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한은 조용히 복도를 따라 걸었다.무심코였는지, 아니면 의식해서였는지 그의 발걸음은 소예지의 사무실 앞을 스쳐 지나갔다.아주 잠깐, 걸음이 멈칫했지만 그뿐이었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대로 지나쳤다.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고이한은 이마를 짚으며 눈썹 사이를 지그시 눌렀다.애초에 알고 있었어야 했다. 소예지의 성격을 생각하면 그녀가 이번 일에 협조할 리 없다는 걸.‘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날을 세우며 부딪히기만 해야 하는 건가...’그때 운전석에서 김경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대표님, 도착했습니다.”그의 생각이 끊겼다.그날 오후, 고이한이 주주들에게 둘러싸여 공격받았다는 소식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경제 뉴스의 헤드라인은 물론, 각종 재계 전문 채널과 자극적인 발언을 일삼는 자칭 전문가들까지 가세해 고이한의 행보를 맹렬히 비판하기 시작했다.그 소식을 접한 박시온은 곧바로 소예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야, 지금 뉴스 봤어? 고이한이 주주들한테 집단 반발당했다는데 진짜야? 설마 이사회에서 진짜 쫓겨나는 거 아냐?]소예지는 짧게 답했다.[사실이야. 다만 아직 쫓겨났는지는 몰라.]고이한이 그렇게 쉽게 무너질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그가 자신에게 계획서를 써달라고 한 것도, 수많은 선택지 중 손해가 가장 적은 방법을 고른 것뿐이었다.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무릎 꿇지 않을 사람이다.설령 외줄 위에 매달린 상황이라 해도 그는 결코 쉽게 고개를 숙이지 않을 것이다.물론 최악의 시나리오는 있었다.뇌-컴퓨터 프로젝트를 철회하는 것, 그렇게 된다면 연구는 중단될 터였고 그 가능성만으로도 소예지의 가슴이 답답해졌다.이건 단순한 기업 실험이 아니었다. 국방부 장관까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국가 단위의 중대한 연구였다.사실 그녀가 계획서를 작성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이론은 이미 실험으로 실현 가능성이 검증된 상태였고 돌파구 또한 어느 정도 눈앞에 와 있었다.문제는 단 하나,‘누구를 위해’ 그 계획서를 쓰느냐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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