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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1화

고하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글씨 연습 좀 해야겠네.” 심건모가 자리에서 일어났다.고하준은 울상을 지었다. “글씨 연습하는 거 제일 싫어해요.”심건모의 표정은 담담했다. “싫어하는 게 당연하지.”그러고는 펜을 들어 고하준의 숙제장 이름 옆에 심건모라는 세 글자를 힘 있게 써 내려갔다. 심건모의 글씨체는 그 사람 자체처럼 시원시원하고 품격이 있었다. 어떤 사람은 존재 자체가 빛이라 주위 사람들을 비추곤 한다.고하준의 시선이 심건모의 글씨에서 그의 얼굴로 옮겨졌다. “얼마나 연습해야 아저씨처럼 쓸 수 있어요?”“마음만 먹으면 쓸 수 있어.”심건모는 고하준의 머리를 툭 쓰다듬고는 밖으로 나갔다. 고하준은 고개를 돌려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쫓았다....옆방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이리안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 육아 도우미는 이리안이 갈아입은 옷가지를 챙겨 조용히 방을 나갔다. 심건모가 이리안의 통통한 볼을 살짝 꼬집자 이리안은 까만 눈을 번쩍 떴다.“아빠는 왜 내가 자는 척할 때마다 다 알아요?” 이리안은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네 아빠니까.”심건모는 이리안을 너무나 잘 알았다. 이리안은 대단히 영리한 아이였다. 이리안은 심건모의 손을 잡아끌더니 펜으로 그의 손바닥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다리가 두 개인 토끼를 그리며 아이가 중얼거렸다. “엄마는 언제 집에 와요?”“엄마 또 아픈 거예요?”“도우미 할머니는 엄마가 일 때문에 바쁘다고 하셨는데 분명 거짓말일 거예요.”“엄마는 아플 때만 나를 떠나있단 말이에요.”심건모가 이리안의 작은 손 위에서 커다란 손을 뒤집어주자 이리안은 그 위에 작은 거북이를 한 마리 더 그렸다.“엄마 내일이면 돌아올 거야.” 심건모는 낮은 목소리로 이리안을 달랬다.이리안이 고개를 들며 환하게 웃었다. “네!”심건모가 한 말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심건모는 이리안을 품에 안아 올렸다.“리안아, 친아빠랑 길러준 아빠가 무슨 뜻인지 알아?”이리안은 고개를 저었다.“나는 널 기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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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2화

소주원은 힘없이 주먹을 쥐었다가 다시 풀며 재킷을 받아 들었다.“도윤아, 사과 먹어.” 송서윤은 사과를 조각내어 포크로 찍어 소도윤에게 건넸다. “나 실은 오늘 너 보러 가려고 했었어.”“다리는 아직 많이 아파?”“안 아파요.” 소도윤은 사과를 받아들고는 가려운 듯 깁스 위를 긁적였다.“다행이다.”“저번에 네 트랜스포머 장난감 망가뜨린 거 미안해서 새로 나온 대화형 로봇 샀어. 도착하면 바로 가져다줄게.” 송서윤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소도윤의 얼굴이 기쁨으로 환해졌다.심건모의 손이 송서윤의 어깨에 내려앉았다.“이야기는 이쯤 하지. 도윤이도 내일 학교 가야 하니까.”“알았어요.” 송서윤은 어깨 위에 놓인 심건모의 손을 맞잡으며 대답했다. 차례로 병실을 나가는 심건모와 소주원을 지켜보다가 시선이 소파 위에 놓인 갈색 서류 가방에 머물렀다.“도윤아, 나 잠시만 나갔다 올게.”“네.”송서윤은 소도윤의 머리를 쓰다듬고 병실을 나섰다. 가느다란 빗줄기가 흩날리고 있었다.심건모는 복도 끝에 서 있었다. 소주원의 발소리가 그의 뒤에서 멈췄다.“내가 내 뜻을 분명히 전하지 않았나요?” 심건모의 목소리는 무미건조했으나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소주원은 심건모의 엄숙한 뒷모습을 응시했다.“두 분 원래 이혼하려 했잖아요. 서윤이는 국장님 선거가 끝나면 떠날 계획이었고요.”“전 아무 짓도 안 했습니다. 그저 기다리려 했을 뿐이에요.”“아무 짓도 안 했다고요?” 심건모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도윤이 다리의 깁스는 방금 한 것처럼 깨끗하더군요.”“병실 에어컨 온도는 원래 26도였고요.”심건모는 손을 뻗어 떨어지는 빗방울을 만지작거렸다. “서윤이의 차는 아직 차량 보관소에 있어요.”하나하나 치밀하게 짜인 소주원의 계략이 심건모에 의해 속속들이 파헤쳐졌다. 소주원은 억눌렀던 감정을 터뜨렸다.“전 서윤이를 무려 9년 동안 사랑했습니다! 서윤이는 죽을 고비에 처한 저를 몇 번이나 구해줬고요. 그런데 어떻게 말 몇 마디로 서윤이를 내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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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3화

소주원의 목소리는 목구멍 안으로 완전히 삼켜졌다. 그저 자신만이 들을 수 있게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릴 뿐이었다.소주원은 심건모가 부른 의사가 소도윤의 깁스를 제거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소도윤은 신이 나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사실 소도윤의 발은 축구를 하다가 살짝 삐었을 뿐, 깁스까지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소주원은 소도윤을 이용했다.그는 자신의 정장 재킷을 들고 달려오고 있는 소도윤을 바라보았다. 돌연 송서윤과 자신의 아들을 똑바로 마주할 면목이 없어졌다.“아빠! 이모가 주말에 나랑 하준이 형이랑 리안이 데리고 유니버설 스튜디오 가준대요!” 소도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소주원의 손을 잡았다. 소주원은 마음속에 가득 찬 죄책감을 누르며 소도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는 떠나는 길에도 감히 병실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심건모의 매서운 검은 눈동자와 마주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심건모는 마치 신처럼 그의 허술한 꾀를 한눈에 꿰뚫어 보았다. 그야말로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두려움이 감돌았다.소주원과 송서윤의 인연은 정말 여기서 끝인 걸까. 도저히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집으로 돌아가는 길, 소도윤은 소주원의 손을 꼭 잡았다.“아빠, 아저씨가 그랬는데... 이제 엄마라고 부르면 안 된대요.”소주원은 깜짝 놀랐다. 하지만 정작 소도윤은 속상해하기는커녕 무척 평온했다.“이모도 동의했니?”“네. 심건모 아저씨가 그러는데 할머니가 좋은 날을 잡아서 제가 아저씨랑 엄마한테 꽃가루를 뿌리게 해주신대요.”소주원은 눈앞이 아득해졌다. 이미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이 갔다.“그리고 나한테 아빠가 한 명 더 생긴대요.” 소도윤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아저씨가 나를 양아들로 삼겠대요. 앞으로는 두 분을 삼촌, 이모라고 부르라고 하셨어요.”소주원은 주먹을 꽉 쥐었다. “아들, 너... 그러겠다고 한 거야?”소도윤은 갑자기 무언가 깨달은 듯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심건모는 소도윤을 사격장에 데려가 총 쏘는 법을 가르쳐주기로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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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4화

“무슨 생각해요?”송서윤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심건모의 크고 늘씬한 실루엣에 당황하며 그에게 이끌려 일어났다. 그녀는 소파 위에 서게 되어 그와 거의 눈높이가 맞았다.다정하게 몇 번 불렀다고 해서 마음이 약해질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번에는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을 작정이었다.심건모의 냉담한 눈빛을 마주한 송서윤은 그의 목을 끌어안으며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방금 어디 갔다 왔어요?”“집에 가서 리안이 보고 왔죠?”“리안이 분유 냄새나요.”“리안이가 저 많이 보고 싶대요? 하준이는요? 숙제는 다 했대요?”송서윤은 고개를 옆으로 튼 채 그의 귓가에 숨결을 불어 넣으며 목소리를 점점 낮췄다. “나 좀 안아줘요. 다리에 힘이 없어서 못 서 있겠어요.”심건모는 결국 송서윤을 안아 올렸다. 그녀는 그의 품에서 몽롱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심건모는 그녀만 침대에 눕히려고 했지만 송서윤이 그의 셔츠 깃을 꽉 붙잡는 바람에 결국 함께 침대에 누울 수밖에 없었다.송서윤은 심건모의 몸 위에 엎드려 어깨에 얼굴을 묻고 아주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여보, 내가 잘못했어요.”“선배 옷 입는 게 아니었는데.”다른 여자가 심건모의 옷에 손만 대도 그는 그 옷을 버리는 사람이다. 그런데 송서윤은 다른 남자의 재킷을 걸치고 있었다. 아까 병실에 들어오자마자 그가 재킷을 벗겨버린 것도 화가 났기 때문이었다.“저번에도 선배랑 결혼해야 했다고 말하는 게 아니었어요.”“음악회 날 밤에 선배 차 타고 가는 게 아니었는데.”“선배랑 쇼핑몰 가서 밥 먹는 게 아니었어요.”“전 전 전에도...”송서윤의 반성은 심건모의 입술에 막히고 말았다. 그는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을 열정적으로 파고들며 얽혀 들었다. 그녀가 숨을 몰아쉬자 그는 그녀의 턱을 잡아 작은 얼굴을 들어 올렸다.“틀렸어. 더 생각해 봐.”심건모는 다시 송서윤의 입술에 입을 맞추며 그녀를 아래에 눕혔다. 그의 손이 허리에서 엉덩이로 내려가 가볍게 두어 번 매질하듯 두드렸다. 송서윤은 입맞춤에 정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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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5화

송서윤이 몸을 뒤척이다 병실 침대에서 떨어질 뻔하자 심건모가 재빨리 손을 뻗어 그녀를 품으로 낚아챘다. 물병이 바닥에 떨어지며 큰 소리가 났지만 그는 그녀의 귀를 감싸 소음을 차단했다.심건모가 바닥에 떨어진 물병을 치우는 제훈을 바라보자 제훈은 조용히 병실을 물러났다. 송서윤은 심건모의 허리를 꼭 껴안았다. 그녀는 여전히 잠들어 있었지만 무언가 불안해 보였다. 심건모의 손이 그녀의 등 뒤에 머물렀고 그의 눈동자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녀는 오늘 일로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이 시간까지도 밖은 보호자들의 소리로 소란스러웠다. 심건모는 송서윤을 부축해 일으켜 환자복을 벗기고 아까 가져온 깨끗한 원피스로 갈아입힌 뒤 그녀를 안아 들었다. 병실 밖으로 나가는 복도 끝, 한 남자가 특수경찰들에게 붙들려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 옆에는 아까와 똑같은 물병 하나가 놓여 있었다.차 안. 송서윤은 심건모의 품에 안겨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비비적거린 뒤에야 안정을 찾았다. 잠결에 섞여 나온 목소리는 나른하고 갈라져 있었다. “여보... 나 떠나지 마요...”갑작스러운 송서윤의 의지에 심건모는 어딘가 불편함을 느꼈다. 그는 그녀를 더 깊이 끌어안으며 한숨 섞인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들을 수 있을 듯 말 듯한 작은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 “너한테 하도 시달려서 이젠 트라우마가 생길 지경이야.”심건모는 송서윤의 코끝을 장난스럽게 톡 건드렸다.심건모는 송서윤을 정부 청사 내 휴게실 침실에 눕히고 침대 곁에 앉아 한참 동안 정적을 지켰다. 안소영이 그에게 말했었다. 송서윤은 고영훈과 허연수의 불륜에 대한 기억을 거의 지워버렸다고.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기억 속에 깊이 묻어 두고 천천히 잊어버린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고영훈이라는 존재는 송서윤의 삶에 너무나 깊게 뿌리박혀 있어 그녀는 그를 잊지 못했다.심건모가 몸을 숙여 송서윤의 부드러운 입술에 입을 맞췄다. “여보, 나도 네 마음속에 깊이 박힐 거야.”심건모는 한 걸음 더 다가가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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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6화

어젯밤, 심건모를 붙잡으며 떠나지 말라고 애원하던 그 애교 섞인 목소리가 아직도 그의 귓가에 생생했다.“저 오늘 정말 바빠요. 어제 하루를 통째로 날렸단 말이에요.” 송서윤은 웃으며 말했지만 그 너머의 우울한 눈빛까지는 감추지 못했다.“할머니 집 해변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거 괜찮겠어?” 심건모는 제훈의 수첩을 들고 물었다.송서윤의 목소리는 무덤덤했다. “네. 좋아요.”“점심 같이할까? 아니면 저녁?”“여보.” 송서윤은 부드럽게 그를 불렀다.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요.”심건모도 굳이 강요하지 않았다. “비 맞지 말고.”“네.”송서윤은 전화를 끊었다. 택시는 이산 그룹 건물 앞에 도착했다. 장호는 이미 오래전부터 송서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산 그룹 로비에서 그녀는 뜻밖에 고영훈과 마주쳤다.고영훈은 여수진을 대동하고 직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밖으로 나가던 중이었다. 반면 송서윤과 장호는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고영훈의 시선이 송서윤의 목에 남은 잇자국에 닿자 눈동자에 안쓰러움이 스쳤다. 그는 담담하게 안부를 물었다. “병원에서 며칠 더 있지 않고?”송서윤도 발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고영훈이 자신을 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별일 아니야. 구해줘서 고마워.”송서윤의 눈빛은 너무나 평온했다.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마치 모르는 사람을 대하는 듯한 시선이었다. 그녀가 다시 발을 떼려 하자 고영훈이 입을 열었다.“고마우면 우리한테 밥 한 끼... 대접해주지.”“여수진 씨...”여수진이 한 걸음 다가서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방어망 협력 건에 관해 이야기 좀 나누고 싶군요.”이틀 동안 개발에 매달렸지만 여수진은 돌파구가 어디인지조차 찾아내지 못했다. 고영훈은 이산 그룹을 무너뜨리기 위해 AI 로봇과 부활 인간 프로젝트 탐사를 계속 압박하고 있었다. 그들이 오늘 온 목적은 표면적으로는 협력이지만 실상은 인재 영입이었다. 매일 침대에 누울 틈도 없이 바쁜 생활에 고통받던 그녀는 결국 타협하고 쉴드 체인 테크의 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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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7화

고영훈의 손이 허공에서 2초간 멈췄다가 이내 거두어졌다.여수진과 송서윤은 서로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방어망 협력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아진시의 대표 요리들이 차례로 나오기 시작했다. 송서윤은 여수진의 까다로운 태도에 시달리면서도 기분이 좋아 보였고 식욕도 왕성해 보였다.고영훈은 그 자리에 조용히 앉아 송서윤을 바라보았다.마치 시간이 거꾸로 흐른 것만 같았다.송서윤은 고영훈과 허연수의 불륜에 대한 기억을 잊었다.고영훈은 문득 지금 이 상황이 꽤 괜찮다고 느꼈다.동씨 가문에서 송서윤은 고영훈의 도움을 거절하지 않았다.고영훈이 송서윤을 뱀 무더기에서 구해냈을 때, 그녀는 그에게 감사 인사까지 건넸다.그리고 조금 전, 그녀는 그의 초대를 거절하지 않았다.지금 그는 송서윤과 같은 식탁에 앉아 있다.머지않은 미래에는 서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른다.무엇보다 송서윤은 오직 고영훈을 위해서만 아들과 딸을 낳아주지 않았던가.지금 그녀가 심건모의 아내라 한들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방어망은 절대 운항 과학기술 회사의 어떤 시스템도 침범하지 않을 겁니다. 5년 후에는 방어망의 소스코드를 공개하여 운항 과학기술 회사와 공유하되 오직 회사의 백엔드 시스템에서만 운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송서윤이 한발 물러서며 진정성 있는 제안을 던졌다.여수진은 깜짝 놀랐다. “방어망을 우리에게 주겠다고요?”“조건이 뭐죠?”“5년입니다. 5년 동안 운항 과학기술 회사 산하의 모든 컴퓨터 서비스 시스템이 제 방어망을 사용하게 하는 것이 제 조건입니다.”송서윤은 방어망의 최대 한계가 어디인지 확인하고 끊임없이 업그레이드하기를 원했다.그녀의 지뢰 찾기 프로그램이 13년 동안 업그레이드를 거쳐 전체 다크웹을 장악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말이다. 하늘처럼 다크웹 전체를 뒤덮고 싶었다.이것은 당시 심건모가 송서윤에게 준 영감이었다.강해질 수 있다면 최고가 되기까지 노력해야 한다.언젠가 다크웹에 잠복한 그 세력을 붙잡게 된다면 송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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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8화

고영훈은 수없이 송서윤을 안으려 할 때마다 그녀가 발버둥 치며 혐오스러워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두려워진 그는 서둘러 그녀를 등 뒤로 끌어당긴 뒤 손을 놓아주었다.“사모님! 심 국장님이 중독으로 입원했다는 게 사실입니까?” 마이크들이 앞다투어 송서윤을 향해 쏟아졌고 고영훈은 몸으로 그 공세를 막아냈다. 송서윤은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돌리더니 종업원의 손을 붙잡았다.“뒷문이 어디죠? 당장 나가게 해줘요!”송서윤은 여전히 휴대폰을 손에 쥔 채 극도로 초조해하며 외쳤다. “제훈 씨, 국장님은 좀 어떠세요?”“어느 병원이죠?”“지금 바로 갈게요!”“아버님 어머님께는 연락드렸나요?”기자들을 가로막고 선 고영훈은 복도 쪽을 바라보며 종업원을 따라 황급히 사라지는 송서윤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그제야 기자들이 상황을 곱씹기 시작했다.“남편이 중독됐는데 전남편이랑 느긋하게 밥을 먹고 있었다고?”“보아하니 이혼 합의서, 사모님이 원해서가 아니라 심 국장님이 안 놔주는 걸지도 모르겠네.”“심 국장님이 그렇게 좋은 분인데 어쩌면 전남편이랑 자꾸 얽히는 걸 못 견디신 거 아니야?”“안팎으로 전남편이랑 얽히는 게 찍힌 게 벌써 몇 번째야!”“닥쳐!” 고영훈은 군중 속으로 커다란 손을 뻗어 입을 놀리던 기자의 마이크를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마이크와 기자를 통째로 제 앞까지 끌어당겼다.“송 대표의 쉴드 체인 테크와 나의 운항 과학기술 회사는 프로젝트를 위해 곧 협력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고영훈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 기자를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입조심해요.”고영훈이 뿜어내는 차가운 기운에 기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꾹 다물었고 붙잡힌 기자는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겁에 질렸다. 고영훈의 시선은 짙은 안갯속을 꿰뚫듯 식당 밖을 향했다. 그곳에서 차 한 대가 급히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송서윤의 모습은 보안 카메라에 남지 않았고 지난 두 번의 실시간 검색어에서도 흐릿한 옆모습만 노출되었을 뿐이다. 일반인들은 그녀가 심건모의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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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9화

보안 요원은 송서윤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길을 비켜줄 기색 없이 차갑게 말했다. “심 국장님 아내라는 걸 어떻게 증명하죠?”“제가요!” 송서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쳤다. “제훈 씨 어디 있어요?”“제 비서는 바빠요.”송서윤을 쏘아보는 남자의 시선은 마치 사냥감을 노리는 듯 번득였다. 각 잡힌 얼굴에 짧게 깎은 머리, 이마에 새겨진 위협적인 흉터까지. 보안 요원 유니폼이 터져나갈 듯한 근육질 몸매가 정말이지 위압적이었다.“사진이 있어요.” 송서윤은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함께 찍은 사진을 찾으려 했다.화면을 넘기는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하지만 온통 이리안의 사진이나 아이와 찍은 사진뿐, 심건모와 찍은 사진은 단 한 장도 없었다.송서윤은 다급한 마음에 덥석 남자의 손을 붙잡았다. “저 정말 와이프 맞아요!”남자는 소스라치게 놀라 한 걸음 물러나더니 송서윤이 붙잡았던 소매를 털어내며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너도 봤지? 여자가 먼저 나 잡은 거다.”표정이 다소 과장되고 익살스러웠다. 그 험악한 근육질 몸매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혁진아.”남자의 어깨에 달린 무전기에서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심건모의 목소리였다.“알았어. 알았어. 네 보물 그만 괴롭힐게.” 혁진이라 불린 남자가 너스레를 떨자 무전기 너머에서 갑자기 사레들린 듯 쿨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송서윤은 심건모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몰라 길이 열리자마자 안으로 돌진했다.병실 문 앞에 멈춰 선 송서윤은 숨을 죽였다. 가슴은 격렬하게 요동쳤고 눈물범벅이 된 심여진의 모습이 보이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공포가 그녀의 심장을 옥죄어 왔다.송서윤은 심여진을 밀치고 병상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평온한 눈매로 병상에 앉아 있는 심건모가 있었다.“여보? 울지 마.” 심건모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하지만 송서윤은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심건모를 끌어안으며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사람 놀라게... 죽는 줄 알았잖아요.”송서윤은 온몸을 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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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0화

“소중한 줄 모를 거면 차라리 일찌감치 양보하든가.”“보아하니 전남편도 인물이 훤칠하던데.” 혁진은 휴대폰 뉴스를 힐끗 보며 덧붙였다.“꽤 대단한 놈 같아 보이네. 사모님이랑 아주 잘 어울려 보이기도 하고.”심건모는 혁진을 서늘하게 훑어보고는 송서윤을 품에 꼭 끌어안았다. 목소리에는 억눌린 분노가 서려 있었다. “나가.”자기가 제 발로 화근을 불러들인 꼴이었다.“이제 막 실력 발휘 시작했는데.”“아까워서 그래?” 혁진은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됐다. 무서워서 원. 내가 져준다.”혁진은 그제야 병실 밖으로 나가며 문까지 친절히 닫아주었다.송서윤은 환자복을 입은 심건모의 안색이 창백한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그의 가슴팍부터 얼굴까지 더듬어 올라갔고 눈물이 끊어진 진주 목걸이처럼 뚝뚝 떨어졌다.“혁진이가 헛소리한 거야.” 심건모는 송서윤의 젖은 눈동자를 마주하자 마음 한구석이 부드럽게 녹아내렸다.“정말 아무 일 없어.”‘그렇게나 나를 걱정한 건가?’심건모는 송서윤에게 그만큼 중요한 존재인 걸까.“피 토했어요?”송서윤의 목소리에 짙은 울음 섞인 걱정이 배어 나왔다. 숨이 차오를 정도로 서럽게 우는 그녀였다.심건모는 송서윤의 얼굴을 감싸 쥐고 눈가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자꾸 울면 못나져.”“아침에 미리 말을 맞춰두려 했어.”“어젯밤에 누군가가 나를 중독시키려 했거든.”그런데 송서윤은 인사도 없이 도망치듯 가버린 것이었다.송서윤은 갑자기 심건모의 어깨를 밀쳐 그를 떼어놓았다.심건모는 웃으며 그녀를 다시 끌어당겼다. “실패했어. 이미 구속됐고.”“사건을 하나 맡고 있는데 사람들 눈을 속여야 했어.”“다 가짜야.”송서윤은 심건모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요동치는 심장을 억눌렀다. 모든 게 가짜라지만 그녀가 느낀 심장의 통증만큼은 너무나 생생한 진짜였다.그때 송서윤의 얼굴이 다시 들어 올려졌다.심건모는 목소리를 낮추고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며 은근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정말 없는 거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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