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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1화

“송서윤은 심건모와 평생을 함께하겠다고.”“우리 사이는 아주 좋고 이혼할 일은 절대 없다고 말이야.”심건모의 말을 듣는 송서윤은 마음은 너무나 무거웠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심건모는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기대 어린 그의 눈빛을 마주하자 송서윤의 머릿속엔 이정희에게 했던 약속이 맴돌았다.그리고 심건모의 여사친이라는 존재, 또 고영훈...송서윤은 고영훈을 정말 진심으로 사랑했었다. 하지만 고영훈은 그녀를 배신했다. 고영훈 역시 예전엔 이토록 다정했다. 수많은 밤을 지켜주었고 송서윤을 몇 번이고 밑바닥에서 끌어올려 주었다. 고영훈은 5년 동안 바람을 피웠고 송서윤은 5년이 지나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 고영훈이 그녀에게 베푸는 다정함이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변심을 눈치챌 수조차 없었기에 바보처럼 오랫동안 속아왔던 것이다.송서윤은 어찌할 바를 몰라 심건모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마음을 내어주고 싶지 않았다. 너무나 무서웠다. 언젠가 산산조각이 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다시는 배신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앞날 또한 너무나 걱정되었다.그때 차 문이 열리고 심건모는 송서윤을 안아 든 채 정부 청사 안으로 들어섰다. 송서윤의 시선이 건물 밖 철문을 향했다. 그곳은 이미 기자들로 가득했다. 심건모의 사무실 구역은 대낮처럼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었다.회의실 안은 보좌관들의 고함으로 아수라장이었다. 서로를 탓하며 몰아세우다가도 머리를 모아 대응책을 논의하고 다시 싸우기를 반복했다. 인터넷 세상 또한 발칵 뒤집혀 있었다. 대형 스크린 위로 누리꾼들의 비난 섞인 실시간 댓글이 쉴 새 없이 스쳐 지나갔다.소파에 앉은 송서윤은 초조하게 서성이는 제훈을 지켜보았다.“발표회 준비 중입니다.” 제훈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사모님, 괜찮으시겠습니까?”송서윤은 들어온 순간부터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심건모는 그저 담담히 그녀를 바라보며 기다릴 뿐이었다.그때, 심경욱과 이정희가 도착했다.“어떻게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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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2화

“건모가 다 알고 있어.”“정말 다 알까?” 이정희는 씩씩거리며 밖으로 나갔다.등 뒤로 심건모의 목소리가 한 번 더 들려왔다. “부드럽게 얘기하세요.”이정희는 문 앞에 멈춰 서서 이를 악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심건모를 다시 뱃속으로 집어넣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녀가 홱 돌아서자 심경욱이 뒤를 쫓아 나갔다.복도에는 이정희의 목소리가 쟁쟁하게 울려 퍼졌다. “왜 따라와? 내가 서윤이랑 속 깊은 얘기 좀 하겠다는데 꼭 들어야겠어?”“가서 원수 같은 아들이나 감시해! 사고 친 거 제대로 수습하나 똑똑히 보라고!”“수습 못 하면 당신 책임인 줄 알아!”“여보, 여보, 여보...” 심경욱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왜 내 책임이 되는데...”심경욱이 다시 회의실로 돌아와 보니 꺼졌던 스크린이 켜져 있었다. 불과 10분 전만 해도 일방적인 비난 일색이었던 여론의 분위기가 바뀌어 토론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심경욱은 스크린 위로 쉴 새 없이 올라오는 댓글들을 보며 놀란 눈으로 심건모를 쳐다보았다.[그런데 왜 이혼하려고 한 거야?][이혼 사유에 세상의 잣대라고 적혀 있는데?][말도 안 돼!][이혼녀는 고위 공직자랑 결혼하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어?][난 삼혼이다! 나쁜 놈들한테 두 번 데였지만 갈수록 용감해진다고! 재혼이 어때서. 겁날 게 뭐야.][언니 멋져요!][좋은 남자 만났으면 무조건 잡아야지!][야, 너희 합의서 내용 좀 봐. 자기 명의로 된 거 다 넘겨줬어. 양육권만 공동으로 갖고.][명의로 된 게 뭐가 있는데?][열 페이지가 넘네. 빽빽하게 적힌 게 다 뭐야.][진짜 다 줬네. 만년필 한 자루까지 다 적었어.][눈 좀 크게 뜨고 보세요. 저 만년필 전 세계에 두 자루뿐이라 가치가 수천만 원대예요.][속옷, 양말, 셔츠, 정장 바지는? 골프채? 커프스버튼? 지갑? 면도기? 벨트? 시계까지?][미쳤네! 그냥 사랑한다고 써놓은 거잖아.][사랑인지는 모르겠고 재산 정리하려면 골치 꽤나 아프겠는데.][몇 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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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3화

송서윤은 심장이 거칠게 요동쳤고,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그녀의 시선은 심건모의 준수한 얼굴에서 불안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마침내 그를 향해 발걸음을 뗐다.심건모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심했던 눈빛에 기쁨이 가득 차올랐다. 그는 성큼성큼 다가와 송서윤 앞에 섰다. 심건모가 손을 내밀자 송서윤은 손을 그 위에 겹쳐 놓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조용히 맞닿았다.인터넷상에서 누리꾼들은 10페이지에 달하는 자산 목록을 파헤치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와! 이런 이혼도 다 있네.]송서윤은 휴대폰 화면을 쳐다보았다. 황당한 내용뿐이라는 댓글이 떠 있었다.“왜 옷까지 다 적어둔 거예요? 옷 가지고 뭘 하라고요?”송서윤의 마음이 진정된 것을 확인한 심건모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제훈의 습관이라...”심건모는 자기 자신까지 목록에 적어 넣고 싶은 심정이었다.“회계사 출신이라 버릇을 못 고쳤습니다.” 제훈이 문을 열고 들어오며 거들었다. “심 국장님이 당시 자산 명세를 낱낱이 파악해서 사모님께 넘기라고 하셨거든요.”“아, 그랬군요.”송서윤의 머릿속에는 누리꾼의 그 한마디가 계속 맴돌았다.[종이 가득 황당한 내용뿐이지만 결국 사랑한다고 적혀 있네.]심건모가 송서윤의 허리에 손을 얹자 송서윤은 그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심건모는 마음이 흔들렸다. 그는 그녀를 조심스럽게 품에 안았다.“국장님, 발표회 준비 끝났습니다. 보도자료도 다 정리됐고요.” 제훈이 말했다. 정말이지 십년감수한 기색이었다.“응. 네가 진행해.”“예? 뭐라고요?”제훈은 오늘 하루 심건모 때문에 몇 번이나 놀랐는지 모른다. 심건모는 당황한 송서윤의 손을 이끌고 휴게실 안 침실로 들어갔다. 그는 옷장을 열어 여성복들을 살피더니 로열 블루 색상의 원피스를 골라 그녀에게 건넸다.“갈아입어.”송서윤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발표회 같이 가서 이혼은 오해라고 해명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발표회는 제훈이면 충분해.” 심건모는 송서윤을 욕실 안으로 밀어 넣고 문을 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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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4화

심건모는 이정희가 송서윤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혹시나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까 봐, 혹은 이정희가 포기하지 않고 뒤에서 또 다른 함정을 파놓지는 않았을까 두려웠다. 심건모는 온 힘을 다해 이 결혼을 돌이킬 수 없는 사실로 굳혀야만 했다.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따뜻한 숨결이 뒤섞였다. 심건모는 송서윤에게 살며시 다가가 다정한 목소리로 거듭 물었다.“응? 대답해 줘.” “나 좀 도와줘.”송서윤은 간절한 심건모의 눈빛을 마주하고는 시선을 떨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심건모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 위로 포개졌다. 심건모는 감정이 벅차오르는 듯 깊게 입을 맞췄다. 드디어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었다.심건모는 송서윤을 데리고 연회장으로 향했다. 귀빈 환영 연회에 참석한 그는 그녀를 무려 총리에게 소개했다. 인자한 아버지 같은 풍모의 총리는 송서윤에게 부드럽게 두 마디를 건넸다.“젊은 사람이 살다 보면 실수도 할 수 있는 법이지. 좋은 경험으로 삼게나.”“심 국장 높은 자리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았어. 곁을 지켜주느라 자네도 수고가 많군.”국회의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 뒤 송서윤은 자리에 앉아 사람들 사이를 오가는 심건모를 지켜보았다. 그제야 그녀는 심건모가 얼마나 다재다능한 사람인지 실감했다. 그는 여러 외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누구와도 막힘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어느덧 30분이 훌쩍 지났다. 국회의원들이 퇴장하자 심건모가 송서윤 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송서윤의 손을 잡고 왼손 약지에 끼워진 옥반지를 가볍게 매만졌다. 술기운 때문인지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낮게 잠겨 있었다.“이제 갈까?”“그래도 돼요?”송서윤은 심건모를 올려다보며 그의 손을 꼭 쥐었다.조명을 머금은 심건모의 모습은 평소보다 더 근사하고 훤칠해 보였다. 술을 그리 즐기지 않는 그였지만 오늘만큼은 몸에서 은은한 술향기가 감돌았다. 이런 자리에서 좀처럼 흐트러지지 않는 그가 술을 마신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응.”심건모는 송서윤을 일으켜 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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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5화

어린이 식당.심건모가 송서윤의 허리를 감싸안은 채 안으로 들어서자 직원이 식당 문을 열어주었다. 그 순간 송서윤은 고하준과 이리안이 고영훈과 함께 있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고영훈은 광대 옷을 입은 채 풍선으로 토끼를 만들어 이리안에게 건네고 있었다. 이리안은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하다가 두 사람을 발견하고는 달려와 송서윤을 꽉 안았다. “엄마, 한참 기다렸어요.”송서윤의 몸이 휘청이자 심건모는 그녀를 단단히 붙잡아 주었다. 이리안은 다시 심건모의 다리에 매달렸다. “아빠, 아빠가 준비한 광대 아저씨 진짜 최고예요!”“저글링도 잘하고 농담도 재밌고 마술도 부릴 줄 알아요.”심건모는 허리를 숙여 이리안을 안아 올리고는 담담한 시선으로 고하준을 바라보았다. 고하준의 표정에는 슬픔과 약간의 죄책감이 서려 있었다.“네가 좋다니 다행이구나.” 심건모가 나직하게 대답했다.이리안은 심건모의 어깨에 얼굴을 비비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빠 대단해요. 엄마를 다시 데려오다니.”그러고는 그의 뺨에 뽀뽀를 했다.심건모의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는 고하준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준아, 동생 안아. 이제 집에 갈 시간이야.”고하준의 시선이 테이블 위에 놓인 선물 상자에 머물렀다. 이미 뜯겨진 상자 안에는 피아노 모형이 들어 있었다. 심건모의 표정은 덤덤했으나 말투는 부드러웠다. “네 물건은 아저씨가 챙겨주마.”긴장했던 고하준의 얼굴이 그제야 풀렸다. 고하준은 심건모 곁으로 다가와 이리안을 건네받았다. 유 집사와 육아 도우미도 그들을 따라나섰다.“먼저 가 있어. 금방 나갈게.”심건모는 송서윤의 어깨 위로 내려앉은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며 다정하게 속삭였다. 송서윤의 팽팽했던 긴장감이 누그러졌고 그녀는 시선을 거둔 채 뒤돌아 나갔다. 식당 유리문이 흔들리며 위에 달린 종이 딸랑거렸다.유리창 너머로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이 코너에 세워진 밴으로 향하는 것을 지켜보던 심건모는 아주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시선은 고영훈을 향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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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6화

고영훈은 심건모를 밀쳐내고 바닥에서 기어 올라왔다. 고영훈의 얼굴은 어둡게 가라앉았고 검은 눈동자에는 피비린내 나는 냉기가 소용돌이쳤다.“해봐요. 어디 한번 해보라고요.” “뜻대로 되게 두지 않을 테니까!”심건모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밖으로 향했다. 고영훈이 뒤쫓으려 했으나 조민이 앞을 가로막았다. 고영훈은 심건모를 향해 말했다.“이혼 합의서는 국장님 곁에 있는 사람만이 유출할 수 있는 겁니다.”“제로가 계속 말썽을 피우는 건 최종 목표가 케이시가 아니라 바로 국장님이기 때문이죠.”“천우진이 상대하려는 사람도 바로 심 국장님입니다.”“국장님이 서윤에게 가져다주는 건 언제나 위기뿐이에요.”“오직 나만이 서윤이를 안전하고 걱정 없이 살게 할 수 있어요.”심건모는 문고리를 잡은 채 고영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무심한 눈빛 속에 남모를 슬픔 한 자락이 스쳤으나 이내 차갑게 변했다.“고 대표님은 한때 서윤이의 세상 전부였죠.”“하지만 고 대표님의 배신이 서윤의 세상을 망가뜨렸어요.”“무슨 자격으로 내 앞에서 서윤이를 걱정 없이 살게 하겠다는 말을 입에 담는 겁니까?”심건모는 유리문 밖에서 그를 기다리는 송서윤의 시선을 느끼고는 모든 감정을 억눌렀다. 그는 유리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문 위의 종이 움직임에 딸랑거렸다.송서윤은 심건모의 커다란 손을 잡았다.“애들이 졸려 하길래 먼저 보냈어요.”“나 기다린 거야?”“네. 술 마셨잖아요.”“좀 걸을까요? 술기운 좀 가라앉게.”“뭐 사고 싶은 거 있어?”“생각 중이에요.”심건모는 시간을 사고 싶었다. 송서윤의 10년, 그다음 10년, 또 그다음 10년을......고영훈은 조민에게 밀려났다. 조민은 고하준의 피아노 모형을 챙겨 식당을 나선 뒤 그들의 뒤를 따랐다. 고영훈은 유리창 너머로 송서윤과 심건모가 웃으며 멀어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송서윤의 눈매는 온화했고 미소는 고요했다. 고영훈과 함께였던 시절 아무 걱정 없던 그때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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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7화

심건모는 송서윤의 손을 맞잡았다. 그는 송서윤의 귓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를 불쾌하게 했어.”마치 아이가 고자질이라도 하는 듯한 말투였다.송서윤은 의아한 듯 되물었다. “그냥 말을 건 거잖아요. 연락처를 알고 싶었을 뿐이지 불쾌하게 하려던 건 아닐 거예요.”“너를 기분 나쁘게 했잖아.”심건모는 걸치고 있던 슈트 상의를 벗어 곁에 있는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지난번 수영과 몇 마디 나누었다는 이유로 송서윤이 단번에 그를 밀어냈던 기억을 잊지 않고 있었다.“아니에요. 아마 아내가 있다는 걸 몰랐겠죠.”송서윤은 쓰레기통에 버려진 슈트를 힐끗 바라보았다. 왠지 모르게 그의 그런 행동이 가슴 한구석을 뜨겁게 달구는 기분이었다. “사람 좀 놔주세요.”심건모가 특수경찰을 슬쩍 쳐다보자 그제야 경찰은 손을 풀고 여자에게 사과까지 건넸다.“반지를 끼고 다녀야겠어.”심건모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자 송서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말 거는 사람?”“너한테도 말 걸면서 연락처 달라는 사람 많아?” 심건모는 송서윤을 품에 안고 걸으며 귓가에 속삭였다.간지러웠다. 그녀는 귀 옆의 잔머리를 만지며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말했다. “많지는 않아요.”“대시하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되고?”심건모는 추궁하듯 물었다. 그가 아는 사람은 소주원뿐이었다. 소주원 말고 또 누가 있을까.“없어요. 난 국장님 아내인데 누가 감히 대시를 하겠어요?”심건모가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그걸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지.”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사진 속 송서윤의 얼굴은 흐릿했으니까. 송서윤이 잘 못 알아듣고 되물었다. “네?”심건모는 송서윤의 얼굴을 감싸 쥐고 진지하게 말했다. “네가 내 아내라는 걸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만약 누가 너한테 대시하면 무조건 거절해야 해.”송서윤은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심건모의 진지한 눈빛과 마주하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듯 얼얼한 기분이 들었다.“고집불통!”송서윤은 나직이 투덜대면서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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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8화

심건모는 고하준이 얼마나 뼈를 깎는 노력을 했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일찍 쉬어.”심건모는 고하준을 놓아주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고하준이 그를 불러 세웠다. “아저씨, 고마워요.”심건모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하준의 방문을 닫아주었다.3층, 송서윤은 샤워를 마친 뒤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 화면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지뢰 제거 프로그램이 가동되었고 동건우와 이혜정이 함께 찍은 사진은 끊임없이 분석되고 있었다....심건모는 향가옥을 나와 검은색 승용차에 올라타 정부 청사로 향했다.발표회는 이미 끝난 상태였다. 직원들이 하나둘 퇴근하고 있었지만 회의실은 여전히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심건모가 회의실 문을 열자 하은이 공포에 질린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상석에 앉아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심 국장님, 정말 제가 한 짓이 아닙니다.” 하은이 심건모의 발치에 엎드렸다.조민도 옆에서 거들며 용서를 구했다. “심 국장님, 하은 씨는 국장님을 5, 6년이나 모셨습니다. 국장님을 배신할 리가 없어요. 아마 예전 특수경찰 중 누군가일 것입니다.”하은은 심건모의 손을 붙잡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충혈된 두 눈에 당혹감이 가득했다. “심 국장님, 전 국장님을 배신하지 않습니다. 위기에서 저를 구해주신 분인데 제가 어떻게 은혜를 원수로 갚겠습니까.”심건모는 무심한 눈길로 제훈을 바라보았다. 제훈이 다가와 하은을 떼어놓고 서류 뭉치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내 사무실은 하은 씨와 조민 씨만 들어올 수 있어. 파쇄기 안의 서류는 내가 직접 갈아버린 뒤 직접 처리해. 그런데 이혼 합의서 한 부가 사라졌던 날, 내 사무실에 들어온 건 하은 씨뿐이었어.”“어떻게 확신하죠! 사무실엔 CCTV도 없잖아요!” 하은이 눈을 부라리며 쏘아붙였다. “제훈 씨가 실수를 해서 이혼 합의서가 유출됐고 그래서 파문이 일어난 걸 지금 저한테 덮어씌우려는 거 아닌가요?”제훈은 하은이 이토록 적반하장으로 나올 줄 정말 몰랐다. “복도에 CC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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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9화

“국장님의 아내가 되어야 했던 사람은 원래 저였어요!”“송서윤이 도대체 뭔데!”심건모는 발걸음을 멈추고 눈물범벅이 된 하은의 얼굴을 서늘하게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단 한 번도 보인 적 없던 잔혹함이 서려 있었다. 시체 더미 속에서 살아 돌아온 그에게 이런 잔인한 눈빛이 없을 리 없었다.심건모는 무심하게 물었다. “나를 좋아해?”하은은 당황하며 심건모를 올려다보다가 마치 희망이라도 발견한 듯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나를 좋아해서 내 아내를 죽이려 했어?”담담했던 심건모의 목소리가 점차 차갑게 얼어붙었다. “네까짓 게 어떻게 살아있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다른 사람은 물론 자신의 목숨까지 하찮게 여기는 네까짓 게!”심건모는 문득 고영훈이 했던 위기라는 말을 떠올렸다. 심건모가 성큼성큼 앞서 나가자 하은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국장님! 제가 증인이 될게요! 동봉우가 동건우를 살해했다는 걸 증언할게요!”희망은 사라졌다. 이미 오래전부터 없었다. 심건모는 송서윤을 위해서라면 앞날을 스스로 무너뜨릴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토록 송서윤을 사랑하고 있었다. 하은 또한 그걸 모를 리 없었고 그저 그놈의 불공평하다는 마음이 화를 부른 것이었다.심건모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쾅 닫힌 문만이 그가 남긴 분노를 대변할 뿐이었다. 하은은 직무 유기와 살인 공모 혐의로 제훈에 의해 검찰로 넘겨졌고 남은 생은 철창 안에서 보내게 될 터였다.심건모는 정부 청사를 단숨에 빠져나와 기사에게 차 키를 받아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그는 폭풍처럼 질주해 집으로 돌아왔다. 복도의 조명 아래 길게 늘어진 그의 그림자가 거친 숨을 몰아쉬는 가슴의 움직임에 따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송서윤은 컴퓨터 앞에 엎드린 채 잠들어 있었다. 모니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형광 빛이 보호막처럼 그녀의 가냘픈 몸을 감싸고 있었고 그 주변은 온통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불을 켜지 않은 채 어둠 속에 자신을 숨기는 것, 영락없는 해커의 모습이었다.심건모는 송서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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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0화

시야가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다. 심건모는 단추를 풀려던 송서윤의 손을 지그시 눌렀다. 입가에 번져 나오는 미소를 감출 길이 없었다. 송서윤이 이렇게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와 주니 기뻤다. 만약 그녀가 마음까지 전부 솔직하게 털어놓아 준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심건모는 송서윤의 턱을 살며시 들어 올렸다. 은은한 먹향이 그녀를 감싸안았고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 위로 포개졌다. 송서윤이 보답하듯 입을 맞추려 하자 심건모는 얼굴을 붙잡은 채 허락하지 않았다.“너무 늦었어. 일찍 쉬어야지.”“말 들어. 나 할 일이 좀 있어서.”송서윤은 못내 아쉬운 듯 손을 거두었고 그대로 심건모의 품에 안겨 침대 위로 옮겨졌다. 심건모는 이불을 덮어주더니 평소처럼 침대맡에 앉아 송서윤의 등을 토닥이며 잠을 청하게 했다. 하지만 송서윤은 오늘 밤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을 감고 자는 척해 보았지만 단 1분도 버티기 힘들었다.송서윤은 심건모의 손을 밀쳐내고 홱 돌아서서 그를 등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심건모는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대체 왜 화가 난 걸까?' 화장을 했는데 예쁘다고 칭찬해 주지 않아서일까? 사실 아까 입을 맞출 때 번들거리는 화장품의 감촉이 느껴져 그녀가 립스틱을 발랐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심건모는 송서윤의 뺨을 만져보았다. 아까는 미처 몰랐는데 이제 보니 뽀얀 분칠이 한 겹 덮여 있었다.송서윤은 곁에 있던 온기가 멀어지는 것에 이어 방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었다. 화가 더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욕실로 가 화장을 지워버렸다. 다시 커다란 침대로 돌아와 눕는 찰나 옆에서 나직한 신음이 들렸다. 실수로 사람을 친 것이었다.당황하기도 잠시, 송서윤은 따뜻한 품속으로 끌려 들어갔고 입술을 빼앗겼다. 은은한 먹향과 살짝 섞인 바디워시 향기. 그제야 마음이 놓였지만 송서윤은 심건모를 밀어냈다. 정치가인 심건모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데 능숙했고 단순한 송서윤은 그의 눈에 빤히 들여다보였다. 다만 무엇이 발단이었는지는 아직 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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