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와서 빌어? 나 임신했어!의 모든 챕터: 챕터 401 - 챕터 410

504 챕터

제401화

온채아의 발걸음이 돌연 멈춰 섰다.그녀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방금 뭐라고 했죠?”박시훈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그녀를 바라보며 무미건조하게 답했다. “나와 손잡읍시다. 내가 성씨 가문을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나락으로 떨어뜨려 줄게요.”평온한 말투였음에도 온채아는 그의 눈동자 속에 비치는 원한을 읽어낼 수 있었다.온채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성유준과 원수라도 진 건가요?”박시훈은 고개를 저으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채아 씨와 마찬가지로 성씨 가문 전체에 원한이 있죠. 성씨 가문 인간들은 전부 죽어야 합니다.”그의 말이 끝나자 온채아는 자기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뒤로 두 걸음 물러났다. “난 달라요.”“뭐가 다르다는 거죠?”박시훈은 그녀를 빤히 쳐다보며 몰아붙였다. “하긴 좀 다르긴 하겠네요. 성씨 가문에서는 내 어머니만 해쳤지만 채아 씨는 부모님 모두가 성씨 가문 때문에 돌아가셨으니까.”“나보다 훨씬 처참한 상황이면서도 여전히 성씨 가문에 여지를 두는군요. 온채아 씨, 정말 원수를 은혜로 갚는 타입인가 봅니다.”한 마디 한 마디가 그녀의 과거를 이미 낱낱이 파악하고 있음을 드러냈다.하지만 온채아는 지금까지 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이름 하나뿐이었다. 철저히 준비된 접근이었다.온채아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소원희가 한 짓인데 성씨 가문 전체의 잘못으로 돌릴 수는 없어요.”만약 그렇다면 온채아가 개발한 이 약은 그녀의 꿈을 실현함과 동시에 원수의 앞날에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 된다.박시훈이 비웃듯 말했다. “소원희가 채아 씨의 부모를 살해할 때 동원했던 인맥과 권력이 성씨 가문의 것이 아니면 누구의 것이었겠습니까? 지나치게 이상적이시네요.”이어지는 그의 말은 송곳처럼 심장을 찔렀다.“아니면 성유준과 각별한 사이라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건가요?”“인정해야 할 겁니다. 성씨 가문을 위해 개발한 약이 채아 씨의 복수를 훨씬 더 어렵게 만들었다는 사실을요. 안 그렇습니까?”온채아는 주먹을 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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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2화

결국 지난 세월 동안 겪어온 수모와 치욕은 엄연한 사실이었다.온채아의 가슴속에 맺힌 응어리는 단 한 번도 제대로 풀린 적이 없었다.오늘 드디어 그 한을 풀어낼 기회를 잡았건만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가로막히고 말았다.성유준은 라이터를 만지작거렸다. 경쾌한 금속음이 몇 차례 반복되더니 뚜껑을 덮으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늘이 채아랑 할머니가 완전히 갈라설 적당한 타이밍은 아니었어.”“무슨 뜻이야?”“이미 채아를 타깃으로 삼았거든.” 성유준이 말했다.하지훈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박명하? 박명하의 움직임을 알아낸 거야?”연회장 쪽을 바라보는 성유준의 눈에는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DK 제약, 박시훈은 오늘 단순히 나만 노리고 온 게 아니야.”발표회에서 심서정에게 그 질문을 던지도록 유도한 박시훈의 행동.그건 분명 온채아를 겨냥한 것이었다.하지훈이 긴 손가락으로 콧날에 걸린 금테 안경을 밀어 올렸다. “DK 제약의 배후가 박명하라는 게 확실해?”“박시훈에게 양아버지가 있다는 건 너도 들어봤을 거야.”성유준의 목소리가 덤덤하게 이어졌다. “박시훈은 지난 20년 동안 매년 두 번씩 귀국했어. 귀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박명하를 면회하러 가는 시간이 항상 겹쳤지.”완벽한 고리였다. 모든 단서가 DK 그룹의 배후에 박명하가 있음을 가리키고 있었다.박시훈이 오늘 보여준 행보 역시 그들의 타깃이 성유준뿐만 아니라 온채아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과연 발표회에서 심서정이 성유준과 온채아의 관계를 추궁했을 때 성유준이 부정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어차피 부정해 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그럴 바엔 차라리 당당하게 인정해서 상대가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게 압박감을 주는 편이 나았다.하지만 소원희는 체면을 목숨처럼 아끼는 사람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면으로 충돌했다가는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랐다.하지훈이 담배 한 대를 꺼내 불을 붙이려 하자 성유준이 낚아채듯 뺏어갔다. “뭐야? 네가 안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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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3화

그 부분에 대해서라면 온채아는 냉정을 되찾고 이미 생각을 정리한 상태였다.그녀는 정다슬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성씨 가문의 다른 사람들과는 상관없는 일이야.”20년 전, 성씨 가문은 소원희가 장악하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어떤 결정에도 끼어들 수 없었다. 하물며 겨우 열 살이었던 성유준은 더더욱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소원희가 온채아를 모질게 대할 때 직접 그녀를 데리고 나가 그 지옥 같은 세월에서 도망치게 해준 사람은 바로 성유준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온채아는 진작에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정다슬은 온채아가 다른 사람이 판 함정에 빠지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박시훈이 너랑 성유준 사이를 이간질하는 걸 보면 분명 꿍꿍이가 있는 거야.”“프로젝트 때문 아닐까? 네가 성유준을 증오하게 되면 한빛 그룹이랑 더는 협력하지 않을 테니까.”“그럼 DK 제약이 자연스럽게 네 선택지가 되겠지.”온채아는 잠시 망설이다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닐 거야.”박시훈이 준비한 것들이 너무나 치밀했다. 단순히 프로젝트 하나만을 노리고 온 것 같지는 않았다.말이 끝나기 무섭게 휴대폰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확인해 보니 은행의 입금 확인 문자였다. 한빛 그룹 프로젝트의 보수와 성과금이 입금된 것이다.정다슬은 그녀가 문자를 뚫어지게 보자 궁금해하며 물었다. “뭐야?”“프로젝트 보너스가 들어왔어.”마침 신호가 빨간불로 바뀌자 정다슬은 브레이크를 밟고 몸을 숙여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이내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백, 천, 만, 십만, 백만, 천만, 억, 십억... 세상에...”심장이 멎을 뻔했다. 정다슬은 마른침을 삼키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한빛 그룹이 당연히 줘야 할 돈이지. 발표회가 끝나자마자 한빛 그룹 주가가 몇 배나 뛰었으니까.”하지만 성유준이 정말 통 크게 쏜 것만은 분명했다.집에 도착한 온채아는 소파에 늘어져 한참을 쉬다가 욕실로 들어가 씻었다. 임신한 뒤로는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게 확연히 느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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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4화

정다슬 역시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참 잘 어울리는 한 쌍인데 소원희가 저지른 못된 짓들 때문에 억지로 갈라설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정다슬의 말에 온채아도 잠시 침묵에 빠졌다.성유준은 부정하지 않았다. 발표회장에서도 부정하지 않았다.하지만 그것만으론 큰 의미가 없었다. 기껏해야 아직 온채아에게 질리지 않았다는 뜻일 뿐이었다.온라인상에서 네티즌들은 이미 열광의 도가니였다.“한 명은 훌륭한 대표님이고 한 명은 연구 개발 천재라니. 세기의 커플 아니냐고!”“다른 블로거 제보 보니까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소꿉친구래! 성유준도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온채아도 고아라는데 완전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사이 아니야?”“너네 발견했어? 성유준이 키도 크고 다리도 긴데 사진마다 온채아가 항상 반 발짝 앞서 걷고 있어!”“디테일 미쳤다. 나 오늘부터 두 사람 응원할 거야!”“...”온채아는 네티즌들의 댓글을 훑어보며 가슴속에 하나의 의문을 품었다.‘사진들이 대체 어떻게 유출된 거지?’상식적으로 성유준의 사생활 행적은 매우 은밀했고 평소 인터넷에 그의 사생활 사진이 올라오는 법은 결코 없었다. 어떤 파파라치가 겁 없이 감히 그의 심기를 건드리겠는가.온채아의 머릿속에 한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박시훈.사악한 기운이 감도는 데다 대놓고 그녀와 성유준을 겨냥하고 나타난 사람. 게다가 그는 온채아에게 규칙이나 상도덕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강한 인상을 주었다. 인터넷의 소동은 아마 박시훈의 소행일 가능성이 컸다.온채아가 깊은 생각에 빠지기도 전 문밖에서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정다슬이 무슨 일인지 보러 가려던 찰나 초인종이 울렸다.정다슬은 문을 열고 밖의 상황을 확인하더니 온채아에게 행운을 빈다는 눈빛을 보내고 물러났다.전애인과 전남편이 또 맞닥뜨리다니. 정말 짜릿한 상황이었다.온채아는 의아해하며 다가갔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문 앞에 서 있는 주율천이 아니라 복도 엘리트 홀에서 사람들에게 짐 옮기는 것을 지시하고 있는 성유준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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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5화

정다슬은 옆에서 지켜보며 명색이 대표라는 사람이 고작 슬리퍼 한 켤레로 우월감을 느낀다는 사실에 혀를 내둘렀다. 하지훈보다 더 유치했다. 어쩌면 남자란 종족은 본질적으로 유치한 걸지도 모른다. 주율천 빼고 말이다.주율천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미소 지으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일회용을 신는 게 채아 일감을 덜어주는 길이니까.” 다 신으면 버리면 그만이고 주기적으로 세탁할 필요도 없으니. 참으로 세심했다.정다슬은 상황 파악이 끝났다. 한 명은 유치하고 한 명은 특이한 매력을 가졌다. 온채아가 임신 중이라 걱정되지만 않았다면 죽어도 이런 아수라장에 끼어들지 않았을 것이다.온채아는 못 들은 척 보온 도시락통을 들고 식탁으로 향했다. 네 사람이 마주 앉았다. 성유준은 주율천이 수저를 가지러 주방으로 간 사이에 아주 자연스럽게 온채아 옆 빈자리를 꿰찼다. 그러고는 주인이라도 된 양 정다슬에게 지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정 변호사는 율천이 맞은편에 앉으시죠.”“...”온채아는 성유준을 이길 재간이 없었다. 낮에 있었던 발표회 일로 기분이 가라앉아 있던 터라 식사 내내 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지독할 정도로 냉담했다.성유준은 아까 문 앞에서 온채아가 주율천에게 보여주었던 미소를 떠올리자 화가 났다. 반면 주율천은 아주 여유로웠다. 자리에 앉자마자 온채아에게 닭 다리를 건넸다. “아주머니가 특별히 고은 토종닭이야. 영양사에게 물어보셨대. 네게 딱 맞다고 하시더라.”온채아는 입덧 때문에 예전보다 오히려 살이 빠진 상태였다. 몸보신할 것을 좀 먹어둬야 했다. “고마워요.”온채아가 막 닭 다리를 받으려던 찰나, 성유준이 낚아채듯 가져가 버렸다. “채아는 닭 다리 안 좋아해.” 그러고는 온채아에게 닭 날개를 하나 얹어주었다.“...”온채아는 입술을 깨물며 성유준을 바라봤다. “내가 이제는 닭 다리를 좋아하게 됐으면 어쩔 건데?”사실 그녀는 날개보다 다리를 덜 좋아하긴 했다. 닭을 먹을 때마다 두 사람의 역할 분담은 확실했다. 온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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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6화

식사를 마치자 성유준은 누가 내쫓기라도 하듯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이 늦었어. 하루 종일 고생했을 텐데 일찍 쉬어.” 그 말을 남기고는 주율천이 눈치가 있든 없든 상관없다는 듯 먼저 집을 나섰다.성유준이 그 정도로 말했으니 주율천 역시 더 머물 처지가 못 되었다. 주율천은 식기들을 식기세척기에 넣는 것을 도와준 뒤 말했다. “나도 이만 가볼게.” 주율천은 문득 걸음을 멈추고는 진지한 눈빛과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축하한다는 말을 깜빡할 뻔했네. 이제 네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된 거 말이야.”약의 성공적인 출시가 온채아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온채아의 입가에도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고마워요.”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며 엘리베이터 앞으로 걸어갔다.주율천이 엘리베이터에 탄 뒤 온채아가 집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아까 분명히 가버렸던 성유준이 뜬금없이 나타나 앞을 가로막았다. 키가 훤칠한 성유준은 온채아를 내려다보며 엘리베이터 쪽을 힐끗 보더니 입을 열었다. “나한테 한 일 책임질 생각은 없는 거야?”온채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책임?”“인터넷에 스캔들이 파다하게 퍼졌어.” 성유준은 자신이 손해라도 봤다는 듯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우리 둘의 경사가 머지않았다고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고.”온채아 역시 인터넷에서 비슷한 글들을 본 적이 있었다. 그녀는 성유준을 담담하게 바라보며 차가운 어투로 쏘아붙였다.“내가 성씨 가문을 떠나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네티즌들이 안다면 절대 함부로 추측을 못 하겠지.”부모님의 죽음은 제쳐두더라도 어린 시절 소원희에게 당했던 학대만으로도 온채아가 성씨 가문이라는 호랑이 굴에서 영원히 벗어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만약 성유준이 아니었다면... 성유준만은 다를 것이라 믿었던 게 아니었다면 그녀는 평생 성씨 가문 사람들과는 그 어떤 인연도 맺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늘 성유준은 그의 태도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온채아가 성씨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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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7화

“난 이제 엄마가 없어.”어린 온채아는 울음이 터질 것 같은지 입술을 움찔하더니 미소를 지었다. 온채아는 성유준의 손을 잡고 밖으로 뛰어가 하늘의 별을 가리키며 말했다. “엄마는 아빠랑 같이 하늘의 별이 됐어. 매일매일 채아를 지켜보고 계신대.”“오빠네 엄마 아빠도 분명 오빠를 지켜보고 계실 거야.”온채아는 떠나기 전 남은 사탕 한 알마저 성유준의 손에 쥐여주었다. 성유준이 물었다. “너 먹을 사탕은 있어?”“없어.”온채아는 고개를 저으며 조그만 머리를 치켜들고 말했다. “하지만 난 이제 필요 없어.”성유준은 나중에 집사들에게 물어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온채아에게 사탕은 그 무엇보다 절실했다는 것을. 누구보다 사탕이 필요했기에 유통기한이 다 되도록 아까워서 먹지도 못하고 숨겨두었다는 사실을 말이다.그 뒤로 성유준은 그녀에게 엄청난 양의 단것을 사다 주면서 아침저녁으로 양치질을 하는지 철저히 감시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충치는 막을 수 없었다. 열 살 무렵, 온채아가 처음 충치 치료를 받으러 갔을 때도 성유준이 동행했다. 자지러지게 울면서도 그녀는 약속을 강조하는 걸 잊지 않았다. “약속했어. 치료 끝나고 집에 가면 케이크 계속 먹게 해준다고!”성유준은 옛정에 연연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하지만 온채아와의 과거는 심장에 뿌리를 내린 듯 해마다 몇 번이고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그 기억들이 떠오를 때마다 그녀를 향한 그리움은 더해갔고 그녀가 미련 없이 주율천에게 시집가 버린 사실을 더더욱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성유준은 분명 가장 빠른 속도로 모든 일을 해결했는데 아주 조금 늦어버렸다. 그러니 어찌 미련이 남지 않겠는가.‘단 한 번도 남의 편에 서 본 적이 없어.’온채아의 귀에는 그저 비꼬는 듯한 말로 들렸다. 온채아는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내 편을 드는 방식은 뭔데?”“나를 버리는 거? 아니면 오늘처럼 수모를 그냥 참으라고 하는 거?”그들 사이는 이미 어릴 적 그 시절이 아니었다. 성유준이 무슨 말을 하든 온채아가 쉽게 믿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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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8화

주율천의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는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 차가운 눈빛으로 심서정을 노려보았다.“아직 안 지웠어?”위협적이고 단호한 목소리였다.심서정은 그 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황급히 그릇을 내려놓고 눈시울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도저히 아이를 보낼 수가 없어서...”“병원에 가려고 했어. 그런데 병원 입구에 서니 차마 마음이 독해지지가 않더라고.”“우리 예전에는 정말 좋았잖아. 제발 아이만은 낳게 해주면 안 될까? 부탁이야.”그녀는 목소리까지 파르르 떨었다. 이 아이마저 없어진다면 정말 살아남을 길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주율천이 콧방귀를 뀌었다.“보낼 수가 없다고? 아이를 못 보내는 거야 아니면 네 목숨줄을 못 놓는 거야?”“당연히 우리 아이지!”심서정은 손가락을 떨며 주율천의 소매를 붙잡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생명이잖아. 아이는 죄가 없어.”“그래. 아이는 죄가 없지.”주율천은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며 혐오스럽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하지만 넌 죄가 크잖아. 너 같은 엄마를 둔 아이가 너무 불쌍해.”“네가 결단을 못 내리겠다면 내가 도와주지.”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마치고는 대꾸할 틈도 주지 않은 채 그녀를 밖으로 끌고 나갔다.심서정은 주율천이 본가까지 쫓아와 자신을 낙태시키려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며 울부짖었다.“싫어! 제발 부탁이야. 네 아이잖아! 제발 아이한테 모질게 굴지 마.”주율천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그녀를 집 밖으로 끌어내며 차갑게 쏘아붙였다.“내 아이는 너처럼 독한 여자의 배에서 나오지 않아.”“내가 독하다고?”심서정은 갑자기 자극을 받은 듯 악에 받쳐 따져 물었다.“그럼 누가 안 독한데? 누구 배에서 네 아이가 나왔으면 좋겠어? 온채아?”“온채아가 나보다 나은 게 뭔데! 정신 좀 차려! 온채아는 나보다 내숭이 훨씬 심하다고!”그렇지 않고서야 심서정이 온채아에게 이렇게 당할 리가 없었다. 그것도 이렇게 처참하게.온채아가 처음부터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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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9화

그 두 마디에 민은하는 할 말을 잃고 멍해졌다. 차 안에 있던 심서정이 민은하를 발견했다. 그녀는 미친 듯이 차 문손잡이를 부여잡고 창문을 두드려 댔다.“어머니, 어머니! 율천이가 아이를 지우러 가재요!”악에 받친 심서정의 외침이 민은하의 귀에 또박또박 박혔다. 민은하는 순식간에 얼굴색이 변했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주율천을 바라보았다. “배 속의 아이가 이미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는 걸 알고나 하는 소리야? 낙태라니! 율천아, 네 자식이야!”“내 아이가 맞는지부터가 의문이죠.”주율천은 차갑게 대꾸하고는 더는 말을 섞기 싫다는 듯 운전석 문을 열고 올라탔다. 시동을 걸고 사이드브레이크를 풀고 가속 페달을 밟기까지 모든 행동이 물 흐르듯 이어졌다. 그는 오늘 반드시 심서정을 데려가 아이를 지우겠다고 단단히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율천아!”심서정은 공포에 질려 처참하게 울부짖었다. “안 돼! 내가 잘못했어. 정말 다 잘못했으니까 제발 아이만은 살려줘.”주율천은 단 한마디도 듣고 싶지 않았다. 심서정의 입에서 진실한 말이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거짓말투성이였고 그 버릇은 죽어도 고치지 못할 것이다.차가 마당을 빠져나가려 하자 다급해진 민은하가 차 앞으로 달려들어 길을 막아섰다. 주율천이 거칠게 급브레이크를 밟았다.민은하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율천아, 네가 그동안 뭘 하든 나와 네 할머니는 널 지지해 왔어. 하지만 우리 주씨 가문의 핏줄이 걸린 문제야. 나뿐만 아니라 네 할머니도 절대 동의 안 하실 거야.”“기어이 아이를 없애야겠다면... 나를 먼저 치고 지나가.”자손이 귀하지 않은 집안이라면 모를까 주씨 가문은 다른 명문가에 비해 유독 자식을 귀하게 여겼다. 주씨 가문의 핏줄이기만 하다면 민은하는 누구 배에서 나오든 상관없었다. 정 안 되면 아이만 남기고 어미는 내치면 그만이었다. 재벌가에서 사생아 한둘쯤 있는 건 그리 드문 일도 아니었으니까.주율천의 미간이 서서히 찌푸려졌다.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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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0화

약이 순조롭게 출시되자 온채아의 진료실은 환자들로 가득했다. 다음 날 온채아가 한의원에 도착했을 때 주차장에는 주차할 자리가 없었다. 한의원 주변을 몇 바퀴나 돌았지만 불법 주차할 공간조차 찾지 못했다.주차 자리를 찾지 못해 애를 먹고 있는데 강태무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온채아는 초조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오늘 한의원에 무슨 일 있어요? 주차할 곳이 하나도 없네요.”그녀의 환자들은 일찍부터 대기 번호가 불리는 것에 익숙했다. 지금쯤 이미 애를 태우는 사람들이 있을 터였다.강태무는 난처해하며 말했다.“전부 네 환자들이야. 이른 아침부터 한의원이 꽉 찼어. 간호사들이 온라인 예약을 해야 한다고 일일이 설명하고 있는 중이야.”강태무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약이 출시되어 온채아의 명성이 자자해지면 한의원을 찾는 환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점을 미리 예상했어야 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한의원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다른 진료실 간호사들까지 임시로 몇 명이나 배정되어 온채아의 진료를 돕게 할 정도였다.의사 생활을 수년간 해온 온채아는 환자들의 간절한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병에 걸린 이들 중 하루빨리 낫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온채아는 자기 몸 상태도 잘 알고 있었다. 임신 중이라 무리하게 에너지를 소모해서는 안 되었다.그녀가 망설이고 있을 때 강태무가 말했다. “차를 한의원 입구에 세워둬. 사람을 보내서 주차를 도와줄게. 넌 직원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장 진료실로 올라와.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강태무는 그가 부탁하면 온채아가 조금 힘들더라도 더 많은 환자를 돌볼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최근 온채아의 얼굴 살이 부쩍 빠지고 기력이 눈에 띄게 떨어진 것을 느꼈기에 그는 한의원 일보다는 그녀의 건강 우선으로 생각했다.온채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네. 알겠어요.”임신 중이 아니라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진료를 봐서라도 이 상황을 해결했겠지만 지금은 아이를 걸고 도박을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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