-07-20 21:31:32

차가운 조명이 내리쬐는 서울중앙지방법원 제4민사부 법정.

피고석에 앉은 지안은 초조하게 두 손을 맞잡고 있었다.

재판장의 날카로운 시선이 서류를 훑는 동안, 귓가에는 심장 박동 소리만이 불규칙하게 울렸다.

자신의 유일한 구원줄.

그를 향해 시선을 돌렸을 때, 태경은 단정하게 정돈된 서류 뭉치를 들고 원고 측 대리인석에 앉아 있었다.

지안은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어째서, 왜 저 자리에…….’

마주친 그의 짙은 흑안은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일말의 동요도, 지난 한 달간 보여주었던 다정한 신뢰의 흔적도 없었다.

법정의 무거운 공기를 가르며, 태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원고 측 대리인 차태경입니다. 본 사건의 피고 성원테크의 실질적 경영 대행자인 송지안 본부장은, 회사 자금을 횡령하고 고의로 배임 행위를 저질렀습니다.”

“……!”

지안의 숨이 턱 막혔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는 그녀의 어깨를 옆에 앉은 국선 변호사가 다급히 억눌렀다.

태경은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목소리로 준비한 서류들을 재판장 앞으로 내밀었다.

“제출한 증거 자료 4호부터 12호까지. 이는 피고 측이 직접 작성한 이중 장부의 원본이며, 비자금 조성 경로가 명백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지안이 그를 온전히 믿고 넘겨주었던 휴대용 금고 속의 내부 기밀들이었다.

태경은 성원테크를 회생시킬 방어 논리를 짠 것이 아니라, 그 자료들을 완벽하게 재조립하여 지안의 가문을 파멸시킬 칼날로 벼려낸 것이다.

“피고는 해당 비자금을 은닉하여 고의 부도를 유도하고, 알짜배기 특허 기술만을 빼돌리려 했습니다. 이에 원고 TK그룹은 성원테크의 파산을 선고하고 즉각적인 자산 압류를 청구하는 바입니다.”

“거짓말! 그건 전부 거짓말입니다!”

지안이 억눌렸던 비명을 터뜨렸다.

법정 안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를 향했다.

지안의 눈동자가 분노와 배신감으로 붉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태경을 향해 손을 뻗으며 오열했다.

“당신이…… 당신이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내가, 내가 당신을 믿고 다 줬는데!”

재판장의 신경질적인 의사봉 소리가 울려 퍼졌다.

“피고! 정숙하시오!”

“저 남자가! 저 사람이 우리 회사를 살려주겠다고 속여서 자료를 다 빼앗아 간 겁니다! 재판장님, 제발 제 말을……!”

지안의 절규에도 태경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그는 그저 무심하게 서류철을 넘기며 건조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피고의 감정적인 주장은 법적 근거가 없습니다. 증거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완벽한 사냥.

단 한 치의 빈틈도 없는 논리.

재판장의 입에서 성원테크의 파산 선고와 횡령에 대한 압수 수색 명령이 떨어졌다.

지안의 다리에 힘이 풀렸다. 바닥에 주저앉은 그녀는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아버지가 평생을 일군 공장, 수십 명 직원의 밥줄, 그리고 자신이 믿었던 유일한 희망.

모든 것이 저 남자의 서늘한 혓바닥 아래서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법정을 나서는 태경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그의 뒤로 지안의 처절한 오열이 복도를 울렸지만, 그는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

그날 밤.

병상에 누워있던 지안의 아버지, 송학수 대표가 충격으로 쓰러졌다.

회사가 파산하고 딸이 횡령범으로 몰렸다는 뉴스를 접한 직후였다.

응급실로 실려 간 지 며칠 만에, 그는 결국 눈을 감고 말았다.

텅 빈 장례식장.

검은 상복을 입은 지안은 영정 사진 속 옅게 웃고 있는 아버지를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눈물조차 말라버린 핏발 선 두 눈.

지안의 손끝이 하얗게 질리도록 상복의 끝자락을 틀어쥐었다.

이 모든 파멸의 시작점.

차태경.

그의 서늘하고도 완벽했던 기만이 지안의 뇌리에 뼈저리게 새겨졌다.

---

같은 시각, 대한민국 최고급 호텔의 스카이라운지.

태경은 TK그룹 회장과 축배를 들고 있었다.

최단기간, 완벽한 승소.

업계 최고의 자리를 굳건히 다진 그에게 찬사가 쏟아졌다.

“차 대표, 역시 대단해. 그 알짜배기 특허를 이 가격에 먹게 해 주다니.”

“과찬이십니다. 준비된 장기 말을 제자리에 놓았을 뿐입니다.”

태경은 샴페인 잔을 기울이며 입꼬리를 올렸다.

승리의 달콤함. 정복의 카타르시스.

늘 그렇듯 완벽하게 계획하고 통제한 결과였다.

하지만 최고급 호텔 스위트룸으로 돌아온 후, 침대에 몸을 누인 태경의 호흡이 미세하게 틀어졌다.

‘거짓말! 그건 전부 거짓말입니다!’

어둠 속에서 불쑥, 지안의 피 맺힌 목소리가 환청처럼 귓가를 때렸다.

태경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넥타이를 집어 던지고 위스키 잔을 들이켰다.

알코올이 식도를 뜨겁게 태우고 내려갔지만, 눈앞에 아른거리는 지안의 무너진 얼굴은 지워지지 않았다.

자신을 원망하며 붉게 타오르던 그 눈동자.

자신에게 완전히 짓밟혀 바닥을 뒹굴던 그 비참한 모습.

‘……신경 쓰이게.’

태경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단순한 동정 따위가 아니었다.

자신의 손으로 철저하게 박살 낸 장난감이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불쾌함.

그녀가 흘린 눈물이 왜 이토록 지독한 잔상으로 남아 자신을 괴롭히는 것인지.

태경의 턱관절이 서서히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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