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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1화

송서윤은 갑자기 심건모를 밀쳐내더니 침대에서 일어나 기어가는 듯한 기세로 침대 아래로 내려갔다. 깜짝 놀란 심건모가 그녀를 붙잡으려 했지만 그녀는 그의 손바닥을 빠져나갔다. 심건모는 급히 불을 켰다. 시야가 밝아지자 비틀거리며 드레스룸으로 들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보였다.송서윤이 다시 나왔을 때 심건모의 검은 눈동자에 긴장감이 돌았다. 송서윤은 그에게 다가와 커다란 침대 위, 그의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그녀는 그의 왼손을 끌어당겨 결혼식 때 그가 준비했던 반지를 약지에 끼워주며 나직하게 속삭였다.“네. 그럴게요.”송서윤의 미소는 찬란하면서도 평온했고 반짝이는 눈빛은 심건모의 심장박동을 뒤흔들었다. 그녀의 미소를 따라 그의 심장도 억제할 수 없이 떨려왔다. 화장을 지운 그녀의 하얀 얼굴과 부드러운 눈썹, 수줍은 눈매와 오똑한 코, 붉은 입술, 그리고 촉촉한 피부는 정말 아름다웠다. 세안을 한 탓에 머리카락 사이에 물방울이 맺혀 있어 마치 정성껏 가꿔진 튤립 같았다.심건모가 직접 물을 주며 가꾸어야 할 튤립이다. 송서윤은 화장품 가게에서 심건모가 했던 혼잣말을 들은 것이었다. 반지를 껴야 할 것 같다고 했던 그의 말을.심건모는 송서윤을 품에 안았다. 그는 아주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이제 신랑은 신부에게 키스해도 좋아요.”“응.”두 사람은 입을 맞추며 길고 고단했던 하루를 마무리했다....“당선 확정까지 고작 11일 남았습니다.”“오늘 귀빈 연회는 잘 진행되었습니다. 당선은 이미 기정사실입니다.”“심건모는 제가 흔들 수 있는 인물이 아닙니다.”“하지만...”동봉우가 책상 위의 사진 한 장을 집어 들었다. 송서윤의 양다리 루머가 파다했을 때 이리안에게 일이 생긴 줄 알고 달려갔던 그녀가 대강당에서 심건모와 함께 인터뷰에 응하던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송서윤을 인질 삼아 심건모가 스스로 물러나게 해야지.”동봉우는 송서윤을 가리키며 말했다.“오늘 이혼 서류를 뿌린 건 나지만 일이 커진 데는 심건모 쪽 사람들의 공이 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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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2화

동봉우의 나직한 중얼거림은 그 누구도, 심지어 그의 아내조차 듣지 못했다. 송서윤은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동봉우와는 단 한 번 일면식이 있을 뿐이었다. 심건모를 따라 환희정에서 식사를 했을 때 고영훈, 수영과 함께 마주쳤던 것이 전부였다. 나중에 심여진에게 듣기로는 그가 동건우의 아버지라고 했다.동씨 가문.이혜정이 30년 전 머물렀던 곳이 바로 동씨 가문이었다.지뢰 찾기 시스템에 오류가 있을 리 없었다. 적어도 그 사진만큼은 여기서 촬영된 것이 분명했다. 이혜정이 이씨 가문을 떠나 부원시로 가기 전까지의 그 5년이라는 세월이 과연 이 동씨 가문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여보, 인사해요. 건모의 아내라오.” 동봉우가 김미령에게 소개했다.김미령은 온화한 인상이었다.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성함은 익히 들었어요.”“정희에게 몇 번이나 며느리를 좀 보여달라고 청했는데, 누가 훔쳐 가기라도 할까 봐 겁나는지 도통 보여주질 않더라고요.”“오늘 드디어 뵙게 되네요.”그녀는 송서윤의 손을 맞잡으며 물었다. “심 국장님 부인께서 어쩐 일로 우리 집까지 오셨을까요?”송서윤은 동봉우와 김미령을 번갈아 보았다. 인자한 모습이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동건우가 했던 말을 잊지 않았다. 이혜정을 도망치게 해주었다는 그 말. 35년 전이라면 아마 동건우가 대여섯 살 쯤 될 무렵이었을 것이다. 만약 이곳 동씨 가문에서 도망친 것이라면...송서윤은 이혜정의 팔에 남아있던 채찍 흉터를 떠올렸다.송서윤은 손을 거두며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동건우 씨를 찾으러 왔습니다.”“건우는 해외로 발령이 나서 떠났답니다.”송서윤이 자리를 뜨려 하자 김미령은 다시 말을 붙였다.“오늘 운이 좋으시네요. 마침 집에 손님들이 와 계신데 아는 분이 있을 거예요.”“잠시 들어와 앉았다 가시겠어요?”문이 완전히 열리고 두 사람 너머로 마당 한가운데 서 있는 고영훈의 모습이 보였다. 수영이 고영훈의 팔짱을 낀 채 송서윤을 향해 미소 지었다.“사모님, 이런 인연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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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3화

“문이 왜 열려 있지?”“누가 왔었나?”“바람 때문이겠죠.”“똑바로 잘 잠가 둬.”“사모님께서 아시면 나무라실 겁니다.”사람들이 떠난 뒤, 송서윤은 고영훈을 힘껏 밀쳐내고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문은 이미 쇠사슬로 굳게 잠겨 손가락 하나 들어갈 틈조차 없었다.고영훈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서윤아, 지금 뭐 하는 거야?”송서윤은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열리지 않는 문을 보았다. 돌이라도 들어 쇠사슬을 내리칠 기세였다. 그녀는 복도에서 옆 화단으로 뛰어내려 바닥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단순히 눈으로만 사진을 본 것이 아니었다. 시스템을 통해 사진을 복원했다. 사진 속 이혜정의 팔에는 생생한 것부터 오래된 것까지 가득한 채찍 자국이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매질을 당해온 흔적이었다. 이혜정이 도대체 어떤 일을 겪었기에 그런 흉터가 남았는지 송서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송서윤이 돌을 들고 돌아오자 고영훈은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돌로 쳐봐야 사슬은 안 끊겨. 사람들의 이목만 끌 뿐이야.”고영훈은 송서윤을 담벼락 구석으로 데려가 기마자세로 몸을 낮췄다. “내 어깨를 밟고 올라가.”송서윤은 잠시 망설였지만 진실을 알고 싶은 열망이 더 컸다. 그녀는 고영훈의 손과 어깨를 차례로 딛고 담벼락 위로 기어올랐다. 담벼락 끝에 엎드린 그녀가 발 디딜 곳도 없이 뛰어내리려 하자 어느새 먼저 올라와 아래로 뛰어내린 고영훈이 손을 내밀었다.“무서워하지 마. 뛰어내려. 내가 받을게.”송서윤은 고영훈을 바라보다가 힘껏 몸을 던졌다. 하지만 그의 품이 아닌 옆 바닥으로 착지하려 했다. 깜짝 놀란 고영훈이 몸을 날렸고 결국 송서윤은 그의 품 안으로 떨어졌다. 그는 부드럽고 따뜻한 그녀를 꽉 안았다.송서윤은 곧장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홀린 듯 벽화를 살펴본 뒤 방 안으로 돌진했다. 이혜정에 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 미친 듯이 뒤졌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방 안에는 저 벽화 말고는 남은 것이 없었다. 송서윤은 넋이 나간 채 벽화를 응시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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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4화

방 안은 몇 초간 정적에 휩싸였다.고영훈의 검은 눈동자가 돌연 빛나더니 송서윤을 돌아보았다.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았다.그 순간, 고영훈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했다.송서윤이 어쩌면 마음을 돌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심건모에게 굳이 설명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영훈 씨가 송서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요. 송서윤의 명예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거짓말까지 할 사람이라는 걸요.” “하지만 이렇게 양다리를 걸치는 여자가 정말 사랑할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요?”심건모의 눈빛이 갈수록 차갑게 가라앉는 것을 목격한 수영은 송서윤에게 다가가 손을 치켜들었다.수영은 진작부터 송서윤을 손봐주고 싶었다!그 찰나, 한 그림자가 송서윤의 앞을 가로막았다.송서윤의 귓가에 명확한 뺨 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깜짝 놀라 심건모 앞으로 다가가 손으로 그의 얼굴을 어루만졌다.“어디 맞았어요? 괜찮아요?”하지만 심건모는 그녀의 손길을 피하고는 차갑게 손목만 틀어잡았다.수영은 고영훈이 휘두른 손에 뺨을 맞고 바닥에 고꾸라졌다.심건모는 송서윤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등 뒤로 수영을 향한 고영훈의 히스테릭한 고함이 들려왔다.“네가 뭔데 감히 서윤이 몸에 손을 대려고 해!”문가에 다다르자 심건모가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제 아내가 경솔하여 실례가 많았습니다.”“고 대표님은 상업계를 이끄는 젊고 유능한 인재이니 저도 좋게 보고 있습니다. 제 아내가 고 대표님을 높게 평가해 잠시 마음이 흔들린 것도 이해가 가는군요.”“돌아가서 잘 단속해. 사람 놀라게 하지 말고.” 동봉우가 거들었다.심건모는 시선을 내리깐 채 아무 말 없이 송서윤을 데리고 자리를 떴다.고영훈이 뒤쫓아 나왔을 때 심건모는 이미 성큼성큼 멀어지고 있었고 송서윤은 뒤에서 비틀거리며 겨우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고영훈은 바닥에 쓰러진 수영을 한번 매섭게 노려본 뒤 다시 그들을 쫓아갔다.수영은 바닥에서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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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5화

밖으로 나왔을 때, 고영훈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를 입맞춤으로 달래는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키즈 카페에서 고영훈이 강제로 입을 맞췄을 때 송서윤은 매섭게 뺨을 때리며 그를 거부했었다.등 뒤로는 손님들의 수군거림이 쏟아졌다.“사모님이 전남편이랑 무슨 관계가 있겠어.”“부부 사이가 저렇게 좋은데 말이야.”차는 고영훈의 눈앞에서 미끄러지듯 빠져나갔고 송서윤의 베이지 골드 빛 벤츠마저 심건모의 사람들에 의해 끌려갔다.심건모... 일부러 이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모두에게 이 모습을 각인시켜 자신과 송서윤 사이의 추잡한 소문을 싹부터 잘라버리려는 속셈이었다.차 뒷좌석.심건모는 커다란 손으로 송서윤의 턱을 잡아 더 이상의 입맞춤을 막았다.송서윤은 그의 품에 안겨 가쁜 숨을 몰아쉬었고 손으로는 여전히 그의 눈을 가린 채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송서윤의 목소리는 짙은 울음기가 섞여 엉망이었다. “설명할 수 있어요. 나는...”생각이 뒤엉켜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결국 심건모는 마음이 약해지고 말았다. 송서윤에게만큼은 지독히도 마음이 약했다.심건모는 송서윤의 양손을 떼어내고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송서윤이 심건모의 어깨에 얼굴을 묻자 그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설명하지 않아도 돼.”“나 다 알고 있어.”송서윤은 멍해졌다. 눈물 어린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더니 끊어진 진주 목걸이처럼 눈물이 후둑후둑 떨어졌다. 그녀는 심건모의 목을 끌어안고 품 안에서 무너지듯 오열했다.“우리 엄마가 예전에 학대를 당했대요. 동건우... 동건우가 진상을 알고 있는데...”송서윤은 심건모의 품에서 간신이 말을 이어갔다. “동건우가 사라졌어요.”“어떡해요. 아무리 찾아도 안 보여요.”“사진 봐요.” 송서윤은 가방에서 사진을 꺼냈다. “사진 찍은 곳이 바로 동씨 가문의 작은 마당이었어요.”“우리 엄마가 예전에 동씨 가문에 있었대요.”“그래서 담을 넘어 들어갔는데 벽화 말고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어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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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6화

송서윤은 고개를 살짝 돌리며 나직하게 불렀다. “여보?” 그제야 원피스가 그녀의 몸 위로 툭 떨어지듯 입혀졌다.심건모는 그녀를 부축해 일으켜 세우더니 가느다란 팔을 잡아 소매 사이로 조심스레 끼워 넣으며 옷매무새를 만져주었다. 이어서 물티슈를 꺼내 그녀의 얼굴을 구석구석 닦아내기 시작했다.그녀가 직접 하겠다고 나섰지만 그의 힘을 이길 순 없었다.쓰레기통에 처박힌 흙투성이 옷을 바라보던 송서윤은 문득 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그녀는 집착 혹은 강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그 말.분명 다정하고 부드러운 남자인데 어째서인지 갈수록 강한 소유욕을 드러내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이게 바로 소유욕이라는 걸까.하지만 심건모는 늘 적당한 거리를 두었고, 항상 담담하고 온화했기에 송서윤은 그저 착각일 거라 생각했다.송서윤이 잠시 멍하니 생각에 잠긴 사이, 심건모는 그녀를 품에 꼭 안았다.그는 송서윤을 겁주거나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가 자꾸만 위험한 곳으로 뛰어드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동봉우가 나를 공격하고 있어.”“국장님을요?” 송서윤은 소스라치게 놀라 물었다.“내 당신을 반대하고 있지. 내 존재가 자신의 이익을 침해한다고 생각하거든.”송서윤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제훈 씨 말로는 원래 아버님 거였다고 하던데... 다른 사람 것도 아니고.”“상황이 복잡해.” 심건모는 송서윤의 흐트러진 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당분간 동씨 가문 사람들과 접촉하지 마.”송서윤은 심건모의 품에 기대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그녀의 얼굴을 받쳐 들고 입을 맞추며 물었다. “배고프지 않아?”그녀의 대답은 이내 그의 입술 속으로 삼켜졌다.“나 배고파 죽겠어.”심건모는 송서윤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입술은 목선을 타고 내려가 가슴 부근에서 멈췄고 억눌린 감정 탓에 그의 이마에는 푸른 힘줄이 돋아났다.그는 그녀를 품에 꽉 가두었다.송서윤은 붉어진 얼굴로 온몸을 감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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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7화

“상관이 없다고?”“네가 심건모의 아내가 아니었다면 법원 금지 명령서 따위는 받아내지도 못했을 거야.” 유영미는 분노로 가득 찬 송서윤의 얼굴을 어두운 눈빛으로 응시했다.그녀의 딸 이혜정은 아버지의 사랑도 어머니의 사랑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결국 남편의 외도와 배신 속에 생을 마감했다. 유일하게 다행인 점이 있다면 딸의 사랑을 받았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송서윤은 돌아오지 말아야 할 때 돌아왔다.유영미는 돋보기안경을 썼다. 안경 너머로 가려진 원망 섞인 눈빛에서 살벌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이산 그룹에서 당장 나가!”송서윤은 몸을 떨며 소리쳤다. “유영미 씨의 프로젝트를 반드시 파기시킬 겁니다!”송서윤은 장호를 데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밖으로 나갔다.남겨진 사무실에서 이민호가 다급하게 물었다. “할머니, 대체 왜 그러시는 거예요?”“송서윤이 윤영이를 망가뜨리더니 이제 내 프로젝트까지 막겠다는데 내가 웃는 얼굴로 대하길 바랐어?” 유영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네 인맥을 총동원해서라도 함부로 날뛰지 못하게 막아.”“제가 왜 심건모와 맞서야 합니까! 한발 물러나서 서윤이를 가족으로 인정하면 건모는 할머니의 손주사위가 되는 겁니다. 그때는 AI 부활 인간 사업을 어떻게 확장하든 아무도 못 막는다고요!” 이민호가 분노를 억누르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윤영이는 제가 어떻게든 보석으로 빼내겠습니다.”“송서윤을 받아들여? 내가 죽기 전엔 절대 안 된다!” 유영미는 냉정하게 한마디를 내뱉고 자리를 떴다.이민호는 이를 갈며 책상 위의 물건들을 바닥으로 쓸어버렸다. “노망난 늙은이!”그때 이민호의 변호사가 들어왔다.“이 대표님, 경찰서에 신고하러 가실 시간입니다.”“알았어!” 이민호는 코웃음을 쳤다.그는 현재 두 가지 혐의를 받고 있었다. 하나는 은행 계좌 절도 및 강헌의 뇌물 사건에 연루되어 송정우의 지목을 받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송서윤에 대한 강제 추행 건이었다. 보석 중이긴 했지만 매일 파출소에 출석해야 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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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8화

그 사람은 동봉우의 아내이자 동건우의 어머니 김미령이었다.송서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기 벤츠에 올라탔다.심건모가 했던 말을 잊지 않았다. 동봉우가 그를 공격하고 있다는 말 말이다.하지만 김미령이 차에서 내려 쫓아왔다. “건우가 다쳤어요.”“정말 보러 가지 않을 거예요?”송서윤은 김미령을 몇 번 쳐다보고는 그대로 차 문을 닫으려 했다.그러자 김미령이 차 손잡이를 붙잡았다. “건우가 아주 많이 다쳤어요. 어쩌면 곧 죽을지도 몰라요.”“정말... 마지막으로 보고 싶지 않아요?”“건우가 서윤 씨 이야기를 했었어요.”김미령의 표정은 평온했지만 눈동자 깊은 곳에는 슬픔이 서려 있었다. “서윤 씨가 누군가와 아주 많이 닮았다고 하더군요.”“어쩌면 죽기 전에 서윤 씨를 꼭 한 번 보고 싶어 할지도 몰라요.”송서윤은 힘주어 차 문을 닫았다. 가면 안 된다는 것도, 심건모에게 숨겨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녀도, 심건모도 그동안 동건우를 전혀 찾지 못했다. 이것이 동건우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일지도 몰랐다.송서윤이 창문을 내렸다. “타세요. 제 차로 가죠. 주소를 말해줘요.”줄곧 자리를 뜨지 않았던 김미령은 뒷좌석 문을 열고 탔다.차는 경원시를 벗어나 산간 지역을 향해 질주했다.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세 대의 차량이 그 뒤를 쫓았다.송서윤의 휴대폰 신호가 끊기자 네비게이션이 작동하며 기지의 컴퓨터로 위치를 끊임없이 전송하기 시작했다.“어디죠?”차에서 내린 송서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산속 깊은 곳에 거대한 건축물이 숨겨져 있었다.“과학 연구 실험실이에요.” 김미령은 덤덤하게 말하며 앞장섰다. “갑시다.”거대한 건축물은 앞뒤 두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송서윤은 동봉우 아내를 따라 앞쪽에 있는 병원처럼 생긴 건물로 들어갔다. 실제로 병원이었으나 환자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입원동 3층으로 향한 두 사람.병실 문을 열자 온몸에 관을 꽂은 채 누워 있는 동건우가 보였다. 가슴에는 심장 모니터가 연결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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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9화

“당장 송서윤을 여기서 내보내!”동봉우의 말을 들은 김미령은 그를 거세게 밀쳐냈다. 양손으로 책상을 짚은 채 비틀거리며 일어난 그녀는 흐트러진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입가에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이혜정은 당신을 혐오했어. 혐오가 건우에게까지 이어질 정도로! 당신이 이혜정의 몸을 가졌던들 뭐가 달라졌어?”“동봉우, 이혜정은 밖에서 굶어 죽을지언정 당신에게 돌아와 구걸하지 않았어. 죽어도 당신 얼굴 따윈 보고 싶지 않았던 거야.” 김미령은 차가운 눈빛으로 상처 입은 동봉우의 눈을 싸늘히 쳐다보았다. 그 순간 동봉우는 그녀의 목을 움켜쥐었다. 그는 김미령의 목을 책상 위로 짓누르며 윽박질렀다.“내보내라고 했어! 안 그러면 내가 너 죽여버릴 거야.”...병실 안.송서윤은 동건우의 환자복을 살짝 들춰 가슴에 남은 수술 흉터를 확인하고는 당혹감에 휩싸여 중얼거렸다.“심장 수술을 받은 거예요?”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옷매무새를 다듬어주었다.“심장에 문제가 있었나요?”미세하게 떨리는 손으로 동건우의 손을 맞잡았다.“제발 빨리 깨어나서 진실을 말해줘요. 우리 엄마한테 그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유일한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동건우를 찾지 못했을 때보다 이렇게 누워있는 그를 마주한 것이 송서윤을 더욱 고통스럽게 했다.그때, 손바닥 안에서 동건우의 손끝이 미세하게 움직였다.송서윤은 동건우의 눈꺼풀을 살짝 들어 확인했지만 동공에는 여전히 의식이 돌아온 기색이 없었다. 그녀는 그의 손을 더욱 꽉 쥐었다.“알고 있나요? 우리 엄마도 생의 마지막 해에 큰 수술을 몇 번이나 받았어요. 수술실에서 나올 때마다 난 항상 이렇게 엄마가 깨어나는지 확인하곤 했죠.”“하지만... 마지막 수술에선 엄마가 무사히 나오지 못했어요. 동건우 씨는 수술실이 아니라 병실에 있잖아요. 분명히 깨어날 거라고 믿어요.”동건우의 속눈썹이 가늘게 떨렸다.그때 병실 문이 열렸다. 김미령은 문가에 서서 실망스러운 듯 물었다. “깨어나지 않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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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0화

송서윤은 날카로운 통증에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공포가 그녀를 집어삼키려던 찰나, 하늘에서 떨어진 검은 그림자가 그녀를 수조 밖으로 끌어 올려 몸에 엉겨 붙은 뱀들을 거칠게 떼어냈다.그녀의 온몸은 뱀에게 물린 상처로 가득했고 붉은 피가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차 사고의 충격과 극심한 통증이 뒤섞여 정신이 혼미해진 송서윤은 핏기 없는 얼굴로 실성한 듯 비명을 내질렀다.“서윤아, 무서워하지 마. 괜찮아.”고영훈은 그녀를 품에 안았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는 살벌한 음산함이 감돌았다.“에이 퉤! 어디서 굴러먹던 놈이 감히 영웅 노릇이야? 아주 개떡으로 만들어버려!”양아치들이 떼거지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뒤이어 폐공장으로 들이닥친 고영훈의 경호원들이 순식간에 그들을 바닥에 처박았다. 멀리서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고영훈은 송서윤을 안아 경호 팀장의 품에 맡기더니 옆에 놓인 쇠 파이프를 집어 들었다.“대표님!”“경찰이 오고 있습니다!”“사모님이 급합니다. 어서 가시죠!” 경호 팀장이 다급하게 외쳤다.고영훈은 들리지 않는 듯 쇠 파이프를 휘둘러 양아치들을 짓이겼다. 바닥에 쓰러진 놈의 발을 짓밟으며 그가 물었다.“어느 손으로 뱀을 풀었어?”“아니, 아니에요!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양아치가 비명을 지르며 그의 발을 밀어내려 발버둥 쳤다.“그럼 오른손이네.”고영훈은 그의 손을 흙바닥에 처박듯 짓밟았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지옥에서 온 수라 같은 음성이 낮게 깔렸다.“누구 시켰어?”“그건...” 입을 닫으려는 찰나, 고영훈의 발이 다시 한번 무겁게 내려앉았다.“말하겠습니다! 말할게요. 이 대표... 이민호가 시켰습니다!”“이민호?”“그냥 좀 겁만 주라고 했습니다. 독 없는 뱀이라고...”그들의 변명이 고영훈의 귀에는 그저 거슬리는 소음일 뿐이었다. 그는 분노가 극에 달한 채 다시 쇠파이프를 휘둘렀다.“대표님, 사모님이 기절하셨습니다!” 경호 팀장의 외침에 고영훈은 그제야 멈췄다.피투성이가 된 양아치들을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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